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들 안녕하신지요?
오랜만입니다 :) 그 간 어떤 나날을 보내셨는지 궁금하네요.
이 편지가 무려 한 달만이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을 만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이 글을 적은 나와의 약속과 같은 것이어서,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더라도 마음 어딘가 불편한 숙제처럼 늘 남아있었습니다. 고치고 고쳐도 미완 상태인 이 글이 늘 그렇게 남아있었으니, 한 주 한 주가 늦어질 때에는 그렇게 신경쓰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다 보던 노트북이 그만 고장나버린 것이 이 글을 미루는 데에 한 큰 몫 을 했습니다. 그 벽돌이 된 노트북을 한국으로 보낸 뒤, 작은 핸드폰으로 글을 끄적이고 있으니 기분이 영 좋지 않은 게 아니겠어요. 노트북을 대신해 아이패드 하나를 장만해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얏호!
저는 그간 바쁘게 지냈습니다. 드디어 일을 구하고, 집을 구하고, 소중한 친구들이 다녀갔습니다. 비행기로 열 시간 가량 먼 이 곳까지 날아온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지, 어쩌면 노트북이 고장난 것보다도 그 시간들에 글을 적고 있고 싶지는 않았던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은 저의 구직기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워킹 홀리데이를 왔으니 워킹 한 번 쯤 해봐야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과 더불어 더 이상은 우핑과 같이 누군가에게 신세지는 마음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이 곳 브리즈번으로, 그리고 호주의 구직시장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처음으로 적는 실용적인 글이니 혹시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2025년 5월 초, 산골 마을 마가렛 리버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살던 안이채씨는 퍼스 상경을 결심합니다. 돈을 벌고 싶다는 왠지 모를 욕망이 그득그득 해진 것이죠. 이력서에 적을 경력 하나 없는 안이채씨였지만 관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날 뽑아주겠지,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이력서를 돌리러 다녔습니다.
퍼스에서의 구직기는 다섯 번째 편지 [마음이 가난한 부자]에 적은 적이 있어 요약본으로 적으려고 합니다. 퍼스에서의 구직기는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온라인 지원과 레쥬메(이력서) 돌리기, 그리고 인맥!
한국에서 알바몬을 쓰듯 호주에서는 Seek.com.au 라는 구직 사이트를 주로 사용해 온라인으로 지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해본 일 이라고는 물류창고 알바가 전부인 저는 경력이 턱없이 부족했던지라 온라인 지원으로 큰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꽃집에서 시작해 모종 공장, 현지 식당에서 한인 식당까지 점점 범위를 넓혀나가며 약 30개의 이력서를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일을 시작하게 된 저의 첫 일자리 BONGALBI 였죠. 한국인 아저씨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다가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홧김에 그만둔 뒤, 반 포기에 가까운 마음으로 들어간 곳은 바로 <퍼스..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이라는 퍼스 한인 커뮤니티였습니다. 그 곳에서 하우스키핑, 즉 모텔이나 호텔을 청소하는 직업에 지원한 뒤,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영어로서 올라온 공고인지라 인터뷰 영어를 달달 외워 갔는데 이게 웬 걸, 또 한국인 아저씨였습니다. 면접에는 자신이 있는 터라 멋지게 합격한 뒤, 이젠 돈을 벌 수 있겠다며 기뻐하고 있을 때 즈음 불길한 문자 하나를 받았습니다. 18살이라 일을 안시켜준다는 것이 아니겠어요? 호주의 최저시급은 18살-21살에게 21불로 적용되어 기본 성인이 받는 최저시급 31불보다 약 10불이 낮습니다. 속으로 ‘와~ 이 회사~ 만원 덜 주고 인재 고용할 기회를 놓치시네~‘ 생각하며 정중하게 답장했습니다.

그렇게 온라인 지원과 이력서 돌리기 모두에 가망이 없다고 느낀 저는 마지막 기회였던 인맥을 활용해 일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지금에서야 느끼는 것은, 뽑아주기엔 제 이력서가 너무나 최악이었다는 것이지만, 그 때에는 최선을 다했으니 어쩔 수가 있나요. 언제나 그랬든 인복 빼면 시체인 안이채씨는 살고 있는 마을의 단톡방에 들어갈 기회를 얻어 홍보를 하기 시작합니다. 풋풋하죠잉? 이렇게 찬장 청소를 하러 가서 만난 아주머니를 통해 강아지 산책 알바를 하고, 그 옆 집 아주머니에게 디스코 머리 땋는 법 과외 알바를 하고, 그 옆 집의 페인트 칠을 하고, 수다를 떨고 마당의 잡초를 뽑으며 잘도 살아남았습니다.

‘워홀러 다운 삶’에 세뇌당하듯 노출되었던 저는 어딘가 그들과 같은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카페 잡, 과일 따기 등 워홀러다운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만 빼면, 건강하고 안정적인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고, 있는 그대로 대접받고, 영어를 연습하기에 그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본갈비를 그만 둘 때에도, 청소회사에서 잘렸을 때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웃 분들의 집에서는 ’너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좋은 곳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라는 말을 들으며 최저시급을 훌쩍 넘는 돈을 주머니에 넣어주시곤 했으니 말이죠.
가끔씩 아무런 생각 없이 돈을 벌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힐 때면 ’무엇을 위해 여기 있는가?’ 라는 질문을 다시금 던집니다. ‘한국 워홀러 다운 삶’인 카페에서 바리스타하기, 쉽게 돈 벌기 위해 포크리프트 자격증 따기 등에서 고개를 조금 돌리면 더 대안적이고 경험 중심적인 시스템들이 이미 많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얻은 정보들을 총동원하여 정리하면 이 정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첫 번째를 뺀 나머지는 호주 뿐 아닌 전 세계에 통용되는 시스템들이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래는 퍼스에 오기 전 온라인으로 지원하던 저의 첫 이력서와 지금 현재 돌리고 있는 이력서입니다. 대문짝만한 얼굴 사진은 무슨 자신감인지, 헛웃음만 절로 나오는 저의 부끄러운 과거를 공개합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이력서를 수정하면서 알게 된 팁들을 수용한 현재 이력서입니다.

