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 영국 시민미디어선언 발표

12월 넷째주 (2021)

2021.12.31 | 조회 1.7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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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앤임팩트 미디어 뉴스레터

국내외 독립미디어 동향과 의제 브리핑

💌 뉴스레터 5호

🌡12월 넷째주, 인디&임팩트 5번째 뉴스레터입니다~

이번 호는 미디어에 대한 시민과 창작자의 권리 관련 소식들로 찾아왔습니다.  

얼마 전 영국에서는 수많은 사회적 논의 끝에 '시민의 미디어를 위한 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영국 미디어 활동가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미디어 환경의 모습과 조건은 무엇인지 핵심 내용과 국내 시사점을 짚어봅니다.   

대표적인 시청자참여프로그램 KBS 열린채널이 어느덧 1,000회를 맞이했습니다. 열린채널이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고 지금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동안의 의의와 앞으로의 과제를 짚어봅니다.   

마지막으로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과 제작이 증가하는 가운데 미국 다큐멘터리 편집자들이 발표한 인간적인 노동시간 가이드 내용도 소개합니다.  

어느새 2021년의 마지막 날이 되었네요. 모두 올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 마음 새 뜻으로 내년에 다시 만나요, 모두 건강하세요!! 👍

 


📚 목록   

1.  [이슈] 시민의 미디어를 위한 선언: 미디어 공유지를 창조하라 

2.  [동향] 열린채널을 확장하자: 열린채널 1000회를 맞이하여 

3.  [동향] 미국 다큐멘터리편집자연합의 인간적인 노동을 위한 '다큐멘터리 편집 일정 가이드'

 


#1. [이슈] 시민의 미디어를 위한 선언: 미디어 공유지를 창조하라

20211111, 영국에서 <시민의 미디어를 위한 선언>이라는 묵직한 선언문이 나왔다. ‘미디어 공유지 창조하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선언문은 영국 미디어개혁연대(Media Reform Coalition)가 영국 전역의 수십 개의 미디어 조직 및 사회단체, 학계를 포함하여 연인원 3만여 명이 참여한 9개의 회의를 기반으로 한 토론과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다. 이 선언문은 영국의 대표적 공영방송인 BBC와 채널4가 시민의, 시민을 위한 미디어로서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며, 독립 공동체 미디어를 포함하여 시민들의 참여로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미디어 공유지(Media Commons)'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영국 미디어개혁연대 (MRC, Media Reform Coalition)

영국 미디어개혁연대는 2011년에 설립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학계, 미디어 전문가 및 활동가들이 모여 영국의 미디어 생태계가 보다 책임감 있고 민주적이며 지속가능해질 것을 요구해왔다. 영국 미디어개혁연대는 공공미디어를 풀뿌리 시민들의 관점에서 다시 상상하기 위한 미디어 캠페인 <BBC and Beyond>를 전개해 왔다.

 

미디어 공유지 캠페인 <BBC and Beyond>

기후위기와 팬데믹, 그리고 브렉시트는 영국사회의 거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미디어 환경은 풀뿌리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물론 이는 영국뿐만이 아니다) 기존 미디어들은 분열된 사회에서 시민들의 상호간 대화를 촉진하고 권력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미디어 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못해왔다. 영국 미디어개혁연대는 영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이윤을 위해 존재하는 상업적인 미디어 회사들에 의존할 수 없으며, 결국 시민들이 소유하고 책임지는 미디어, 다양한 시민들의 참여로 구축되는 미디어 공유지의 시급한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이러한 바탕에서 출발한 미디어개혁연대의 캠페인이 바로 <BBC and Beyond>이다. 이 캠페인은 전 세계 공영방송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BBC가 정부권력이 아닌 시민들의 통제와 참여를 바탕으로 민주적으로 혁신되기 위해 필요한 과제들을 제시하는 것과 함께 제2의 독립적인 공영방송이라고 할 수 있는 채널4’의 공공성과 다양성을 강화하기 위한 의제, 그리고 지난 수십 년 동안 공동체미디어, 독립미디어들이 만들어온 사회적 성과들을 확산하기 위한 의제들을 미디어 공유지라는 통합적 비전 아래 제시하였다. 

