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 자유주의 국가들은 대 러시아 경제 제재를 수차에 걸쳐서 중첩적으로 시행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러시아 경제는 생각보다 견고하게 버티고 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러시아에 대한 미국 주도의 경제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나라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경제 대국 중국과 인도가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을 포기하기는 커녕 그 기회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기회를 타서 러시아산 원유를 싸게 대량으로 수입하고, 이를 정유해서 해외에 되팔고 있다. 중국도 러시아산 원유 및 가스 수입의 양을 늘리고, 대 러시아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 결과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에 의한 수입금은 유가의 인상으로 인해 늘었고 이것이 러시아의 전쟁 경비를 대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전자가 독식하다시피 했던 러시아의 스마트폰 시장은 지금 중국업체들을 독무대가 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다. 유럽은 여전히 러시아산 에너지를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있고, 아프리카의 나라들은 러시아산 곡물에 의존한다.
사실 많은 개도국들은 중립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지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의 자유주의 국가들이 주도하는 반 러시아 정책을 지지하는 나라들의 인구는 전체 지구 인구의 36.4%로 소수에 속한다. GDP 기준으로는 약 70.5%로 서구의 부국들이 러시아 규탄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즉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동남아의 개도국들은 대부분 중립적이거나 친 러시아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미국 주도의 하나의 글러벌 질서가 그렇게 강한 흡인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금년 8월 남아공에서 있었던 블릭스 (BRICS)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주도로 회원국을 확대했다. 푸틴이 불참한 가운데 중국의 입김이 강화될 것을 우려한 인도가 반대 의견을 냈지만 아르헨티나와 중동 국가들 (이란, UAE, 이디오피아, 사우디 아라비아, 이집트)이 대거 신입 회원으로 가입이 확정되었다. 러사아, 중국, 인도 등 이들 국가들은 본질적으로 친 서방 블럭일 수가 없고 새로이 가입한 중동 국가들 또한 미국 편보다는 미국과 거리가 있거나 이란처럼 반미 성향의 국가들이다. 이 활장된 BRICS는 전세계 GDP의 29%, 인구의 46%, 원유 생산의 43%, 세계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큰 경제적, 외교적 비중을 갖고 있다.
전세계는 미국의 판데믹 와중의 무책임한 통화량 증발과 확대 재정 정책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물가를 잡아야 금리를 내리고 경기를 정상화할 수 있다. 물가에서 유가는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유가의 안정은 러시아가 원유와 가스 수출의 수입으로 전쟁 자금을 충분히 충당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유가가 내려가자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과 러시아가 공조해서 산유량을 대량 감축하면서 유가를 올리고 있다. 이 또한 미국이 원하는 세계 질서에 반하는 세력들이 연합하고 있는 모습이다.
인도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젊고 인구 세계 1위 대국의 부상은 또다른 수퍼파워의 등장을 의미한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제3의 길을 추구하는 독자적 외교와 경제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현재도 인도는 자유무역주의와 다른 보호무역주의의 경향을 많이 표출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인도를 2030년까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모디 총리의 집권 이후 수입 물품에 대한 관세율은 증가해왔고 현재는 약 18%로 WTO의 통계에 따르면 가장 관세가 높은 나라에 속한다. 그 밖에도 수입 제한, 쿼타제도, 내수 산업에 대한 지원, 일부 품목의 수출 제한 등 다양한 보호무역주의를 추구해온 나라다. 인도는 중국에 대한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는 나라이지만 그렇다고 서방의 일원이 되는 자유세계의 일원의 길을 걸어오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다. 인도가 미래에 또다른 헤게모니나 다극화한 세계 질서의 하나의 축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큰 이유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자국 우선주의는 EU의 유사한 대응을 불러오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 (인플레이션 감축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법안이지만), 반도체 법 등으로 인한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 미우선주의의 정책, 내수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과 해외 생산 제품에 대한 차별 등의 보호무역주의는 "Homeland Economics" (국내 중심 경제) 시대를 만들고 있다.
이처럼 현재 글로벌 경제 질서는 다극화된 경제 수퍼 파워들이 보호무역주의로 경도되고 있다. 이것이 한국의 수출 주도 경제가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보호무역주의, 자국우선주의, 정부 주도 산업정책이 경제를 살리고 국내 일자리를 만들고, 산업을 육성한다는 실증적 증거는 매우 미약하거나 부정적이다. 하지만 각 나라의 정부와 정치인들은 정치적 압력에 의해 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아래 그래프는 미국에서 학력별로 백인과 흑인의 약물 및 알코올 중독, 자살 등 "절망의 죽음" (Death of Despair) 변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저학력 층에서 절망의 사망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이 밀집된 지역이 소위 러스트 벨트 (Rust Belt)로 알려진 미북동부의 구 산업 중심 주들이다. 이 지역이 미국의 대선과 총선의 향방을 좌우한다.
따라서 미 정치권은 지금 이들 경합주의 쟁탈전을 벌이며 러스트 벨트의 저숙련 노동자들의 실업이 불법 이민과 중국의 제조업이 앗아갔다는 선동으로 반 이민, 반중 정책을 민주 공화 정권에 무관하게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미중 헤게모니 경쟁상 안보 위협의 일부도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은 WTO에 금지하는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하는 명분에 불과하다.
