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은 만큼 꾸준히 글을 적고 싶었는데 이런 저런 것들에 밀려 또 오랜만이라는 말로 편지를 시작하고 있으니, 늘 감사한 저의 애독자 분들께 감사와 사과의 말를 전합니다.
그곳은 이제 선선한 날씨로 접어들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이른 여름을 맞아 햇빛에 정수리가 타서 탈모가 올 지경입니다.
이 여름, 저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 이른 네시 반 일어나 일터로 나갔습니다. 38도를 웃도는 날씨 속에서 열심히 삽질과 레이크질을 한 뒤 두 시면 집으로 돌아가 이런저런 일을 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열기에 지쳐있다가도 집 앞에 활짝 핀 보라색 자카란다 꽃을 보고는 다시 기분이 좋아져 이 여름도 사랑해야하나 고민합니다.
몇 주 전 써놓은 저 글처럼 저는 브리즈번의 늦은 봄과 뜨거운 여름을 만끽하고 난 뒤, 타즈매니아라는 호주 남쪽 끝의 작은 섬으로 떠나는 여정을 시작하며 두 달간의 짧고 화려한 자카란다와 같았던 브리즈번 생활을 정리하려 합니다.
브리즈번에서의 삶은 화려한 궁궐 속의 삶만 같았습니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었지만 어느 때보다도 고독한 삶. 그 화려함에 기대지 못해 남들에게 기대려 했지만 결국은 혼자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일상. 그 허무함에 치여 삶의 이유와 존재의 의미를 애써 붙잡아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
어쩌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도피하듯 떠나는 곳이 이 곳 타즈매니아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 외로운 도시에서 끄적인 글들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담고 있었고, 그 사람들을 이해하려 노력한 시간들이 쌓이니 각자의 상처가 서린 모든 개인의 삶을 존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 Mr. L
Mr. L은 함께 조경 일을 하던 40대 중반의 아저씨, 그리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의 습관은 거짓말이었다.
처음 새로운 회사로 옮겨 잔뜩 낯을 가리던 중 우리가 처음 나눈 대화는 이랬다.
“나는 첫 번째 부인이랑 10명, 두 번째 부인이랑 8명의 자식이 있고, 호주에서 만난 전 여자친구에게 5명의 애를 임신시키고 도망쳤다.”
일을 같이 시작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미친 사람을 만났구나 싶어 계속 물어봤다.
애는 누가 돌보고 있냐, 돈은 얼마 보내냐 등등.
본인 고향에서 어머니가 18명 애를 돌보고 있고, 본인은 한 달에 20만 원을 보낸다는 것이다.
…
“그리고 난 지금 여자친구랑 열 명 더 낳을 건데? 어떤데? 좋지?”
…
…
같이 일하던 동료 아저씨들조차 할 말을 잃어버린… ㅋㅋㅋㅋ
당연히 난 너무 정내미가 털린 나머지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계속 일만 했다.
그리고 한 시간쯤 뒤, 다 장난이었단다. 뭔… 미. 미친…
그렇게 최악의 첫인상을 가지고 나는 약 두 달을 그 사람을 더 봤다. 그 사이에 나는 여러 번 ‘그 농담은 단연코 최악이었다’며 언급했고, 그는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한 말이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종종 거짓말을 했고, 그때마다 나에게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알아챌 수 있었다.
나와 Mr. L이 함께 그 회사로 이직할 때, 그는 같은 에이전시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절대 이야기하지 않았다. 교묘하게 그럴듯해 보이는 거짓말들을 섞어 그들이 아직 본인이 에이전시에 소속돼 있다고 믿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절대 이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물론 나는 십 분 뒤 그 당부를 어긴 채 사실대로 말했고, 그를 보며 거짓말도 잘 못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거짓말을 할까, 하는 의문만 가질 뿐이었다.
그리고 그리 머지않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Mr. L은 Fiji Island라는 호주 동쪽 작은 섬에서 나고 자랐다. 오늘날까지도 섬 전체가 공동체 일원으로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곳. 집을 짓고 있으면 이웃 주민들이 모여 일손을 보태주고, 돈 한 푼 없어도 바다에서 낚시를 하며 행복하게 먹고 살 수 있다는 곳.