"공공방송서비스의 이상은 BBC만으로 옹호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BBC는 완전히 탈바꿈되어야 한다.” - 스튜어트 홀 (영국 문화연구자)

 

‘시민의 미디어를 위한 선언’

<BBC and Beyond> 미디어 공유지 캠페인을 통해 2020년과 2021년에도 미디어 선언(The Media Manifesto)’이 발표된 바 있다. 최근에 작성된 시민의 미디어를 위한 선언은 다수의 오프라인 대화와 온라인 토론을 바탕으로 기존에 발표된 선언문을 갱신한 미디어 공유지 전략을 포함하는 최종적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커먼즈 또는 공유지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유지되는 공동의 자원을 말한다. 미디어 공유지는 공공 자원을 바탕으로 시민들이 집합적으로 관리, 운영하고 참여하여 시민들과 공동체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공공 미디어 생태계를 의미한다. 미디어 공유지가 모든 상업 미디어를 대체하지는 않겠지만, 국민건강보험이 공공의료의 심장인 것처럼 가까운 미래에 미디어 공유지가 미디어 시스템의 중심이 될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 ‘시민의 미디어를 위한 선언’의 핵심이다.

선언문에서는 미디어 공유지라는 비전을 독립성 책임성 민주성, 그리고 모든 이를 위한 보편적 서비스 4가지 핵심 요소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 독립성은 정부와 시장권력 등 강력한 지배권력으로부터 통제를 받지 않고 독립적인 운영을 보장하고 민영화의 간섭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 책임성은 미디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제의 필요성과 규제 집행에 있어 시민 참여를 보장하고, 공공 미디어에서 발생하는 차별적 상황들을 감독하는 것이다.
  • 민주성은 프로그램 제작과 편성 권한 및 자금을 분배하여 실질적인 다양성 실현과 시민 참여를 보장해야 하며, 전국 및 지역위원회에 노동자와 시민 참여를 보장하고, 공영방송국 소속 노동자들의 다양성 강화와 평등, 비정규직의 노동권 보호를 포함한다.
  • 모든 사람들이 미디어에 대한 접근과 이용이 가능하고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시청료 누진제 도입과 방송 아카이브에 대한 공개 원칙,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미디어 서비스 및 콘텐츠 강화를 제시하였다.

대담하고 혁신적인 요구안을 포함하고 있는 이 선언은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디어 공유지의 씨앗은 영국 미디어 환경 속에서 70년대부터 실험되어온 BBC의 커뮤니티 프로그램과 80년대 채널4의 액세스 워크샵, 그리고 공동체가 직접 소유하고 주민들의 참여로 운영되는 수백 개의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 참여적 저널리즘 조직, 디지털 혁신가 등 다양한 미디어 협동조합들 속에서 이미 배태하고 있었다.

BBC의 커뮤니티 프로그램

1973년에 시작되어 2000년대 초반까지 존재했다. 처음에는 <Open Door>(후에 <Open Space>)라는 프로그램에서 시작되었는데, 개인과 단체가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BBC 방송국 스태프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 초기 <오픈 도어> 프로그램에서는 인종차별주의와 동성애 혐오, 에이즈 등 도전적인 기획들이 포함되었다. 이후 소형 캠코더가 보급되면서 시민들에게 제작 교육을 실시하고, 캠코더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비디오 다이어리>, <비디오 네이션>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 1992년부터 커뮤니티 프로그램 부서는 장애인으로 구성된 팀을 포함했으며, 장애인들이 방송에 참여할 수 있는 훈련장을 제공했다.

