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뚫고 내려간 사람에게만 보이는 세계

치유 글쓰기, 그림책 테라피 강사 '조민영'

2023.04.27 | 조회 1.89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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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인터뷰해 드립니다

나다운 길을 걸어가는 당신을 인터뷰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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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소개]

조민영 : 치유 글쓰기 및 그림책 테라피 강사. 전직 뮤지컬 대본 작가 겸 작사가로 2005년 창작 뮤지컬 <겨울 나그네>로 입봉한 후 다양한 작품을 썼으며 여러 대학에서 뮤지컬 이론과 역사를 가르쳤다. 서른여덟에 심각한 번아웃 증상을 겪으며 일상이 무너진 후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번아웃을 극복한 이후엔 그동안 자신의 수업을 들었던 제자들을 대상으로 1:1 마음 보충 수업을 실시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심리 에세이 마음이 하찮니를 출간했다. 현재 한양대학교에서 '그림책 테라피를 강의하고 있으며 상담 대학원에서 문학 상담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다.

 

- 인스타그램에서 나는 울면서 공부 중이다라는 글을 봤어요. 어떤 상황인가요?

말 그대로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울면서 하고 있어요. 박사 과정 3학차인데, 중간고사를 앞두고 과제 폭탄을 맞는 바람에 허덕거리면서 한 개씩 겨우 해내는 중이에요. 내가 좋아서 선택한 공부지만 힘든 건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러나후회하다가도 아니야, 그래도 하길 잘 했어를 무한 반복하고 있지요.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스스로 많은 것을 책임지고 감수하고, 매 순간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결코 힘들지 않은 건 아니거든요.

 

- 박사 과정 공부하면서, 대학에서 학생들도 가르치시죠? 일반인 대상으로 수업도 꾸준히 하시고요.

한양대에서 교양 과목으로 그림책 테라피강의를 하고 있어요. 그림책에 자신의 마음을 비춰보는 수업인데 학생들한테 인기가 많아요. 저는 이 수업이 학생들에게 한 줄기 숨구멍 같은 수업이 되길 바라거든요. 지식을 가르치는 수업이 아닌, 스스로 자신을 찾아가는 기회를 제공하는 수업이 되게 하려고 노력하죠.

일반인 대상으로는 소규모 치유 글쓰기 수업이나 집단 상담 형식의 그림책 테라피 수업을 하는데요. 이 수업의 묘미는 예측 불가라는 점이에요. 매번 수업 준비는 열심히 해 가지만, 참여한 사람들의 상태, 관계성, 그리고 각자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느냐에 따라 수업이 천차만별로 달라져서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매번 그 고유한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것뿐이죠. 수업의 목표를 정해 놓고 참여자들을 그쪽으로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틀 안에서 그들이 마음껏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하는 편입니다.

특히 치유 글쓰기 수업에서는, 참여자들이 직접 쓴 글을 보면서 자기 자신이 어떤 힘을 가진 사람인지 알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데요, 거기서 제가 가진 역량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때가 제일 즐거워요.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에서 만족감과 충만함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저와 인연 맺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본연의 빛을 찾을 수 있도록, 곁에서 도우며 함께 걷는 사람입니다.라는 SNS 자기소개와도 연결이 되네요.

저랑 같이 있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래서 자신의 본연의 모습에 더 가까워지게 만들 수 있는, 밝고 따뜻한 빛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스스로 마음의 두꺼운 옷을 벗게 만드는 태양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요?

 

-자신이 생각하는 장점 세 가지가 있다면?

첫 번째, 웃긴다. 제 수업이 재미있다고 하는데 강사가 웃기면 수강생들의 마음을 여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는 장점이 있죠.

두 번째, 태도의 전환이 빠르다. 기본적으로 고집은 센 편이지만, 상황이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면 바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세 번째, 긍정 마인드.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눈이 있는 것 같아요. 또 사람들의 장점도 잘 캐치하는데 흠보다는 어떻게든 좋은 점을 찾아내려고 해요. 생각보다 자기 장점에 대해 인정을 안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사람들을 한 발이라도, 아니, 1도라도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틀어 주는 것이 저의 역할 같아요.

 

-과거에 대학에서 뮤지컬 이론을 가르치고 뮤지컬 작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다 심한 번아웃을 겪었다고요.

