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3
구독자에게
예은으로부터 2호
바르셀로나의 두번째 이야기를 보냅니다.
1.
[ 이곳은 어디든 털썩 앉으면 그곳이 곧 공연장이 된다. ]
6년 전, 스물 둘 무렵 바르셀로나에서 쓴 예은의 일기 중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숙소 근처 허름한 피자집 문을 열고 들어간다. 영화 싱스트리트의 코너가 교복을 입고 피자 기름 묻은 손으로 악보와 기타 피크를 집어 곡을 쓰고 있을 법한 가게였다. 반지하 구조의 가게에 또다른 젊은 이들 6명이 먼저 앉아 한참 떠들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피자 두판에 제일 싼 와인 두병, 생맥주를 시켰다. 와인 병이 비워지고 주방을 곧 마감한다는 안내를 받을 때, 우쿠렐레 소리가 등 뒤너머로 들려왔다.
"I love you when you're singing that song
And I got a lump in my throat"
진한 분홍색의 우쿠렐레를 들고 Vance Joy의 Riptide를 부른다. 긴 생머리, 노래 중간 중간 짓던 미소,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사랑스러운 표정.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취해 몸을 흔든다. 이 허름한 반지하 피자가게에 모인 열두명은 모두 숨죽여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의 음악과 사랑에 빠진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사장님은 냉장고를 열어 맥주 한병을 꺼내 테이블에 올리고, 우리는 박수를 있는 힘껏 친다. 앞에 놓인 맥주잔을 들어 크게 한모금 목젖을 울렁이며 들이킨다. 김이 다 빠져 식어버린 맥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 끝까지 아니 마음의 저 끝까지 물들어버리는 분홍 우쿠렐레 소녀. 바르셀로나는 늘 그랬듯이 내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세상을 사랑할 이유를 알려준다.
2.
저녁 8시쯤. 식당 앞 마당, 길바닥에 주먹 크기의 블루투스 스피커가 놓여져 있다.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 선율에 맞춰 왈츠 추는 사람들. 주황색 가로등 불빛 하나로 길거리 무도회의 조명이 채워진다. 백발의 부부는 손을 잡고 빙글- 턴을 돌다 마주보며 웃는다.
"저것봐, 우리도 춤출까?"
옆을 지나며 대화하던 젊은 커플은 배낭을 멘채로 그렇게 무도회에 발을 들인다. 두 사람도 등과 손을 서로 맞잡고 발을 맞춰 춤춘다. 이곳에선 춤을 잘 추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들려오는 파도와 재즈 소리, 주황 불빛 그리고 머리 위에 흐드러진 나무 잎들을 무대 삼아 즐기며 춤을 추는 자가 곧 이 무도회의 최고의 댄서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즐기는 것에 초점을 두는 공연. 어느 대극장에서 보던 무용 공연보다 매력적이다. 나는 그들의 넘실거리는 춤사위를 한참동안 즐겨 본다.
그렇게 길거리에 앉아 한참을 시간을 보내다 샹그리아로 목을 축일 때 등뒤로 갑자기 펑-! 하고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분명한 불꽃놀이의 서막임에 틀림 없었다.
작은 불씨가 밤하늘을 가른다. 파스스 불씨가 타는 소리와 함께 제 꼬리를 길게 늘이며 불씨는 높이 솟아 오른다. 불씨가 일정 궤도에 도착해 불꽃이 되어 산발한다. 커다랗게 퍼지는 찰나의 불꽃은 금새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삼십분이 흘렀나. 폭죽이 더이상 터지지 않는다. 해변에 자리 잡아 불꽃놀이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바다를 등지고 다시 시내 쪽 골목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나는 행인들 틈에 섞여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앉은 자리에서 다시 바다 위 새까만 하늘을 가만히 바라본다. 불꽃 놀이가 끝난 후 찾아오는 적막감과 고요함. 나도 모르는 새 맘대로 왔다가 금방 또 사라져 버리는 그 모습이 애틋해 울컥 감정이 올라와버린다.
