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에 앞서
주갈치라는건 매를 부리는 기술자를 뜻한다.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매를 부려 사냥 등에 쓰고는 했는데 이걸 ‘매놓기’, ‘매사냥’이라고 한다. 요즘은 매를 이용해 사냥을 할 필요가 없다. 애당초 사냥을 하지 않는다고 배를 곯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의 주갈치들은 매를 훈련시켜 들판이나 산자락으로 날려보내는 스포츠 활동에 비중을 둔다. 남해에서 활동하는 권재명 주갈치는 이 점을 들어 ‘매사냥’ 대신 ‘매놓기’의 사용을 권장하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 글에서도 매놓기라는 말을 쓰기로 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매놓기
매놓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통해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고려시대 때에는 몽골의 영향으로 매놓기 문화가 성행하면서 전문관청인 응방을 설치하기도 했다. 응방은 조선시대 때에도 유지되다가 숙종 때 응사계로 축소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에는 매놓기 문화가 민간에도 퍼져서 전국에 1천여명의 주갈치가 분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인 1931년 당시 시행된 전국 매놓기 실태조사에서는 전국적으로 매놓기가 성행했음에도 불구, 경상남도 등 3개 도에만 ‘해당사항 없음’으로 기재하고 자세한 설명을 해두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해방 이후에도 그 3개도에서는 관련된 학술조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전광역시 무형유산 매사냥 종목의 이수자인 권재명 주갈치가 의문을 품고 조사를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경상남도 남해군에서 매놓기가 성행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보고서 <주갈치를 찾아서>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남해의 매놓기 문화가 세상에 알려진 후, 남해 매놓기를 무형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남해의 매놓기
남해의 매놓기는 특히 남해군 이동면에서 성행했다. 이유는 이동면에 있는 금산山에 매가 많았기 때문이다. 주갈치들이 기르는 매는 원래 야생의 매이다. 한로나 상강 무렵에 산에 올라 매를 생포한 다음 훈련을 거치는데, 매를 생포하는 과정을 ‘매받기’, ‘매 받는다’고 표현한다.
남해의 주갈치는 한로나 상강 무렵에 매를 받아온다. 예전에는 한로만 되어도 날이 추웠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더 나중인 상강 무렵에 이 일을 한다. 날이 제법 선선해지면 겨울철새인 매가 한반도로 몰려온다. 날이 너무 덥지 않고, 생태환경이 좋은 남해 금산은 매가 많이 분포하는 지역이다. 예전 주갈치들은 금산에 있는 당집이나 암자에 짐을 풀고 산을 올랐다. 적당한 목에 그물을 치고 높은 곳에 올라가 술을 기울이며 매가 걸리기를 기다리는 일은 그 당시 한량들의 최고 유희였다.
그물을 치는 곳을 ‘매밭’이라고 한다. 매밭도 ‘명당’이 있다보니 주갈치끼리의 경쟁이 심했다. 비교적 따듯한 자리는 나이가 많은 주갈치가 양보받기도 했다. 지금은 금산에서 매를 받지 않는다. 금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국립공원에다가 그물을 걸고 천연기념물을 포획한다고 하면 공단직원들 모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달려와 막을 테다.
받아온 매는 독특하게도 관상을 살펴본다. 남해만의 독특한 문화이다. 관상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해두’가 가장 으뜸인 상이다. 해두는 게딱지처럼 납작한 얼굴상을 뜻한다. 오치두라고 해서 까마귀의 부리를 닮은 관상은 아주 영리한 상이며 뱀을 닮은 사두상은 좋지 않게 본다. 또한 관상을 통해 나이나 성별을 유추함으로써 앞으로의 훈련과정을 가늠할 수도 있다.
