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 소개]
마음터치우주: NFT 예술가. 순수회화와 미디어 아트를 병행하는 그림 작가. 카이스트 수학 석사 출신의 수학자로 대기업 직장인을 거쳤다. 2018년 겨울 느닷없이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그림을 디지털로 그리기 시작했다. 운명처럼 그림을 만나고부터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NFT*아트로 발행한 ‘반 고흐 오마주 시리즈’는 오픈 1시간 만에 완판 신화를 이루기도 했고 제주 월정 에비뉴 레지던시에 초청되어 개인전도 열었다. 현재는 다양한 예술 세계를 넘나들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 ‘꿈꾸는 자작나무’와 컬래버 브랜드인 ‘우주 드림(UjooDream)’ 프로젝트와 NFT 아트와 드로잉 강의도 진행 중이다.
[플롤로그]
신들은 시시포스가 무거운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면 다시 굴러떨어지도록 해서 그 과정을 영원히 반복하는 벌을 내렸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으며, 나도 시시포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형벌 같은 하루가 아닌 선물 같은 하루를 매일 새롭게 맞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해진 날에 정확히 꽂히는 월급에 안도하며,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하며 버텨냈다. 그동안 어릴 적 반짝이던 내 안의 작은 창작자는 숨어버렸다. 이제라도 가슴 뛰는 일을 시작해 보고 싶지만, 출퇴근만으로도 에너지가 바닥까지 고갈되었다.
뭔가 시작하기엔 이미 너무 늙고 지쳐 버린 것 같았다.
우연히 ‘나만의 케렌시아’라는 NFT* 그림을 만났다. 그림 속 여인들은 자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당신을 사랑하세요. 당신은 사랑스럽습니다’라고 보듬어 주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음터치 우주’라는 아티스트명을 가진 화가의 그림이었다. 그녀의 반전 이력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았다. 카이스트 수학 석사를 졸업한 수학자로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퇴사를 하고, 현재는 NFT*아트와 순수 회화 작업을 병행하는 전업 그림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명문대 석사 출신 수학자가 어느 날 갑자기 예술가가 된 이야기는 참으로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학창 시절 인생의 첫 좌절감을 맛보게 했던 수학과 선택 받은 금손들의 불가침 성역인 미술은 우뇌와 좌뇌처럼 완전히 다른 세계이지 않은가. 게다가 오랜시간 수학에 쏟은 눈물과 피땀을 순순히 내려놓고, 늦깎이 왕초보로,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 무모한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 도전을 믿을 수 없어 마음터치 우주 작가를 꼭 만나고 싶었다.
*NFT : 대체 불가능한 토큰(Non-Fungible Token).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여 디지털 자산에 고유한 인식 값을 부여해 교환과 복제가 불가능
- 아티스트명인 ‘마음터치 우주’는 어떤 의미인가요?
SNS 기반으로 활동하니 나만 검색되는 이름이 필요하더라고요. Personal Branding에 관한 책을 읽으며 나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뭐가 되면 좋을까 고민해봤어요.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단어인 ‘우주’와 그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작가명을 ‘마음터치 우주’로 했어요.
- 수학자로 살다가, 처음 그림을 그리게 된 그 지점이 궁금해요. 그 마법 같은 순간은 어떻게 찾아왔나요?
6개월 정도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시절 있었어요. 인생이 빛을 잃은 것 같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시절이었죠. 사람이 싫어서 파도 소리, 빗소리만 들었어요. 어느 날 책을 읽다가 좋은 문구를 발견해서 캘리그래프로 써 두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어요. 남편이 안 쓰는 방전된 태블릿을 켜고, 문장 두 개를 썼는데, 문장에 어울리는 그림이 딱 떠올라 홀린 듯 그림을 그렸어요. 캘리그래피는 두 문장으로 끝났고, 그날로 아이패드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림을 그리는 게 정말 자유로웠어요. 너무 좋아서 미친 듯이 매일 그림만 그렸어요. 처음에는 그림으로 뭔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목표 같은 건 애초에 없었죠.
- 작가님의 SNS를 보니 ‘핵인싸’ 이신데, 사람이 싫어서 파도 소리, 빗소리만 들었던 때가 있었다는 게 상상되지 않네요.
