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1
구독자에게
예은으로부터 3호
하와이의 이야기를 보냅니다.
어둠 속 산행 중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세 가지.
하나, 나보다 먼저 산행을 시작한 사람의 헤드랜턴 불빛
둘, 내 앞의 길을 비추는 나의 랜턴 불빛
셋, 나보다 늦게 출발한 하이커들 불빛
- 2023년 12월 12일 예은의 일기 -
새벽 4시 20분, 침대에 둔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린다. 눈을 못 다 뜬 채로 오늘의 일출시간을 가장 먼저 검색한다. '12월 12일 오하우 일출 시각 6시 59분’. 일출까지 2시간 30분 채 남은 시간. 서둘러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한다. 지난 밤 잠들기 전 소파 위에 미리 꺼내 둔 러닝 팬츠와 탑을 집어 들어 입는다. 잔 스포츠 가방을 열어 아보카도 스팸 무스비, 물, 선크림, 모자 그리고 모자에 꽂을 휴대용 헤드랜턴을 아무렇게나 집어 넣는다. 운동화를 신고 한 손에 쥔 핸드폰으로 시간을 한번 더 확인한다. 오전 4시 42분. 호텔 로비를 가로질러 나간다.
탁- 탁. 운동화가 이슬 머금은 땅을 빠르게 밟는 소리.
새벽 와이키키 거리를 적막감, 고요함 그리고 생기가 가득 채운다. 차갑게 가라 앉은 새벽의 공기를 뚫고 달리기 하는 사람들. 그들은 온 몸으로 그 열기를 뿜어내며 하나 둘 내 앞을 지나갔다. 간밤에 비가 온 듯 이슬을 머금은 바닥도 그들에게 중요치 않다. 운동화를 땅에 디딜 때마다 발 뒤로 물방울 혹은 모래 따위가 튀어 뒷다리에 붙을 텐데 말이다. 나보다 먼저 앞선 사람도, 늦게 출발한 사람도 그들에겐 또다시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각자의 박자로, 또 각자가 원하는 방향을 향해 달리거나 걷는다. 그리고 완주한다. 아침을 시작하는 운동가를 바라볼 때면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나도 모르게 걸음마다 생의 의지를 담게 된다. 고요한 도로 위, 달리는 사람들이 흘리고 간 생기를 나도 따라 밟으며 코코 트레일 헤드로 향했다.
코코 헤드는 호놀룰루의 일출 명소이면서 가장 난이도 높은 트레킹 코스로 알려져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미 공군이 군수 기지를 코코헤드의 정상에 세웠을 정도로 그 높이가 어마무시하다. 당시 군수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미군은 코코 헤드의 산 밑자락 부터 정상까지 일직선으로 철로를 만들어 사용했고 전쟁이 끝난 현재, 나무 철로를 따라 산 줄기를 타며 하이킹 할 수 있다. 산 줄기를 우회로 없이 직선으로 만든 철로 트래킹. 설명만 들어도 후덜덜한 코코 헤드 트래킹 코스 후기엔 대체로 이런 말들 뿐이다.
[한번 도전해 본 사람은 있어도 두번 이상 가지 않는..]
[코코헤드 가보라고 추천한 현지 가이드를 두들겨 패주고 싶….]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발적으로) 했는데 왜인지 그 이유를 자문해보면 여전히 답을 모르겠다. 무작정 올라가 일출을 보고 싶은 생각 이었을 뿐.
코코헤드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주차장에는 내 차를 포함해 단 한대의 차만 정차 되어 있었다. 나보다 먼저 걷기 시작한 사람이 오로지 한명 밖에 없군. 뒷자리에 던져둔 잔스포츠 백팩을 등에 이고 머리에는 헤드랜턴을 달았다. 딸깍, 랜턴 전원을 켬과 동시에 차오르는 열정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그리고 길을 나섰는데….
“입구가 어디지….?”