채널4의 액세스 워크샵

1982년에 설립된 독립 공영방송 채널4는 방송국 비전 수립 당시 ‘액세스 TV’ 모델을 적극 도입하였다. 이를 수행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서 ‘채널 4 워크샵’은 대안영화/영상집단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였다. 이 워크샵은 프로그램 제작과 함께 교육 활동은 물론 장비에 대한 직접 지원을 포함했다. 워크샵을 통해 방송된 프로그램은 주류 미디어에서 대변되지 않는 사회적 소수자 그룹들이 자신들을 직접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흑인 커뮤니티와 아시아 영화단체도 지원을 받았으며, 80년대 광산노동자 파업 당시 광부들의 관점에서 목소리를 전하는 ‘광부 캠페인 테이프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영국 미디어개혁연대의 <BBC and Beyond> 캠페인은 20224월까지 진행된다. 캠페인 활동을 통해 도출된 시민의 미디어를 위한 선언에 대한 논의가 2021년 말 영국 의회에서 시작되었다. 미디어개혁연대는 정치인들과 미디어 공유지 선언의 의미를 재확인하고 알리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20224월에 있을 BBC 관련 법령 개정 및 정책 반영을 위해 정부부처에 시민 요구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미디어 공유지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미래이다.그 첫 단계는 미디어 공유지를 상상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공유지 만들기를 시작할 수 있다.

- 「시민의 미디어를 위한 선언」(2021)


[시민의 미디어를 위한 선언] 요약문(한글) 보기

(번역/최세진, 감수/박채은, 편집/이수경)

 

[시민의 미디어를 위한 선언] 전문(영어) 보기

 

한국의 미디어 공유지는?

공공성과 공동자산으로서 공유지에 대한 실천적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공영방송을 비롯한 공공미디어, 공동체미디어를 포괄하는 한국의 미디어 공유지는 어떤 상황인가. 공영방송 폐지론이 나오고, <오징어게임> OTT 플랫폼의 성공전략이 대세가 된 지금, 미디어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는 방송 재허가나 플랫폼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 중심으로만 논의되고 있다. 그마저도 탑다운 방식의 정책 논의 속에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수렴하고 시민 의제화 하는 움직임도 크게 보이지 않는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는 KBSEBS 수신료를 2,500원에서 3,800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의결하고 국회에 의결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의 구체적 내용과 수신료의 사용처 및 자원 배분을 결정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들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어왔다. 그리고 여전히 공영방송의 존재가치를 방송사 스스로 보여주지 못한 상황에서 수신료 인상으로 그간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수신료 인상은 회계투명성이나 경영효율성 제고와 같은 재무적 지표가 아닌 보다 근본적으로 공영방송의 비전을 새로 수립하고 콘텐츠 제작은 물론 조직 운영 방식 전반의 혁신을 전제로 해야 한다. 혁신을 위한 사회적 합의는 시청료를 내는 납부자인 시민들의 주도로,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관련 기사][미디어오늘] 방통위, ‘2500원→3800원’ 수신료 인상안 국회에 넘긴다

 

또 다른 공영방송인 MBC는 창사6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2022년 상업성을 배제하고 시민들의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MBC2 채널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시민 참여를 전면에 내걸고 사회적 약자와 다양성을 반영하는 콘텐츠들을 편성하는 모델은 80년대 영국의 채널4 설립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이 새로운 시도가 MBC의 일방적 주도가 아니라 그동안 방송국 바깥에서 시민참여 기반의 콘텐츠를 생산해 온 마을공동체미디어들과 독립제작 영역, 사회적 목소리를 꾸준히 기록해온 사회단체나 영상단체 등의 광범위한 참여와 지원을 바탕으로 실현되기를 바란다.

[관련 기사][미디어오늘] 창사60주년 맞은 MBC “광고없는 MBC2채널 만들 것”

 

영국 미디어개혁연대의 시민의 미디어를 위한 선언에서 보여준 공공 미디어(공영방송)와 독립 미디어를 동시에 포괄하는 미디어 공유지를 위한 연대 전략은 우리에게도 큰 시사점을 준다. 공영방송 혁신과 공동체미디어 활동은 분리된 의제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미디어 공유지를 상상하고 요구하고 또 실현시킬 수 있는 더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2. [동향] 열린채널을 확장하자: 열린채널 1000회를 맞이하여 