인스타 팔로우 0명_일 때, 내 그림을 봐주는 사람이 1명이라도 있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디지털 세상에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내 그림을 좋아해 주고 ‘작가님’으로 불러 주는 팬이 하나둘 생기더라고요. SNS를 통해 재밌게 꾸준히 그릴 수 있는 에너지를 받았어요. 작가 놀이를 한 거였죠._(웃음)
기록이 쌓이자 SNS를 포트폴리오 삼아, 예술계 사람들과 연결되려고 일부러 노력했어요. 그분들 피드에 ‘좋아요’도 누르고 댓글도 달면서 한 명 한 명 연결됐어요. 이런 그림을 그리는 나라는 존재를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죠. 차츰 SNS를 통해 굿즈 제작, 전시, 컬래버 제안 같은 기회가 오기 시작했어요. 뜻밖의 많은 분이 아무 대가 없이 응원해 주시고, 저를 소개해 주셨어요. 골방에서 혼자 그렸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디지털로 연결되어 기회를 얻었던 거죠.
- 첫 그림이 궁금해요. 어느 날 갑자기 처음 혼자 그렸던 그림은 어떤 그림이었나요?
진짜 말도 안 되는 것부터 그렸어요. 그때가 2018년 12월인데 제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눈 오는 겨울, 케이크, 트리, 사슴, 키우고 싶던 고양이도 그렸어요. 그런데 고양이 눈을 못 그리겠는 거예요. 눈을 못 그려서 고양이 그리기를 포기한 게 아니라 고양이 뒷모습을 색감과 실루엣으로 표현했어요.
“못하면 못하는 대로, 그 시기에 제가 그릴 수 있는 걸 멈추지 않고 그렸어요.”
색에 대한 이론이 없어 내 눈에 제일 예쁜 색을 칠했는데, 디지털이라 색감 테스트가 쉬웠어요. 디지털이니 수정도 쉽고, 물감값 걱정 없이 마음껏 그릴 수 있었죠.
- 지금은 그림 스타일이 많이 변한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제가 좋아하는 귀여운 거 그리다가, 점점 그림으로 대리 만족하기 시작했어요. 친구가 출장 갈 때 고양이를 자주 맡겼거든요. 현실에서는 나를 피하기만 하는 고양이가, 그림 속에서는 나에게 다가와 줬으면 했어요. 고양이가 목도리나 모자, 외투가 되어 따뜻하게 나를 감싸주는 그림, 내가 요가 할 때 곁에 있어 주는 그림을 그렸죠. 이후 나를 닮은 ‘호복이’라는 캐릭터도 만들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호복이 마음껏 하는 모습을 그리며 제가 행복했어요.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일을 그림 속에서 마음껏 해 본 거죠.
그러다 오늘 내가 만난 것들이 내 깊숙한 곳에 있던 오래전 나를 호출하여 그림으로 나오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친구가 다 꼴도 보기 싫고 다 하기 싫다며 힘든 이야기를 했어요. 집에 와서 고양이가 좋아하는 생선을 싫어하는 그림을 그렸어요. 아무리 좋아해도 다 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저에게서 수학이 가고 어느 날 갑자기 그림이 찾아왔던 것처럼_요. 그날 이후로는 메시지를 담은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 비전공자이자 왕초보로 그림 그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미술계의 주류인 물감 작업 쪽은 미대를 졸업해야 하고 스승도 있어야 하고 갤러리 문턱도 높아요. ‘듣보잡’_인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여 막막했어요. 화가로 정규 코스를 밟은 것도 아니고 타이틀도 없으니까 무시하고 면전에 면박을 주는 사람, 이용하고 사기를 치려는 사람도 있어 힘들 때도 있었어요.
그러다 그림 시작하고 4년 만에 고대하던 첫 개인전 기회가 왔는데, 스스로 작가명이 촌스럽고 너무 튀는 게 아닐까 갑자기 두려워졌어요. 다른 작가들처럼 관행 따라 본명으로 들어갔는데 너무 후회되었어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마음_터치 우주이고, 배우지 않은 그림체가 내 그림체다’ 마음먹었어요.
청개구리같이 살기로 했어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니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_(웃음)
- 그림은 취미로도 할 수 있지 않나요?
제가 ‘프로 시작러’라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많은 시도를 해 봤어요. 카페 운영, 학원 강사, 수학 과외, 직장인, 펜션 운영, 레진 아트, 수제 액세서리 판매 등. 이것저것 경험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그림을 만났을 때는 달랐어요. 무조건 이거구나! 느낌이 팍 왔어요. 지금은 그림 말고는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어요. 그림을 평생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팬덤이 중요해요. 내성적인 성격 탓에 많은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이 싫고 두려웠는데, 그림에 관한 일이라면 다 괜찮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 처음에는 취미처럼 시작해서, 전업으로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은 어떻게 하게 되었죠?