저는 뮤지컬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었어요. 어떻게든 그 분야에 들어가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해서 문예 창작을 전공했고, 대본 작가가 된 후에도 더 잘하고 싶어서 연극학과에서 박사 공부까지 했었죠. 내가 제일 사랑하는 뮤지컬로 성공하고 인정받기 위해 10년간 정말 끊임없이 애쓰고 치열하게 노력했어요. 하지만 막상 겪어 보니 사실은 뮤지컬계가 나와 잘 맞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하지만 내 선택을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죽어도 여기서 끝장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어요. 몸과 마음이 심각하게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죠.

제가 뮤지컬 작가 생활을 하면서 근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제 기본 성향과 뮤지컬 대본의 차이 때문이었어요. 뮤지컬 대본은 무엇보다도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갈등과 욕망이 첨예하게 드러나야 하는데, 저는 본래부터 갈등을 싫어하는 성향이다 보니, 항상 대본의 절정 부분에서 저도 모르게 빨리 갈등을 봉합해 버리려고 하더라고요. 특히 상업 뮤지컬에서는 절대 그러면 안 되고, 오히려 갈등이 대폭발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자꾸만 해피엔딩으로 급마무리를 하려고 하니, 스태프들에게 작가님은 차라리 상업 뮤지컬 말고 교육극이나 아동극을 쓰시는 게 좋겠다는 충고도 많이 들었죠. 한 마디로 상업 뮤지컬 대본은 내 기질과 안 맞는 글쓰기였던 거예요. 그것도 모르고 그 당시에는 나한테 글 쓰는 재능은 분명히 있는데, 이게 왜 이렇게 안 될까 고통스러워하면서 어떻게든 노력해서 더 잘 쓰기 위해 몸부림을 쳤었어요. 자신에게 안 맞는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를 그때 확실히 깨달았던 것 같아요. 내게 맞지 않는 길을 계속해서 억지로 가려 할 때, 그 결과는 번아웃이라는 것도요.

 

-번아웃을 겪은 후 인생의 전부였던 뮤지컬을 내려놓고 새로운 분야로 도전하셨는데 그 과정이 궁금해요.

번아웃이 오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몸과 마음의 회복을 위해 본의 아니게 몇 년간 쉬면서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하는 고민이 생겼죠.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분야에서 실패를 하고 난 터라 더 막막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으니 일단 뭐라도 새로 배워야겠는데, 그동안 벌어 놓은 돈은 이미 각종 치료비로 다 쓴 상태이다 보니 무료로 들을 수 있는 걸 찾아야 했어요.

그러다가 서울시민대학의 대학 연계 프로그램에서 시인 이문재 선생님의 <나를 위한 글쓰기> 프로그램을 만나게 되었죠. 10주간의 과정 중 잊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쓰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걸 쓰면서 패배감에 절어 있던 제가 다시 살아나는 경험을 했어요. 특히 그중에서도 내 생애 가장 좋았던 순간에 대한 글을 쓰면서 ! 나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 나한테도 이런 힘이 있었지!’ 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어요. 그러자 자존감이 밑바닥부터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하더라.

이것이 제가 치유 글쓰기 강사 일을 시작한 이유예요.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 좌절을 딛고 일어선 경험을 했기 때문이죠. 치유 글쓰기 수업의 최대 장점은 자기가 쓴 글 속에서 스스로에 대한 무수히 많은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다는 거예요.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되는 거죠. 참가자들이 삶의 모든 순간에 담겨 있는 숨겨진 가치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저는 옆에서 살짝 거들 뿐이죠.

 

-번아웃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아요. 번아웃 전후, 가장 달라진 점은?

번아웃 후 가장 큰 변화는 전보다 화가 덜 난다는 건데요. 예전에는절대 ~하면 안 된다는 스스로 가지고 있는 틀이 너무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해요.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 달라진 거죠.

두 번째로는 원치 않는 상황에서 거절하거나 단호하게 의사 전달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죠. 과거에는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게 무서워서 싫어도 그냥 대부분 참고 넘어갔다면, 이제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게 되었어요. 내 의사를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니까, 나를 더 잘 보호할 수 있게 되었죠. 전에는 거절을 통해 나를 제대로 지킬 수 없었기 때문에 나를 이 지경으로 몰아붙인 사람들을 다 원망하고 미워하곤 했어요. 하지만 이젠 남을 탓할 필요 없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게 너무 자유롭고 좋아요.

 

-문예 창작-연극학-상담 심리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꾸준히 공부하고 있는데 지적 호기심이 많은 스타일인 것 같아요. 끊임없이 공부하는 이유는?

