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지난 한 주가 어떤 설레이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을 지 궁금합니다.
저는 짧고, 아름답고, 꿈만 같은 로드트립을 끝내고 도시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차 안에서 흥얼거리던 노래들로 새로운 일상을 살 힘을 얻습니다.
We could change this whole world with a piano
우리는 피아노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어.
Add a bass some guitar, grab a beat and away go
베이스와 기타 소리도 얹어, 박자를 타자.Ed Sheeran - [What do I know?]
나를 살게 하는 것 다섯가지를 뽑으라면 사랑 노래, 따수운 노래, 솔직한 노래, 노래, 음악을 꼽겠습니다.
지난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마토와 조는 (그리고 나는) 여행의 절반이 지나서야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300불짜리 기타를 샀습니다. 총 여섯개 가량의 기타 뿐이었던 작은 악기사에서 하나 하나 테스트를 하다가, 너무 좋은 소리에 홀리듯 산 것이죠.
그 다음 날, 노을이 지는 바닷가에서 한 나절간 기타를 뚱땅대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세상을 바꿀 수 있을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세상을 다 가진듯 했습니다.
며칠 전, 이제는 걱정 없이 웃음을 띄고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새삼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처음 이곳으로 넘어와 매일같이 글을 끄적이며 잠에 들었던 과거의 안이채에게 느끼는 연민과 같은 감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의 감정을 잊어가는 나에게, 이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떠올려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들어 메일함을 열어봅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살게 해준, 오랜 시간 읽고 다시 오랜 시간 적어내려간 메일들을 하나하나 읽어봅니다.
과거의 내가 있기에, 과거의 그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내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낍니다.
밝맑고- 안녕 안이채!
네 영원한 짝꿍 민서야 :)
네가 출국하기 전에 꼭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난 늘 너무 느리네.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을 꼭 전하고 싶어 메일 쓴다!
왜 사람들은 곁에 있을 때 소중함을 알지 못할까?
네가 벌써 보고 싶다 아니채.
네가 호주로 떠나고, 난 한국에 남으면 우리는 반나절의 시차를 사이에 두고 하루하루를 보낼 테야.
네가 쨍쨍한 햇빛에 눈부실 때, 난 서늘한 달을 보고 있을 거야.
우리의 하루하루도 반나절의 시차만큼 다르겠지.
하루의 일과만큼 생각하는 것들도 다를 거고.
그래도 이채야, 난 널 자주 생각할 거야.
노랑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던 사람.
다정하고 섬세한 사람.
다른 이의 빛을 무심코 넘기지 않는 사람.
눈물도 콧물도 (심지어 침마저도) 많이 흘리던 사람.
정 많고 속 깊어 상처도 고마움도 많은 사람.
그런 너와 짝꿍이었던 삼 년을 아마 난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내 인생에 스쳐주어 고마워.
앞으로도 오래오래 스쳐주라.
네가 내게 내어준 너른 품을 기억해.
나도 너처럼 누군가에게 너른 품과 노오란 빛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채야 난 믿어. 넌 어디서든 잘 살 수 있을 거란걸.
네 빛은 숨기려야 숨길 수 없고, 네 다정은 감출래야 감출 수 없어.
호주를 환히 비추고 한국이 그리워지면 돌아와.
그동안 난 널 자주 떠올리고, 네 다정을 배우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을게.
지치고 힘들면 꼭 연락해.
내가 직접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가지 못해도
고추장, 오징어볶음, 장아찌, 호두 파이 등등 잔뜩 보낼 테니까.
그것도 못 하면 너랑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이야기 나눌 거니까.
사랑해 정말로.
널 온전히 지지하고 응원해.
너처럼 멋진 사람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멋있다 이채, 자랑스럽다 아니채.
무탈히 살다가 또 인생의 어느 순간 반갑게 만나자.
왕!사!랑!해!
2025. 3. 21. 쇠날. 민서가
민서에게.
(•••)
너의 삶은 평안하니?
낯선 곳에 적응하느라 온 에너지를 쏟고 있을 너를 떠올리니 기특하면서도 조금은 걱정이 된다.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는지, 마음은 잘 챙기고 있는지 말야.
내가 요 며칠 자꾸 무너져보니, 누군가 꽉 안아줬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돼.
신민서처럼 마음이, 손이, 열정이 - 모든 것이 뜨거운 사람이.