돈이 안 되더라도 평생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림이 처음이었어요. 많은 사람에게 내 그림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내 그림을 좋아하는 분이 있다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쁨이었어요. 그러다 팬이 조금씩 많아지니 판매가 되고, 연결되고, 작업실도 생기고, 어느새 꿈꾸던 전업 작가의 길이 다가와 있었어요.
- 타고난 재능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어릴 땐 무엇을 좋아했는지?
몬테소리 유치원 때부터 숫자만 좋아했어요. 매일 숫자 카드를 가지고 놀았어요. 수학이 좋아서 수학과를 갔고 석사까지 마쳤어요. 딱딱 떨어지는 정답이 있는 게 좋았어요. 정확하고 빈틈없는 논리가 명쾌하잖아요. 저는 다른 공부 하다가 집중이 안 되면 수학을 했어요. 권위나 영향력 상관없이, 누가 풀어도 논리 앞에 평등한 것 그게 수학의 매력이죠.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은 수학과는 반대로 정답이 없는 자유로움에 끌렸어요.
- 수학이 그림 그리는 데 도움 된 것이 있나요?
처음에는 도움 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았는데 생각해 보니 딱 하나 있더군요. 문제 풀려면 오래 앉아 있어야 하잖아요. 그림도 꾸준히 그리려면 ‘엉덩이의 힘’이 필요해요. 문제가 안 풀릴 때도 계속했던 성실함과 꾸준함이 그림 그릴 때도 도움이 되었어요. 그림을 시작하며, 수학책을 다 정리했는데 마지막까지 버릴 수 없었던 책이 있었어요. 한때 저의 전부였던 수학을 대표하여 ‘수학의 정석’ 양장본이 여전히 제 책장에 꽂혀 있죠.
- 그림을 그리면서 몰랐던 나를 발견했다든가, 나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된 점이 있었다면.
오랫동안 나에 대해 생각을 많이 안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생각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무렵부터 하게 되었어요. 내가 감정이 풍부하고 다른 존재에 깊은 공감이 잘되는 사람이라는 걸 수학 공부할 때는 몰랐는데 그림 작업을 통해 알게 되었죠.
- 명문대 졸업, 대기업 취업 성공한 인생으로 보이는데, 내려놓기 두렵지 않았나요?
두려움의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 때문일 거예요. 희한하게 그림을 그릴 때는 돈은 못 버는데도, 많이 버는 것 같은 충만한 기쁨이 있었어요. 내가 내 시간의 주인으로 살고 있으니 매 순간이 너무 행복했어요.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가슴으로 와닿더라고요. 아무래도 현실적으로는 남편의 든든한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겠죠.
- 많은 직장인이 남의 잣대에 맞추려고 열심히 살면서, 정작 내가 서서히 시들어 가는 걸 자꾸 모른 척하거든요. 작가님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잘 파악하셨던 것 같아요.
회사에 나가서 3일 만에 ‘여기는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회사 체질이 아니구나. 점심시간에 회사 비상계단에 가만히 혼자 앉아 있다 오곤 했어요. 수학 학원, 카페, 펜션을 운영했을 때도 일 자체가 나쁘진 않았는데 얽매이는 게 싫었어요. 과외는 내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데도 답답했어요. 아이들을 좋아하고 일도 재밌었는데 길게 여행도 못 가고 방학이면 더 바빠지니 그것도 힘들었어요. 어느 날 남편에게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다 싫어”라고 하소연했는데, “그럼 작가해”라고 불쑥 얘기한 거예요. 그때는 놀린다고 생각하고 버럭 했죠. 그런데 진짜 몇 년 뒤 제가 작가가 된 거예요._(웃음)
- 그림작가가 되었을 때 가족이나 주변에서의 반응은?
남편은 제가 너무 행복해하니까 마냥 좋아하고. 친구들은 지금도 엄청나게 신기해 해요. “너 진짜 안 배웠어?”, “안 배우고 그게 가능해? 그림은 배워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했었죠.
- 배우면 더 잘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여전히 배우러 갈 생각은 없으세요?
원근법이나 색채에 대한 기초가 너무 없으니 미술로 성공하려면 학원에 가서 배워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어요. 새로운 거 하려면 ‘돈 내고 배워야 한다’라고 쉽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미술 학원이 입시 미술을 하고 있었고 선 긋기부터 할 거라 지루할 것 같았어요.
지금은 안 배운 게 진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미대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형화된 입시 미술을 오래 해서 나만의 개성을 찾는 게 힘들었다더군요. 저는 애초에 물든 게 없으니, 나만의 그림체를 찾아야 하는 의식조차 필요 없었죠. 배우는 곳에 가서 선생님의 조언대로 하면, 그건 그분의 프레임에 내 그림을 가두는 것 같았어요.