시치미의 어원
매는 유대감에 따라 점차 실내에서 실외로 내보내며 훈련을 거친다. 야생의 매를 돌매라고 하는데, 돌매가 모든 훈련과정을 마치고 인간과의 유대관계를 형성하게 되면 ‘수진이’라는 호칭을 새로 붙여준다. 수진이에게는 특별히 시치미를 달아준다. 시치미는 수진이라는 신분의 증표이면서 인식표로써의 기능도 겸한다. 왜 하필 시치미라고 부르는가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치다라는 말의 쓰임을 알아야한다.
이불 호창을 뜯어 빨아낸 후에 다시 꿰메서 제자리로 돌려두는 일을 ‘시침질’이라고 한다. 또한 이승에 남은 망자의 한을 풀어 원래 있어야 하는 곳, 그러니까 저승세계로 돌려주는 일을 ‘씻김굿’이라고 한다. 권재명 주갈치의 설명에 따르면 씻김굿의 ‘씻김’도 ‘시침’의 변형이다. 따라서 ‘시치다’, ‘시침’(씻김)은 원래의 자리를 찾아 위상을 정립하는 뜻이다. 원래의 자리라는건 이불 호창의 박음질 자리나 망자가 있어야 할 저승세계와 같이 기존의 자리를 찾는 일도 뜻하지만 새롭게 부여된 자리를 찾아가는 일도 뜻한다. 새학년이 되면 새로운 학급에 가야하듯이 말이다.
이 지점에서 ‘시치다’의 의미가 확장되어 ‘새로운 관계를 부여하는 일’이나 ‘새로운 신분에 자리매김 하는 일’ 등을 뜻하게도 되었다. ‘시치미’는 ‘시치다’의 어근 ‘시치-’에서 명사화접미사 ‘-미’가 붙은 파생어이므로 그 뜻은 같다. 따라서 시치미는 돌매가 새로운 위치, 즉 ‘수진이’라는 위상에 자리매김하는걸 상징하는 용품이 된다. 남해에서는 특별히 수진이가 되는 날에 새 신부인냥 화장을 시켜주기도 한다. 이 또한 남해만의 독특한 문화이다.
남해매놓기의 의의
이후 수진이를 이용해 사냥등에 사용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옛날과 달리 사냥을 할 필요가 없어지기도 했거니와 사냥을 하고 싶어도 사람 수가 부족하다. 빽빽한 수풀 사이에 매가 쏙 들어가버리면 찾을 방도가 없다. 예전에는 이곳저곳 사람이 흩어져 관측꾼 역할을 해주었고 애당초 민둥산이 많아서 그럴 염려가 없었다. 그래서 요즘 몽골이나 중동에서는 매에게 GPS장치를 달고 지프차로 쫓아가기도 한다. 거기는 산이 적고 평원이 넓어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남해의 매놓기문화는 금산을 중심으로 한 매받기 문화와 매의 관상평가 등이 독특하다. 남해는 지형이 험한 섬지역인데도 매놓기 문화가 향유되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이러한 점들은 매놓기 문화의 다양성을 함양한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더군다나 기록의 미비로 도외시 된 지역문화를 다시 살린 사례라는 점도 우수하게 평가될 부분이다. 교하에서도 남해의 매놓기 문화가 더욱 알려지기를 바라며 지난 4월의 답사활동을 비롯,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이번 주제는 '매놓기'였습니다. 그런데 문체와 구성이 기존과 많이 다르지요? 앞으로는 이 느낌을 계속 유지해보고자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편, 교하의 휴식기를 거치며 거의 1달만에 뉴스레터를 보내드렸습니다. 늦어진 점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1달에 1편씩, 보다 양질의 뉴스레터를 주기적으로 발송할 예정입니다. 매달 20일을 기대해주세요. 앞으로도 교하의 뉴스레터는 무료로 발송될 예정이오나, 소정의 후원금은 거절하지 않습니다. 아래 링크에 접속 후 스크롤을 내리시면 후원창이 있습니다. (링크) 여러분의 후원금은 뉴스레터를 지속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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