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JAZZ] Keith Jarrett - 즉흥의 순간에 담긴 완전함에 대하여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연주하는 법을 논하다

2025.07.07 | 조회 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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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JAZZ

재즈를 통해 만나는 음악과 인생의 즉흥연주

에디터의 말

안녕하세요, GM JAZZ의 에디터 Dj.Girin입니다. 

Keith Jarrett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살 때 셀러리 스틱으로 드럼을 치며 시작된 음악 인생이 어떻게 'The Köln Concert'라는 기적까지 이어졌는지 따라가다 보니, 준비된 완벽함보다 순간의 순수한 창조가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뇌졸중 이후에도 오른손 하나로 여전히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모습에서, 진정한 예술가란 어떤 제약 속에서도 본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파도를 타는 것 같다"던 표현처럼, 음악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용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즐겁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셀러리 스틱으로 시작된 천재의 첫 음

2살 때 셀러리 스틱으로 부엌 식탁에서 드럼을 연주하며 음악적 여정을 시작한 아이가 있었다. Keith Jarrett의 어머니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멜로디에 맞춰 연주하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이건 이상한데"라고 생각했다. 7살이 되기 전에 이미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의 고급 곡들을 연주할 정도였으니, 어머니의 놀라움은 당연했다.

어떤 곡이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려 했을 때, 어머니는 지혜로운 질문을 던졌다. "첫 음을 칠 수 있니?" "예스." "두 번째 음을 찾을 수 있니?" "예스." "그럼 이 곡을 연주할 수 있어." 간단하지만 깊은 진리였다. 아무리 복잡한 음악도 결국 하나하나의 음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어머니의 격려는 평생 즉흥 연주 철학이 되었다.

파리에서 나디아 불랑제와 함께 공부하라는 초대를 거절하고, 대신 보스턴의 버클리 음악 대학에서 재즈를 공부하기로 결정한 순간. 클래식의 안전한 길 대신 불확실한 재즈의 세계를 선택한 결정이 음악사를 바꿨다. 셀러리 스틱으로 시작된 리듬감이 결국 'The Köln Concert'까지 이어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연주하는 법

"어떻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연주하느냐." 1968년 Miles Davis가 던진 질문이었다. "그냥 합니다(I just do it)"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단순해 보이는 대화였지만, 재즈 역사상 가장 중요한 만남 중 하나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Keith Jarrett은 1971년까지 일렉트릭 피아노와 오르간을 연주하며 밴드에 합류했다.

또 다른 일화도 흥미롭다. "그건 네 악기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고, "언제든지 와서 연주해(just come and play anytime)"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슨 의미인지 확신하지 못했다"는 회상이 남아있다. 특유의 수수께끼 같은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잠재력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었다.

Miles를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묘사하며, "칙 코리아처럼 문제를 겪었던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두 천재 사이의 특별한 케미스트리였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즉흥연주의 본질을 이미 체득한 피아니스트와, 재능을 단번에 알아본 트럼페터의 만남이었다.


뉴욕에서 만난 평생의 인연들

버클리에서 1년 만에 뉴욕으로 옮긴 젊은 피아니스트는 Art Blakey의 재즈 메신저스에 고용되며 연주자로서의 가시성을 확보했다. 하드밥의 전설적인 밴드에서 활동하는 것은 재즈계에서 인정받는 첫 번째 관문이었다. 동시에 드러머 Jack DeJohnette과의 평생 지속될 우정도 시작되었다.

