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배우 정혜안입니다.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점진적인 성과를 낼뿐, ‘다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을 써야 한다.”
지난달 초, 연기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한 달 내내 제 머릿속에서 맴돌던 문장이기도 합니다.
며칠 전, 출근길에 작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횡단보도를 최소화하는 최단 거리 루트를 선호하는데요. (조금이라도 집에서 늦게 나오고 싶기 때문이지요!) 그날은 들러야 할 곳이 있어 맞은편 길을 택했습니다. 건물들로 이어져 있는 이쪽 길과는 달리, 길쭉하게 키가 큰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어 메타세쿼이아 길을 떠올리게도 하는 저쪽 길. 그저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아주 다른 무드를 내보이는 모습에 종종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답니다.
그 길을 걸으니 신기하게도, 매번 보던 풍경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더 여유롭고, 상쾌하고, 발걸음까지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하늘은 또 어찌나 높고 청명하던지.. 어느새 다가온 가을의 존재감을 확실히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또 달라진 건 시야였습니다. 위치가 바뀌면서 물리적인 관점 또한 전혀 달라진 것인데요. 늘 보던 약국 이름이 ’인선약국’이었고, 횡단보도 앞에는 ‘중고 명품 가게’가 있었으며, 웨딩홀 건물 외벽의 생김새가 꽤나 독특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등잔 밑이 이렇게나 어두웠다니, 생각해 보니 여러 요소가 맞물려 저의 감흥을 새롭게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우연의 합이 참 좋았던, 귀한 날이었던 게지요!
이것이 ‘다른 방식’으로 얻은 ‘다른 성과’는 아니지만, 큰 맥락에서 맞닿은 지점이 분명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겉으로 보는 것’과 ‘직접 들어가 있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공감력이 좋아도 직접 겪지 않으면 한계가 있고, 머리로 아는 것과 몸이 아는 것은 천지차이가 나듯이요. 저는 늘 머리로 아는 것에 무게를 더 두는 편이라, 몸이 알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무게 추를 옮겨주어야 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꽤나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사람은 종종 지레 짐작하고 미리 판단해버리곤 합니다. (저 역시 그런 실수를 범할 때가 참 많은데요..) 예측하기를 좋아하고, 사실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지도 합니다. 왜 ‘직감’이라는 것도, 내가 살아온 삶의 빅데이터이기 때문에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거든요.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될 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세상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예상했더라도 직접 경험하는 순간은 차원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앞으로는 섣부른 짐작으로 귀한 가치를 놓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봅니다.
최근 저는 ‘역할’에 대해 고민합니다. 어떠한 인물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배우로서 내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사명감..이라 하면 조금 거창해 보일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지금 제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책에서 본 구절이 떠오릅니다.
“내가 은퇴하든 죽든 그 후로도 100년은 너끈히 지속될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게 사업이든 뭐든 좋습니다. 예를 들어, 공원을 하나 만들더라도 100년은 너끈히 버틸 수 있는지, 그것이 제겐 중요합니다. 내가 살다 갔다는 흔적을 그렇게 남기고 싶습니다.”
저는 ‘내가 살다 갔다는 흔적’을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는 연기가 단순히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넓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이 실력을 잘 쌓아야겠지요! 아직은 혼자만의 책임감에 불과하지만, 언젠가 이 무게가 더 단단해질 것이라 감히 지레 짐작해 보겠습니다. (^^)
그럼 남은 한 주도 모두들 ‘너끈히’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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