혹여나 너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가 온다면, 우리의 풀무를 기억해보자구.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할 때 나를 지탱해주던 품들을, 그리고 잔뜩 부비고, 싸우고, 웃고 웃었던 날들을!
마음이 한껏 따듯해졌다.
너의 글은 나를 또 한 번 일으켜 민서야.
꼭 책을 쓰길 바라.
2025. 03. 30 이채가.
만약 언니의 외로움에 제가 도움이 된다면 당장이라도 비행기 타고 가서 옆에 있고 싶네요.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기에 안부를 보내 봅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이 외로움을 달랠 수 있기를 바라요.
저에겐 이 시간이 한 숨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쉼이에요.
(언니의 주변 사람이 한국어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희한한 생각도 했어요^^)
요즘 미련을 버리려고 노력 중이에요.
살짝 집착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쿨한 척 연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한 달에 한 번 연락 하는 건 괜찮아요? 너무 잦나요? 그치만 보고 싶은 걸요...
그러니 연락 가능한 때 편하게 말해줘요~ 귀찮게 안 할게요•••
(•••)
나의 허다한 마음을 다 받아주는 이에게 안부를 보내 보았습니다.
늦지 않게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평안한 하루가 되었길.
2025.04.02 채완 씀.
채완아-
한 달을 채 채우지 못하고 답장을 보내요.
내심 답장을 기다리고 있을 너를 상상하면서요-
저는 이제 이 정 없는 이곳에 정을 잔뜩 주고 있을 만큼, 조금은 적응을 했어요.
아직도 한국에서 오는 연락 한 통, 아쉽게 놓친 카톡 한 통에 기대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나름 이곳을 사랑할 수 있게 됐어요.
이곳에는 신기한 사람들이 참 많아요.
분명 처음 보는 나에게 매번 안부를 묻고, 마을의 카페와 공유 정원들은 자원봉사자들로 북적여요. 내 삶 살기에 바빠 숨막히는 정적이 일던 한국과는 많이 달라요.
그러면서, 어쩌면 사는 건 그리 각박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투 잡, 쓰리잡을 뛰지 않아도 유통기간이 지난 것들을 나눔해주는 사람들 덕에 먹고 살 수 있고, 돈이 없으면 사랑을 내달라는 식당이 있어 굶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고요.
어쩌면 이성이 아니라 마음이 하고픈대로 나아가도 될 것 같다는 말을 너에게 꼭 하고 싶었어요.
모순적이게도 저는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죄책감 속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일을 찾고 있지만요.
저는요, 누군가 나에게 의지해준다는 사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서 저의 쓸모를 느끼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채완이를 보며 이렇게나 멀리에 있는, 작은 실로 이어진 것 같은 존재에게 기대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따듯해져요.
그러니까 더 기대고, 더 칭얼거리고, 가끔은 화가 나는 그 사람 욕을 잔뜩 들려줘도 된다는 이야기! 기다릴게요.
위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채완이에게, 저는 또 자꾸만 어떻게 널 위로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돼요.
힘내라고, 무너지지 말라고 이야기하기에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기에 이야기하지 못하구요, 울어도 된다고, 가끔 쉬어가도 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무책임한 말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구요.
그래서 제가 호주에서 조금은 곧게 설 수 있게 도와줬던 노래들을 함께 보내요. 노래의 힘은 어떠한 말보다도 세서 이 마음이 잘 가닿지 않을까 생각해요 (불법다운로드를 열씸히 시도해봤으나.. 실패 ㅜㅜ). 이중에 마음에 드는 곡이 있다면 좋겠네요-
- 계절의 끝에서 / 페퍼톤스
- Thank you / 페퍼톤스
- 다른 나라에서 / 산만한 시선
- ONCE / 유다빈밴드
- Happy Day / 체리필터 ㅎㅎ
- 봄밤에 다시 만나 / 프롬
그럼 이만 줄일게요!
멀리 떨어진 이 곳에서, 저는 너의 치열한 순간 순간들을, 현재의 선택들을 온 마음 다해 지지하고, 존중하고 있어요!
담백한 인사에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답장할 수 있겠죠?
보고싶어요! 사랑 담아 이채가요-
2025.04.13 이채 씀
아무래도 노래가 필요할 때인 것 같습니다.
이젠 그렇게 쉽게는 외롭다 말할 수 없어졌지만,
무언지 모를 차분한 것이 내 마음에 조금씩 차오릅니다.
노래로 가득한 한 주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랑 담아, 이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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