DeJohnette의 추천으로 색소폰 연주자 Charles Lloyd의 밴드에 합류하게 되었다. 록과 재즈 스타일을 성공적으로 결합한 기념비적인 앨범 'Forest Flower'를 녹음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시기였다. 실험적인 사운드와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거둔 작품으로, 젊은 Keith Jarrett에게는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Lloyd와 함께 연주하는 동시에, 베이시스트 Charlie Haden과 드러머 Paul Motion과 함께 뉴욕에서 트리오 활동을 시작했다. 1967년에는 첫 리더 앨범인 'Life Between the Exit Signs'를 발표하며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뉴욕이라는 재즈의 메카에서 만난 인연들이 평생의 음악적 동반자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ECM과 함께 쓴 즉흥 음악의 새로운 언어

1972년 Keith Jarrett은 ECM 레코드에서 'Facing You' 앨범을 발매했다. 즉흥 음악의 새로운 언어를 선보이며 피아노 재즈의 역할을 재정립한 작품이었다. 맨프레드 아이허의 독특한 프로듀싱 철학과 만나면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사운드 세계가 열렸다. 

ECM 특유의 공간감과 잔향을 살린 녹음 방식은 즉흥연주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다. 단순히 연주 기교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 침묵과 여백까지도 음악의 일부로 만드는 접근법이었다. 피아노 하나만으로도 오케스트라 같은 웅장함과 실내악 같은 섬세함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앨범은 솔로 피아노 즉흥연주라는 장르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기존의 재즈 피아노가 코드 진행이나 스탠더드 곡에 의존했다면, 여기서는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출발하는 음악을 들려줬다. 'Facing You'는 3년 후 'The Köln Concert'라는 기적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었다.


북유럽의 서정적 재즈 언어

1970년대 활동한 European Quartet는 1974년 'Belonging' 앨범으로 완전히 다른 색깔의 재즈를 선보였다. Jan Garbarek의 색소폰, Palle Danielsson의 베이스, Jon Christensen의 드럼이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American Quartet와는 대조적이었다. 북유럽 특유의 서정성과 공간감이 음악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Garbarek의 색소폰은 차갑고 투명한 음색으로 마치 북극의 바람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Keith Jarrett의 피아노와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하모니는 따뜻함과 차가움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었다. 즉흥연주이면서도 마치 작곡된 것처럼 완결성 있는 구조를 보여줬다.

이 그룹이 추구한 음악은 격정적인 연주보다는 내성적이고 사색적인 성격이 강했다. 노르웨이의 피오르드나 스웨덴의 숲에서 들을 법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었다. European Quartet는 재즈가 아메리카 대륙을 넘어 유럽에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중요한 실험이었다.


혼자서 만들어내는 교향곡

1973년부터 시작된 솔로 피아노 즉흥연주는 Keith Jarrett만의 독특한 영역이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대에 올라 피아노 앞에 앉아, 그 순간의 영감만으로 완전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 'Bremen/Lausanne Concerts'는 인터뷰어 Rick Beato가 3장이나 가지고 있을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앨범이 되었다.

이런 형태의 연주는 재즈 역사상 전례가 없었다. 기존의 솔로 피아노 연주는 대부분 미리 준비된 곡이나 스탠더드를 바탕으로 했지만, 여기서는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시작했다. 한 번의 실수도 되돌릴 수 없는 일회성 예술이었다. 그 긴장감과 순수함이 듣는 이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전했다.

솔로 즉흥연주에서 피아노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오케스트라 전체가 되었다. 베이스 라인, 멜로디, 하모니, 리듬을 모두 혼자서 만들어내야 했다. 때로는 조용한 발라드처럼, 때로는 격렬한 록처럼 변화하면서 한 시간 넘게 지속되는 거대한 음악적 여행을 펼쳐냈다. 혼자서 만들어내는 교향곡이었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기적

1975년 발매된 'The Köln Concert'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솔로 피아노 앨범이 되었다. 쾰른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벌어진 단 한 번의 공연이 음반 역사를 바꾼 것이다. 아무런 사전 계획 없이 무대에 올라 66분간 지속된 즉흥연주는 클래식과 재즈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이 앨범을 통해 Keith Jarrett을 알게 되었다.

1978년 SNL에서 연주한 'Country'는 이 앨범의 대표곡 중 하나였다.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멜로디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재즈 팬뿐만 아니라 클래식 애호가들, 심지어 평소 기악음악을 듣지 않던 사람들까지도 매료시켰다. 즉흥연주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구조를 보여줬다.

