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배우 정혜안입니다.
저에게는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세 살 터울이라 입학도, 졸업도, 늘 시기가 같았어요. 학교를 같이 다닐 일이 없으니 교복을 물려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각 학년마다 다른 체육복 색깔까지도 같았습니다. 이에 크게 투정 부리지 않았던 동생이 대견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사실 아무 생각 없던 것 같기도 해요.)
어릴 땐 그렇게 지겹도록 싸웠는데(혼냈는데), 스무 살이 되고 서울로 올라오면서부터 많이 돈독해졌습니다. 제가 집을 나온 기점으로요. 역시 가족은 가끔 봐야 사이가 좋은가 봅니다.
저랑 동생은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 어쩜 이렇게 다를까 싶을 정도로 성격과 성향이 정반대에요. 한때는 mbti까지도 정확하게 반대였습니다. 부모님께서도 신기하면서도 어려워하셨어요. 저를 키운 대로 동생을 키우는데 전혀 안 먹히는 거죠. 허허. 아직도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다행이고 감사한 건, 개그코드가 정말 잘 맞아요. 저는 동생이랑 노는 게 가장 재밌고, 동생 같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합니다. (물론, 여동생입니다만.) 눈빛만 주고받고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고 동시에 웃음이 터져 버려요. 사실 일일이 설명하게 되는 순간 안 웃기잖아요. 어쨌든 이십 년 가까이 한 집에서 살아서 그런지, 혹은 이럴 때 같은 배에서 나온 덕을 보는 것인지, 유머의 범주화가 꽤나 닮아 있습니다. 주변에서 보면 왜 웃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마도 저와 동생 사이에 쌓인 유머의 서사가 많은 까닭입니다. 그러고 보면 관계라는 것은 서사의 두께와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곡차곡 쌓인 서사가 만들어주는 관계성은 참 신비로와요.
동생이 가끔 집에 놀러 올 때가 있습니다. 서울이 아니라, 정말 ‘집에’ 놀러 옵니다. 제 집을 본인의 별장(?)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분기에 한 번씩 휴가차 들르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달에는 2-3주 정도 서울에서 일정이 있어서 조금 오래 머물게 되었습니다. 항상 오래 있어야 이틀 정도 있는 게 전부였는데, 지난주는 주 5일을 함께 지내야 했습니다. 처음엔 걱정이 많이 됐어요. 혼자 산 지도 어느덧 8년 차라.. 누군가와 한 집에서 생활하는 게 많이 불편해졌거든요.
그런 저의 우려와는 달리,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게 꽤 즐겁기도 합디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 혹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제가 동생과 같이 보내는 시간을 기대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는 스스로를 굉장히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언가 얻는 것은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이잖아요. 예를 들면, 저는 혼밥을 좋아합니다. 밥 친구가 필요하지 않아요. 무언가를 시청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밥만 먹어요. 무념무상으로 음식에 집중하기를 좋아합니다. 진짜 혼밥 하는 그 ‘행위’를 즐기는데요. 동생과 함께 밥을 먹어야 하는 날에는 혼밥은커녕 노동이 증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먹여야 할지, 요리를 해야 할지 배달을 시킬지, 점심에는 무얼 먹었는지 등등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참 많아지더라고요. 누군가를 기다려서 함께 저녁을 먹는다는 게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본가에 가서 저녁 시간을 기다려 함께 밥을 먹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공간이 주는 힘인가 봅니다. 물론, 배고픈데 언제 오냐고 보채기도 했습니다. 저는 언.니.니까요. 호호.
아마 2-3주라는 한정된 기간이 주는 특별한 감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같이 살아야 한다면, 또 많이 싸우겠죠(혼내겠죠). 드디어 이번 주가 마지막이네요. 하여간 새로운 생각의 물꼬를 터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아마도 저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제 동생은 글을 읽지 않겠지만요.
그럼 이따 밤에 만나자, 동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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