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급하게 계단을 내려다가 발목을 삐끗하고 말았다. 용무가 급해 우선 걸음을 재촉하는 와중에도 속으로는 온갖 생각을 다 했다. 이거 조짐이 안 좋은데? 뭔가 쫌 오래 갈 거 같은데? 다행히 통증이 더 심해지진 않았지만, 은은하게 뻐근한 게 불안해서 뒤늦게나마 한의원에 가기로 했다.
더 예민하게 걱정한 이유는 작년에도 발목을 크게 접질려 반깁스 신세를 진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통증이 하루 이틀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아 병원에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대 염좌라니! 워낙 덤벙거려 넘어지긴 전문이지만 정형외과를 다니게 된 것은 처음이라 과거의 나에게 꿀밤이라도 먹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미 다친 걸 어떡하겠어? 처음 한두 번은 정형외과를 갔는데 별 차도가 없는 듯해서 회사 근처 한의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것이 OO편한의원과의 첫 만남이다. (편-한 의원? 편한-의원?)
퇴근 시간 이후까지 진료를 하는 인근 한의원 중 후기가 좋은 곳을 찾아갔다. 내가 알던 한의원들은 문을 열자마자 정겨운 한약 냄새가 풍기고 대기 환자도 지긋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곳은 피부과처럼 깨끗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에 은은한 아로마 향이 났다. 화장실에도 이솝 핸드솝이 놓여져 있었다! 한의사 선생님은 어찌나 친절하고 리액션이 상냥한지, 스몰토크를 즐기지 않는 나조차도 말 한 마디나마 더 꺼내게 되는 신비로운 곳이었다. (사실 한의사는 불퉁한 이가 더 드물 것이다. 친절함이야말로 한의원의 진짜 경쟁력이니까…)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이 묘한 이름의 한의원이 좋으면서도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여하튼 한 달 남짓의 치료를 마친 것이 작년인데, 올해 다시 방문하게 된 것이다. 여전히 너무나 친절한 한의사 선생님은 발목이 약해져 있는 것 같으니 당분간은 자주 걷지 말고 조심하라는 통상적인 처방을 내려주었다. 그 후 치료실에 누워 사십 분 가량 치료를 받는데, 새삼 깨닫고 말았다. 한의원의 본질은 결국 어떤 메마른 영혼이라도 단숨에 재울 수 있을 것 같은 따끈한 침대와 아늑한 공기라는 진리를. 머리를 대고 누운 잠시간 동안 나는 완전히 무장해제 되어, 녹은 슬라임처럼 침대에 납작 붙어 버렸다. 도대체 이 마성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한의원이야말로 현대인의 진정한 힐링 스팟이 아닐까?
치료를 마치고 나오는 길은 골아떨어져 곤히 자던 중 누군가 왈칵 일으켜 깨운 것 마냥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마치 제대로 중독된 사람처럼…. 물론 아프지 않은 게 최고지만, 한 번 한의원의 매력을 맛본 사람이라면 한의원 침대가 내심 그리워지는 이 마음에 공감해주리라 생각한다. 흠흠.
그럼 다음 편지에서 만나요. 안녕!
- 당신의 친구, 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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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니
역시 근골격계는 양방보다 한방이 최고.. 저도 한의원에 가야겠어요 한의원물리치료 맛보면 끊을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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