- 미대를 안 가도 화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미대를 안 가도 되는 것 같아요. 오히려 미대를 가면 그림 그리는 사람만 만나게 되는데, 미대 안 가면 다양한 사람들 만나게 되죠. 그리는 기술보다 사람을 알고, 세상 아는 게 더 중요한 거 같아요.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머리와 마음으로 그리는 거로 생각해요. ‘똥손’? 그것도 나만의 그림체가 되는 거예요.
- 신인 작가로 폐쇄적이고 소수 특정 집단에게만 열려 있는 주류 미술계에 후발 주자로 진입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가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그들이 정한 규칙을 따라야 하는데, 그림에는 그들의 세계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제 그림으로 제 수준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고, 취향은 다양하니까요.
“내가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들을 나의 세계로 초대하고 싶어요.”
- 그래서 새롭게 열린 NFT 아트의 길로 가셨군요. 주변 노이즈에 흔들리지 않고 본인의 길을 거침없이 걷는 모습이 참 대단하세요.
제가 좋아하는 거 계속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내가 즐거우면 돼요. 남의 눈에 보기 좋은 내가 아닌, 나의 진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죠. 사람_들은 자기 일로 분주해서 생각보다 남의 일에 관심이 없어요. ‘안 팔리면 어쩌지? 실패하면 어쩌지?’ 결과를 두려워 말고, 어차피 남들은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니, 내가 하고 싶은 거 꾸준히 하고 있으면 그걸 성공으로 봐주더군요. 내가 즐겁게 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이 오더군요. 작았던 눈덩이가 커지고 커져 나의 우주가 넓어지고.
- 그림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나요?
나에게 영감을 많이 받아요. 오늘의 내가 만난 사람, 내가 겪은 일과 예전의 나와 충돌하면서 영감이 탄생하죠. 그 밖에 책과 텍스트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아요.
- 일을 시작할 때 원칙이랄까.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이 있다면요?
저에게 중요한 가치는 자유예요.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진정성 있게 평생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적은 없었나요?
절대 없어요.
- 인터뷰하면서 마음터치 우주 작가의 키워드는 자유가 아닐까 하는데요. 그렇게 자유를 강조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그림 그리면서 자유가 되게 좋은 거구나. 회사 안 가고 내가 원하는 시공간에서 마음껏 그릴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서 자유에 집착하게 된 것 같아요. 독자들이 내 그림을 해석할 때 하는 오해조차도 재밌어요.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해석하는 것이니 다 다를 수 있고 잘못된 게 하나도 없죠. 오해해도 그 자체로 괜찮구나. 거기서 또 영감 얻어서 시리즈로 가기도 하고.
-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도 안 하고, 최대한 의식이 덜 깬 채로 10분 거리인 작업실로 가요. 향긋한 커피를 내리고, 느릿느릿 글을 쓰거나 그림 그려요. 완전히 깨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창작 에너지가 나올 수 있거든요. 몽롱함을 충분히 즐기고 최대한 늦게 깨었으면 해요. 전화도 오고, 밖에 시끄러워지고 외부 자극이 시작되면 문서 작업 같은 생활 일을 주로 하죠.
- 작업실을 멋스럽게 꾸며 놓으셨더라고요. 작업실을 찾거나 꾸밀 때 영감 준 것이 있다면요.
눈이 내리면 눈이 땅에 쌓이는 거 보고 싶고, 비가 오면 빗소리 듣고 싶었어요. 아파트처럼 공중에 떠 있는 건 싫고 지상에 있으면 좋겠다 해서, 수원 구 도심 오래된 주택가에 작업실을 마련했어요. 거기를 제 취향으로 잔뜩 꾸몄죠. 2년 되었어요. 작업실을 저만의 탈출구이자 안식처라 생각해요.
- 나만의 케렌시아라는 작품도 그런 의미에서 탄생한 거군요.
네. 케렌시아가 스페인어로 안식처라는 뜻이에요. 투우장에서 소가 격렬하게 싸우다_가도, 들어가 충분히 휴식 취하는 공간을 케렌시아라고 한_대요. 저는 혼자 보내는 시공간의 힘을 믿어요. 나만의 안식처는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책, 산책, 운동이 될 수도 있어요. 모든 사람이 시공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각자의 케렌시아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나를 진정으로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었으면 하고 그린 그림이에요.
- 수원에서 좋아하게 된 장소가 있나요?
