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배우 정혜안입니다.
오랜만에 붙이는 편지네요. 잘 지내셨나요?
처음 뉴스레터를 시작할 때, 딱 ‘6개월만 써보자’고 다짐했었는데요. 글을 쓰는 습관과 나를 둘러싼 감각을 관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참 웃기지요? 그 시점이 지나자마자 기가 막히게 에너지가 소진되었습니다(^^). 없는 마음을 꾸며내 쓰고 싶진 않아서 잠시 쉬었는데, 쉬다 보니 감각 기관이 다시 슬슬 일을 하는 듯합니다. 감각이 무뎌질 때는 그냥 두고, 돌아올 땐 또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것 같아요. 다시금 일상 속 미세한 감각들을 붙잡고 늘어져 보겠습니다. (쉽진 않겠지만요?)
저는 지난주, 드디어 ‘용아맥’을 처음 가봤습니다. 평소에는 집에서 혼자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굳이 아이맥스까지 찾지는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일 끝나고 사장님과 심야 영화 데이트를 하게 되었지 뭡니까! 작년 이맘때에도 함께 심야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는데, 매년 여름이 영화로 기록되는 게 몽글몽글하니 좋더라구요.
주로 혼자 영화를 보다가, 오랜만에 누군가와 동행하니 감각이 확실히 달랐습니다. ‘함께’ 본다는 에너지가 분명히 존재하더라고요. 그게 굉장히 크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처음’이라는 경험은 역시나 강력하다는 것도요. 분명 이전에도 누군가와 영화관에서 함께 영화를 본 경험은 있었는데, 왜 유독 이번이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아마도 아이맥스라는.. 새로운 감각이 주는 선물이었을 테지요.
흔히 ‘극장 경험’이라고 하지요? 요즘 시대에는 집에서도, 심지어는 이동하면서도 얼마든지 쉽게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는 놀란 감독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영화관이라는 건축물도 중요한 영화 경험이거든요. 저는 아이맥스 영화관을 선호합니다. 경기장 같은 구조라 좌석에 경사가 있죠."
"제게 영화관 관람의 진짜 본질은 특이하게도 극장 관람은 소설이 주는 주관적 경험을 관객들과 공감으로 연결시킨다는 것. 두 가지를 결합할 수 있는 다른 매체는 없어요. 영화관 관람의 고유하고 소중한 요소죠."
"제게 가장 강력했던 영화 관람은 매우 붐비는 극장에서였어요. 공동 경험은 감흥을 증폭시키는 것 같아요."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알쓸별잡 2화)
사람에게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더 용감해지는 심리가 있잖아요. 예를 들면, 혼자 갔다면 얌전히 앉아만 있었을 콘서트도, 친구와 함께 하면 마음껏 소리 지르며 환호하게 되는 것처럼요. ‘증폭되는 감흥’이라.. 왜인지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말이 조금 신빙성 있게 느껴집니다.
아, 그래서 영화는 무얼 봤냐면요! <F1 더 무비>를 봤습니다. 미쳤어요. 왜들 그렇게 흥분해서 나오는지 이제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이 영화를 집에서 혼자 봤다면, 절대 이런 전율과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아아, 이렇게 생각하니 제가 놓쳤을지도 모를 수많은 감동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영화는 무조건 혼자 보는 것을 더 선호했는데, 더 많은 영화 메이트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 찹니다! 게다가 아이맥스라는 늪에 빠져버린 게지요…
그리고 저의 감각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어준 것은, 아마도 사장님과의 유대였을 겁니다. ‘사장님’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존재하지만, 저에게는 이제 그 이상의 존재가 되어서요. 어떤 관계라고 해야 할까, 한 마디로 표현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살다 보면 이따금씩 예상치 못한 관계로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런 인연이 인생을 조금이나마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공식적인 여름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저에게 올여름은 ‘심야의 F1’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안 보신 분이 계시다면… 얼른, 꼭, 아이맥스에서 보십시오.
그럼, 가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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