열린채널이 1000회를 맞이했다. 1000회가 방송되기까지 20년이 걸렸고, 그동안 시청자가 직접 제작한 수많은 작품이 열린채널을 통해 방영됐다. 대표적인 시청자참여 프로그램으로서 많은 성과도 있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도 많을 것이다. 열린채널의 의의와 과제를 간략하게 점검해보자

열린채널은 200155일 첫 방송을 시작한 시청자참여제작 프로그램이다. 현재 매주 수요일 14:30 ~ 15:10, KBS 1TV에서 방송되고 있다. 이주노동자, 청소년, 노인 등 다양한 사회계층이 다양한 주제로 제작한 작품들이 방영되었다. 시청자참여제작 프로그램이란 방송프로그램에 시청자가 방청객, 출연자 등으로 단순 참여하는 것을 넘어서 직접 기획·제작한 방송프로그램을 의미한다. 현재 열린채널에서 방송되고 있는 작품의 대다수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작품이지만, 극영화, 애니메이션, 토론 프로그램 등 작품 형식에 대한 제한은 없다. 시민사회에서는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퍼블릭액세스 권리를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2000년 방송법 개정을 통해 열린채널이 탄생할 수 있었다. 

[사진 = KBS 열린채널 홈페이지 ]
[사진 = KBS 열린채널 홈페이지 ]

 

 ‘공공의사표현의 사유화’를 넘어서

지상파 방송은 강한 공공성을 요구받는다. 전파는 공공재이며, 특정 채널을 특정 방송국이 점유하면 그 채널을 다른 방식으로 이용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국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며, 그 채널을 사용하고 있는 방송국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문제는 방송국(공영이든, 민영이든)이 자체적으로 공공성을 추구하며 다양한 의견을 담는 데에는 여러 한계를 보여 왔다는 점이다, 소수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거나, 권력을 비판하지 못하거나, 광고주의 눈치를 보는 것이 대표적이 예일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 시청자의 실질적 참여를 통해 시청자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시민사회의 주장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방송법이 개정되었고, 시청자의 참여를 제한적이지만 보장하는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이 탄생할 수 있었다

‘심의’ 또는 ‘검열’

열린채널 1000회 특집에서는 호주제 폐지, 평등 가족으로 가는 길’,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등 열린채널에서 방영되었던 주요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들은 당시 방송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민감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며,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의 의의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이 순탄하게 방영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민이 제작한 작품이 방영되기 위해서는 시청자참여소위원회의 프로그램 심사를 받아야 하고 KBS 심의실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편향성, 기술적 미숙, 작품의 완성도 미흡 등의 이유로 방영이 반려된 사례들이 있었고, 시민사회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작품 선정, 심의와 관련된 검열 논란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풀어야 할 숙제이다.

공적 제작환경의 보장

시청자참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시청자가 직접 기획·제작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작환경의 지원도 필요하다. 진정한 참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공공적 제작환경이 마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열린채널의 경우 단순히 제작비를 지원하고, 편집기술의 보조를 담당하고 있는데, 금전적 지원을 넘어서, 제작전반에 대한 실질적 제작지원환경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촬영·편집장비에 접근하지 못하거나, 관련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시민들은 참여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에의 실질적 참여가 가능하기 위해서 교육을 기반으로 한 공공적 제작환경이 필수적이다. 일상적으로 접근 가능한 공적 제작환경이 시청자의 참여를 보장할 수 있다.

열린채널의 확장

열린채널은 시청자참여를 보장한 방송법의 취지를 최소한으로 보장한 프로그램이다. 안타깝게도 처음 열린채널이 방영된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방송시간 연장, 다양한 시청자참여 프로그램의 설립 등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의 확장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열린채널이 방송을 시작한 이후 20년동안 방송환경은 급격하게 변화했다. 종합편성채널, OTT를 비롯한 다양한 방송채널이 등장했고, 시청자의 한정된 시청시간을 둘러싼 다양한 미디어의 경쟁은 더 심화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오히려 방송의 공공성은 더 중요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열린채널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3. [동향] 미국 다큐멘터리편집자연합의 인간적인 노동을 위한 '다큐멘터리 편집 일정 가이드'

