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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이 찾아 오지 않는 날은 짧은 생각을 적는다

어쨌든, 짧은 시 한 편

2025.05.18 | 조회 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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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오직 글로서만 승부하는 글쟁이의 뉴스레터, 주로 생산성 툴에 관련된 글을 보내드립니다.(가끔 소설도 씁니다.)

가끔은 긴 글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이 있다. 분량이 적으면 조금이라도 쉬울 것 같은 유혹에 빠지는데, 그렇다고 냅킨 위에 낙서 따위를 끄적거리지는 않는다. 차라리 신용 카드 전표에 말도 안 되는 시 몇 줄을 적어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신기한 것은 왜소하고 전혀 문학적이지 않은 공간에 뭔가를 억지로 채워 넣으려 하면 문득 시처럼 생긴 문양이 떠오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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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뭐랄까, 작은 양초 심지에 이 세상의 모든 빛을 담으려는 의도적인 시도 같은 건지도 모른다. 그 안에 담긴 감정이란 것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른 빛깔과 온도를 지닌다. 만져봐도 솔직히 뜨거움 밖에 없지만.

시는 시인에게만 속한, 말하자면 꽤 고유하고 숙련된 물건이다. 그 고유한 것에서 알맹이만 얄밉게 발려내고 싶다. 그렇지만, 필요 없는 것들은 슬쩍 옆으로 치워둘 능력은 없다. 그저 느껴지는 것만을 가만히 관찰해 볼 뿐이다. 감정을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싶지만 유치해진다. 비유나 상징과 같은 시적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에둘러서 표현해내야 한다.

여기서 시적 언어라는 건 무엇을 뜻할까.

잘 모르겠지만, 일상 언어가 시적 언어의 반대편에 있다는 사실은 잘 알겠다. 여전히 공상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그 시적 언어가 무엇인지 손가락으로 찍어서 그 맛을 느낄 필요가 있겠다. 내가 좋아하는 이현호 시인의 시를 잠시 맛보자.

가정교육...내가 가져본 적 없는 우리 집에서 그 사람과 나는가질 수 없었던 추억을 미래로 던지며 없는 개를 길렀다....

시를 대하면 어떤 감정이 솟아오른다. 시인과 나, 사이에서 존재하지 않던 길이 생겨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무언가를 공중에서 냄새를 맡듯 더듬는다. 내리쬐는 햇살을 가로채고 풀숲을 손으로 탐색하며 그 속에 잠든 의식을 일깨우려 애쓴다. 그리고 찾는다. 시인의 원초적인 생각을, 그 생각 속에서 피어오른 날 것의 감정을 내 것으로 소화시켜 본다. 

어쩌면 시를 대하는, 그러니까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 안에 잠든 어떤 보드라운 것들이 살며시 깨어날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기대하는 것은 바로 시적이며 몽상적인 분위기였다. 일상 언어가 범람하는 현실이 아닌, 현실 저너머의 세상. 주제 없지만 시인처럼 쓰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다. 그런데 눈앞에 놓인 시인의 표상이 순전히 내 것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결국, 연습이라는 걸 꾸준히 해야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솔직한 이야기도 좀 들어봐야 할 테고. 뭐,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이 필요하다. 그들의 객관적 시선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혼자서 쓰고 싶다. 고독하게, 섬에 유폐된 사람처럼 나에겐 한시적인 고립이 필요하다. AI에게 내 시에 대해 물었다. 녀석은 꽤나 심각한 얼굴로(물론 얼굴은 없지만) 내 시의 '구조적 안정성'과 '정서적 파급력'에 대해 노련한 평론가처럼 이야기했다. 정작 나는 그런 것까지 생각하며 쓰지는 않았는데. 어쩌면 내 시보다 AI의 분석이 더 시적인 것 같다.

아래 프롬프트와 함께 오래전에 작성한 시를 보냈다. 그리고 교정 제안을 요청했다. 시인이 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짧은 글을 쓰고 싶었다. 그것이 내 내적 동기의 전부였다.


"제가 쓴 시에 대한 깊이 있는 피드백을 받고 싶습니다. 아래 제 시를 읽어보고, 다음 질문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감상과 분석, 그리고 개선을 위한 제안을 부탁드립니다."

1. 주제 및 정서 파악

- 이 시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시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정서나 분위기는 어떻게 느껴지나요? (예: 슬픔, 그리움, 성찰, 고독 등) 그러한 정서가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나요?

2. 이미지 및 감각적 표현 평가

- 시에 사용된 시각적, 청각적, 또는 기타 감각적 이미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묘사가 추상적이거나 모호한 부분은 없었나요? 더 생생하게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제안이 있다면 조언해 주세요.

3. 표현 기법 및 문학적 장치 분석

- 시에 사용된 비유, 상징, 역설, 의인화 등의 문학적 장치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으며, 이것이 주제를 드러내는 데 얼마나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혹시 과하거나 부자연스럽다고 느껴지는 표현 기법이 있다면 지적해 주세요. 

- 구체적인 지명, 인물, 또는 사물의 언급이 시의 현실감이나 깊이를 더하는 데 기여하고 있나요?

