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레타리아 여인의 밤』

인사이트브리즈의 일곱 번째 소식

2023.11.27 | 조회 2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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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책으로

글에서 시작하여 책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안녕하세요. 인사이트브리즈입니다.

소식, 하나

이번 달에 나온 신간 이야기를 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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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경 작가님은 제가 출판사라는 간판을 달고 처음으로 떨리는 마음으로 연락드렸던 작가님이십니다. 블로그 글이 너무나 흡입력 있고 엄청 양이 많아서 얼마나 속에 담은 말들이 많은 것일까, 생각했더랍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담은 하나님의 트렁크라는 에세이집을 인사이트브리즈의 첫 종이책으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작가님의 열렬한 팬분들이 열심 책을 사주신 덕분에 재쇄를 찍는 행운도 누렸고요!

그 후 계속해서 유라의 결혼식』 『1944, 테러리스트, 첼로, 산문집 바람의 신부와 치즈케이크』 『대한민국에서 교인으로 살아가기』 『내가 행복했던 교회로 가주세요』『자폐클럽』『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등이 잇달아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등 불을 뿜는(?) 활동을 하고 계시지요.

이번 장편소설 프롤레타리아 여인의 밤2023년 경기문화재단의 창작지원을 받은 작품으로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결혼 이후, 어떡하든 어울려 살 수밖에 없는 삶이 갈등과 스트레스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지속적인 행복의 원천이라는, 진부의 끝을, 진리라고 믿을 사람이 아직도 있을까.

자크 랑시에르가, 19세기 노동자들의 말하기에 '사유의 지위'를 부여하는 시도로 <프롤레타리아의 밤>을 세상에 내보였다면, <프롤레타리아 여인의 밤>은 가진 것 1도 없는 무산자 여자의 말하기에 '사유의 지위'를 부여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숨죽인 소리, 침묵하는 소리, 눈여겨 보지 않은 일상의 비루함에 하나하나 사유의 족적을 채워가는 것. 그렇게 해서 잊고 있던, 혹은 잊고 싶었던 상실의 시간을 세밀하게 끄집어내어 당당하게 면류관을 씌워준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의 코르시카는 어디인가.”

잠깐 앞부분을 보겠습니다.

“비대칭의 데칼코마니 내가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그가 쓰러진 직후, 조금씩 비뚤어져 가는 입으로 내게 말했다. 그리고 그 후 다시 일 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나는 그에게 말한다. 그나마 다행이지. 허방에 떨어진 말은 발등을 찧고 마루의 먼지 사이로 스며든다. 다행이라니. 그냥 말만 그렇게 한 것이다. 몇몇 친구가 전화했다. 잘해 줘. 남편인데 어떡하겠니. 잘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나름대로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다. 두 달 남짓 병원에 있는 동안 전자레인지 앞에서 수육을 들고 줄을 서면서, 휴게실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간병인들의 수칙을 귀동냥하면서 나의 간병 수준이 적어도 중상(中上) 이상은 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퇴원 직전 그는 한쪽 어깨가 15〬 정도 기운 상태로 바퀴가 네 개 달린 지팡이를 짚고 복도를 왕복할 만큼 회복되었다. 침대에서 휠체어로 이동시키기까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날마다 한 줌씩 살이 빠져가는 그의 몸뚱이를 붙잡고 씨름했던 입원 초창기와 비교할 때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는 환자복을 입고 조깅하는 경미한 환자를 부러워하는 한편, 복도 난간에 기저귀 천과 매우 흡사한 폭과 길이의 누런 광목천으로 칭칭 온몸을 묶인 채 전혀 감각이 없는 다리를 일 센티씩 들어 올리는 운동을 하는 중증 환자를 보면서 위안 삼았다. 세상에도 위아래가 있듯 병원에도 그렇게 위아래가 존재했다. 나의 간병 수준이 중상쯤 되는 것처럼 그의 증상도 중상 정도는 되었다. 옆 병실에서 꼼짝없이 누운 채 이년을 채우고 있는 삼십 대 후반 전직 증권사 대리의 풀어진 눈동자를 보면서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렇게 누워있는 대리보다 멀쩡한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그즈음에는 뜸해진 문병객에게 떠벌이기에 이르렀다. 보조 의자에 간신히 궁둥이를 붙이고 앉은 문병객들은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여 동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이란 것이 본연의 나이보다 심각하게 노쇠해 보인다는 입바른 소리는 접어두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의 머리맡에 몸종처럼 단정하게 서 있는 나에게 눈짓으로 ‘매우 안됐다’라는 의사 표시를 확실하게 하고 복도를 총총 걸어갔다. 그의 뇌는 반으로 가른 사과 같았다. 나는 누군가에 의해 쪼개진 사과 반쪽을 보는 기분이었다. 의사의 가늘고 긴 지시봉이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다. 오른쪽에만 나타나 있는 작고 검은 부분은 반쪽짜리 씨방 같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한쪽 날개가 뜯긴 나비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래된 물 주름처럼 부드러운 굴곡 틈에 나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뇌경색 부위가 있었다. 뷰 박스의 창백한 형광 불빛 속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그러나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비대칭의 데칼코마니를 간직한 채 그는 퇴원했다. 친구들은, 잘해 주고 있다는 내 말이 믿기지 않은 지 그가 퇴원하고 나서도 일주일이 멀다 하고 전화했다. 통화는 길었다. 영혼 없이 길기만 한 위로에 약간의 우려를 섞어서, 실은 ‘우려’에 더 강도를 주면서 한 시간씩 붙들고 늘어졌다. 정말 지겨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속 터져 죽겠는데 니들까지 웬 지랄들이냐’고 소리 지를 수는 없으므로, 그래그래 하면서 들어주었다.”

