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세 번째 [주간 해몽]을 건넵니다. 계절은 슬며시 여름을 예고하고, 창밖 초록은 어제보다 조금 더 진해졌습니다. 바뀌는 건 풍경만이 아니겠지요. 그 사이 당신의 하루에도 작은 변화가 자라고 있을 거라 믿어요.
이번 레터는 그런 변화의 기척에 귀 기울이며 준비했습니다. 바쁘게 흘러가는 와중에도 마음 어귀에 잠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몽상 에디션] 바다는 부엌이 된다, 해녀의 부엌
#2 [몽상 에디션] 영화 <1917>과 <서부전선 이상없다>
#3 [ABOUT HAEMONG] 해몽 공식 인스타그램이 개설됐어요.
바다는 부엌이 된다, 해녀의 부엌
제주 해녀 문화의 생생한 기록
제주는 오랜 시간 해녀의 섬으로 불려왔습니다. 바다와 함께 살아온 여성들, 그들이 품은 노동과 공동체의 기억은 오랫동안 제주 지역 문화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함께 해녀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이와 함께 그들의 삶을 구성하던 문화 역시 사라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해녀의부엌'은 이러한 위기 속에서 제주 해녀 문화를 현재의 방식으로 보존하고자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예술인들과 해녀들이 함께 만든 해녀의 부엌은 ‘대한민국 최초의 해녀 다이닝’을 표방하며, 공연과 식사를 결합한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합니다. 구성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해녀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짧은 퍼포먼스를 통해 그들의 삶과 노동, 기억을 예술적으로 풀어냅니다. 공연의 마지막에는 무대 위 해녀가 실제로 등장해 관객과 소통하며, 이어지는 식사를 직접 소개합니다.
2부에서는 해녀가 직접 채취한 해산물과 제주의 농산물로 구성된 향토음식이 제공됩니다. 전복, 뿔소라, 군소, 톳 등 평소 육지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식재료들이 등장하며, 모든 음식은 해녀들의 경험과 손길이 담긴 방식으로 조리됩니다. 해녀 본인의 설명을 들으며 음식을 접하는 구조는 단순한 미각 경험을 넘어서 문화와 기억을 함께 맛보는 일로 확장됩니다.
이 프로젝트의 출발지는 제주 구좌읍의 한 활선어 위판장이었습니다. 20여 년간 버려졌던 이 공간은 해녀의 부엌을 통해 새로운 기능을 부여받았습니다. 지역성과 해양 문화의 상징성을 간직한 장소가 복원된 사례이기도 합니다. 공간을 재활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산물과 지역 농산물의 수매가 시중보다 높은 가격으로 이뤄진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해녀의 자립을 돕고 지역 사회 내에서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의도입니다.
해녀의 부엌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단순한 식문화 체험을 넘어섭니다. ‘바다가 허락한 만큼만 품어온다’는 해녀의 삶의 태도를 이어받아, 해녀의 부엌은 지역의 자원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식재료를 확보하고, 환경친화적인 생산자와 협업을 이어갑니다. 해산물뿐 아니라 제주의 텃밭인 ‘우영팟’에서 자란 농산물도 함께 식탁에 오릅니다. 이는 로컬푸드의 개념을 넘어 지역민의 오랜 지식과 기술을 동시대의 식탁 위로 옮겨오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식사가 끝난 뒤엔 짧은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집니다. 제주 방언을 사용하는 해녀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며, 우리가 뉴스나 교과서에서 접하지 못했던 생생한 인생 이야기를 듣습니다.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울림을 동반하는 이 과정은 해녀를 ‘구경거리’가 아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해녀의 부엌은 제주라는 로컬의 자원을 해녀 공동체와 청년 예술인이 함께 해석한 사례입니다. 공동체 문화, 환경 윤리, 식문화, 예술을 연결해내며, 제주라는 공간이 지닌 문화적 잠재력을 새로운 방식으로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사라져가는 지역 문화를 보존하려는 이 시도는 오늘날 로컬 콘텐츠가 지녀야 할 방향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메뉴
해녀의 부엌 종달점
🏨 제주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2265
⏰ 매주 목, 금, 토, 일 12:00 / 17:00 - 2타임, 매주 월요일 12:00 - 1타임 운영
☎️ 0507-1385-1828
🌐 해녀의 부엌 홈페이지
<해녀이야기>는 러닝타임 2시간 20분으로 진행됩니다.
