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13) - 내게 어울리는 곳 (3) / 푸념

내게 어울리는 곳 (3) / 푸념

2022.08.14 | 조회 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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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별 에세이

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내게 어울리는 곳 (3)

 

냉정하게 어린 시절의 나를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 적응하지 못해 인터넷 카페로 도망친 찌질이라고. 요즘도 그런 사람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키보드 앞에서 기고만장해지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방구석 여포라고 부른다. 나 또한 그런 부류의 하나였다. 가끔은 그 방구석 여포들 못지 않은 분탕질도 쳤으니. 희나에서의 활동이 가장 물이 올랐던 학부생 시절에는 인터넷 속의 사람들과 어울리느라 학점이나 취업 준비마저 뒷전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빠져들어 현실이 뒷전이었다니, 나를 인터넷 찌질이 내지는 방구석 여포라는 평가하는 것이 그렇게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희나에서 나는 모두의 사랑을 받는 매니저였다. 카리스마와 다정다감함을 갖춘 리더였고, 천재적인 이벤트 기획자였으며, 누구의 글이든 성심성의껏 읽고 감상을 들려주는 독자이자, 꽤 괜찮은 문장가였다. 오글거리는 자화자찬이고 나르시시즘의 발현이지만 그 때 나는 스스로를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당시 희나에 있었던 친구들도 이걸 들으면, ‘어후, 재수없어!’ 하고 잠시 툴툴거리겠지만, 내가 꽤 괜찮은 매니저였다는 것에는 동의할 것이다. 그렇게 비대해진 자아는 학교에서 부적응자로 오랜 시간을 보낸 열등감의 보상 작용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진심으로 현실의 나보다 희나 매니저로서 나의 모습을 더 좋아했다.

 

온라인에서나마 그런 나르시시즘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수능을 마치고 찾아온 고등학생의 마지막 겨울방학, 나는 몇 년이나 온라인으로만 친분을 나눴던 희나 회원들과 건대입구역에서 모임을 가졌다. 처음으로 자신감이란 것을 가지고 오프라인에서 타인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 자신감은 곧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여유의 밑거름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느릿느릿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방법과, 나의 생각을 타인이 불편해하지 않게 표현하는 방법을 연습할 수 있었다. 그게 스무 살 즈음이었으니 느지막하게나마 사회성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자신감을 키보드 앞이 아닌 다른 장소, 카페 사람들과의 정모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발휘할 수 있었다면 그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의 나는 서른 줄이 넘도록 한결같은 쫄보이다. TCI 검사를 처음 받고 극단적으로 높은 사회적 민감성과, 만만치 않게 높은 위험회피를 확인했을 때는 이런 쫄보 기질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임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너무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인 태도로 말아 먹었던 인간 관계는 이미 숱하게 많았다. 그렇다면 사회생활 전략을 좀 바꾸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준비되지 않았을 때 낯설고 위험한 곳으로 굳이 나아가는 것보단, 내가 자신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나의 영토를 확장해나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문학치료를 공부하고, 글을 쓰는 상담사로서의 삶을 꿈꾸게 되었다. 글쓰기는 말하자면 나의 영토였다. 희나에서 친구들과 함께 글을 쓰고 읽으며 나는 누구든 글쓰기 앞에서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글을 쓸 때 마음을 담고, 글을 읽을 때 텍스트가 아닌 그 너머 글쓴이의 마음을 읽으려 애쓸 때 치유가 일어나는 것을 나는 경험하였다. 이것만큼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할 수 있으리라는 직감도 있었지만, 이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꽤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내게 어울리는 곳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푸념

 

동네 근처에 글쓰기 모임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글쓰기 카페 희나 이야기를 길게 했지만, 지금 희나는 오프라인 모임이 그렇게 활성화되어 있진 않았습니다. 우여곡절이 있어서 문을 닫았다가 최근에 다시 열어서 이전에 비해 활동이 많이 위축되어 있지요. 그래서 요즘 몇 년간 제게는 풀리지 않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을 만나 왁자하게 떠들며 노는 것에 대한 갈증이었습니다. 그런데 집 근처에서 매주 열리는 글쓰기 모임이 있었다니! 최근 한 달 동안 저는 매주 출석도장을 찍고, 매번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정말 신나게 놀다 왔습니다.

 

그런데 모임 사람들과 친해지자 모임장이 슬쩍 연락을 하더군요. 부동산 투자를 하는데, 대출 명의를 빌려주면 돈을 주겠다구요. 얄팍한 친분에 눈이 흐려졌는지 바로 거절하진 못했습니다. 대신 나중에 얘기하자고 하고는 부동산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이게 무슨 상황인지 물어봤지요. 기획 부동산 사기라는 말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정황상 진짜 글쓰기 모임이 아니라 명의를 빌릴 사람을 찾기 위해 만든 모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결국 마음을 다잡고 그 날 모임을 탈퇴했지요.

 

별 일 아니라고, 똥 하나 밟았을 뿐이라고 생각하려 했는데 자꾸 신경이 쓰였습니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사람들과 장소를 발견했는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오늘은 좋아하는 선생님을 만날 일이 있어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선생님 눈에는 제 어깨가 축 처진 것이 보였나 봅니다. 제게 아주 강력한 위로와 공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는지 그 점잖은 선생님이 처음으로 욕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주 나쁜 놈들이라고, 온라인으로 사람 만나려는 새끼들 치고 개새끼가 아닌 놈들이 없다고요. 그런 온라인 모임에는 다시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발끈해서 ‘선생님, 저도 사실 모임 하나 하고 있는데요…’라는 말이 몇 번 목구멍을 넘어설락 말락 했습니다. 다행히도 끝까지 그 말을 꾹 눌러둔 채로 그 선생님의 ‘뜨거운 격려’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정확한 연배는 모르지만 백발이 성성하시니 못해도 우리 아버지 뻘이실 겁니다. 그런 분이 인터넷 모임에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영 찜찜한 마음으로 돌아왔다가, 이 곳에서 그 찜찜한 마음을 슬쩍 풀어 놓습니다.

 

선생님의 마음만 감사하게 받아야겠지요. 가끔 우리는 의도 대신 누군가의 표현에만 과도하게 집착하곤 합니다. 그 마음을 읽는 것이 상담의 기술이기도 할 겁니다. 선생님 앞에서는 당황해서 미처 드리지 못한 말씀 한 마디도 이 곳에 풀어 놓습니다. 선생님! 그 뜨거운 위로, 감사합니다. 선생님처럼 저도 누군가를 그토록 뜨겁게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글쓰기 공동체 흰 종이 위의 날개 소속 작가입니다. 심리상담과 문학치료를 공부했습니다.

https://litt.ly/heena_day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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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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