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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편지 / 칠월 첫째 주

2025.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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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는 그대에게

호주에서 보내는 편지, 이채 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들 안녕하신가요?

 

뜨거워지는 여름 아래 무탈한 한 주를 보내셨는지요.

저는 쌀쌀해지는 겨울 아래 따수운 수면 잠옷 하나를 장만했습니다.

점점 가벼워질 당신들의 옷을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납니다.

 

부디 무탈한 한 주였기를 바라지만, 

저의 소중한 사람들의, 더 소중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주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소중한 누군가를 영영 잃어 본 경험이 없는 저로서는 그 슬픔을 감히 헤아리기가 힘듭니다.

 

명복을 빈다는 말로 그들의 앞에 놓인 시간이 더 행복해진다면 좋겠지만,

그럴 없다면, 소중한 사람들의 삶에 함께해주신 시간에 깊은 감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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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필연적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떠올립니다.

호주에 온 것을 후회한 순간이 있다면, 그 중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후회였습니다. 절대적인 시간의 유한함 앞에서 날로 변하는 당신들의 생각과 신체는 ‘만약’이라는 가능성을 열어놓게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후회가 몇 안 되는 삶의 부스터가 되어 더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게 합니다.

 

오늘 당신들에게는 어떤 존재가 인생의 부스터 역할을 하고 있으려나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떠오르는 그 사람과 더불어, 또 하나의 이유는 제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어딘가 바뀌어있을 당신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기대하고 있을 테니까요-


오늘은 다름 아닌 농업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호주로 떠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한 퍼머컬쳐와 유기농업은 실제로도 참 흥미로웠기 때문에 - 세 달간 진득하게 머문 세 집, 그리고 이웃들의 사례를 포함하여 - 그리 많지 않은 경험에도 불구하고,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직 그저 끄적이는 이 얕은 고민들이 확신으로 바뀌었을 때 다시 돌아올테니, 지금 이 작은 고민들은 여러분에게도 작은 생각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야채와 과일을 자급자족 했던 첫 번째 집, 그리고 요리에 필요한 허브와 향신료, 과일을 키워 이웃들에게 나누었던 두 번째 집, 그리고 도심 속에서 퇴비를 만들며 음식물 쓰레기 배출 최소화를 실행중인 세 번째 집까지. 흘러가듯 만나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는 세 곳의 이야기입니다.

그간 머물던 곳은 대게 아름다운 정원과 최소한의 채소와 과일을 자급자족할 있는 텃밭들과 함께였습니다. 이곳의 사람들에게 농업은 멀고 것이 아닌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이었죠.

번째 우프 장소는 퍼머컬쳐 농업의 교과서와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빗물을 100% 재사용하기 위한 탱크를 경험에도 겨울 동안 물을 저장해 건기인 여름을 나는 방식이었으며, 물탱크의 윗면에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생활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생산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농업 방식이었습니다. 10마리의 닭은 농업의 중심이 되어 달걀은 물론, 모든 농장의 운영에 기여합니다. 닭장 안에는 많은 양분이 필요한 사과와 , , 무화과와 같은 과일나무를 심어 놀라울 만큼 맛있는 열매를 얻을 있었고, 동안은 닭들이 그들의 전체를 헤집으며 벌레와 지렁이들을 잡아먹었습니다. 또한 요긴하게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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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닭 쫒기
공포의 닭 쫒기

Compost bin이라고 부르는 검은 퇴비함에는 음식물 쓰레기와 잡초, 그리고 닭 똥을 넣습니다. 키친타월이나 종이 박스 등 모든 유기물도 함께 넣기 때문에 생각보다 빠르게 가득 찹니다. 가득 찬 퇴비는 더 큰 퇴비장으로 이동하여 생태변기에서 모인 똥과 합쳐집니다. 세 명의 우퍼들이 사용하는 생태 변기는 풀무와는 조금 다르게 (라고 말하기에는 한 번도 안써봄.. 미안해 기민), 나무 껍질로 왕겨를 대신하고, 빠른 퇴비화를 위해 석회 가루를 덧뿌립니다. 그렇게 모인 똥과 음식물 쓰레기 퇴비는 몇 개의 계절을 지나 다음해에 퇴비로 사용됩니다. 

개인적인 공간 뿐 아니라 마을 곳곳에 위치한 공유 정원과 공유 텃밭 등에서 사용되는 퇴비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철물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퇴비함, 도서관의 추천 도서 코너에 자리잡은 <퇴비화>라는 제목의 책 등 쉽게 접할 수 있는 퇴비의 원리와 사용 방법들이 사람들의 진입장벽을 많이 낮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직접 배출한 음식물 쓰레기와 농업 부산물 등을 작은 텃밭에 재사용한다는 것은 음식물쓰레기 양 배출을 절대적으로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음 해에 쓸 비료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까지, 친환경적이고도 효율적인 방법임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방법을 한국에 적용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보던 중, 가장 큰 걸림돌은 인구 밀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에 절반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는 한국의 경우, 누군가는 내가 생산한 것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알 길이 없고, 그 반대편에서는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오는지도 알지 못한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식물이 자라고, 쓰이고, 그리고 버려져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모든 행위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죠. 서울과 수도권에서 생산된 음식물 쓰레기가 땅에 매립되어 강과 토양을 오염시킬 동안, 퇴비가 필요한 농촌에서는 자연적으로 생산하는 퇴비의 현실적인 문제들 - 경제적 한계와, 인력 부족 등 - 에 부딪혀 화학 비료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미생물 음식물 처리기를 배제할 없을 것입니다. 미생물과 함께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기계로, 음식물을 퇴비화하여 남은 3% 찌꺼지만 일반쓰레기로 분류해 버릴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습니다. 같은 원리를 공유하고 있는 보기 좋고 깔끔한 기계가 최선의 방법일 있겠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를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냄새나지 않아서, 버리기 쉬워서 사용하는 철저한 이익을 위한 선택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재의 인구 분포 양상 안에서 최소한의 자급자족과 퇴비화의 활성화 등의 이야기는 불필요한 이야기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 작은 이야기는 이촌향도와 인구 밀집으로 인한 많은 것들과의 단절 중 한 가지 사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농부와 기업, 소비자의 단절, 나와 내가 먹는 음식의 단절, 나아가 타인과의 단절까지, 연결되어 있던 모든 것들을 끊어냄으로써 생긴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선명히 보입니다.. 농촌으로 이동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그 연결고리의 행방마저 잊어버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연결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 번째 편지가 거의 마무리 되어 갈 때 즈음, 다시 글을 적으려 들어와보니 아니 글쎄, 글이 모두 날아가버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끄적이듯 적은 글을 여러분에게 보냅니다.

 

누군가 내 글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이 마음은 글을 쓰기에 충분한 원동력이 됩니다.

메일함은 광고로 빠르게 채워지고, 그곳을 찾는 일은 잦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 글을 찾아 주어 더 고마운 마음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적으면 좋을 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궁금한 이야기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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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날씨는 참 아름답습니다. 겨울의 냄새와 여름의 햇살이 더해져 매일매일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당신의 또 다른 한 주의 하늘이 어느 때보다 맑기를, 태양이 어느 때보다 빛나길 바라봅니다-

 

사랑 담아, 이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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