1부 : 연극 & 해산물 이야기, 2부 : 식사 & 해녀 인터뷰
글 I 김무진
사진 I 직접 촬영 및 해녀의 부엌 홈페이지
참호 너머, 인간의 얼굴
영화 <1917>과 <서부 전선 이상 없다>로 들여다본 전쟁의 본질
1차 세계 대전 이전의 전쟁은 빠르게 진격하고 짧게 끝나는 ‘기동전’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1914년, 참호전이라는 낯선 전술이 전장의 풍경을 바꾸어 놓습니다. 전쟁은 더 이상 ‘기병대의 승리’로 끝나지 않았고, 양 진영은 수년에 걸쳐 좁고 축축한 진흙 속에서 대치해야 했습니다. 특히 프랑스-독일 국경 지대의 ‘서부 전선’은 참호전의 정점이자, 전쟁의 지옥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 장소로 기억됩니다.
영화 <1917> (샘 멘데스 감독, 2019)과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에드워드 버거 감독, 2022)는 이 참호전의 중심에서 전쟁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무력화시키는지를 서로 다른 시점으로 보여줍니다. 전자는 영국군 청년의 시선으로, 후자는 독일군 소년병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적으로 대립하는 두 병사지만 우리가 화면 너머에서 목격하게 되는 것은 국가가 부여한 정체성이 아닌 전쟁이라는 체제 아래 평등하게 고통 받는 ‘한 인간’의 초상입니다.
<1917>은 ‘원 테이크’처럼 보이는 촬영 기법으로 유명합니다. 관객은 쉼 없이 움직이는 주인공과 함께 전장을 누비며 전쟁의 긴장과 공포를 실시간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이 방식은 인위적인 연출보다 더 생생하게 피로감과 압박을 전달하며 한 명의 병사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여정을 강조합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리처드 매든 등의 배우가 짧게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철저히 무명에 가까운 얼굴을 가진 청년(조지 맥케이)입니다. 그의 평범한 얼굴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수많은 병사들을 상징합니다.
반면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의 순간보다도 오히려 ‘기다림’과 ‘무기력’을 길게 비춥니다. 초반의 들뜬 입대 장면에서 점점 사라지는 웃음, 피에 젖은 흙탕물 속으로 들어가는 병사들의 얼굴, 끝내 살아남지 못하는 친구들처럼요. 이 영화는 독일의 ‘패전국 서사’ 속에서 청춘이 어떻게 기계처럼 소모되는지를 차갑고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전쟁이 만든 가장 큰 폭력은 싸우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저 거기에 있게' 만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주인공 파울(펠릭스 카머러)의 연기에서 빛나는 점은 영웅적 장면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순간들의 무력감입니다.
이 두 영화는 정치적 설명이나 역사적 정당성에 큰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승자도, 패자도, 심지어 명확한 전개도 없습니다. 대신 그들은 묻습니다. "누가 이 전쟁을 시작했는가?"가 아니라, "이 전쟁에서 무엇이 무너졌는가?"라고요.
