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배우 정혜안입니다.
여러분은 물건을 구매하면 사용법을 꼼꼼히 읽는 편이신가요?
저는 새로 산 물건은 꼭 설명서를 읽는 편입니다. 혹시 내가 모르는 기능이 있을지도 모르고, 처음부터 제대로 작동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거든요. (왜, 라면도 조리법대로 끓이는 게 제일 맛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얼마 전 새로운 물건을 들이면서 하나하나 기능을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졌는데요. 그러다 문득,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나 사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원래 사람의 마음이나 심리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mbti가 한창 유행할 당시 좋았던 점은,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의지가 크다는 거였어요. “네가 T라 그랬구나”, “N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며 서로의 다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퍽 긍정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말들에 뉘앙스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T라 그랬구나… (어쩐지.)” 같은 말인데도, 이해의 도구였던 언어가 선입견의 틀로 작용하고, 마음의 벽을 세우는 순간들이 종종 포착되더라고요. 점점 그 흥미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더 이상 그 언어에 기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인간관계에서의 문제는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저는 이 말이 인간관계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친한 친구의 편을 들어주는 이유는, 그 친구를 잘 알기 때문 아닐까요?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아니까 이해가 되는 거죠. 물론 안다고 해서 다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우선 ‘알고 나서야’ 생기는 선택지들이 있다고 믿습니다.
상상해 봅니다.
서로의 ‘나 사용법’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떨까요? 오작동의 순간에도 신호를 읽고, 어디서 어긋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요? 물론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요. (QR 코드로 공유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정작 나 자신조차 잘 모른다는 겁니다. 타인에게 나를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도, 결국 내가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겠지요. 그러고 보면, 나 사용법을 가장 잘 알아야 할 내가 그것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종종 스스로를 두고 “자기이해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농담을 하곤 합니다. (사실 농담 아닐지도요…) 이렇게 뉴스레터를 쓰는 것도, 결국 나를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작용한 결과입니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에 대한 탐구욕이 있었지만, 그 마음을 해소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배워가는 중입니다. 결국, 내가 나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 나를 어르고 달래는 그 능력이야말로, 요즘 제가 가장 중요하게 느끼는 삶의 기술입니다.
나 사용법을 조금 더 익히고, 타인의 설명서도 읽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기 위해, 오늘도 조용히 연습을 이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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