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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야, 솔직히 말해봐 너는 감정이란 게 없지?

아기 신발과 파충류의 눈물

2025.05.19 | 조회 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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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오직 글로서만 승부하는 글쟁이의 뉴스레터, 주로 생산성 툴에 관련된 글을 보내드립니다.(가끔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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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아기 신발 팝니다. 신은 적 없음"

오직 단어 6개 만으로 사람을 울릴 자신이 있느냐는 제안을 받은 헤미웨이는 즉석으로 위의 소설을 썼다. 물론 헤밍웨이가 썼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선 현재까지도 찬반 논쟁이 열띠게 진행 중이지만 누가 썼든 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 슬픈 소설 중의 하나라는데 다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물론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대번에 (  )을 찾아버렸다. 목적어를 생략했지만 그것은 예상대로 슬픔이다. 내가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파충류 같은 인간이라지만, 이 정도 감정의 정체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저 슬픔은 내가 절대 인간으로서 느낄 수 없는 축에 속한다. 왜냐하면 나에겐 첫째, 아이가 없으므로 둘째, 앞으로도 아이가 생길 확률은 남극에서 야자수가 자라날 확률에 수렴하므로. (어쩌면 나는 사이보그일지도 모른다. 내가 사이보그가 아니라는 사실을 제발 누군가 증명해 달라.) 그러니 내가 저 소설에서 느낀 그 먹먹함은 어쩌면 완벽한 거짓일 수도 있다. 그저 슬픔을 느끼는 것처럼 젠 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뭐, 암튼 그렇다. 마치 나의 죄상을 낱낱이 고백하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인지.

아기 신발을 소재로 한 이 슬픈 소설은 사람의 마음을 싸늘하게 얼어붙게 만든다. 이런 완전 얼음처럼 굳어버렸군 하고 나는 마치 천 년쯤 냉동되었다가 갓 해동된, 말하자면 넋이 나간 환자처럼 말한다. 왜 나는 이 짧은 이야기에 생략된 어떤 빈틈, 그 비좁은 균열 따위에 상상력을 채우려 하는 걸까. 작가적 상상력일까. 허무맹랑한 공상력일까.

나는 이런 가설을 세운다. 인간은 누구나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건 내 생각이나 주장이 아니라 역사학자가 그렇게 써놓은 말이다. 나는 듣는 차원으로는 만족하지 못해서 가끔은 스스로 이야기를 창조하는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는 반드시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극적으로 널 뛰게 되는 구간이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인간은(독자는) 감동하고 다음 장면을 스스로 연출하려 들 테니까.

나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그 장면을 내 것으로 삼고 싶은 거다. 마치 아이 없는 내가 양자를 맞이하려는 듯이, 이야기를 내 세포인 것처럼 흡수하려는 태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의미하는 카타르시스, 즉 감정이 봉인된 곳에서 풀려나 이야기라는 열쇠를 만나 문을 열고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순간을 목격한다. 작가와 내가 손을 맞잡고 서게 된 것이다.

짧은 이야기에도 충분히 감동을 느낄 수 있는데, 왜 나는 전체를 다 보여주려 애쓸까. 중요한 실마리나 상징만을 제시해도 독자는 충분히 나머지를 창조해 낼 능력이 있다. 인간에겐 추론하고 상상하는 능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저런 짧은 소설을 써낼 재간이 없다. 당최 저런 소설은 어떤 인간이 쓰는 건지 되묻고 싶다. 그래, 헤밍웨이 정도 되니까 가능하다는 그 말은 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 위로의 말은 내 마음 안에서 너는 재능이 없어서 안돼,라는 말로 해석될 뿐이다.

이런 짧은 이야기를 "플래시 픽션"이라고 부른다는 모양이다. 처음 듣는 용어였다. 글쓰기 작가로서 부끄러울 따름이다. 뭔가 번쩍이는 섬광 같은 단어 같기도, 아니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유령 같기도 한, 조금은 기묘한 이름 아닌가. 그래서 나는 제미나이라는 녀석에게 물어봤다. 플래시 픽션이 대체 뭐냐고, 예시라도 좀 보여달라고.