현실에서도 1차 세계대전은 특정 국가의 ‘악’으로 시작된 전쟁이 아닙니다. 산업화, 제국주의, 민족주의, 동맹 체제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촉매가 되었고, 결국 누군가는 책임도 명분도 모른 채 총을 들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흔히 ‘국가의 일’로 정의되지만, 그 총 끝에서 피 흘리는 것은 결국 개인입니다. 그리고 이 두 영화는 관객이 그 개인을 외면하지 못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국기도 계급도 이념도 흐려지는 참호 속에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단 하나의 질문입니다. “이 모든 희생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1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를 본다면 이 두 편을 함께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어떤 인물이나 장면에 마음이 움직였더라도, 그것이 곧 ‘선과 악’을 구분할 기준은 아니라는 걸 기억해주세요. 전쟁은 누군가만의 잘못으로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 끔찍한 현실을 가능하게 만든 수많은 결정과 침묵, 방관과 욕망이 모두 그 책임의 일부입니다.
<1917>
감독: 샘 멘데스
출연: 조지 맥케이, 딘찰스 채프먼, 콜린 퍼스, 마크 스트롱, 베네딕트 컴버배치, 리처드 매든, 앤드류 스콧
러닝타임: 119분
스트리밍: COUPANG PLAY, APPLE TV+
<서부 전선 이상 없다>
감독: 에드바르트 베르거
출연: 펠릭스 카머러, 알브레히트 슈흐, 아론 힐머, 모리츠 클라우스, 다니엘 브륄
러닝타임: 147분
스트리밍: NETFLIX
글 I 김무진
사진 I 네이버 영화
해몽이 처음으로 플리마켓에 참여해요.
5월 31일 용리단길에 다시 숲이 자라납니다.
2025년 경북 지역 산불은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남겼습니다. 특히 안동을 비롯한 내륙 지역은 복구에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5월 31일에 서울 용리단길에서 플리마켓 ‘재숲장터’가 열리는데요, 산불 이후의 남겨진 지역을 돕기 위해 기획된 행사입니다.
해몽도 재숲장터의 뜻에 함께하기로 결정했어요. 이번 장터에는 곽민성 작가의 사진집에 담긴 장면들로 제작한 포스터와 엽서를 들고 나갑니다. 제품 하나하나에는 작가가 기록한 순간들뿐 아니라, 우리가 지켜가고 싶은 마음도 담겨 있습니다. 수익금의 30%는 경북 안동을 비롯한 산불 피해 지역에 기부됩니다!
재숲장터는 우리가 다시 손잡을 수 있다는, 무언가를 조금 더 낫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모이는 자리입니다. 해몽 팀의 구성원과 곽민성 작가 역시 피해 지역에서 나고 자라며, 첫 플리마켓 참여라는 의미를 넘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재숲장터가 소비와 나눔, 지역과 도시, 일상과 재난을 연결하는 시도로써, 지역성과 공공성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믿어요.
5월 31일에 용리단길에서 만나요. 저희가 건네는 작은 이야기들이 새로운 숲의 시작이 되기를 바라며 구독자 님을 기다리겠습니다.
한편, 곽민성 작가의 사진집은 더 나은 제작을 위한 전면적인 편집 디자인 수정에 들어가며, 펀딩 일정이 6~7월로 잠시 미뤄졌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좋은 책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재숲장터
🏨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2가 49-3
⏰ 2025년 5월 31일 토요일, 12:00 - 18:00
🌐 재숲장터 INSTAGRAM
글 I 김무진
사진 I 재숲장터 제공
당신의 꿈이 궁금해요
매주 한 편의 뉴스레터를 만들며, 해몽 팀은 구독자 님의 ‘꿈’에 대해 자주 상상합니다. 어떤 장면에 오래 머물렀는지, 무엇이 마음속에 잔상처럼 남았는지, 때로는 어떤 문장이 오늘 하루의 방향을 바꿨는지도요.
[주간 해몽]은 구독자 님의 감각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떠오른 생각이 있다면 짧은 문장이라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꿈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댓글을 남기고 싶은 아티클을 선택 후 제일 하단에서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번 주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쟁의 참상과 개인의 존엄, 해녀의 삶과 밥상, 그리고 다시 숲을 일구는 사람들까지. 이번 호의 이야기들은 모두 우리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들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구독자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간 해몽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들로 인사드릴게요. 늘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해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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