시간이 지나 그의 모습을 보니 그 순수하게 자란 사람이 이 곳 호주로 와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기대와 실망을 반복했을지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이 세상이 그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가장 거짓 투성이인 사람을 한 겹 들추니 가장 순수한 면이 보였고, 그 순수함을 자세히 보니 세상으로부터의 상처가 있었다. 나는 그의 솔직함을 좋아했다. 거짓말로 뒤덮어 숨기려 한 그 순수함에 많은 힘을 얻었다.

2. Mr. S
Mr. S는 영국에서 온 젠틀맨. 우리 팀의 수장이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수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수장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똑똑한 머리와 통찰력, 그리고 그걸 실행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
어떤 사람을 어디에 배치해야 팀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지를 알고,
동시에 일꾼 이상으로 사람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
우리 팀은 평균적으로 하루 약 2시간의 쉬는시간을 가졌다.
여섯시에 시작해 두시 반 끝나는 이 일의 쉬는시간은 원칙적으로 아침 15분, 그리고 점심시간 30분.
하지만 우리는 Mr. S의 지휘 아래 각각 1시간씩을 수풀에 숨어 - 카페 구석에 숨어 쉬었다.
Mr. S가 주로 하는 말은 ’그건 내 책임이지, 네가 간섭할 일은 아니야.’ 였다.
트럭에 싣은 수레가 떨어져서 박살났을 때도, 비가 오는 날 팀원들을 전부 퇴근시킨 후에도 그는 그렇게 말했다.
하루는 여느 때처럼 한 시간을 여유롭게 쉰 뒤 일터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회사 총 책임자로부터 전화를 받은 그는 이렇게 말한다.
“보스가 우리 얼마나 쉬는지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대. 왜 이렇게 많이 쉬었냐고 물어보는데?”
그리고 그라데이션으로 분노가 커지더니 결국에는 ”만약 걔네가 쉬는 시간 가지고 한 번 더 태클 걸면 나는 이 회사 그만둘 거니까 그렇게 전해. 그러면 걔네도 어쩔 수 없을 걸?“ 사실이었다. 그렇게 유능한 팀 리더를 찾기는 쉽지 않을 터였고, 그는 그걸 알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2주간 여행을 갈 예정인 사람이 유급휴가를 뒤로한 채 저런 말을 할 용기가 있다는 게 참 대단했다.
그렇게 그의 리더십과 책임감은 늘 빛이 났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는 그 빛의 그늘 또한 보았다.
‘어젯밤 잘 잤냐‘는 질문에 한 번도 잘 잤다고 답한 적이 없는 사람.
잠을 푹 자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40살이 되어서야 생일 케이크를 처음 먹어봤다던 그 사람은 가난하게 살아온 어린 시절과 끔찍했던 첫 번째 결혼 생활, 재혼한 뒤 생긴 일들까지 모든 것을 처음 함께 일하던 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럴 리가. 어느 것 하나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 Mr. S는 과거의, 현재의, 미래의 모든 일들에 스스로를 옭아매어 독립성이라는 이름 아래 탑을 쌓았다.
그 탑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그는 결국 남에게 기대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 책임감과 강인함이 그를 잠 못 들게 만들었다.

3. Mr. P
Mr. P는 공교롭게도 Mr. S와 정확하게 같은 날 태어났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 영국과 그리 멀지 않은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Mr. S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또 사회적 지위 따위의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같은 나이의 두 사람을 비교했다.
팀 리더를 맡고, 주말에는 본인의 사업을 하며 커리어를 쌓는 Mr. S, 그리고 아직 에이전시 소속되어 나와 같은 월급을 받으며 이리저리 떠도는 Mr. P. 어쩌면 그건 행복을 가름하는 기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매일 아침이면 본인은 어제 저녁에 무슨 음식을 먹었고, 몇 시에 잤는지 (7시 이후인 적이 없었다. 주로 오후 여섯 시). 오늘 점심으로는 무엇을 가져왔는지. 또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기분 좋게 아침을 먹었다는 이야기 따위를 하루도 빠짐없이 했다.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다른 나에게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람으로 대해주는 사람이었다.
