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은으로부터 5호

나의 겨울 방학 이야기

2024.03.13 | 조회 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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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은

막간.예은으로부터

비행하며 세상을 마음껏 음미하고 있습니다. 사라지는 영감을 글로 기록하고 내용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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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은으로부터 5호

나의 겨울 방학 이야기를 보냅니다.

 

 

2024-03-13

 

 

 사실, 어렸을 때 슬프고 화가 나면 그 이유가 명확했던 것 같아. 친구, 가족 간의 갈등, 학업의 어려움. 내 감정에 커다란 영향을 줬던 사건들이 너무 명확했어. 하지만 이번엔 다르더라. 깊은 슬픔과 무기력의 원인을 찾을 수 없었어. 그래서 원인을 찾았냐고? 아니. 여전히 모르겠어.

 

2월 말, 여의도의 이자카야, 주연과 대화에서

 

 주연과 나란히 앉은 나는 하이볼을 연거푸 마셔댔다. 한참을 술과 감상에 취해 대화를 나누곤 붉어진 얼굴을 한 채로 집에 돌아왔다. 오래된 친구에게 정돈된 감정을 토하고 나서야, 그제야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글을 써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 위에 있던 노트북 전원을 켰다. ‘사실 돌이켜보면…'.

 이 글의 서문을 그렇게 노트북 메모장에 타이핑 했다. 몇 시간 전 그녀에게 했던 말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기록했다. 1월 중순부터 2월의 끝까지. 몇번이고 뉴스레터를 써내려보려 노트북 앞에 앉았지만 쉽지 않았다. 키보드를 마구 두드리다보면 모니터 앞에 나의 글 선생님들 얼굴이 떠올랐다.

'감정을 마구 토해낸 일기장은 너만 재밌지. 읽는 독자는 재미없다.'

라고 말하던 신 선생님과 김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게 감정 호소글이 될까 끝끝내 적어내지 못했던 나의 슬픔과 무기력. 나는 그 감정들을 오랜 시간 정제하고 또 정제했다. 잘 다듬어진 감정들은 그 형태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잘 견뎌내고 나면 전과 다른 새로운 나를 마주하게 한다는 것을. 그 삶의 지혜를 이제서야 알 것 같다. (((선생님들. 저 그래도. 감정 많이 덜어내려 노력했어요. 잘 봐주세요....(?))))

 

 지난 3개월 동안 주변에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가족, 친구, 회사 동료에게 등등. 직접적으로 나에게 일어난 일은 아니었지만 알게 모르게 나는 간접적인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1월이 되었고 나는 모든 것에 무기력을 느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하는 감정이 들지 않았고 무언갈 해보고 싶다는 생각 조차 들지 않았다.

 

운동, 요가, 글, 명상, 음악, 비행. 그동안 나의 생기를 채워 온 모든 것에 무감했다. 최소한의 생존 활동만 반복하며 그렇게 나는 몇주를 지냈다. 집 - 공항 - 비행기 - 공항 - 호텔 - 공항 - 비행기 - 집의 무한 굴레. 무엇인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셈이다.

 

많은 날을 숨 가쁘게 지내 왔으니까, 이렇게 목소리 조차 나지 않게 숨만 쉬는 날도 있어야지. 그렇게 나를 다독였다. 

 

2월의 어느 아침, 엄마 아빠와 오랜만에 아침을 먹었다. 커피를 마시며 요즘 사는 이야기를 좀 해보자며 운을 텄다. 대화의 조건은 각자의 회사 이야기는 꺼내지 않기. 나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던 나의 감정을 처음으로 고백했다.

 

“처음엔 슬픈 감정으로 시작했는데 이게 점점 무기력이 되었어. 종국에 어떤 행위를 억지로 계속 해도 전혀 기쁨이 없더라고. 글, 그림, 악기, 운동. 내가 사랑해 온 그 모든 것들이 아무 소용 없었어. 그래서 나는 몇주간 집 밖을 나가지 않았어. 억지로 애써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아서. 그냥 지금은 나만의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는 듯 해. 모든 것을 정지 시켜보니까 이제 좀 다시 무언가를 슬슬 시작해 볼 힘이 생길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잘 모르겠지만, 엄마 아빠한테 내 마음을 이렇게 정리해서 말해주고 싶었어.”

 

내 말을 들은 엄마는 목이 메이는 듯. 큼큼-. 목을 가다듬다가 마침내 눈물을 보였다.

 

“엄마는 네가 언제나 기쁜 줄 알았어.

네가 언제나 행복해 보였거든. 그래도 잘 쉬었어.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 엄마는 네 마음이 건강한 게 제일 중요해. 

잘 돌아왔어 우리 딸.”

 

나도 찡해지는 코끝을 매만졌다. 방에 돌아와 메모장에 또다시 글을 끄적였다. 엄마와 나눈 대화를 짤막한 글로 다듬어 SNS에 올렸다. 반나절이 지났을까. SNS 쪽지함은 지인들의 편지로 가득 차 있었다. 

 

[예은아 나도 요즘 그래. 우리 함께 아무것도 하지 말아보자.]

[네 글을 보고 아침에 울컥했어.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힘들 때 언제나 네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어. 

언제든지 기댈 곳이 필요하면 내게 말해줘.]

 


예년보다 일찍 피어난 3월 초 도쿄의 벚꽃.
예년보다 일찍 피어난 3월 초 도쿄의 벚꽃.

 

 또다시 어렸을 땐, 이런 내 감정을 누군가에게 힘들면 힘들다고 쉽게 털어놓곤 했다. 지금은 그게 참 어렵다. 내가 가진 감정의 피로를 누군가에게 가중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 불분명한 슬픔은 공감받지 못할 어린 감정이란 생각 때문이다. 이유 없는 우울은 그저 어린 아이 같은 내면의 투정일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왔다. 지인들의 쪽지를 나는 한줄 한줄 곱씹어 읽었다. 내가 어린 아이 같다고 치부해 밖으로 내놓지 못했던 나의 감정터널. 그 길을 누군가도 걸어왔다고 말하는 그 말이. 내가 어두운 터널에 혼자 있지 않도록 같이 걷고 싶다고 하던 그 마음이. 고스란히 내 마음 속에서 회복의 신호탄처럼 펑-하고 터졌다. 터널의 출구를 드디어 비추는 빛이 드디어 들어온 셈이다.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할거야.' 라는 글을 전해 온 나였다. 슬픈 감정이 담긴 글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위로받는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결국 내가 사는 이야기가 곧 당신의 삶 속 이야기임을. 아니, 우리의 서사였음을. 그 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에 귀를 기울여보기로한다. 나는 이제 회복의 봄을 맞이한다. 나의 겨울 이야기를 서랍 속에 고이 간직하며, 덧붙여 감정의 터널을 지나는 중인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가 당신을 안아주는 순간이 되길 바라며. 

 

 

그 마음을 진하게 담아 이 편지를 띄웁니다. 

 

 

 

 

Question . 타인에게 말 못할 감정들로 힘들 때, 그나마 나를 웃게하는 소소한 행복이 있나요?

 

Answer . 혼자 생각해보기, 글로 써보기, 예은에게 보내주기 등등..

 

 

 

그럼, 여섯번째 편지에서 만나요 :)

 

 

 

24년 03월 13일 수요일.

예은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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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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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춘

    0
    8 months 전

    타인에게 말 못할 감정들로 힘들 때, 그나마 나를 웃게하는 소소한 행복이 있나요? → 귀여운 강아지, 고양이 동영상 잔뜩보기~~ / 소중했던 추억 돌이켜보기 🥹🥹🥹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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