단순히 상업적 성과를 넘어선 의미가 있었다. 순간의 영감으로 만들어진 음악이 시공간을 초월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준비된 완벽함보다 순수한 창조의 순간이 더 큰 울림을 준다는 진리를 보여준 기적 같은 작품이었다.


피아노를 넘어선 음악적 실험들

'Hymns/Spheres'에서는 바로크 파이프 오르간으로 즉흥연주를 펼쳤다. 거대한 교회 오르간의 웅장함과 Keith Jarrett의 즉흥성이 만나면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종교적 경험을 만들어냈다. 'Book of Ways'에서는 클라비코드라는 고음악 악기를 선택했다. 현대적 즉흥연주와 바로크 시대 악기의 만남이었다.

가장 개인적인 작업은 'Spirits' 앨범이었다. 피아노, 소프라노 색소폰, 퍼커션, 리코더, 파키스탄 플루트, 기타 등을 멀티트랙으로 녹음한 매우 개인적인 앨범이었다. 모든 악기를 혼자서 연주하며 다층적인 사운드 세계를 구축했다. 마치 한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여러 목소리들을 악기로 표현한 것 같았다.

이런 실험들은 Keith Jarrett이 단순한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종합적인 음악가라는 것을 보여줬다. 악기의 한계를 뛰어넘어 음악 자체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의지였다. 각각의 악기가 가진 고유한 특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즉흥연주라는 자신만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능력이 놀라웠다.


텔레파시 같은 상호작용의 비밀

1983년 Jack DeJohnette과 Gary Peacock과 함께 결성한 Standards Trio는 재즈 스탠더드를 연주하며 텔레파시 같은 상호작용으로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세 명이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한 사람이 미세한 뉘앙스를 바꾸면 나머지 두 명이 즉시 반응하며 전체 흐름을 자연스럽게 변화시켰다.

 

이런 호흡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Keith Jarrett과 Jack DeJohnette은 Art Blakey 시절부터 시작된 수십 년의 우정이 있었다. Gary Peacock은 Village Vanguard 앞에서 처음 만났지만, 음악적 교감은 즉시 이루어졌다. 서로의 연주 스타일과 호흡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4년 마지막 공연까지 30년 넘게 지속된 이 트리오는 재즈 스탠더드라는 익숙한 곡들을 매번 새롭게 재창조했다. 같은 곡이라도 그날의 감정과 분위기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탄생했다. 준비된 편곡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영감으로 만들어지는 음악이었지만, 그 완성도는 오랜 시간 준비한 연주보다 훨씬 깊이 있었다.


오른손 하나로 만들어내는 기적

2018년 두 번의 뇌졸중으로 왼쪽 편마비가 발생했다. 66분간 지속되는 'The Köln Concert'를 양손으로 연주했던 피아니스트에게는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Keith Jarrett은 포기하지 않았다. 현재 오른손만으로도 유려하고 복잡한 라인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다시 한 번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doodling"이라고 부르는 연주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낙서하듯 자유롭게 연주한다는 의미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Keith Jarrett만의 음악적 언어가 살아있다. 양손으로 연주할 때와는 다른 제약이 있지만, 오히려 그 제약 안에서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찾아가고 있다. 한 손으로도 멜로디와 하모니를 동시에 구현하는 방법을 개발해나가고 있다.

"청중 없이는 할 수 없었다. 모든 음표는 새로운 발견이다"라고 말했다. 신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대한 열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순수한 형태의 음악적 탐구가 되었다는 느낌이다. 완전한 몸으로 연주할 때보다 더 집중된, 더 본질적인 음악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파도를 타는 것 같은 순간

릭 비아토가 Keith Jarrett에게 마일스 데이비스의 'Solar' 솔로 피아노 버전을 들려줬다. 1980년대에 연주한 자신의 음악이었지만,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연주를 들으며 "파도를 타는 것 같다(That's riding the wave)"고 표현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듣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감상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단지 채널링(channeling)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흥연주가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의식적인 계획이나 기교보다는 순간의 직감과 영감에 의존하는 연주 방식이었다. 연주자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음악적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나오는 음악이기 때문에 매번 새롭고 예측 불가능했다. 같은 곡이라도 연주할 때마다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탄생했다. Keith Jarrett에게 즉흥연주는 창작이 아니라 발견의 과정이었다. 이미 존재하는 음악을 그 순간에 찾아내는 것이었다. "파도를 타는" 것처럼 음악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었다.