소식 둘, 양장 소설 『우리 셋』

이번 뉴스레터에는 책 소식만 전하게 되네요.

저는 우리 셋을 읽으면서 같은 동양인으로서의 공감이 어떤 것인가를 제대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2부는 환상소설 같은 면이 있는데 어떤 애달픈 표현보다 더 절절하게 가족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남편 첸중수와 결혼한 양장은 영국 유학, 프랑스 유학을 거쳤으나 거센 일본의 공격을 받고 있던 중국을 져버릴 수 없어 귀국합니다. 딸 하나를 둔 이 세 가족은 국공내전의 시기를 거치면서 문화대혁명도 온몸으로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딸이 60세가 되던 해 죽음을 맞고 그 이듬해는 남편마저 저세상으로 떠나갑니다.

이 책에 대한 짤막한 감상을 김송이님이 써주셨습니다. 구독자 많지 않은 뉴스레터에 기꺼이 글을 싣게 허락하신 송이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투고 기다립니다!)

『우리 셋』 양장 지음, 윤지영 옮김 (슈몽, 2022) 흔들린 김에 디캔팅 구이다오에는 몇 가지 경고와 규칙이 있다. 그중에서도 양장 선생이 가장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경고 제3항 ‘모르는 일은, 묻지 말 것‘이다. 내가 사는 세상의 경고와 규칙은 구이다오의 것과 다른 듯 비슷하다. ‘모르는 일은 물어볼 순 있으나 답을 기대하지는 말 것’. 어느 날 갑자기 마중 나온 차를 타고 회의에 간 첸중수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양장 선생은 애가 타서 식사도 하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한다. 딸 아위안이 아버지의 연락을 받고 양장을 구이다오로 안내해 셋이 겨우 다시 모이자 양장 선생은 그제야 말도 필요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세 사람은 원래 세 사람이었던 것도 아니고 언제나 세 사람이었던 것도 아니지만, 양장 선생에게 세 사람이 함께 있는 순간은 돌아갈 만한 온전한 집이다. 내가 조금씩 조금씩 그를 떠나보낼 수 있도록, 가능한 많이 만나고 떠날 수 있도록, 중수는 내 짧은 꿈을 길게 늘여 이토록 길고 긴 꿈속의 이별을 하고 있다. 딸을 병으로 먼저 보내고 남편마저 보낸 후 『우리 셋』을 적어낸 심정을 가만히 생각해본다. 길게 늘인 꿈에서는 계속 이별하는 중인데, 꿈이 꿈인 줄 아는 시간, 그 꿈을 그려내는 시간은 얼마나 애달픈 것일까. 그럼에도 ‘우리 셋’이 함께인 집으로 가는 그 꿈길은 얼마나 그리운 여정일까. 물은 고요한 듯 보여도 중력으로 늘 분주하다. 그 위에 띄운 배는 힘껏 노 저어도 제자리를 맴돌기도 하고 도리어 물가로 밀려나기도 한다. 어떤 때는 바람까지 더해 생각하지 못한 곳으로 휩쓸려가기도 한다. 그런 분주함은 구이다오 전체에 퍼져있다. 구이다오에서 양장은 노쇠한 본인의 몸을 뉘이랴, 남편을 만나랴, 잠자는 동안에는 아위안 곁을 맴돌랴 심신이 분주하다. 첸중수가 머무는 작은 배도 산기슭에 매여서 꼼짝 않는 듯 보이지만 실은 계속 흔들리고 있다. 그렇게 흔들리는 작은 배는 남편이 의문의 전화 한 통으로 사라진 이후 셋이 함께 하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작은 배는 셋이 함께 하기에 잠시나마 ‘우리 집’이 된다. 