4. 구조, 리듬 및 흐름

- 시의 전체적인 구조(연과 행의 구분, 길이 등)는 자연스러운가요? 

- 시의 흐름이나 리듬감은 어떤가요? 혹시 특정 부분에서 흐름이 끊기거나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나요? - 반복되는 구절이나 단어가 있다면, 그 효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5. 화자의 목소리 및 전달력

- 화자의 목소리가 진솔하게 느껴지나요? 화자의 감정이나 생각이 독자에게 잘 전달되고 있다고 보시나요? 

- 이 시가 독자에게 어떤 여운이나 생각을 남길 것 같나요?

6. 어휘 선택

- 시에 사용된 어휘가 전반적인 분위기나 주제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나요? 

- 혹시 더 적절하거나 효과적인 단어 선택에 대한 제안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7. 보여주기 점검

- 제가 쓴 시에서 ‘말하고’ 있는 부분을 모두 찾아내 주세요. 말하기(설명)와 보여주기(묘사)의 차이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말하고 있는 부분은 보여주기로 교정해 주세요.

8. 총평 및 개선을 위한 제언

- 이 시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시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교정 제안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목 : 드라이브

작성자 : 공심

 

드라이브, 감당할 자신은 없다

필름 속으로 잠겨 버리는 재주, 그것으로는

당신이 최고라고 야윈 목소리로 누군가 말했다

덕분에 눈이 저절로 감겨오는 밤

터져 나오던 웃음소리, 강물에 표정이 차갑게 부서져가고

오분 전의 어둠이 휙휙 의식 속으로 스미는 가운데에서

보조석에서 달빛만 두둥실 떠내려갔다

혼자 걸으면 어둠에게 들키지 않을까

차창을 열고 검은 늪으로 뛰어드는 상상 속에는, 가벼운 미명 하나가 들리는 듯

우린 모두는 소원에게 빚을 진 신세, 연기와 대화를 잠시라도 나누면 위안이 될지도

그게 무슨 소리야 그만 그 자리에 멈춰

까무러친 당신에게 바닥에 드러눕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줄까나 

한참 어디론가 미끄러지다 가도, 종종 연기가 멈추더라도, 

영영 증발해 버리는 일은 없을 테니

인기척에게 마음을 조곤 하게 건네본다

필름 수천 끊어지는 소리에 깜박 깜박이는 영혼들 

타닥타닥 포획되다, 다시 풀려나곤 하는 어둠의 속사정들

그 사이를 오고 가며 농담을 건네는 어제의 말들

이 지겨운 윤회에게 다음 신호등이 빨갛게 바랄 때까지 참으라면

당신은 그 옆에 얌전하게 앉아 불빛이 까맣게 타버릴 때까지 기다려줄까


물론 시 자체에 대한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AI의 피드백에 여전히 유보적인 입장을 보인다. 또한 적어도 시에서 만큼은 인간이 아직 AI보다 우월하다고 느낀다. 글쓰기 싫은 마음'이 오히려 짧고 응축된 글을 쓰게 만드는 일종의 '긍정적 게으름 이론' 같은 것을 제시한 것은 아닐까. 불필요한 문장들을 모조리 걸러내고, 정말 하고 싶은 최소한의 이야기만 남겨두는.

어딘가에 기대어 보고 싶다는 마음, 의지하고 싶다는 마음, 어쩌면 잠시 시인의 꿈을 꾸는 나를 엿보고 싶은 마음이 전부였을지도.

어쨌든 짧은 시를 쓰는 데는 성공했다.


제미나이의 평가

제공해 주신 시 "드라이브"를 잘 읽었습니다. 매우 감각적이고 내면의 복잡한 풍경을 담아내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아래 질문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감상과 분석, 그리고 개선을 위한 제안을 드립니다. 

이 시는 위태로운 관계 속에서의 불안, 현실 도피, 소통의 단절, 그리고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나 감정의 순환을 주로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드라이브'라는 행위 자체가 어딘가로 향하지만 동시에 갇힌 공간(자동차 안)에서의 여정이라는 점에서, 관계의 진전이나 변화를 시도하지만 결국은 어떤 한계나 문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필름', '연기' 등의 소재는 현실과 환상, 혹은 진실과 거짓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암시하며, 관계의 불안정성을 심화합니다.

시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정서는 불안감, 절망감, 체념, 그리고 일말의 위태로운 의존입니다. 화자의 불안과 절박함이 느껴집니다. 상실감과 무력감이,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체념이 드러납니다. 마지막 연에서는 파국을 예감하면서도 관계를 놓지 못하는 복잡한 심정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정서는 시의 어두운 이미지와 상징들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으며, 몇 가지 부분들을 다듬는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될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의 독창적인 시선과 깊이 있는 사유가 담긴 좋은 시를 감상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작품 활동도 기대하겠습니다.

 


늦은 밤, 모니터 불빛만이 방 안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나는 그 나약한 불빛에 의지해 아주 작은 소망 하나를 띄워 보내려는 참이었다. 시를 써보고 싶은 마음을.

작가가 출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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