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14) - 서로를 성숙케 하는 사랑이라면 (1)

서로를 성숙케 하는 사랑이라면 (1)

2022.08.18 | 조회 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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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별 에세이

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서로를 더 성숙케 한다면 (1)

 

썸랩이라는 채널에서 필진으로 활동을 시작한 지 세 달 즈음이 되었다. 브런치에서 올리고 있는 악필 편지를 보고, 에디터님이 상담사가 연애 상담을 해주는 채널에서 글을 써볼 의향이 있느냐고 연락을 주신 것이 계기였다. 마지막 연애가 언제였는지도 가물가물한데 연애 상담이라니, 처음 제안을 받아들고는 얼떨떨했지만 푼돈이나마 고료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덜컥 수락했다. 다행히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 왔던 콘텐츠와 크게 방향성이 다른 것은 아니어서 즐겁게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에디터님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채널을 홍보하기 위해 필진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인터뷰란다. 미리 받아들었던 질문지에는 이런 항목이 있었다. “결혼이란 현실인가요? 사랑만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는 없을까요?” 입이 쓴 질문이었다. 위에도 말했듯 연애를 언제 해봤는지도 가물가물했다. 주변에 결혼을 한 친구들이야 드문드문 있었지만 여전히 나에게 결혼은 딴 세상 이야기처럼만 느껴졌다. 그런데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하라고?

 

다른 작가님들은 어떻게 대답했는지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한결 같았다. 현실적인 조건이 해결되어야 건강한 관계가 싹틀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결혼에 대해서 잘 모르고, 다른 작가님들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남들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남들과 똑같은 소리만 할 거라면, 나는 글은 쓸 필요가 없다. 같은 얘기를 쓴다면 나보다 훌륭한 작가가 훨씬 더 잘 써놓은 글이 어딘가엔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조심스레 이렇게 답변했던 것 같다.

 

“결혼이 아직 까마득한 제게는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결혼은 당연히 현실이죠. 제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만 봐도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결혼은 아니지만 저는 이런 연애는 해본 적이 있어요. 5년 정도 만난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가 저를 진짜 좋아했거든요. 대학도 저를 따라서 똑같은 곳으로 오고, 군대도 기다려 주고… 제가 운이 엄청 좋았죠. 그런 사랑을 받아보고 느낀 건데, 그래도 가끔은 현실에 도전해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성숙하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요.”

 

마음에 없는 소리를 꾸며낸 것은 아니었다. 남들과 똑같은 소리를 할 것이라면 글을 쓸 필요가 없지만, 솔직하지 쓰지 않을 것이라면 역시 글을 쓸 필요가 없다. 인터넷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하룻밤에 눈이 맞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외딴 곳으로 도망치는 사랑도 있다. 현실에 눈을 감고 그런 파괴적인 사랑에 목을 매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러나 서로를 성숙케 하는 사랑도 있다. 그런 사랑은 지켜낼 가치가 있다.

 

 

앞서 내가 희나에서 두 번의 연애를 했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나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연애였고, 두 번 모두 스물한 살인가 두 살 즈음의 일이었다. 첫 번째 연애는 2주일만에 끝이 나 버린 연애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 어설펐던 연애는 2주일짜리답지 않게 엄청난 후폭풍과 상처들을 남겼다. 20대 초반의 첫 연애다운, 실수와 잘못과 오해의 연속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도 내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덤덤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 그저 미숙했던 나에게 상처를 받았을 나의 첫 여자친구에게 미안한 마음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두 번째 여자친구는(K라고 하자) 첫 번째 여자친구를(이 친구는 Y라고 하자) 친동생처럼 예뻐했다. 그리고 우리 셋은 죽이 맞아 어울려 다녔다. 그러던 와중에 두 친구가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삼각관계였던 것이다. 엉망진창이었던 첫 번째 연애가 끝나고, K가 내게 고백을 해왔을 때 나는 마음을 정리할 생각도 하지 않고 덜컥 고백을 받아들였다. 고백컨데 나는 두 번째 연애를 하면서도 Y를 오래 잊지 못했다. 참 찌질하고 한심하게 연애를 하는 남자였지만, 그런 남자가 기어코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었던 K도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전 여친을 잊지도 못하면서 다른 여자를 만났던 찌질한 남자가 되었던 이유에 대해 변명을 좀 하자면, 그 때 나는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다이너마이트같았던 첫 연애에서 멘탈이 펑펑 터져나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학교 생활은 내 예상과 너무도 달랐다. 학과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남은 것은 화려한 흑역사들과 동기들의 비웃음 뿐이었다. 학창시절 12년을 내내 아싸로 보냈는데, 대학교에 들어갔다고 갑자기 인싸로 변신할 수 있을리는 만무했다. 희나에, 그리고 나를 좋아하는 친구들과의 관계에게 더 몰두했던 건 그에 대한 보상심리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입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군대식 기숙학원에서 끝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뛰쳐나왔던 경험은 앞으로 내가 겪을 조직 사회에 대한 뿌리 깊은 공포를 심어 주었다. 기숙학원에서처럼 군대에서도 매일매일 울면 어떡하지, 친구 하나 없는 곳에서 또 죽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거긴 마음먹는다고 뛰쳐나올 수도 없을텐데… 입대가 하루씩 다가오는 것이 나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것처럼만 느껴졌다. 조직생활에 철저하게 실패했던 경험은 그 공포에 반박할 수 없는 확고한 근거가 되었다. 후에 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오겠지만 입대를 한 후 그 공포는 그대로 현실이 되어 끈질기게 나를 죽이려 들었다.

 

내가 필요로 했던 것은 공포를 잊게 해 줄 사람이었다. 당장 나를 향해 저돌적으로 구애를 하며 애정을 요구하는 K는 내가 공포로부터 눈을 돌릴 수 있게 해줄 것 같았다. 나는 지금도 두 사람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Y에게는 그 짧은 만남에서 내가 Y에게 저질렀던 잘못과 실수들에 대한 죄책감이고, K에게는 나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K의 호감을 이용했다는 죄책감이다. 십 년 가까이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죄책감이 많이 옅어졌지만, 그 때의 나는 도무지 나 스스로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런 죄책감들이 누군가는 ‘사내 새끼가 그럴 수도 있지’라며 소주 한 잔에 털어버릴 수 있는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누굴 때리거나 불법을 저지른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있지’라며 털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못 되었다. 나는 도덕적으로는 꽤나 강박적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다고 내가 도덕적인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을 하는 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다는 건, 누군가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힌다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현실의 나는 얼마든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고, 고의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살면서 몇 번 즈음은 없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나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래서 또다시, 나는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멍청한 실수를 하나 저질렀습니다. 예약발송을 걸어놓고, 날짜를 잘못 설정했더라구요...😂 그래서 어제 보냈어야 하는 편지를 오늘에야 보냅니다. 독자님들의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글쓰기 공동체 흰 종이 위의 날개 소속 작가입니다. 심리상담과 문학치료를 공부했습니다.

https://litt.ly/heena_day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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