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ummary
1️⃣ 고맥락과 저맥락 문화는 정보 전달 방식 및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기대에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2️⃣ 이와 같은 문화적 차이는 UI의 정보 밀도, 내비게이션 구조, 알림 표현 방식 등 실제 UX 설계에 다양하게 반영되어야 해요.
3️⃣ 대화형 UX가 중심이 되는 생성형 AI 시대에는 각 문화권의 맥락을 반영한 설계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어요.
얼마전 카카오톡에 상대방이 메시지를 입력 중인 상태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기능이 생겼죠. 주변에서도, UX 관련 미디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걸 보고 저희 inspireX 뉴스레터 오픈카톡방에서도 얘기를 나눠봤었어요. 역시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더라구요. 그런데 어떤 분께서 글로벌 메신저에서 이미 당연하게 사용되는 기능이 국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건 고맥락(high-context) 사회와 저맥락(low-context) 사회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견을 주셨어요. 관련지어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아, 그럴 수 있겠다 싶더라구요.
그래서 오늘은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의 고/저맥락 이론을 살펴보고, 이러한 문화적 맥락 차이가 실제 UX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그리고 대화형 UX가 주를 이루는 생성형 AI UX에는 어떤 고려가 필요할지 알아보려고 해요.
고맥락 vs 저맥락 커뮤니케이션이란?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T. 홀은 1950년대 후반 '침묵의 언어(The Silent Language)[1]'라는 책에서 문화 간 의사소통의 차이를 맥락의 영향력이 높고 낮음으로 설명했어요. 고맥락 문화에서는 말이나 글로 전달되는 명시적 정보보다 맥락, 즉 주변 상황 및 전후 관계가 매우 중요해요. 이러한 문화권에서는 의사소통이 암시적이고 사람들 간의 관계나 사회적 함의를 통해 이해해야 하는 경우가 많죠. 예를 들면 집단의 조화 또는 체면을 중시해서 직접적인 표현을 꺼리기도 하고, 대화할 때에 상대방의 눈치, 표정, 억양 같은 비언어적 신호까지 모두 맥락의 일부로 간주해서 세심히 살피는게 중요하기도 하구요[1].
그런데 '눈치'라는 우리나라 표현이 외국어로 번역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저맥락 문화에서는 반대로 대부분의 의미를 언어 그 자체에 직접적으로 담아 전달하려 합니다. 화자가 상대의 배경지식이나 상황을 많이 알고 있다고 가정하지 않기 때문에, 메시지는 명확하고 상세하게 설명하는 경향이 있어요[1]. 대표적으로 미국이나 독일 같은 저맥락 문화권 사람들은 “할 말은 한다”는 식으로 자기 의사를 분명히 전달하고, 커뮤니케이션에서 숨은 뜻을 읽으려고 하기보다는 말한 그대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물론 한 문화를 고맥락 또는 저맥락으로만 정의할 수는 없죠. 홀의 이론 이후 여러 문화심리학자들은 한 사회 내에도 두 가지 방식이 상황에 따라 공존하며, 개인차나 하위문화에 따라서도 다양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해왔습니다. 실제로 홀의 이론은 개념적으로는 널리 인용되지만, 경험적 증거가 부족하고 모호하다는 학계의 비판도 있어요. 2008년 발표된 메타분석 연구에서는 홀의 고/저맥락 모델이 '근거가 빈약하고 발전되지 않은 이론'이라고 평가하기도 했거든요[2].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맥락/저맥락 개념은 문화 간 소통 차이를 이해하는 유용한 틀로 여전히 자주 언급되며, UX 디자인에서도 생각해볼만한 이슈를 던져주고 있어요.
문화적 맥락 차이를 고려한 UX 디자인 사례
이런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 UX 디자인 역시 종종 찾아볼 수 있어요. 고맥락 문화권 사용자는 암시적 단서에 익숙하기 때문에, UX에서도 굳이 모든 것을 글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저맥락 문화권 사용자는 맥락보다는 명확한 정보를 선호하므로 UI 요소에 대한 명시적인 라벨과 설명을 더 요구합니다.
한 연구에서[3] 한국인 디자이너들은 메뉴 아이콘에 텍스트 레이블이 없는 디자인을, 미국인 디자이너들은 아이콘 아래에 텍스트를 함께 제공한 디자인을 더 선호했다고 해요. 이는 한국처럼 고맥락 문화에서는 아이콘만 보아도 의미를 짐작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반면, 미국처럼 저맥락 문화에서는 아이콘의 의미를 글자로 명확히 적어주어야 한다고 보는 차이에서 비롯됩니다[3].
정보 구성과 내비게이션 방식에도 문화적 차이가 반영됩니다. 고맥락 문화권에서는 한 화면에 정보를 풍부하고 다층적으로 제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동아시아권의 웹사이트를 보면 첫 페이지에 화려한 이미지와 애니메이션이 많이 사용되고, 메뉴와 사이드바도 여러 층으로 복잡하게 구성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사용자들이 페이지를 일일이 순서대로 읽기보다 전체를 훑으며 필요한 맥락을 찾아내는 비선형적 탐색에 능숙하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죠[4]. 하지만 저맥락 문화권은 정보 밀도를 낮추고 핵심 내용만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데 초점을 둡니다. 여백을 살린 미니멀한 레이아웃, 단계별 진행을 강조한 내비게이션 등이 저맥락식 디자인의 특징으로, 사용자가 추가 추측이나 맥락 해석 없이도 이해할 수 있게 설계하는 거에요.