갑자기 찾아와 나에게 송두리째 행복을 가르쳐 줘놓고선 기색도 없이 금새 우리 곁을 떠나는 것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메모장에 이 모든 감정을 그대로 적어둔다. '영원히 내 마음에 자리할 것 같은 이 행복의 순간도 결국 금새 사라질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나의 행운은 언제나 그렇듯 지금이 아니라면 다시 오지 않을 황홀경의 순간이다. 애틋하고 애틋하다.'
3.
작은 해변 마을 카다케스. 그곳은 한적하고 조용하지만 사람들은 또 한없이 다정하다. 바르셀로나에서 두시간 쯤 산을 굽이 굽이 넘어 운전해, 마을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어느 곳이 마을의 입구인지, 어디가 좋은 곳인지 우리는 애써 찾아보지 않았다. 그저 한적한 해변 마을이라는 어느 여행가의 블로그 일기를 보고, 무작정 나도 그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 그것 하나만 들고 카다케스에 도착했다. 주차장 앞의 세갈래 길 가운데에 서서 우리는 말했다.
"그냥 발길 닿는대로 한번 올라가 보자. 어딜가도 좋을 거야. 즐겨보자 그냥."
세갈래 길 중 가장 좁고 울퉁불퉁 투박한 바위 길을 선택했다. 모퉁이 길을 돌고 돌아 걷다보면, 또 기타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기타 선율이 점점 가까워지는 곳을 향해 정처 없이 산책한다. 선율이 울리는 곳. 그곳에서 우리는 눈에 담기는 풍경에 압도되어 나누던 대화를 멈췄다. 예쁘다, 멋지다 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 때로는 두 눈에 가득 담아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장면을 삶에서 마주한다. 카다케스 교회 앞에서 마주본 섬의 해안가가 꼭 그랬다. 잊고 싶지 않은 여름. 잃고 싶지 않은 행복. 아무런 기대 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보는 자유. 그렇게 갑자기 찾아오고 눈 감아 뜨면 금새 지나가버리는 찰나의 행복. 그 잠깐의 시간으로 나는 오늘 가을을 보내고, 또다시 겨울 지낸 후 내년을 맞을게 분명했다.
4.
"바르셀로네타에 수영하러 가는 거야? 아니면 산책하러?"
"수영하러 갈거야"
"그럼 거기 말고 내가 추천하는 곳에 가봐. Mar Bella 라는 해변이야. 바르셀로네타는 산책하는 해변이지 수영하는 곳이 아니라고."
"흠 , 하지만 난 수영복을 살 수 있는 관광지로 가야해. 네가 알려준 바다는 근처에 공원 밖에 없더라고. 더군다나 오늘 스페인이 공휴일이라... 운영하고 있는 수영복 상점도 딱 바르셀로네타 밖에 없어."
"그래? 그럼 내가 너 수영복 사는 것도 도와줄게. 가는 길에 수영복 가게에 내려줄게."
"뭐라고?"
택시 기사는 수영복 가게에 전화를 걸어 본다. 몇마디 대화를 마친 후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내게 다시 말한다.
"가는 길에 쇼핑몰이 있어. 거기 있는 수영복 가게가 지금 운영한대. Mar Bella 해변이랑 가까워. 내가 잠시 그 앞에 세워 줄테니 금방 수영복을 사고 옷 갈아입고 나와."
"뭐라고????"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마지막 날 오후 1시. 이대로 그냥 떠나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몸을 바다에 풍덩 담궈야 아쉬움이 달래질 것 같은 충동. 그렇게 수영복도 없이 바다를 향해 무작정 택시를 탔다. 택시에 함께 올라탄 현아언니와 바르셀로네타에서 딱 한시간만 수영하고 숙소로 돌아오자고 한참을 얘기할 때다. 택시 기사 아주머니가 완강하게 우리의 행선지를 반대했다. 나도 다 이유가 있어서 관광지 해변을 가려고 하는 거야. 라고 몇번이나 이유를 거듭 설명했지만, 그녀는 '제발 Mar Bella 한번만 가줘. 제발!' 라고 (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말을) 했다.
