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는 왜 PM을 지우기 시작했나

더 이상 ‘문서’는 기획이 아니다. 경계가 무너진 곳에서 살아남기

2026.02.10 | 조회 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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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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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PM의 시선에서, Product Architect의 관점으로.

안녕하세요, 채원입니다.

지난 뉴스레터에서 PM 공고를 살펴보며 기획자 직군에 흐르는 정적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그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려보았습니다. 바로 Product Engineer(PE) 공고입니다.

 

이번에는 원티드에 올라온 국내 PE 공고 30개,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기준인 YC(와이콤비네이터) 공고를 함께 뜯어보았습니다. 표본이 늘어나니 신호는 더 선명해졌습니다. 단순한 채용 변화가 아니라, 업의 본질이 뒤집히고 있다는 강력한 시그널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생존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1. 같은 단어, 다른 결과물

 

PM과 PE 공고를 나란히 두고 보니, ‘기획’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PM에게 기획은 ‘문서’ 위주에 가깝다는 인상이었습니다. 

  • 제품기획서(PRD)를 준비하고 작성합니다. (S사)
  • 기획서·기능 스펙 문서 작성, QA 관리 (D사)

 

반면, PE에게 기획은 '실행'에 더 가까웠습니다. 

  • 기획-디자인-개발을 모두 수행하는 1인 스쿼드(Triple Threat). (P사)
  • PO와 페어로 일하며, 기획·디자인·개발까지 손을 직접. (D사)

 

여기서 ‘Triple Threat’은 원래 농구 용어입니다. 공을 잡고 드리블, 패스, 슛 세 가지를 다 할 수 있는 위협적인 선수를 뜻하죠. 회사는 이제 개발자에게 기획과 디자인까지 요구하며, ‘쓰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 기획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오너십의 범위입니다. 보통 개발자에게 요구해왔던 오너십은 ‘코드’까지입니다. 하지만 PE 공고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 “배포 이후, 고객에게 가치가 전달되는 과정까지 오너십을 가질 것.” (M사)

 

‘고객 가치 전달’ 이건 원래 PM이 개발자를 설득할 때 쓰던, PM만의 언어였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이제 엔지니어에게 그 언어와 책임까지 쥐어주고 있습니다.

 

 

2. 국내 공고에도 등장한 단어, "바이브 코딩"

 

30개의 공고 중 10개 이상(약 33%)이 AI 도구 활용을 명시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채용 공고에서도 이 단어를 확인했습니다.

 

  • 바이브 코딩(Vibe Coding)뿐만 아니라 AI를 활용한 UX 디자인 역량 등 (D사)

 

해외 토픽인 줄 알았던 ‘바이브 코딩’이 국내 채용 시장의 필수 자격 요건으로 들어왔습니다.  “엔지니어 한 명이 AI와 함께 6만 줄의 코드를 변경했다(T사)”는 문구는, 이제 개발의 속도가 인간의 속도를 넘어섰음을 증명합니다.

 

 

3. YC가 보여주는 미래: "No PMs"

 

해외는 어떤지 궁금해서, YC 스타트업들의 공고도 찾아보았습니다. 거기엔 더 서늘한 미래가 적혀 있더군요.

 

첫째, PE가 직접 유저를 만납니다.

  • “Talk to users often. (유저와 자주 대화하세요)” (YC S24 C사)
  • “Great product engineers have users they're friendly with. (위대한 PE는 친한 유저가 있습니다)” (YC W20 P사)

 

한국 PE 공고에는 아직 없던 ‘유저 인터뷰’가,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미 PE의 필수 역량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둘째, 아예 PM이 없는 조직까지 등장했습니다.

 

  • “No PMs. No middle managers.” (C사)

12명 규모의 조직이 PM 없이 돌아갑니다. 기획부터 고객 경험까지 엔지니어가 다 가져갑니다. 경량화된 조직, AI로 무장한 엔지니어. 이곳에서 ‘중개인’으로서의 PM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4. 대체가 아니라 ‘융합’입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PE가 PM을 잡아먹는 걸까요? 저는 이것이 ‘대체’라기보단 ‘융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고민되는 지점은 있습니다. PM이 바이브 코딩으로 짠 프로토타입과, 엔지니어가 짠 프로덕션 코드는 깊이가 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방향은 명확합니다. ‘쓰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것. 이제 우리는 두 가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① PE의 손을 훔쳐야 합니다.

 

PE는 ‘텍스트’가 아니라 ‘코드’로 기획을 검증합니다. 이제 PM도 구체적인 도구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저도 처음엔 거창한 게 아니었습니다. 매번 개발자에게 SQL을 묻는 게 미안하고 번거로워, 자주 쓰는 패턴을 학습시킨 ‘사내 쿼리봇’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복잡한 SQL 쿼리는 어렵습니다. 예전 같으면 서점에 가서 SQL 문법책을 샀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문법을 공부하는 대신, ‘도구’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자주 쓰는 데이터 요청 패턴을 학습시켜 봇을 만들었고, 그 결과 저는 SQL을 몰라도 원하는 데이터를 3초 만에 뽑아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기술을 배워서 해결한 게 아니라, 기술을 ‘써서’ 해결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경계가 무너진 시대의 방식입니다.

 

개발자처럼 코드를 외우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건 ‘내 손으로 비효율을 끝냈다’는 경험, 그 자체니까요.

 

 

② ‘평균 밖’을 봐야 합니다.

 

PE 공고 30개에 끝까지 없던 키워드들이 있습니다.

시장 분석, 경쟁사 조사, BM.

 

데이터 취합 역시 AI가 더 빠릅니다. 이 부분도 AI를 다룰 줄 아는 엔지니어나 다른 역할에 의해 점점 대체될 수도 있습니다. AI는 ‘평균적으로’ 훌륭한 답을 주니까요. 

 

하지만 비즈니스는 평균을 벗어나는 판단에서 승부가 납니다.

  • 데이터가 말해주지 않는 유저의 미묘한 표정을 읽는 것.
  • 모두가 Yes라고 할 때, 직관을 믿고 No라고 말하는 것.
  • “왜 이 문제를 지금 풀어야 하는가”에 대한 거시적 베팅.

이 영역은 여전히, 그리고 끝까지 사람의 몫입니다.

 

 

평균을 벗어나는 사람이 될 것

 

PM과 PE의 경계는 무너졌습니다. 엔지니어는 유저를 이해해야 하고, 기획자는 코드를 다뤄야 합니다.

 

물론 출발점이 다르기에 한계는 있습니다. PM이 개발자만큼 정교하게 컨트롤할 수 없고, 개발자가 PM만큼 집요하게 유저를 파고들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한계를 인정하고 AI라는 도구로 메우며 서로의 영역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AI는 우리를 ‘평균’까지 아주 빠르게 데려다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평균을 넘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선택하는 힘. 경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결국 ‘비범한 인간성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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