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보름간의 곡물창고 입하 소식 ▧
국립현대미술관 앞을 지나가는 개 같은 것
이 개는 아마도
전시를 본 적이 없을 것이고
사실 미술관이 정말로 모든 것을
위할 수는 없지
않나?
웃으며
사진을 찍으며
사람들은 받아들인다
개를 아끼는 동시에
개를 멀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고 말하고 싶은
국립기관의 평범한 마음을
교외 식당 같은 것
구슬픈 음악이 나오는 식당에서
황태해장국을 먹는다 벽에는
환호하는 손흥민과 박태환의 대형 사진이 붙어 있다
진열장엔 온갖 트로피와 인삼주…
새벽 세 시
우리 중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카운터의 박하사탕 그릇 옆에는
세라믹 소재의 리트리버 가족이 놓여 있다
우리가 사는 방식 같은 것
바람이 불 때마다
너는 흔들린다
많이 기다려서 예쁘네
서러워서 빛나네
내가 고함을 지르자
너는 깨져버린다
가속장치 같은 것
안개 속을 걷듯이, 안개 속이 미어지듯이,
그러다 미어터진 안개 조각이 내
발밑에 툭 떨어져 있듯이, 그건 누가
흘리고 간 검은 증기……
그러나 내 마음은 가속, 지금 말고 이따가 와
터진 자루를 꿰매야 하니까
얼어붙은 연못에도 양떼가 모이니까
김깃, ~같은 것
무명용사
애초 혼란한 원고를 준 녀석에게 교정을 보시라고 뭘 줘 봤댔자 혼란한 교정을 해 올 뿐이다. 대체로 봤을 때 제대로 고칠 능력이 있으면 애초에 그렇게 쓰지도 않는다. 사장은 ‘그냥 교수가 해 달라는 대로만 하라’ 하지만, 그런 것은 절대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 나는 대체 뭐 하러 있나? 오늘은 옳은 로서를 틀린 로써로 죄 고치라 표시해 놓은 끼새수교 때문에 위가 쓰리다. 자신감 있으셔서 좋으시겠어요... 나는 위장에 빵꾸가 나려 하고 있는데...
유리관, 교정공기
벽장 속의 드래곤
요부에나와보시카가 말했다. 넌 상상도 못할거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내 삶을 위협하고 날 완전히 망가뜨린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어떤 건지 너는 존나 알 수 없을 거다. 드래곤이 말했다. 나도 안다. 네가 그걸 모르길 바랐다. 이 세계가 그걸 모르길 바랐다. 넌 존나 나쁜 년이다.
해질녘 시작한 논쟁이 끝난 때는 동틀 무렵이었다. 드래곤은 벽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날개를 씹어 먹었다. 긴 꼬리를 씹어 삼켰다. 그의 몸통 절반을 집어 삼켰다. 긴 목을 다섯 번 접었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그 모습을 단 하나도 외면하지 않고 지켜봤다.
에이미앰플, bulk
등장인물
지난주에 그 영화를 다시 봤다.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본 영화다. 정확한 수치는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어떤 인물을 눈여겨보면서 영화를 보았다. 그런 식으로 계속 다른 인물을 눈여겨보면서, 영화를 끊임없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속의 모든 사람이 다 되어볼 때까지 말이다. 물론 그러려면 영화를 처음 보는 것처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되어본 뒤에는 A길로 돌아갈 수도 있고 B길로 돌아갈 수도 있다.
미친풀, 수요일에 쓰는 사람
▧ 창고 깊숙한 곳에서 찾아낸 랜덤 게시물 1편 ▧
프로듀서
○○ 뮤직에 소속된 나기는 ○○○ 차트에 올라온 뒤 이전과 달라졌다. 가령 카페에 가서 작곡을 할 때 음료와 케이크를 같이 시킨다든지. 그러려고 집에서 밥을 안 먹고 온다든지. 나기는 음반 프로듀서였고, 그가 작업한 곡들은 뮤직비디오 작업 담당의 아키하가 다시 작업하곤 했다. 그들의 사이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에피, 도시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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