불과 몇 년 전까지도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편집은 마땅히 감독의 몫으로 여겨졌다. 필자 역시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의 Asian Networks of Documentary 프로그램에서 튜터로 참여한 편집 감독 마리 스테판에게 다큐멘터리 편집 감독의 역할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 <버블 패밀리>(마민지, 2017), <기억의 전쟁>(이길보라, 2018) 등 편집 감독과 본격적으로 협업하는 다큐멘터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김형남 감독과 같은 다큐멘터리 전문 편집 감독이 등장했다. 더 이상 한국 다큐멘터리에서 편집자는 낯선 존재가 아니다. 이제 장편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편집 감독과 협업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반드시 고려하는 선택지가 된 것은 분명하다.

“다큐멘터리를 편집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당신에게 책을 써보라고 하면서 문장들이 담겨있는 가방을 쥐어주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 Travis Swartz, 프로듀서

이 인용구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좋은 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좋은 문장과 구성 중 어느 하나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조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럴듯한 비유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다큐멘터리를 공부하던 시절, 나의 스승께서는 편집에 골머리를 앓는 나에게 편집은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개인적으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데쿠파주가 일어나는 시점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극영화에서 가장 연출적인 순간이 시나리오가 데쿠파주를 통해 영화로 탄생하는 순간이라면 다큐멘터리는 촬영 현장에서 그것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큐멘터리의 무한한 매력인 동시에 한계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진에게 편집은 분명 새로운 기회임이 분명하다. 나에게는 여전히 다큐멘터리에서 편집자와 함께 일하는 것은 낯선 일이지만 빛나는 순간들을 돋보이게 하고 안타까운 한계들을 극복시켜주는 편집자를 만나는 것을 꿈꿔본다. 하지만 집 감독과 함께 일을 하기를 결심한 후에도 사전에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제작 단계에서 어떻게 협업해야 하는지 등은 나 뿐 아니라 다른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 막막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참고할 만한 가이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11월 뉴욕다큐멘터리영화제(DOC NYC)에서는 미국 다큐멘터리편집자연합(Alliance of Documentary Editors, 이하 ADE)이 다큐멘터리 편집 일정 가이드(Guide for Documentary Edit Schedules 원문 보기, 이하 가이드)를 발표했다. ADE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다양한 형식의 제작이 시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큐멘터리 기획 단계에 참여하지 않는 편집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비현실적인 편집 일정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이 지침을 작성했다. 가이드는 편집 단계에 들어가기 전에 고려해야 할 것, 프로젝트 특성에 따른 제작 기간, 인간적인 노동 시간 등에 대해 지침을 제시한다. 이때 권고의 대상이 되는 “다큐멘터리”를 “사전에 정해진 포맷이 없는 것”, “출연자들이 따라야 할 대본이 없는 것”, “뉴스 매거진 쇼”가 아닌 것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가이드라인을 따를 수 없는 소규모 프로덕션 환경에서의 다큐멘터리들이 제작의 효율성 및 작품의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이 가이드가 고안되었음을 밝힌다. 

DOC NYC에서 Guide for Documentary Edit Schedules를 발표하는 미국다큐멘터리편집자연합회원들, 출처: https://allianceofdoceditors.com/
DOC NYC에서 Guide for Documentary Edit Schedules를 발표하는 미국다큐멘터리편집자연합회원들, 출처: https://allianceofdoceditors.com/

