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몸은 쳐지고 건조한 두 눈은 한없이 감기는데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뜨끔거려 잠이 오질 않는다.
어두운 방 안에 누워 한 시간이 넘도록 잠을 기다리다 보면 차라리 뭐라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몸을 일으키면 피곤이 몰려와 다시 풀썩 엎어져 버리고 만다.
윌리엄 바신스키의 <Watermusic II> (2003)는 그럴 때마다 내게 큰 도움이 되어준 곡이다. 끝없는 반복인 듯 보이지만 그 반복의 경계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이 곡은 일렁이는 물의 모양을 닮았다.
재생 시간이 무려 한 시간이 넘는 이 '물의 음악'을 듣는 건 멍하니 물결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해서, 듣다보면 어느 순간 뭔가를 듣고 있으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듣지 않는 평온한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아무것도 듣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듣는 건 아이러니일 수도 있지만 그저 불을 끄고 눕는 것만으론 하루 내내 잔뜩 곤두서있던 정신을 진정시키기 쉽지 않다. 되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 거북함을 느낄 뿐이다.
쉬지 않고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는 건 휴식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충격으로 돌아오듯 서둘러 내달린 하루에는 그만큼 더 천천히 속도를 줄일 필요도 있지 않을까.
넘치는 생각에 괴롭던 불면의 밤들을 감싸 안아 준 이 음악을 내가 정말로 '들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때로는 침묵을 경험하기 위해서도 음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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