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보름간의 곡물창고 입하 소식 ▧
풀들
어느 날 집을 청소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런 생각만 해도 피곤하긴 하지만, 구석구석 청소하고 정리하는 편이다. 정리를 위해 상자 같은 걸 사고, 이 상자에는 케이블 같은 걸 넣어야지, 이 상자에는 상비약을 넣어야지 하다가 상자들이 늘어나고, 만약 상자 하나하나가 제대로 통제되지 않으면, 상비약이 있어야 할 곳에 케이블이 있게 되면, 갑자기 기운을 잃고, 아무 상자에 아무것이나 막 넣게 되고, 결국에는 청소한 듯 보이지만, 그 상자들 속에 혼란을 숨기는 것과 다름없다.
미친풀, 수요일에 쓰는 사람
초월일기 15
기분 관리
라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 것일까?
호저, 초월일기
밀밭의 낱알들
넓게 펼쳐진 밀밭에 수많은 낱알들이 맺혀 있다.
그림자놀이
불빛은 딱 하나의 공간에서 시작되고 그 앞을 비추는 데 반해 벽에 생긴 그림자는 더 커다랗다. 결말이 정해진, 예상되는 말들인 것처럼 그곳에는 손전등이 있었다. 그것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나는 빛에다가 손바닥을 가져다 댄다. 손으로 빛을 가린다.
에피, 밀밭의 낱알들
포도 기사 ➋
대장. 저것들은 진작 다 죽어 없어져야 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저것들, 세상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함에도 단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권력을 쥐고서, 우리를 헐값에 쓰던 저것들 말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기사가 된 이래로 단 한 번도 저들에게 충성한 적이 없어요.
희파, 빙터
▧ 창고 깊숙한 곳에서 찾아낸 랜덤 게시물 1편 ▧
10월 더미 태우는 날
묘를 갖고 싶다. 더 정확히는 묏자리를. 숲속에 반듯 널찍한 구멍을 파놓고 싶다. 이 나라엔 산뿐이고 숲이랄 건 없지만서도. 파놓고서 가끔 가 주변을 매만져두고 싶다. 부장품들을 미리 가져다 둔다. 전혀 쓰지 않지만 버리지도 않을 물건들이다. 내가 여생을 비참히 보내지 않는다면 아마 보물함이 거기 들어갈 것이다. 호박, 흑단, 산호, 물총새깃이 들어 있는 작은 나무함이다.
유리관, 뒤편 소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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