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책상머리에서 무대 위로, 공무원에서 시니어 모델로 없음

시니어 모델로 은퇴 후 제2의 인생에 도전한 조병희

2023.03.16 | 조회 4.13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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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인터뷰해 드립니다

나다운 길을 걸어가는 당신을 인터뷰해 드립니다.

[인터뷰이 소개]

조병희79228일부터 공직생활일 시작하여 40년간 근무 후 은퇴를 하였다. 시니어 모델로 반전 같은 인생 후반기를 배우고 경험하며 준비하고 있다. 현재 또한 치매 예방 지도자와 치매 미술 강사, 타로 상담사 등을 공부하며 사회에 봉사하는 인생을 꿈꾼다.

시니어 모델 조병희 
시니어 모델 조병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마흔이 넘고, 오십, 육십이 넘어가 훌쩍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다면 슬그머니 용기가 사라지게 된다. 새로운 일보다는 안정적인 일을 찾고, 기존에 해 왔던 것에 안주하기 쉽다. 몸을 쓰는 일은 더더군다나 주저하기 쉽다. 다칠까 봐 혹은 아플까 봐 아니면 남들이 뭐라 할까 봐. 하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경험하는 것이다. 경험은 인생의 모든 순간을 통해 축적된다. 나이듦을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 같은 일로 여길 수도 있다.

 

조병희 모델을 만났을 때 자세와 포스가 남달랐다. 어깨가 반듯하고, 허리가 꼿꼿했으며, 얼굴도 어딘가 모르게 자신감이 넘치는 듯했다. 쇼트_커트의 짧은 머리에 진한 눈썹이나 쌍꺼풀 있는 눈도 서구적으로 보였다. 스타일리시한 옷차림에 눈길이 갔으며, 외모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분위기와 아우라가 느껴졌다.

 

‘3초 효과라는 말이 있다. 3초 안에 첫인상이 결정된다는 뜻이며, 첫인상의 강렬함이 계속 지속될 수 있다는 데에서 온 말이다. 첫인상 혹은 외모로 사람들을 평가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외모나 생김새로 상대방에 대한 이미지가 생긴다. 조병희의 첫인상을 통해 과연 어떤 일을 평생 해왔는지 궁금해졌다. 어떻게 하면 나이가 들어서도 강렬한 눈빛과 강렬한 개성 있는 분위기를 가질 수 있을까. 60대의 시니어 모델로 도전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녀의 말을 들어 보자.

 

 

- 시니어 모델은 오래전부터 꿈꾸던 일이셨어요? 혹시 관련된 일을 하셨던 건 아니신가요?

 

원래 공무원이었어. 평생 공직생활. 고등학교 졸업하기도 전에 경기도청에 들어가서 79 3월부터 근무. 아직도 안 잊어버려. 임시직으로 일을 하다가 특채 시험봐서 9급 공무원이 되었어요. 근무지는 계속 이동했지만 어쨌거나 펜대만 굴리면서 살았. 40년간 일했다고 하면 다들 놀라는데 그 어려운 시절을 정말 힘들게 열심히 일했어요. 힘들고 지칠 때도 있었지만 외부에서 공무원이라면 다들 부러워했던 시절이었거든요. 그 때는 자부심과 긍지도 있었습니다.

 

88년도에 동사무소 9급 공무원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체험 삶의 현장 그 자체였. 동사무소가 옛날에는 도떼기시장 같았지. 민원인들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아침부터 밤까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그땐 여자 공무원들이 무조건 민원인 상대했어요.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만_둘 생각했지만 친정 엄마가 못 그만두게 하는 거야. 좋은 직장 왜 그만두냐고. 아이들 유치원생 때 가장 그만두고 싶었는데 친정엄마가 나를 점집에 데리고 가셨어. 그때 점쟁이가 조금만 더 참아라, 조금 더. 이 시기만 넘으면 좋은 시기가 온다고 하면서. 점쟁이 말이 와 닿았는지 눈물 흘리면서도 견뎌야겠다는 생각하고 그 이후부터는 무조건 참고 다녔어.

 

- 40년 공무원 생활을 하신 분 같지 않으세요! 그럼 언제부터 시니어 모델을 하겠다고 준비하신 거예요?

 

그전에는 다른 것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어. 우선순위가 자식, 가족, 친정, 시댁 이런 것들이었지 나 자신은 순위에도 없고. 직장 다니는 여성들이 무언가 미래 위해서 준비하는 것도 힘들어요. 내 인생이 제일 소중한데, 나 자신이 제일 꼴찌가 된 거야. 자식 앞세우다 보니 너무 늦어 버렸던 거예요. 퇴직하고 60대가 되어서야 나를 찾겠다고 나선 건데 너무 늦어버린 거지. 이 후회가 가슴에 와닿아. 아무것도 안 한 게.

 

보통 내 나이 또래 여성들이 30는 결혼, 출산, 육아로 바쁘니까 자신의 것을 챙길 시간이 없어요. 40대부터 조금씩 사전 준비가 필요하고, 50대가 되면 여유 생기니까. 그때부터는 최소한 뭘 해야 되는데 생각보다 어렵더라고. 나 역시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는데, 지나고 보니 시기나 때가 맞지 않았고 용기도 없었고.

