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키고 싶은 마음에게

열 번째 편지 / 구월 둘째 주

202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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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는 그대에게

호주에서 보내는 편지, 이채 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한 주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새로운 일상을 시작해 하루하루 퀘스트 깨듯, 열심히 살아내고 있습니다.

정신없이 지나간 한 주동안 정신 없이 끄적끄적 적어내린 글들을 부끄럽지만 편지에 싣습니다.

 


 

이른 다섯 시, 일을 하러 집을 나선다.

눈꺼풀이 무겁고, 마음도 무겁고, 신발도 무겁지만

왠지 좋다.

 

좋은 팀을 만났다.

서두르지 않되, 게을리 하지 않고,

무얼 할 지 몰라 서성거릴 일이 없게 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기본적이지만, 그게 어려운 걸 알기에 참 소중하고 감사하다.

 

언젠가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꼭 잡아야겠다고 생각한 이 일은 역시나 내 감을 빚나가지 않았다.

내가 대견해서 머리를 쓰담쓰담 해준다.

나름 잘 살고 있잖아.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잖아.

장하네 안이채. 라고 해준다.

 

- 같은 소리를 쓰고는 지각했다. 이틀 연속으로 30분 지각이라니 말도 안 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지각하는 사람인데. 아니 정말. 기차가 지연되고 택시가 안 잡힐 동안 사자(같은 보스) 앞에 서있는 토끼마냥 덜덜덜덜덜 떨면서 마음을 졸였다. 하아아아… 나를 기다려주다가 같이 늦은 팀 멤버와 함께 닫힌 철문 앞에서 ‘아 우린 잘렸구나..’ 하며 기다리고 있을 때 즈음 철문이 열렸다.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이러다 진짜 잘리겠다 싶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아, 일을 겁나게 잘해서 자르고 싶어도 못 자르게 만들어야겠다.’ (막이래)

아침부터 마음을 졸인 탓인지 툭하면 울먹울먹 눈물이 나는 하루였다. 특히 감동받았을 때. 눈물이 날 때마다 셀카를 찍어두니, 갤러리에는 무슨 우는 사진밖에 안 남았다. 최강 보스가 찾아와서 “하우 알 유? 오늘도 지각했네~ㅎㅎ” 라고 하자, 우리 팀 보스는 그건 내 통제 밖의 일이었다며 겨우 10분 늦은것 가지고 그러지 말라고 쉴드를 쳐줬다. 선글라스를 쓰고 눈물을 또륵.. 흘렸따..

그렇게 이른 여섯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 공항에 멀칭을 하는 조경 일을 마치고 나면, 다시 한 시간 반동안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집으로 간다. 다이어트고 뭐고 이건 라면을 먹어줘야 하는 타이밍이라며 합리화를 한 뒤, 민서가 주고 간 불닭 하나를 때리고 다시 출근 준비를 한다.

 

이채의 이중생활 시작. 풀 메이크업에 셔츠와 슬랙스를 차려 입고 레스토랑 서빙 알바를 시작한다. 근데 이런!! 웨이터 매니저라는 언니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주문받는 법을 안 알려줬다. 그 말인 즉, 손님이 날 부르면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하며 다른 직원을 부르러 가야 하는 것이다. 완전 FEEL LIKE USELESS! 삽질과 레이크질보다 어려운게 손님 응대이다. 내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따라 손님의 얼굴에서 별점이 바뀌는 것을 보며 가끔씩은 ’이거.. 내가 하는게 맞나?’ 싶다.

매니저한테 혼나고, 사장한테 혼나지만, 아무도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가르쳐주지는 않는 이 불만족스러운 직원 교육의 현장을 보며 때려칠 지 말 지를 500번 생각했다. 그리고 똑같은 결론에 다다른다. ‘내가 일을 미치게 깔끔하게 잘해야지. 구글 리뷰에 그 직원 너무 친절했다며 이름 한 번 언급되고, 때려치는 나를 잡게 만들어야지.‘ (막이래)

암튼, 열심히 살고 있다.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부정당하듯 무너지고,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버텨내며 그냥저냥 단단해지고 있다. 순두부에서 연두부 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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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한 시간 전에 출근 고지를 하는 망할 레스토랑에 출근하러 간다. 지금은 일요일 열한 시, 주말 오전이니 카페에서 여유롭게 글을 쓰고, 밀린 사랑 가득한 메일들에 답장을 보낼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다.

 

그럼에도 힘든 나를 일으켜준 따듯한 말들에 깊은 감사와 사랑을 보내며,

당신의 삶 또한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존경한다.

 

사랑담아, 이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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