부족함을 절실히 느낄 때 공부 욕구가 생겨요. 스스로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결핍감과 더 잘하고 싶은 성취 욕구가 너무 큰 것 같아요. 그것을 채우려고 계속 공부를 하는 거죠. 지금 와서 생각하니 어떤 면에서는 공부가 정말로 제일 쉽기도 해요. 커리큘럼에 맞춰 착착 수업이 제공되고, 세팅 된 환경에 나를 넣고 시키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거든요. 물론 그 과정에서 별로 하기 싫은 공부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사실은 그때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대학원 공통 필수 과목 중에 고급 심리 검사의 이해라는 수업이 있어요. 사실 심리 검사 쪽은 제 관심사도 아니고, 숫자를 보고 분석하는 건 잘 하지도 못해서 큰 난항이 예상되었지만 그래도 내가 아주 아둔한 편은 아니니까 어떻게든 따라갈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수강 신청을 했죠. 그런데 세 번째 수업 때 멘탈이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어요. 마치 라틴어 수업을 듣는 것 같았죠. 진짜 수업 내용의 1% 밖에 이해를 못 하겠는 거예요. 그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수업 끝나자마자 교수님을 따라 나가서 제발 수강 철회를 허락해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근데 교수님께서는 지금 너만 모르고, 힘들어하는 게 아니고 다들 똑같으니까 그냥 들으라고 하시며 절대 안 받아 주시는 거예요. 잘못하면 한 학기 내내 엄청나게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수님 팔을 붙들고 거의 울면서 매달렸죠. 그러자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잘 모르니까 꼴찌 하겠다는 각오로 들어. 과락하면 재수강하고, 또 여차하면 재시험 보겠다는 각오로 들으면 할 수 있잖아!” 그때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 지금 나는 이 수업에서 잘 하지 못할까 봐 무서워서 도망가려는 거구나!’ 잘 못하는 상태로 있는 게 힘들어서 피하려고 하는 거구나!’ 대학원에 온 건 어차피 모르는 걸 배우기 위함이었는데, 못 알아듣는다는 이유로 수강 철회를 하려는 게 모순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 순간 수강 철회하고 싶다는 제 생각을 철회했죠.

그리고 그 다음 주부터 일찍 가서 교실 맨 앞, 교수님 턱 바로 밑에 앉아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어요. 어차피 난 하나도 못 알아듣고, 나중에 재수강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편안해지고 못 알아듣는 게 더 이상 그렇게 두렵지 않았어요. 그렇게 내 무지를 인정하고 잘하려는 마음을 비우니, 그때부터 신기하게도 수업 내용이 더 잘 이해가 되더라고요. 너무 재밌죠? 최근의 이 경험이 제 삶의 패러다임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어요.

 

-이런 경험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되겠어요.

사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데, 우리는 그러지 못 하고 오히려 아는 척을 많이 하다 보니 마음이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뭐든지 새로 도전하면 깨질 수도 있고 후회할 수도 있지만, 시작조차 안 하는 것보다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얻을 수 있거든요. 시작은 언제나 어려운 법이죠. 학생들도 첫 수업 때 제일 힘들어해요. 낯선 선생님, 낯선 사람들, 낯선 수업 방식, 모르는 것과 처음 대면할 때는 누구나 다 무서워지는 법이죠. 그래서 전 학생들에게 늘 이렇게 말해줘요.

시작은 누구나 어렵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두려움을 인정하고 견뎌라. 한 번 하고 나면 그만큼 괜찮아지고, 두 번 하고 나면 더 괜찮아진다. 처음엔 당연히 두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시간을 조금만 더 견뎌라. 그럼 금방 괜찮아질 거다.”

 

 -책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네요. 저서 마음이 하찮니는 어떻게 나온 책인가요?

매우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쓴 책이에요. 강사 이력서를 쓰다 보면 항상 비어 있는 부분이 저서인데 저는 그 공란이 싫었어요. 그리고 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걸 한 마디로 설명해 주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나를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일종의 두껍고 큰 명함 같은 책저서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하지만 막상 책을 쓰려고 하니, 제가 쓰고자 하는 내용들이 정말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 확신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먼저 저의 옛 제자들을 대상으로 ‘1:1 마음 보충 수업을 했어요. 각자 가지고 있는 마음의 어려움에 대해서 두 시간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거였는데, 이 과정을 통해 제가 번아웃을 겪으면서 스스로 체득했던 마음의 소진을 일으키는 다섯 가지 패턴들이 나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내용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제야 이걸 써도 되겠구나 하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됐죠.