두 베이시스트, 두 개의 음악적 세계

Keith Jarrett은 Charlie Haden을 "독특한 사람(singular guy)"이라고 묘사했다. 바흐를 사랑하고 모든 종류의 음악을 들으며 보컬리스트들의 노래도 즐겨 들었다. 폭넓은 음악적 취향이 연주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American Quartet에서 보여준 따뜻하고 감성적인 베이스 라인은 Haden만의 독특한 개성이었다.

반면 Gary Peacock은 보컬리스트들의 노래를 전혀 듣지 않았다. 연주하는 곡의 가사조차 모를 정도였다. 순수하게 악기적인 접근에만 집중했다. Standards Trio에서 보여준 연주는 "엣지 있고 흥미로운(edgy and interesting)" 느낌을 주었다. 같은 스탠더드 곡이라도 Peacock의 해석은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두 베이시스트의 차이는 Keith Jarrett의 음악에도 서로 다른 색깔을 부여했다. Haden과 함께할 때는 더 서정적이고 감정적인 음악이 나왔고, Peacock과 함께할 때는 더 실험적이고 지적인 음악이 탄생했다. 개인적인 취향이 음악적 스타일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였다. 같은 Keith Jarrett이지만 함께하는 동료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음악가가 되었다.


3화음으로 만든 아메리칸 사운드

Keith Jarrett은 자신만의 '아메리칸 사운드'를 개발했다. 가스펠이나 찬송가 같은 요소를 포함하는 독특한 음악적 언어였다. 다른 재즈 피아니스트들이 사용하지 않던 3화음(triads)을 즉흥 연주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McCoy Tyner 같은 4도 보이싱보다는 더 단순하면서도 직접적인 감동을 주는 화성을 추구했다.

'Country'나 카네기 홀 공연의 앙코르 곡인 'The Good America'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복잡한 화성 진행보다는 명료하고 따뜻한 3화음의 울림을 중시했다. 대위법과 내성부 움직임에 더 관심을 보였다. 각 성부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바로크 음악의 원리를 재즈에 적용한 것이었다.

이런 접근법은 Ornette Coleman, Charlie Haden, Steve Swallow, Pat Metheny의 음악과도 연관성이 있었다. 카리브해/칼립소 음악과 브라질 음악의 영향도 받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완전히 Keith Jarrett만의 독특한 언어가 되었다. 미국 민속음악의 뿌리와 현대 재즈의 정교함이 만나면서 탄생한 새로운 형태의 아메리칸 뮤직이었다.


아무도 연주할 수 없는 음악

Pat Metheny는 Keith Jarrett의 American Quartet를 "마지막 위대한 어쿠스틱 재즈 그룹"이라고 극찬했다. 몽크의 쿼텟이나 마일스의 퀸텟, 콜트레인 쿼텟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었다. 1970년대 재즈의 황금기를 마감하는 마지막 걸작이라는 평가였다. 작곡집은 "마지막 위대한 송북(song book)"이라고 불렀다.

더 놀라운 것은 Metheny의 다음 말이었다. Keith Jarrett의 음악이 너무 어려워서 아무도 그 음악을 연주하지 못한다고 언급했다. 기술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음악적 깊이와 복잡성 때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음악적 논리와 감성을 완전히 이해하고 재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미였다.

기법을 배울 수는 있어도 그 음악의 본질은 복사할 수 없다는 것. Pat Metheny 같은 동시대 거장이 인정한 유일무이함이었다. Keith Jarrett만의 음악적 DNA가 그만큼 특별하고 복합적이었다는 뜻이었다.


참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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