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 근황, 그리고 회복탄력성에 대해

근황, 그리고 회복탄력성에 대해

2023.01.08 | 조회 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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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별 에세이

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근황, 그리고 회복탄력성에 대해

 

머뭇거리는 손으로 오늘의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 한 문장을 쓰고도 다음 문장을 뭘 써야 할지 턱을 괴고 한참 고민합니다. 연재를 시작하는 타이밍을 잘못 잡았나, 하는 고민도 듭니다. 몸은 아프고 마음은 피곤합니다. 몸이 피곤하고 마음이 아팠다면 글을 쓰기엔 차라리 좀 나았을 거라고 투덜거립니다. 그러나 아무튼 한 문장을 더 이어 씁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군대에 있던 시절 이야기로 오늘의 분량을 채워야겠지만, 사실 별로 다루고 싶지 않은 과거라서 손이 선뜻 가질 않습니다.

 

몸이 아픈 이유는 사실 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코를 풀다가 목을 삐끗했거든요. 이게 가능한 거냐고요? 저도 생각도 못 했는데, 제가 목이 아픈 걸 보니 가능하긴 한 일인가봅니다. 아저씨들이 재채기하다가 가끔 허리나 목을 삐끗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것 같습니다. 건조한 날에 코를 풀다가 코피가 터지는 일 정도는 저도 가끔 겪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코를 풀다가 목이 삔다고요? 틈만 나면 헬스장에서 쇠질을 하는 30대 초반 남성이요?

 

덕분에 하루종일 누워 있다가 겨우 일어나 잘 돌아가지도 않는 목을 억지로 가누면서 컴퓨터를 켰습니다. 잠깐 딴 생각을 하느라 시선을 돌리다가도 아야야, 신음을 흘리며 목을 두드리면서요. 이 정도면 좀 어처구니없긴 해도 꽤 재밌는 새해 액땜 정도로는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불평해봤자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으니, 지금 아프고 짜증나는 만큼 새해엔 돈이라도 더 잘 벌리길 바라야지요. 아픈 만큼 돈이 벌린다면 응급실도 한 번 정도는 다녀올 의향도 있는데 말이에요.

 

마음이 피곤한 이유는…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참 어렵군요. 작년 마지막 날에 아주 무례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근 2여년 만에 이렇게 화가 난 건 처음이었던 것 같네요. 문제는 그 사람이 제가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 흰 종이 위의 날개에서 제법 중요한 역할을 맡기려고 애써 섭외했던 사람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흰 종이 위의 날개는 개점휴업같은 상태가 제법 길었습니다. 그래서 활동력 있는 사람을 영입해서 새해엔 모임을 활성화시키는 마중물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던 것이지요.

 

아무튼 그 분이 제게 아주 무례한 언행을 하며 희나를 탈퇴했습니다. 함께 희나를 꾸려나가는 친구들은 차라리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기 전에 그만두어서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인성도 능력도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서요. 맞는 말이지만, 그다지 위로가 되진 않더군요. 제가 그 한 사람을 데려오려고 들인 공이 물거품이 되었으니까요. 저는 처음엔 단순히 무례한 말을 들었다는 분노에 휩싸여 있다가, 일 주일 가량이 지난 지금은 은은한 탈진감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간헐적으로 손을 멈추고 깜빡이는 커서 아래에 펼쳐진 광활한 흰색 여백을 보고 있습니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후 멀끔하게 쓸려간 마음의 터전을 바라보는 기분입니다. 제가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이라면 아마 이런 일로 이렇게까지 흔들리지 않았겠지요. 살다 보면 똥은 누구나 밟는 법이고, 이번 일로 제가 겪은 실질적인 피해도 크진 않으니까요. 그런데 저도 아직은 제 마음 하나 돌보기도 서투른 쪼꼬미인가봅니다. 써야 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런 잡담으로 흰 소리나 한참 늘어놓으며 제 마음이 풀리길 바라는 걸 보니까요.

 

뭐,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종이 앞에서만큼은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 제 나름대로의 소신입니다. 애써 괜찮은 척을 하면서 원래 쓰려고 했던 군대 시절 얘기를 줄줄이 늘어놓는 것보단, 좀 찌질하고 소심한 이야기도 솔직하게 풀어놓는 게 더 낫겠다 싶습니다. 왜이리 잡담이 기나며 뒤로 가기를 누르는 분이 많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요. 

 

회복탄력성에 대한 이야기를 좀 풀어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회복탄력성이란 어려움이나 부침을 겪고도 일상적인 생활로 빠르게 돌아오는 능력을 뜻합니다. 탄력 있는 고무줄이 잠시 힘을 받아 늘어나도 빨리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처럼요. 그래서 회복탄력성은 누군가가 얼마나 상처를 잘 극복하는지를 표현하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저와는 꽤 거리가 있는 개념이기도 하지요. 제가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기분 나쁜 일을 겪어도 금방 훌훌 털어버리고 원래 해야 했던 글쓰기에 잘 집중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 회복탄력성의 부재는 제가 서두로 지면을 이렇게나 낭비하면서까지 군대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아하는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지금까지 저는 그 짧은 삶에서 부침이라고 할 만한 것이 두 번 있었습니다. 하나는 군 시절이었고, 그 다음은 대학원 졸업 논문을 쓰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학원에서는 상담심리학과 문학치료를 공부하면서 저의 부침을 철저하도록 곱씹어볼 수 있었습니다. 전공 공부에는 저 자신이 신경증과 역기능적 신념의 가장 좋은 교재였지요. 많은 일기를 썼고, 그 시절의 일기를 돌아보며 저는 이따금 절망하는 저 자신을 마주하곤 했습니다. 힘껏 안아주고 희망을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껏 군 시절의 저를 그렇게 안아주지는 못했습니다. 철조망과 펜스를 이중으로 둘러친 부대 안의 생활관에서, 세면실에서, 식당에서, 소대 보일러실에서 흘렸던 눈물을 저는 지금껏 뒤돌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 고통과 절망의 근원이 내무 부조리나 기수열외 같은 건 아니었습니다. 불합리한 대우를 겪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술자리에서 안주거리 삼아 씹어댈 수 있는 정도의 일들이었지요. 저를 가둔 건 피해의식에 빠진, 교만하고 오만한, 자기 생각을 꺾을 줄 모르는, 바람에도 상처받을 것처럼 연약한 저 자신이었습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십여 년 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없었던 그 긴 망설임에도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다음 연재분부터는 그 스물 두 살의 까까머리 낮별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눠야겠지요. 그리고 최선을 다해 저 자신을 설득하려 할 겁니다. 너는 최선을 다 했다고, 그러니 그 일로 더는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고요.

 

 

 

 

 

글쓰기 공동체 흰 종이 위의 날개 소속 작가입니다. 심리상담과 문학치료를 공부했습니다.

https://litt.ly/heena_day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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