저서 <마음이 하찮니> 북토크
저서 <마음이 하찮니> 북토크

 

- 제목이 특이한데 어떻게 짓게 되었는지?

제목은 출판사에서 지어 주신 거였는데, 처음엔 이 제목을 보고 울 뻔했어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 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던 단어가 하찮다였거든요. ‘난 하찮은 사람이 절대 되지 말아야지하는 마음으로 평생 그렇게 애를 썼는데, 내 첫 책의 제목에 하찮다라는 말이 들어가는 게 너무 끔찍했거든요. 물론 그런 생각 자체가 저 혼자만의 비이성적인 생각이고, 사실 책 내용과 제목이 의미하는 게 잘 맞는다는 걸 인정하고는 곧 감사히 받아들였죠.

 

-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출판 기념회 때 스페셜 기프트로 열쇠고리를 딱 100개 제작해서 책과 함께 드렸었는데, 그때 열쇠고리에 이런 문구를 넣었어요.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정상, 내 뜻대로 되는 건 기적어쩌면 이것이 책 전체 내용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 우주 전체에 나 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살다 보면 수천 수억의 다른 생각들과 만나게 되는데 서로 안 맞고 다른 게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든 게 자기 뜻대로 이루어져야 그게 정상이고, 그렇지 못하면 뭔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곤 해요. 그게 아니라 오히려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자연스러운 거고, 혹시라도 내 뜻대로 되는 게 있다면 그게 진짜 기적이고 놀라운 일인 거죠. 이렇게 생각하며 살다 보면 생각보다 기적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될 거고, 더 감사함을 많이 느끼면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만약 과거를 거슬러서 다시 젊은 날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저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 딱 좋아요. 제가 살아온 나날 중에서 그 어떤 것도 후회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아요. 있어야 할 일들이 다 제때 잘 일어났고, 지금은 번아웃조차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안 죽고 다시 살아났으니까요. 지금 이 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 딱 좋다고 생각해요.

 

- 다른 세계로 터닝하고 싶은데 두려움에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 지금도 내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 혹은 해야만 하는 일, 만약 가능하다면 하고 싶은 일을 그냥하세요. 자꾸 이런 저런 생각만 많이 하지 말고, 뭐든 일단 그냥 하기만 하면 그 안에 내 길을 향한 단서, 힌트들이 잔뜩 숨겨져 있어요. 내가 뭔가를 하고 있을 때에만 나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고, 새로운 걸 배울 수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내 길을 더 잘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나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접촉면을 그렇게 늘려 가는 거죠. 확실한 내 길을 찾고 나면 그때 움직이겠다는 생각은 정말 어리석어요. 길은 그런 식으로 찾아지는 게 절대 아니랍니다.

제가 지금 해야 하는 일, 필요한 일부터 뭐든지 하라고 하면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게 다 언젠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는 동력이 되거든요. 내가 원하는 것을 잊지만 않고 있으면 어디서 어떤 식으로 연결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인생은 예측 불허거든요. 저도 번아웃 후 지금의 제 모습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시작할 때는 원래 보이지 않아요. 나에게 계속 새로운 기회를 허용하며 접촉면을 넓혀가다 보면 삶이 점점 풍성해지고, 어느 순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될 거예요.

 

- 10년 후의 민영님은 어떤 모습일까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10년 후 내가 뭐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알 수 없는 미래가 제일 두렵고 무서웠는데, 이제는 예측 불가능한 삶이 가진 묘미를 조금 알게 됐어요. 번아웃 이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듯이, 지금의 나 또한 10년 후의 나에 대해 전혀 알 수 없고, 뭐든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너무 설레요.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 어떤 것을 하기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나 자신이 무한대로 변할 수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팟캐스트로 글쓰기 수업을 여는 거예요. 매주 글감을 정해 주고 청취자들이 라디오에 사연 보내듯이 글을 보내오면 제가 DJ처럼 소개하고, 그 글 속에서 그 사람의 강점을 찾아 주는 일을 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인터뷰어 유희재]

아동·청소년대상으로 진로 콘텐츠 개발과 강의를 한다. 교육 출판 기업에서 교육과 연구 개발을 담당했고, 초·중·고 및 공공 도서관에서 진로교육과 독서토론, 글쓰기, 문해력 수업을 하고 있다. 읽고 쓰는 삶을 통해 지속 가능한 행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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