노동하고, 땀 흘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본인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수다 떨기. 누구든 상관없이 수다 떠는 것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과 질문들로 그의 주변에는 절대 정적이 허용되지 않았다. 한 명은 삽질로 멀칭 파일을 수레에 담고, 또 한 명은 수레가 부어주는 멀칭 파일을 레이크질로 퍼뜨리고, 나머지 두 명은 수레를 옮겼다. 우리가 주로 하는 이 일은 거의 매일 비슷한 흐름으로 흘러갔는데, Mr. P는 대게 수레를 담당했다. 그는 삽질을 기다리며 삽질을 하는 사람과 수다를 떨고, 수레의 멀칭 파일을 떨구며 레이크질을 하는 사람과 수다를 떨고. 왕복으로 수레를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는 다음 질문을 생각하는 듯 그는 끊임없이 질문과 수다를 이어갔다. 존경스러운 사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행복만을 좇아 사는 듯 보이는 그 또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모든 것을 웃음으로 승화할 수 있는 재능을 가졌기에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가 겪은 일들은 그와 수다를 떠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전부 합친 것보다도 거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으며 이야기할 때만큼은 웃어 넘길 수 있는 일들이 되는 듯 보여 마음이 놓였다. 어쩌면 그것은 그가 찾은 해답일 수도 있겠다. 행복하기 위해 행복하게 살아가기.

4. Ms. K
Ms. K는 브리즈번에서의 시작과 끝을 함께했다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닌, 대부분의 날들을 함께 밥을 먹고 운동하고 울고 웃은 사람이다.
그녀의 주변에는 늘 사람이 많았고, 하루라도 가만히 집에 있는 날이 없었다. 나라면 혼자 하고 말았을 자그마한 약속들에도 이 사람 저 사람을 챙기며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주기적으로 모이는 멤버가 결성되었고, 그 중에는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살지만 그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뛰기 위해 거의 매일 한 시간을 걸려 시내까지 오는 사람도 있었다.
오늘 저녁에는 뭘 하는지, 밥은 먹었는지. 같이 러닝 뛰러 나오지 않을 거냐는 말들과, 주말에 피크닉 한 번 가자는 말 등 자잘한 일들로 나를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잠이 부족했던 시기의 나는 아마 그녀가 없었더라면 커튼을 친 방 안에서 잠이나 자며 시간을 보냈을 뻔했다. 그렇게 했다면 얼마나 우울한 사람이 되어 있을지.
그녀는 동시에 인생 혼자 사는 것이라며 아무도 믿지 말라고 이야기했고, 나는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어쩌면 아직 그렇게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긴 시간을 함께하고 난 뒤 이제서야 그녀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결국 혼자 살아야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함께 길을 걷고, 밥을 먹고, 러닝을 뛸 때에도 결국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걷고 뛰었고, 작은 순간들 속에서 나는 우리가 가까운 타인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5. Ms. A
Ms. A을 알고 지낸 지는 꽤나 오래되었다. 10년도 훌쩍 넘었으니, 모르는 것보다도 아는 것이 많은 사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함께 보낸 시간이 무색할 만큼 그녀가 낯설게 느껴져 조금 거리를 두게 되었다.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랄까.
그녀는 방황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만든 틀 안에서 이런저런 척을 하며 살던 그녀는 결국 들통날 수밖에 없었던 그 허물을 벗어내며 술로도 담배로도, 남자로도 해결되지 않는 공허함에 헤매이고 있었다.
가장 솔직하고 투명하다고 생각했지만 가장 불투명했고, 가장 단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가장 불안정했으며, 생각 없이 던지는 가벼운 수다 속에는 조금의 상처가 깃들어 있는 사람이 나라는 것. 무엇보다 함께 사는 삶을 외치며 외롭고 화려한 성 안을 헤매이고 있었던 사람이 나라는 것이 나 자신과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브리즈번이 외로웠던 이유는 철저하게 혼자가 된 나를 마주하는 것이 힘들어서였을까,
혼자가 되어 초라하게 벗겨진 나를 마주하는 것이 힘들어서였을까.
모든 이들에게 서린 결핍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나의 결핍을 마주하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외로운 도시를 떠나 외딴 섬으로의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그렇게 도착한 외딴 섬은 차가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숲과 바다, 모닥불과 불을 둘러싼 사람들의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소리, 부딪치는 와인잔과 같은 것들이 마음을 따듯하게 데워주었습니다. 차가운 공기가 폐로 들어오는 것이 너무 오랜만인지라 설레이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곳의 날씨도 비슷할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차가운 공기로 아침을 맞는다는 것은 연말이 다가온다는 것, 그렇다는 것은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겠지요!
당신들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안아줄 수 있는 따듯하고 행복한 나날로 올 한해를 채워가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사랑 담아, 이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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