수원 화성 성곽길과 주변 행궁동을 특히 좋아해요. 옛 정취가 묻어 있으면서도 너무 상업적이지도 않고, 너무 한적해 심심하지도 않고, 특색도 있고, 이야깃거리가 많아서 인사동과 비교 안 되게 훨씬 좋은 것 같아요.
- 특별히 사랑하는 작품이 있다면요?
전부 다요. 아무리 제가 경력도 짧고 말도 안 되는 작가여도, 제 그림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해요. 디지털 작품은 물감으로 그린 그림에 비해 가치를 덜 인정받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디지털 그림으로 시작했지만 물감 그림 작업도 병행하게 되었어요. 제가 그린 작품이 어느 분의 공간에 영원할 것이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영원을 향해 다가가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품이 하나씩 팔릴 때마다 더욱 감격스러워요.
- 작품에 대한 애정으로 자연스럽게 NFT 아트로 세계가 확장되었군요.
평생 그리고 싶고 창작물의 가치를 존중받고 싶은데, 디지털은 너무 쉽게 캡처되어 도용될 수 있잖아요. 그러던 중에 NFT 시장이 생긴 거예요. 걱정했던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기술이 반가워서 시작했죠.
- NFT 아트가 기술적으로 기존 예술가들에게는 높은 허들일 수 있지만, 작가님께는 오히려 기회가 되었네요.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데요.
최근 월드 뮤직 페스티벌 메인 포스터 작업을 하기도 하고, 우주 드림 굿즈 제작을 위한 펀딩도 추진 중이고, NFT 예술가를 꿈꾸는 분들을 위한 강의도 준비하고 있어요.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데 지치지 않고 행복하기만 하네요. 앞으로 나와 다른 영역의 아트, 예를 들어 영화나 음악, 무대 공연 하시는 분들과 컬래버 작업을 많이 해 보고 싶어요.
- 꿈꾸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처음부터 목표를 너무 구체적으로 높게 세웠다면 벽이 높아서 오래 못 했을 거예요. 목표나 배움에 너무 집착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쉬운 것부터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디지털 세상에 기록하고 연대하라’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저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게 두려워서 혼자 그렸다면, 디지털로 연결되지 않았다면 금방 지쳤을 것 같아요. SNS를 통해 응원도 받고, 비즈니스로 연결되기도 하며 좋아하는 일을 더 재밌게 오래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어요.
[에필로그]
마음터치 우주 작가는 그림을 그리면 행복해지는 이유를 ‘나를 더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음에 ‘자기愛’의 중력을 가진 것처럼, 타인의 노이즈에 흔들림이 없이 뚜벅뚜벅 제 길을 걸어갔다. 좋아하는 일에 조건 없이 흠뻑 빠져 오래 머물렀다. 그렇게 빅뱅. 그녀의 찬란한 보랏빛 우주가 탄생했고 사람들이 그녀의 서사에 매료되어, 그녀의 우주로 빨려 들어왔다. “그들을 작가님의 세계로 초대하세요.” 난생 처음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러 주시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작가님이라는 단어가 마음 한켠에 각인되며, 먼 훗날 진짜 작가가 되어 이날을 추억할 수 있기를. 기분 좋은 상상이 스쳤다.
사람들은 각자 나만의 우주를 가졌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타인의 우주에서 후발 주자로 무한 경쟁에 뛰어들어 곧 소진되고 만다. 타인이 정한 잣대에 못 미쳐 부족함을 느끼고 학원이나 선생님을 찾아다닌다. 나도 그랬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 애쓰고 또 애쓰면서도 뒤처질까 불안했다. 나를 잊은 채 ‘남’바라기로 살아왔던 것 같다.
인터뷰를 정리하며 ‘모든 것이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걸 인제 그만 멈추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일단 시작해보자’ 마음먹었다. 퇴근 후, 아이들을 재우고 홀로 책상에 앉았다. 노트북을 켜고 소소한 순간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따로 시간을 낼 수 없을 때는,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그날의 내 마음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곧 사라져 버릴 찰나의 마음을 붙잡아 언어의 그릇 속에 담아 수집해 두는 일이다. 글쓰기를 시작한 뒤 시든 배춧잎 같던 내 삶이 싱그럽고 촉촉해졌다. 통편집되곤 했던 삶의 디테일이 살아나 더욱 선명해지고 깊고 풍성해졌다.
나는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제야 내 안 깊숙이 웅크리고 있던 작은 창작자가 걸어 나와 나를 꼭 안아주는 것 같다.
인터뷰어: 생활기록자_우연
저서:
《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인터뷰로 묻고 글쓰기로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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