시진핑은 중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와 높은 청년 실업률 등의 일자리 문제와 자신의 독재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도 중국의 중화주의에 바탕을 둔 국수주의와 외부에 적을 만들어야 하는 정치적 필요성이 똑 같이 존재한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민감하고 어려운 처지에 몰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를 갖고 있는데 우리를 부유하게 만든 자유무역질서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중 굴욕외교, 반일 선동에 반작용으로 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안보 공조 강화 정책과 때로는 중국에게 할 말하는 '강단 있는' 외교 정책은 보수 국민들에게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보수권 국민들은 우리가 더 분명하게 친미반중의 분명한 선택을 해야하고 중국과 멀리해야 한다면 반중 정서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정말 우리는 중국에 척지고, 중국을 멀리하면서 살 수 있는가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선 바이든은 트럼프와 달리 미국의 전통주의적 외교 정책으로 복귀해서 미국의 자유우방을 결속하는 외교를 펼치고 있고, 중국, 러시아가 주된 경계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다양한 대중국 포위 전략의 구상과 조직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미일 공조 강화도 그중 일환이다.
문제는 미중이 추구하는 자국이 주도권을 잡는 새로운 세계 질서가 지속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을 우리는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중국의 보편적 가치를 무시한 돈과 강압력에 의한 영향력 확대 정책은 이미 실패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반중 정서는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미국 중심의 새로운 질서는 우리가 무조건 편승할 안전한 길인가? 첫째로는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바이든 정부의 외교 정책의 수명을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이미 푸틴과 시진핑, 김정은과의 친밀한 관계를 자랑하고, 한국을 비롯한 동맹들이 미국의 등을 처먹는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고, 한미, 북미 FTA가 미국에게 불리한 조약이라며 미국 중심으로 재계약을 했던 트럼프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그가 김정은과 위험한 딜을 할까 우리는 가슴을 조였고, 주한미군 분담금을 부동산 임대료 협상에 비교했던 트럼프가 미국의 전통적 외교로 복귀할 것이라고 믿기 힘들다. 그는 지금도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이나 이스라엘 지원에 대해 미국의 주류 정치권과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의 새로운 질서가 우리의 경제적 이해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금 미국은 미국 중심주의, 보호무역주의의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중이다. 현재 우리 기업들은 미국에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대규모로 짓고 있고, 우리 기업의 중국 투자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 주의는 EU, 중국 등 대규모 경제권들의 보호무역주의 대응을 불러오고 있다.
60년대 2차세계 대전 이후의 전후체제인 브레튼 우즈(Bretton Woods) 체제를 통한 미국과의 동맹체제는 우리에게 이익이 분명한 질서였다. 가장 큰 시장인 미국의 시장을 개방하고, 국제 물류의 안전한 이동을 보호해주고, 금융 시스템을 미국 주도로 안정화 했고, 당시 구 소련과 중국의 경제는 보잘것 없었기에 우리가 지불하는 기회 비용도 별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추구하는 새로운 질서에는 미국의 외교적 이해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해를 앞세우고 우리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측면을 부정하기 어렵다.
세계 경제는 중국과 디커플링 (De-coupling)을 손쉽게 할 수 없다. 중국은 구 소련이 아니라 이미 세계 GDP의 18-19%의 거대한 비중을 갖고 있다.
국제 교역의 비중은 훨씬 크다. 아래 그래프는 국가간 교역 금액 기준으로 교역 1위의 나라들을 표시한 것이다. 한국과 일본 모두 교역 1위국가가 중국이다. 중국이 교역 1위 국가인 나라의 네트워크은 미국보다 월등히 크다. 우리나라를 교역 1위로 하는 나라는 동티므르 하나뿐이다. 이런 연결된 경제를 손쉽게 분리할 수 없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 등의 기술 접근을 봉쇄하려고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성공한 예는 드믈다. 시간이 가고 돈이 투입되면 미국 사람들이 하던 것을 일본이 하고, 일본이 하던 것을 한국이 하고, 한국이 하던 것을 중국이 해 왔다. 그것이 기술 이전의 속성이다. 그리고 기술 봉쇄를 우회하는 길이 많이 있다.
미국이 중국을 궁지에 몰면 중국도 다른 나라에 대한 경제적 협박 수단도 많이 존재한다. 배터리나 반도체의 원료 등에서 중국의 독과점을 갖는 것들도 많이 있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우리가 마스크 부족에 시달렸던 것도 중국이 생산 거점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금 자유 보수주의(freedom conservatives) 와 국수적 보수주의(national conservatives) 사이에서 국수적 보수주의의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 그에 따라 우리는 지금 외교 안보적 이해와 경제적 이해의 충돌이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하지만 강대국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질서는 그렇게 명확한 비전이나 전략을 갖고 추구되는 것으로 보기 힘들다. 단기적으로는 미국 대선과 중기적으로는 시진핑의 4선연임 여부에 따란 언제 돌변할 지 모르는 가변적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지금 우리가 채택할 수 있는 길은 일본의 방식일 것이다. 외교 안보적으로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되 중국과 척을 지지 않는 자세다. 우리는 자유 무역으로 부국이 되었고 자유 무역은 정경 분리가 원칙이고 현명한 것이다.
단순논리와 음모론적 반중 선동에 편승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다. 반일 종족주의가 잘못되고 위험한 것인 것과 같이 반중 종족주의도 잘못되고 더 위험한 선택이다.
우리가 일본에서 멀리 떨어져 살 수 없듯이 중국과도 그렇다. 세계는 미국의 단극 중심의 세계로 가고 있지 않다. 다극화된 세계로 가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이 또 대원군 같은 바보 같은 길은 가겠다고 해서야 되겠는가?
p.s 구독자 디제어, 하성우님께서 커피 선물로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가을 마음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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