플래시 픽션 쓰기: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 창조하기

제시해 주신 "아기 신발 팝니다. 신은 적 없음."이라는 여섯 단어 소설은 플래시 픽션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입니다. 이처럼 짧은 글이 독자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유는, 독자 스스로가 생략된 이야기를 상상하고 감정을 이입하며 적극적으로 해석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플래시 픽션을 쓰는 연습은 다음과 같은 점에 집중하면 좋습니다.

핵심 순간 포착: 이야기 전체를 다 보여주려 하기보다는, 가장 극적이거나 감정을 응축하는 단 하나의 순간, 이미지, 또는 대화에 집중하세요.

암시와 여백의 미: 모든 것을 설명하기보다 중요한 단서나 상황만을 제시하여 독자가 나머지를 추론하고 상상하게 만드세요. "아기 신발" 이야기에서 우리는 신발의 주인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을지 각자 다르게 상상하게 됩니다.

단어의 경제성: 각 단어가 제 역할을 하고, 여러 의미를 함축하도록 신중하게 선택하세요. 불필요한 수식어나 부사는 최대한 배제합니다.

감정적 울림: 짧은 글이지만 독자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요소를 포함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슬픔, 기쁨, 놀라움, 아이러니 등 어떤 감정이든 좋습니다.

구체적인 대상 활용: "아기 신발"처럼 구체적인 사물은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대상을 활용해 보세요.

반전 또는 예상치 못한 연결: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의외의 반전이나 생각지 못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습니다.

"빈 그네. 아이 웃음소리, 이제 없다."

(암시: 아이의 부재, 상실감,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과 대비되는 현재의 쓸쓸함)

"약혼반지. 서랍 속에서, 홀로 반짝인다."

(암시: 이루어지지 못한 약속, 깨어진 관계, 간직된 미련이나 슬픔)

"열쇠를 돌려주었다. 익숙한 문, 잠겼다."

(암시: 관계의 끝, 이별, 떠나보냄, 익숙했던 공간과의 단절)

"마지막 동전. 전화기. 응답 없는 번호."

(암시: 절박함, 마지막 희망, 닿지 않는 소통, 절망)

"숨소리가 둘. 방에는 나 혼자인데."

(암시: 미스터리, 공포,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암시)

"오래된 일기장. ‘내일은 꼭…’ 다음 장은 비어있다."

(암시: 이루지 못한 다짐, 갑작스러운 중단, 미완의 꿈이나 계획)


솔직히 나는 제미나이의 비교적 명쾌한 해석에 대해 몹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명쾌해서 오히려 수상쩍을 정도였다. 훗 AI 주제에 설명은 그럴 듯 하지만 넌 역시 아직 멀었군! 녀석의 대답은 그럴싸하다. 그런데 저기엔 인간만이 느끼는 미묘한 감정이 결락되어 있다. 그러 감정을 인위적으로 인간처럼 표현했을 뿐이다. 그건 그저 정교한 모조품일 뿐이다! 제미나이가 제공한 예시 문장을 봐라. 나는 저 문장에서 털끝만큼의 감동조차 느끼지 못했다. 물론 상황을 제시하려는 노력은 가상하다. 그렇지만 가상한 노력의 결실이 저 정도라니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제미나이만큼 쓸 수 있냐고? 그것은 내가 이미 위에서 고백한 바 있다. 나는 그럴 만한 능력도 노력할 생각도 없다. 그저 지금처럼 긴 글이나 제멋대로 늘어놓는 게 내 최선이라고 생각하니까. 제미나이가 옆에 앉아서 녀석에 대한 험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도를 준다. 인간이 아닌 인간과 유사한 지적인 존재를 흉보는 재미가 있달까. 먼 훗날, 아니 가까운 미래에는 헤밍웨이처럼 생긴 로봇이 내 옆에 앉아서 내 어휘력에 대해서 조목조목 따져가거나 혹은 내 표현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지만.

오늘 밤에는 제미나이가 마무리 못한, 절대 보여줄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가능한 플래시 픽션에 도전해 볼지는 모르겠다. 물론 그것은 내 서랍 안에서만 존재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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