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주차장에서 어느 쪽으로 향해야 하이킹 코스의 시작인지 도통 알 수 없다. 이정표 없이 10분을 그렇게 랜턴 불빛에 의지해 이쪽 저쪽을 걸어가는데 어둡고 까만 밤에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 길인지 확신이 없으니 자꾸만 겁이 나, 두려워졌다. 구글맵을 한참 뚫어져라 봐도 답을 알 수 없다. 한숨 쉬며 핸드폰을 가방에 쑤셔 넣고 눈 앞에 놓인 길을 보고 있었다. 어떠한 방향점도 없고 깜깜하기만 하다. 그때 기적처럼 저 멀리 아주 작은 불빛이 두둥실 떠오른다. 어머, 이게 웬일이야. 그 작은 불빛은 내 차 보다 먼저 주차되어있던 차의 주인공. 즉, 나보다 먼저 출발한 누군가의 발자국, 아니 빛자국임이 분명했다. 그 작고 희미한 불빛은 내게 이 길의 안내자임에 분명했다. 빛이 사라질까 나는 재빨리 빛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듯 코코 헤드 하이킹은 산 밑 자락에서 정상까지 일직선으로 놓인 철로(이자 나무다리)를 등정하는 코스이다. 낮에 걸으면 점점 가까워지는 정상을 시야에 담으며 걸을 수 있지만,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은 정 반대이다.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내가 얼만큼 걸어왔는지, 또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보이지 않는다. 머리에 꽂은 헤드랜턴이 비추는 눈 앞의 길, 즉 당장 내 앞에 놓인 4, 5개의 계단만이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전부다. 그렇게 중간쯤에 왔을까. 허벅지가 터질듯이 아파오고 동시에 인내심은 한계점에 임박한다. 하, 나 도대체 어디까지 온거지. 답답한 마음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제서야 나는 뒤를 돌아봤다.
터질 것 같은 종아리를 두들기다 돌아 본 야경. 여지까지 걸어온 곳의 자태가 아름다워 자꾸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떠오르기 전의 오하우 야경은 그런대로 별 천지였다.또 당장 내가 얼마나 등정했는지 알려주는 지점이기도 했다. 목이 바짝 마르고, 온 얼굴엔 땀방울이 줄줄 흐르는 이 시점에서 만난 야경. 더 올라가 일출을 보겠다던 다짐은 고갈되는 체력처럼 점점 희미해진다. 이쯤이면 충분히 멋진걸? 이만하면 만족하고 내려가도 괜찮을 것 같아. 하이킹 도중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 여태 걸어온 그 풍경을 바라봤다. 자꾸만 나의 발자취가 이만큼 멋지다고 두 눈으로 확인 하고 싶은 마음. 과거에 대한 미련.
종착점은 아직 제 모습을 보이지도 않는데, 미련은 여전히 내 두 발을 묶어 자꾸만 이만하면 됐다고 말했고 난 그때마다 뒤를 돌았다가 다시 앞으로 갔다를 반복해 그저 걷기만 했다. 묵묵히 현재를 걷는 것. 어둠 속 산행 중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미련 두기 혹은 묵묵히 나아가는 것. 둘 중 하나 뿐이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
✉️ 예은의 말.
`
202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매년 1월 1일과 12월 31일, 일기장에 적을 말을 꽤나 진중하게 쓰곤 합니다. 1월 1일 오늘은 이렇게 썼어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흔한 일들을 나름의 의미 가득한 일들로 남겨두기. 일년 내 경험을 ‘지금의 기분’ 그대로 꺼내 솔직하게 나름의 문장으로 써보기. 매일의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 그렇게 오롯이 현재를 지내기.
이 뉴스레터를 통해 나름의 의미를 여러분과 함께 나눌게요.
지금 기분 그대로, 솔직하게 말이에요 :).
Happy New Year !
Question . 여러분의 새해 소원을 공유해주세요.
Answer . 혼자 생각해보기, 글로 써보기, 예은에게 보내주기 등등.. 말하면 이루어질거에요.
그럼, 네번째 편지에서 만나요 :)
24년 01월 01일 월요일.
예은으로부터.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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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짱
인생의 멋짐이 글이라는 소리로 다가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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