가이드에 제시된 편집을 시작하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은 다음과 같다. 좋은 편집 감독을 찾기 위해서 제작 단계의 초반부터 편집 감독을 찾을 것, 그리고 편집자와 상의해 편집 조감독을 고용해 먼저 작업을 시작할 것,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편집자와 사전에 조율하여 프로덕션을 설계할 것 등이다. 이 장에서 효율적인 작업을 위해 편집 시작 전에 완료되어야 할 세부사항들은 한국의 상황에서도 권장되는 방법이다. 1) 인터뷰를 타임코드를 포함한 녹취록으로 만들기, 2) 외국어 인터뷰 번역 및 자막 작업, 3) 촬영본 정리와 파일 변환, 4) 필요한 아카이브 푸티지 수집하기 등. 이러한 작업은 비단 편집 감독과 일을 하지 않는 경우일지라도 편집 단계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것으로 효율적인 작업 진행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편집 기간과 관련해서는 장편 다큐멘터리의 경우와 시리즈물의 경우로 구분하여 지침을 제시한다. 장편 다큐멘터리의 경우, 작품의 특성과 제반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완성본의 러닝타임 10분당 편집 기간 1이라는 편집 기간을 지침으로 제시한다. 

다큐멘터리 시리즈물의 경우, 현재 리얼리티 티비 프로그램의 제작환경과 유사한 제작일정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TV편성(42)물이나 60분물 다큐멘터리의 경우 평균 8-12주의 편집기간이 주어지고 있는데 이는 예산을 줄이기 위한 무리한 계획이며 결국 불가피한 주말 근무, 기한 연장, 추가적인 고용 등으로 이어지면서 예산도 줄이지 못하고 작품의 질적 저하와 제작진의 과도한 스트레스를 가져오는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가이드는 티비 편성(42)물의 경우에도 16-18주의 편집기간을, 60분물의 경우 20-24주의 편집기간을 권고한다

마지막 챕터는 인간적인 노동 시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편집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과 같은 것이라 비유하며 창의적이고 감정 소모가 많은 작업을 지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나친 노동 시간으로 편집자들을 소진하는 것은 일정을 단축하는 방법이 아니라 역효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임을 강조한다. 영상의 다른 분야들에서는 종종 근무시간이 12시간까지 길어지기도 하지만 다큐멘터리의 경우에는 긴 프로덕션 기간 때문에 반드시 하루 평균 8-9시간의 업무시간이 권장되며 연장근무에 대해서는 편집자가 결정해야 함을, 주말 근무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허용되며 반드시 보수가 주어져야 함을 권고한다. 또한 이 원칙은 보조 편집자에게도 지켜져야 하는 것이며, 이들은 편집실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업무를 마무리하기에 그에 대한 보상으로 늦은 출근이 허용되어야 함을 주지시킨다. 가이드는 마지막으로 많은 노동 시간이 많은 작업성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다큐멘터리 편집환경은 전통적으로 편집자가 편집실 바깥에서의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인간적인 노동환경이 표준이었음을 언급하면서 인간적 노동환경이 훌륭한 콘텐츠를 가능케 하는 건강하고 다양한 편집자들의 풀을 보장하는 것이라 믿는다고 강조하면서 끝을 맺는다

다시 우리의 현장으로 돌아온다. 10분에 1달이라는 편집기간, 그리고 하루 8시간을 넘기지 않는 업무시간 그리고 휴일 보장은 당연하고 합리적이지만 예산을 비롯해 여러 가지 제반 조건에 견주어 보면 실현 가능성이 요원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당연하고 합리적인 가이드와 그것을 지키기 어려운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이 가이드는 권고이자 지침이다. 가이드에서 정의한 다큐멘터리의 제작환경이 우리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인간적인 노동환경은 주어지고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며 제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이드는 보다 근본적인 반성을 요청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본 뉴스레터는 미디어운동에 대해 새롭게 질문하고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찾아가기 위해 발행됩니다.

미디어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각종 담론과 현상이 범람하는 가운데 과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무엇인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어 정작 중요하게 필요한 미디어의 변화는 무엇인지 관점을 제공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앞으로 2주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지고 여러분께 찾아갈 예정입니다.

  • [동향] 독립 미디어 분야와 관련한 국내외 소식이나 정보
  • [이슈] 독립 미디어 분야에서 중요하게 바라봐야 할 의제나 이슈, 자료 브리핑
  • [기획연재] 미디어 활동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는 기획연재나 열린 간담회 자리 등

이름에 맞게 ‘임팩트’ 있는 뉴스레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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