그녀의 친절이 신기하면서도 웃겼다가 한편으론 대체 왜 이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갸웃 거리며 현아언니와 눈을 마주쳤다. 언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웃음을 참는다. Mar Bella 해변이 도대체 얼마나 아름답길래 저 사람이 저럴까. 못이기는 척 대답한다.
"그럼 Mar Bella로 우리를 데려다 줘요. 당신을 믿어볼게요."
차가 쇼핑몰 입구에 멈춰 섰다. '약속대로 15분 뒤에 여기서 만나!' 라고 할 줄 알았는데...택시 기사 아주머니도 함께 차에서 내렸다. "내가 같이 골라줄게. 옷도 갈아입고 나오려면 나같은 스페인 사람이 도움 될거야." 그녀는 제 말을 쏜살같이 내뱉더니 우리 앞을 당차게 걸어 간다. 쫄래 쫄래 그녀를 따르며 언니와 웃음이 터졌다.
"택시 기사가 수영복을 골라주는 이 신기한 경험을 우리가 살면서 언제 해보겠어?"
그녀는 수영복 가게에서도 내 사이즈로 추정되는 코너에 먼저 서 있었다. 슥- 슥 매의 눈으로 수영복을 골라보는 눈짓을 몇번 하더니 하늘색 비키니를 내 몸 위에 데어본다. "이거 좋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결제 중이다. 결제를 하는 동안 그녀는 점원에게 뭐라 뭐라 또 스페인어로 말을 한다. 점원이 잽싸게 탈의실 커튼을 열고, 가위를 가져와 수영복에 붙은 가격표를 잘라 낸다. 아무래도 그녀가 이렇게 말했을테지. '지금 얘 결제한 수영복 옷 안에 입고 나갈 거야. 가위 좀 빌리자'.
또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탈의실에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있었고, 세번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택시에 다시 몸을 싣고 있었다. 처음 보는 스페인 택시기사에 손에 이끌려, 그녀의 맘에 드는 비키니를 입고, 그녀가 좋아한다는 바다에 그렇게 도착했다.
"Mar Bella는 바르셀로나 현지 사람들이 제일 사랑하는 바다야. 관광객들은 잘 모르지.
바르셀로네타 보다 물이 맑고, 더 자유로워. 너도 그곳을 사랑하게 되길."
-
벌써 세달이 지나 12월이 되어서야 바르셀로나를 정리하는 글을 씁니다. 택시 기사의 목소리, 분홍색 우쿠렐레 연주 소리, 폭죽, 왈츠를 추는 사람들과 카다케스의 정처 없던 산책. 살면서 이렇게까지 운이 좋았던 여정이 있었나? 참 많이 생각했어요. 세상이 제게 '야! 네 20대의 호시절이 지금이다! 맘껏 즐겨!' 라고 소리치는 것 같은 느낌. 그땐 그 행운이 참 애틋하고, 그리울 것 같았어요.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던 5일간의 행운은 한국에 돌아오던 12시간의 비행시간동안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삶이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렇다고, 또 지난 세달동안 행복하지 않았느냐? 라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그 때보다 더 행복하기도, 아프기도 했거든요.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우연을 받아들이는 마음 근육이 더 단단해진 것 같습니다. 우연히 아주 작은 사소한 행복이 나를 찾아왔을 때, 그 일을 별거 아닌 일이 아닌 소중하고 특별한 일로 받아들이는 그런 근육 말이에요. 12월 3일이네요. 12월 한달 동안은 여러분에게도 제 마음 근육을 무료 나눔 합니다. 연말이니까! :) 글 호흡이 기네요. 그럼 이만.
Qustion. 최근에 우연히 느껴본 행복이 있나요?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요.
Answer . 혼자 생각해보기, 글로 써보기, 예은에게 보내주기 기타 등등.
그럼, 세번째 편지에서 만나요 :)
23년 12월 03일 일요일.
예은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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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슈
편지 반가워. 우쿠렐레 배우면 합주하자.
막간.예은으로부터
자전거 타는 풍경 ~~~노래로 시작합니다 푸하하
지슈
노노. 알로하 오에, 섬웨어 오버더 레인보우 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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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주디
MARBELLA 사진도 보고싶어요
막간.예은으로부터
mar Bella 사진 보내줄게요 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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