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들 안녕하신가요?
요즘은 비가 많이 내려 날씨를 자주 확인합니다. 그리고는 한국의 날씨를 힐끗 넘겨봅니다.
30도를 훌쩍 넘는 기온에 놀라며, 땀흘리며 일하고 있을 많은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풀무의 동생들, 홍동의 선생님들, 지효와 현빈이, 그리고 며칠 전 한국에서 더위로 세상을 떠난 한 베트남 청년까지.
남은 여름은 부디 무탈히 - 건강히 견뎌낼 수 있기를 진심 진심 진심으로 바랍니다.
몽글몽글 따듯한 글이 당신의 하루에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런 글을 쓸 재주는 없어 한참을 고민하던 중,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이 참 좋았던 아름다운 책방에서 어딘가 익숙한 동화책을 찾았습니다. 분명 이 글이 당신들에게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소년은 여행을 하던 중 작은 두더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다정함’이라고 답합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손이 저절로 멈추었습니다.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것을 꿈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돈, 명예, 시선. 그 많은 것들을 뒤로 하고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고픈 다정한 사람은 무엇이길래.
그리고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한국어 번역본을 찾아 읽었습니다.
넌 성공이 뭐라고 생각하니?” 소년이 물었습니다.
“사랑하는 것.” 두더지가 대답했어요.<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중
오늘 하고싶은 이야기는, 가장 본질적인 이 여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꽤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어떠한 정보력도 없는!
약 한 달 전, 인이에게 메일 한 통이 왔습니다. 무려 창업 논문 인터뷰 요청이었죠. 주제는 대학에 가지 않은 창업생 언니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뷰였습니다. 그동안 생각 속에만 머물던 것들을 인이 덕에 글로 풀어내보니 아직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지금 쓰는 이 글이 필사본으로 남고.. 논문 발표에도 담기고..'와 같은 상상을 하며 글을 쓰다 보니 꽤나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열어보니 힘이 잔뜩 들어간 글을 조금 풀어 이 곳의 여러분에게도 나눕니다.
Q. 창업 후 대학을 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A. 부끄럽게도 대학을 진학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대학 입시 교육에 대한 반발심이었습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학생들을 줄세워 대학에 더 높은 등급의 대학에 진학하기를 요구하고, 내가 공부하고픈 분야에 대한 관심이나 사랑같은 불확실한 것들은 수치화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이 치열한 대학 입시 전쟁에서 한 발 물러나고 싶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조금 다른 길을 걸어도 행복할 수 있고, 대학이 아닌 곳에서도 공부할 수 있으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Q. 대학 진학하지 않게 되었을 때의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지금 생각해보았을 때 가장 아쉬운 것은, 고등학교 3학년 전산실에 모여 함께 원서 접수를 하고, 합격했다며 기뻐하고, 떨어진 대학을 욕하던 그 순간들에 진심으로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이 대학에 합격했다며 기뻐할 때, 어딘가 동떨어진 느낌을 떨쳐낼 수 없어 온 마음으로 축하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든 대학에 진학할 수 있지만, 그 추억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꽤나 아쉽습니다.
단점에 비하면 장점이 더 많이 떠오릅니다. 아마 이 삶에 만족하고 있나봅니다.
대학에 가지 않는 삶을 선택한 저는 3-4년이라는 시간을 선물 받은 기분입니다. 저는 현재 아무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전문 분야도 없이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행의 목적에 맞게 눈 앞에 놓인 선택지는 더 다채로워졌습니다. 두 달이라는 시간동안 새롭게 공부해보고 싶은 분야가 생기고, 또 다른 길이 나타나고, 또 설레이다가 다시 실망하는 그런 시간들을 보내며 나는 스스로를 더 알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떤 삶을 살 지 모르겠는 이유가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참 설레입니다. 동시에 18살이라는 나이는 모든 것을 시작할 수 있고, 실패해도 괜찮은 나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Q. 대학 진학하지 않고는 어떤 삶을 꿈꾸셨나요?
A. 저는 창업 후,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여행하고 싶었습니다. 큰 배낭 하나를 매고 전 세계를 횡단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그리고 삶의 이유 - 꿈 따위의 것들을 찾는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상상과는 다르게 저는 생각보다 얽매여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조금 더 안전한 곳, 영어 실력을 더 늘릴 수 있는 곳, 더 배울 것이 많은 곳, 그렇게 재고 따지다 보니 적당한 타협안을 찾아 정보가 많고, 비교적 안전하고, 만만하게 보였던 호주로 떠나기로 결정한 떳떳하지 못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여행을 택한 이유는, 아직 진심으로 공부하고픈 무언가를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 알게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여행을 결심했습니다. 삶의 이유나 꿈이 무엇이 될 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저는 요즘 소소하고도 감사한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주로 이웃집의 페인팅을 돕습니다. 18살이 아니라 30살 같다는 칭찬인 듯 아닌듯 한 칭찬도 들었습니다.
30살 같다고 말하면서도, 한국에서 대책도 없이 건너온 18살 불쌍한(그렇게 보이는) 이채의 일자리를 만들어주려고 애써주시는 좋은 이웃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웃의 강아지 산책도 시킵니다.
매 주 화요일에는 도서관에 나가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수업도 듣고요, 덕분에 함께 술 한잔 마실 친구들도 생겼습니다.
날이 좋은 날이면 집 앞 카페로 나가 따듯한 모카 한 잔을 마시며 다시 이 글을 끄적입니다.
여러분들의 하루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부디 작은 행복으로 가득한 나날이길 바랍니다.
사랑 담아, 이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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