이력서를 수정할 때 도움이 된 팁들을 정리하면 이 정도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과장 조금 보탠 이력서로 꼭 한 번쯤 경험을 쌓고 싶었던 조경사, 무려 Landscaper로 취직을 했습니다. 브리즈번에 와서 약 100개 가까이 되는 회사에 온라인으로 지원을 하던 중, 민서가 올 날은 점점 가까워지고, 이렇게 집도 일도 없는 채도 더이상 지낼 순 없다는 생각이 들던 때 즈음, 4개의 회사에서 동시에 전화가 온 날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어느 회사가 좋을 지 저울질을 할 기회가 생긴 저는 이게 무슨 행운인가, 하며 가장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처럼 보이는 대형 조경 에이전시를 선택하게 됩니다. 바로 다음 날 면접을 보고, 서류를 제출하고, 안전교육을 들은 뒤 이력서에 쓴 경력이 사실인지 직접 전화해서 증명하는 시간을 거치고 나니(미리 사장님들과 입을 맞춤..) 취직에 성공하게 된 것이죠!!
근데 이게 웬 걸, 면접을 본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은 이 회사는 일거리를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는.. 즉 줘도 그만, 안줘도 그만인 인력사무소 같은 곳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일은 많겠지, 하며 간과했던 사실에, 약 1주일이 지나니 화가 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쓰고싶은 글은 손이 가는 대로 적는 힘 없는 글.
맘대로 되는 게 하나 없다. 겨우 구한 직장은 알고 보니 에이전시였던지라 매일 달라지는 일을 문자로 보내준다. 이제야 일 하나를 줬는데, 그 일 마저도 운전면허가 없으면 안단다. 운전면허, 그게 뭐라고 이렇게 내 발목을 잡는 것인가. 이 일 하나 놓친 건 그리 큰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에게 맞는 일을 곧 만나겠지. 근데 머리와 반대로 마음이 점점 초조해진다. 조금 더 전략적으로 살았어야 했나, 내가 여기에 왜 왔지, 더 자유롭게 여행하고 다닐까, 반대로 대학 들어갈 때 도움이라도 될 만한 번듯한 곳에서 계속 일을 했어야 했나, 나는 왜 늘 애매하게 살까, 일이 안들어오면 어떡하지, 그럼 영어 공부나 해야겠다. 근데 다음 주 화요일이면 집세를 내야 하는데. 집세는 또 왜 이렇게 비쌀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면 노래를 듣는다. 힘이 될만한 아무 노래. 누군 헬스를 하고, 누군 산책을 하고, 누구는 영화를 본대서 다 해봤는데 아무것도 힘이 되지가 않는다. 노래를 들으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아 듣는다. 그러다 보면 힘 되는 노래 하나쯤 슬쩍 끼어있다. 이번에는 권나무 선생님의 밤 하늘로. 그리움과 외로움이 내 머리 위를 맴돌다가 밤 하늘로 사라져버리면 좋겠다는 가사가 얼마나 와닿았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로 적는 것은 부끄러운 내 감정들을 눈 크게 뜨고 마주하기 위한 연습. 그리고 당신들의 마음속에 깊게 가닿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퍼스를 떠난 이유는 더 많은 세상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퍼스를 바라보니 내가 보지 못한 너무나 큰 세상이 보여 후회가 된다. 이건 내 즉흥적이고 무모한 선택들을 보여주는 한 가지 예시일 뿐, 더 많은 생각을 했으면 다른 결과를 이끌어냈을 모든 선택들을 향한 후회이다.
어제는 하루 종일 얼굴을 마주본 대화를 단 한 마디도 안했다. 아침에 일어나 잘 잤냐고 물을 사람도 없고, 저녁을 같이 먹을 사람, 해야할 일도 없으니 그저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이 점점 깊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퍼스에서 알고 지낸 언니와 전화로 수다를 떨었다. 웨스트 앤드에 집을 구했다니 “이채답네”라고 하고, ‘아무런 일이나 구해서 돈 벌고 싶어, 아니면 조금 더 기다리고 싶어?’라는 질문에 조금 더 기다리면 무엇인가 오겠지, 하는 날 보고 ”그게 이채답지“라고 말한다.
언니의 눈에 비친 이채다운 삶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조차도 그건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워홀러의 삶’과 ’백패커의 삶‘, 그 사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들 사이를 헤메이느라 안이채의 삶을 잠시 잃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실용적인 글이 되지 못했다면, 당신들의 삶을 위로할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한다. 바다 건너에도 이렇게 아등바등 방황하고 있는 사람 하나 있으니 힘들 때 동지애, 그런 비스무리한 감정으로 힘을 얻으라고.
잠시. 그리고 다시 일어나야지
오늘도 긴 글을 읽어주심에 깊은 고마움과 사랑을 보내며.
사랑 담아, 이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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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c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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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는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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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사랑을 담아, 이채님 호주에서 많이 웃고 좋은 순간순간 이 많이 찾아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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