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의 한국인을 내세운 여당의 혁신위는 출발 당시에 상당한 기대를 모았었다. 부정적인 뉴스만 넘쳐나던 여당으로부터 변화의 기대를 갖게 만들었고, 특히 안요한 위원장이 뉴스 메이커가 되고 실효성은 차치하더라도 이슈를 선점하면서 야당이 수세에 몰리는 듯했다.
하지만 한달이 지난 지금 혁신위는 더 이상 뉴스 메이커도 아니고, 혁신위가 여당을 변모 시켜 다가오는 총선에서 여당의 승리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는 많이 낮아졌다.
이런 용두사미를 흐르고 있는 혁신위의 실패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혁신위, 비대위를 내세우는 우리의 정당의 관행이 정당정치의 근본을 이탈하는 반민주적인 것으로 이제는 버려야 할 잘못된 관행이라는 의견을 여러 번 피력한 바가 있다.
이런 “비상 체제”에 대한 나의 비판적 견해는 그것이 “비상 체제”이기 때문이다. 정당의 당원들의 뜻이 아닌 실패한 리더십들이 당권을 자신들이 임의로 선정한 소수의 인사들에게 (사실은 위원장 일인에게) 위임하기 때문이다. 당의 진로는 당원들이 정하는 것이 민주적 정당의 기본이다. 그러나 정당의 구성원들의 승인도 없이 “전권”을 위임하는 것으로 당헌을 일부 정지시킨 본질적으로 “셀프 쿠데타”이거나 리더십 실패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국민의 시선을 돌리는 “정치 쇼”이기 때문이다.
이런 민주적 정당 정치의 일탈이 반복되는 본질적인 비민주적인 행태에 대한 우리 정당들의 관행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혁신위, 비대위라는 상습적인 쇼를 묵인하는 한국 사회의 정치 무감각은 아직도 우리가 민주주의의 근본적 뿌리인 정당 정치가 진화하고 있지 못한 채로 화석화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지금 여당의 혁신위가 실패로 흘러가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이번 혁신위는 혁신적 아이디어가 전무하다. 비대위 든 혁신위 든 과거 정당들의 비상 체제들이 들고 나왔던 공식에서 한 가지도 벗어난 아이디어가 없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국민의 외면을 받아서 위기를 느낀 정당들의 혁신위나 비대위가 제안하는 제일 강력한 혁신 안이라는 것이 언제나 다선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선수가 높은 정치인들의 정계 은퇴나, 불출마 선언, 그리고 소위 “험지”의 출마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국민들의 정치 혐오에 대한 대증요법이다. 국민의 분노를 받아줄 “희생양”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처럼 국회의원의 물갈이를 통해 초선의원이 많이 당선되는 나라가 없다. 매번 물갈이하고 다선의원들을 정치 혐오의 희생양으로 지목하고 축출해도 한국 정치는 달라지지도 않고 정당은 바뀌는 것이 없어왔다. 그런데 같은 해법을 반복한다.
여당이 왜 분열되었고 지극히 비민주적으로 운영되었고 당원들은 주인이 아니라 관객으로 남아 있는 지에 대한 원인 분석이나 진단이 전무하다.
왜 여당이 국가적 시대적 아젠다나 이슈 발굴과 정책 개발에 철저히 실패하고, 언론이나 의사당에서 국민의 주목을 받는 스타 정치인들도 전무하다시피 한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설명이나 진단이 없다.
이는 짐승을 잡아 놓고 기우재를 지내면서 비가 내리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모습과 다르지 않다. 제사상에 올려진 죽은 짐승이 지금 혁신위가 지목하는 -'윤핵관'과 대통령과 친한 다선 의원과 지도부에 있는 인사들이다.
정당을 초선의원들로 가득 채우면 한국 정치는 달라지는가? 지금 여당의 초선의원들이 이준석 전 대표 축출에 앞장서고 여당을 용산 출장소로 만든 주역들이다.
어떤 지역구 의원의 출마와 불출마는 개인의 선택도 중요하지만 지역 주민의 선택이라는 사실도 혁신위는 잊고 있는 모양이다. 한국 정당정치를 선거구민이 아니라 보스에 충성하는 조폭 집단처럼 만들고 있는 것은 다선 의원들이 아니라 공천제도라는 것을 온국민이 알고 있다. 그런데 혁신위는 이 근본적 문제를 건드리기는 커녕, 공천제도를 이용해서 또는 비민주적 운영의 가장 큰 주역인 대통령의 보이지 않는 손을 빌려 힘센 의원 물갈이의 구태의연한 혁신 쇼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사전 각본도 치밀치 못한 어설픈 모습으로 진행되다 보니 당에서 수용한 혁신안도 전무하다 시피하다 보니 이제 혁신위가 실패한 당권의 “시간 끌기용”이라는 자체 진단까지 나왔다.
혁신이란 구태를 벗고 성과를 내는 조직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런데 본질을 그냥 두고 국민들의 정치 혐오 감정에만 기대어 수십년간 반복된 "쇼"를 다시 하고 있는 것이다.
비중 있는 정치인에 대한 물갈이,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청년 여성 정치 참여 확대 약속, 어느 것 하나 혁신적이고 새로운 것이 있나? 같은 레퍼토리 수십년 듣고도 새로운 것으로 착각할 만큼 지금의 국민들이 우매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혁신적 아이디어 없는 혁신위는 이제 쇼를 중단하고 무대에서 내려가는 것이 옳다.
그 버리는 결단은 실패의 책임 있는 김기현 체제의 붕괴라도 성취할 가능성이라도 제공하지만, 무대의 조명을 더 누려보겠다는 사심은 “시간 끌기용” 광대 짓의 연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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