맥락 차이는 알림과 메시지 전달 방식에서도 드러납니다. 처음에 얘기했던 카카오톡 ‘입력 중’ 표시 사례로 돌아가 보면, 저맥락 문화권에서는 상대가 현재 답장을 쓰고 있다는 명확한 피드백을 반기는 경향이 있지만 한국처럼 고맥락 성향이 강한 곳에서는 이 기능을 굳이 자신의 행동을 드러내야 함에 대한 부담으로 느낀다는 반응이 많았어요[5]. 이는 맥락이 중시되는 문화에서는 실시간 상태 노출 같은 직설적 기능이 오히려 대화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죠. 마찬가지로 오류 발생 시 안내 메시지의 경우에도, 저맥락권에서는 '잘못된 비밀번호입니다'와 같이 문제를 직접 지적하는 반면, 고맥락권에서는 '비밀번호를 다시 한번 확인해주세요' 등과 같이 살짝 돌려서 표현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렇듯 문화권에 따라 UX 문구의 어조, 정보량, 맥락 제공 방식에 차이가 생기기에, 글로벌 서비스를 설계할 때는 단순 번역을 넘어 이러한 미묘한 감각까지 고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성형 AI와 대화형 UX에서의 맥락 문화
그렇다면 사람과 AI가 대화하는 요즘의 생성형 AI UX는 어떨까요?
대화형 AI의 언어 스타일이나 상호작용 방식이 특정 문화의 소통 규범에 편향되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요. 최근 연구[6]에 따르면, 대형 언어모델(LLM)이 생성하는 응답에는 영어권 서구 문화의 가치관과 의사소통 스타일이 두드러지게 반영되어 있다고 해요. 주요 공개 모델들을 분석해보니, AI의 언어에서 영미권(개신교 문화권)의 직설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강하게 드러나며, 비서구권의 문화적 기대와는 거리감이 있는 경우가 있었다는거죠[6]. 이런 편향이 지속되면 전 세계 사용자가 AI와 소통할 때 일방적으로 저맥락 문화 양식에 맞춰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프롬프트에 사용자의 문화적 배경을 암시하는 '문화 프롬프트'를 주거나, 지역별 미세조정을 통해 AI가 맥락 수준을 조절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어요.
또한 사용자가 AI와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정도에서도 문화차가 있었어요. 2025년의 한 다문화 심리 연구[8]에 따르면 동아시아인들은 서구 사용자 대비 챗봇과 사회적 유대감을 느끼는 상황에 덜 어색해했고, 대화를 즐길 거라는 기대도 더 높았어요. 다른 사람이 챗봇과 감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을 지켜볼 때에도 거부감이 적었는데, 이 모든 문화차는 동아시아권 이용자들이 기술을 더욱 의인화하는 경향으로 설명되었습니다[8]. AI를 사람처럼 대하는 것이 비교적 자연스럽기 때문에 AI와의 친밀한 대화형 상호작용에도 거부감이 덜하다는 것이죠. 이와 대조적으로 저맥락 문화의 사용자들은 AI를 사람처럼 생각하기 보다는, 기능적인 조력자로 선을 긋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러한 연구들은 생성형 AI의 대화형 UX를 설계할 때 문화적 맥락 차이를 반드시 고려해야 함을 알려주죠. 고맥락 문화권에는 AI가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세부적인 설명을 늘어놓기보다는, 간략한 힌트나 맥락에 어울리는 묵시적 피드백을 주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어요. 반대로 저맥락 문화권에서 AI가 너무 돌려 말하거나 암시적으로 대응하면 답답해 할 수 있죠. 결국 문화적으로도 적절한 사용자 경험을 구현하려면, 생성형 AI의 응답 어조, 대화 흐름, 유머 코드까지 현지 문화의 맥락에 맞게끔 미세하게 조율하는 것이 점차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카카오톡의 작은 인터랙션 디자인 하나도 문화적 맥락이라는 관점을 통해 보면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이렇게 고맥락/저맥락의 문화 차이는 UX 세부 요소에서부터 AI와 인간의 교감 방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의 많은 디자이너들이 글로벌 사용자를 위한 제품을 디자인하고 있는데요, 저 역시 그동안 정말 문화적 이해를 바탕으로 디자인해왔는지 다시 한 번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많은 UX 문구들이 번역 및 검수되는 과정에서 정말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반영해왔을까요? 점차 대화형 UX가 일반화됨에 따라 이런 섬세한 디자인들이 더 빛을 발하는 시대가 될 것 같아요.
재밌는 의견으로 오늘의 뉴스레터를 만들 수 있게 도움 주신 inspireX 오픈카톡방 ‘눈물바다에 빠진 라이언’님과 ‘S’님께 감사드리며, 함께 대화 나누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로 오픈카톡방 참여해주세요!
[inspire X 오픈카톡방]
https://open.kakao.com/o/gBHmseah
Reference
[1] Hall, E. T. (1973). The silent language. Anchor.
[2] Cardon, P. W. (2008). A critique of Hall’s contexting model: A meta-analysis of literature on intercultural business and technical communication. Journal of Business and Technical Communication, 22(4), 399-428.
[3] https://medium.com/@gracesnoh/culture-interface-design-senior-thesis-part-3-affe4ea2d580
[4] Würtz, E. (2005). A cross-cultural analysis of websites from high-context and low-context cultures. Journal of 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11(1), Article 13.
[6] Tao, Y., Viberg, O., Baker, R. S., & Kizilcec, R. F. (2024). Cultural bias and cultural alignment of large language models. PNAS Nexus, 3(9), 346.
[7] https://hai.stanford.edu/news/how-culture-shapes-what-people-want-ai
[8] Folk, D. P., Wu, C., & Heine, S. J. (2025). Cultural variation in attitudes toward social chatbots. Journal of Cross-Cultural Psychology, 56(1), 4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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