그런 시공간에서도 물은 흔들리고 심신이 분주하다는 사실은 슬픔과 불안을 더하기보다 위로가 된다. 물이 흔들리는 것은 중력이라는 자연현상 때문이라는 것, 가장 위안이 되는 무언가도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은 지금 나의 불안과 분주함이 자연스럽다는 사실을 가만히 전해준다. 작은 배가 어제와 같은 장소에 있지 않더라도 근처 객잔에 들어가 식사도 하고 조금 쉬다 나오면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경험에서 우러나는 확신은 조금 더 큰 위로를 전한다. 잠시나마 세 사람의 집이 되어주던 작은 배가 사라지고, 세 사람이 그보다 오랜 시간 함께한 산리허 아파트가 어느덧 잠시 머물다 떠나야 하는 객잔이 되어버린다 해도, 그런 이별도 이내 받아들이게 되는 것 역시 세월이 건네는 위로다. 내가 있는 구이다오의 제3항, ‘모르는 일은 물어볼 순 있으나 답을 기대하지는 말 것’이라는 경고는 사람을 초조하게 하고 닳게 한다. 하지만 묻지 않았으나 『우리 셋』을 읽으며 뜻밖에 얻은 답이 있다. 우리 부부는 일상에서 겪는 온갖 일들을 맛 좋은 술을 마시듯 일부러 천천히 음미하며 여유 있게 보냈다. 어려운 일을 겪은 후에 생기는 지혜를 생각하면, 그 맛은 천천히 음미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풍랑은 나의 뜻이 아니니 나의 탓도 아니며 급히 헤쳐 가려 애쓰지 않아도 좋다. * 김송이.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읽고 쓰는 삶을 살려 노력 중이다.

추신) 늦가을 남도여행

지난 편지에서 제가 남도 여행을 가고 후기 올리겠다고 말씀드렸었죠.

저의 일정은 이러했습니다:

월요일 아침 9시 서울 출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고창 선운사 도착 백반기행에 나온 뭉치식당에서 산채비빔밥 점심

저녁 6창평의 한옥 민박 도착

화요일 오전 9시 창평 한옥 마을 구경

10담양 소쇄원 산책

1230송공항에서 대기점도 행 승선

130대기점도 민박집에서 점심

3시 대기점도의 5개 건출물(예배당) 구경

6 민박집에서 저녁식사

수요일 오전 9소기점도 --> 순례자의 길 게스트 하우스 커피 --> 소악도 --> 소악도 교회 --> 끝섬

오후 1 섬에서 가벼운 점심

오후 230 송공항 행 배 승선

오후 330분 송공항에서 점심식사

저녁 630 강진 주작산 자연휴양림 숙박

목요일 오전 10 해남 두륜산 대흥사 및 두륜산

오후 1 30 나주 백반

오후 3 나주 찜질방

오후 5 서울로 출발

신안 앞바다와 섬들 너무 아름다웠고요, 선운사와 두륜산도 정말 더할 수 없이 좋았습니다. 특히 이제는 기후 변화로 인해 단풍이 약해질 때 간신히 조금 남은 단풍들을 볼 수 있었고요.

우리나라는 도로도 좋고 시설도 이제 어느 곳을 가더라도 잘 되어 있어서 정말 그동안 우리가 한 일이 이렇게 많구나(우리가 세금을 참 열심히 냈구나!) 싶었습니다.

우리 다음 세대에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어야 할텐데... 안타깝습니다.

아무튼 다음에 남도 여행을 더 자주 다녀야겠다는 생각 아닌 다짐 아닌 바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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