 

퇴직하고서도 잠깐 구청에서 민원 상담 일을 해 보라고 해서 시작했는데, 꾸역꾸역 다니면서 그만두지 못한 거지. 1년 넘게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구청의 환경이 안 좋으니까 관두고 싶더라고. 뭐 할까 고민이 많았지. 민원 상담이 무료하기도 하고 그때부터 오히려 나를 위해서 뭘 찾아야겠다라는 생각이 점점 더 커진 거예요.

 

- 그런데 자신을 위해서 뭘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모델이라면 너무 파격적인 거 아니에요?

 

수원 행궁동에서 전통 찻집 하는 동생이 있는데 나중에 한복 모델을 하고 싶다고 얘길 하는 거야. ‘모델이라고 하는 순간 갑자기 ! 그래 이거다하면서 머릿속에 불이 반짝 켜지는 거에요. 시니어 모델을 그제야 알게 되었죠.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직감이 생겼어. 그때부터 딴 것은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오지. 멋진 옷 입고 무대에 서서 워킹하는 내 모습을 생각해 보니 정말 좋은 거예요.

 

그때부터 동생이 모델 학원 찾는 거 알아봐 주고, 같이 가서 등록하는 것도 도와주고. 모델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거야. 모델 학원은 거의 서울에 있으니 오가는 것이 힘들지만 수원에서 배울 곳이 없더라고. 제대로 된 곳에 가서 기본부터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배웠어요.

 

퇴직 후 잠깐 구청에서 민원 상담 일도 하고 있다고 했잖아. 그래서 처음엔 주말반으로만 학원 다니다가 나중엔 아예 구청 일 사표 내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거예요. 4일 근무하고 주말에만 학원 가니까 동기들과 달리 뒤처지더라고. 그래도 강사님이 내 자세가 좋다고 칭찬해 주니까 더 열심히 하고 싶어진 거지. 이전에 했던 행정적인 일과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진짜 신나고 재밌고 너무 멋졌어.

 

초급 과정 200만 원, 그다음 중급 과정이 240만 원, 전문반 과정은 270만 원. 이렇게 1년간 돈을 투자해야 하는데 어차피 배우는 건 전문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냥 등록해 버렸어요. 배우려면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랄까.

 

- 정말 비싸네요. 선뜻 모델 학원에 큰돈을 지불하고, 그 과정이 아깝지 않다고 여기신 게 대단하네요. 학원 다니면서 실질적으로는 어땠나요?

 

멋진 옷 입고, 워킹할 때 뿌듯하고 좋아요. 정말이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돈을 쓴 거라는 생각에 하나도 아깝지 않고, 지금까지 한 일 중 제일 잘한 일 같아요. 20218월 말 모델 학원에 등록했는데, 차근차근 단계별로 과정 밟아나가니까 전문반까지 하게 됐어요. 1년간 힘들게 배웠으니 이제는 그만둘 수 없는 거. 그러면서 나도 첫 무대에도 서게 되고, 자선 행사도 나가게 되고.

 

모델 학원이 대부분 여자들만 모이는 세계라서 그런지 서로 경계하는 분위기더라고. 깊은 얘기 잘 안 하고. 서울 사람들이라 그런지 수준도 높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많고. 내 나이 되어서 연금만 받고 생활하려면 힘들잖아요. 돈이 많이 들어가긴 해요. 그렇다고 돈이 많아서 다 행복한 건 아니니까. 학원에서도 배우는 학생들끼리 서로 비교하고 그랬는데 그것도 시간 지나니까 없어지더라고. 내 속도대로 하는 거지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포즈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포즈 

 

- 스트레스도 약간은 있으셨겠어요.

 

사실 스트레스 심했어요. 힘들기도 하고. 상업적인 사람들을 주로 만나다 보니 신경 쓰이는 게 많지. 그러다가 6개월 이상 배우니까 어느 정도 감도 익게 되는 건 있더라고. 또 다른 건 수입은 없고 돈을 계속 써야 하는 게 벅차고. 나는 시니어 모델이 60대 이상이라 생각했는데 요즘 학원에 오는 사람들은 40대부터 시니어 모델이야. 젊은 애들이 많은 것도 부담스럽고.

 

그래도 모델 학원 다니면서 후회 없는 것 중 하나가 나를 위해 제대로 큰_돈 써 본 게 처음이라는 사실이에요. 내 나이 또래 친구들 중 우울증이 많아요. 집에만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우울한 거지요. 평생 자신을 위해 산 게 아니라는 생각에 헛헛해지고, 자괴감이 들고. 모델 학원은 내 인생을 위해서 온전히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일이라서 성취감이 있어요.

 

- 혹시 공직 생활하면서 뭔가 공부하고 배운 것들이 있으신가요?

 

자격증을 많이 땄어요. 세어 보니 13개더라고. 그런데 지나고 나니 하나도 쓸모가 없었어. 그때는 꼭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자격증을 위한 공부였지. 2004년 무렵인가 그때가 내 나이 사십 대 중반이었는데, 직장 일이 힘들어서 때려_치우고 어린이집을 차릴 생각에 보육 교사 2급을 딴 거예요. 그때 어린이집 원장을 하던 아는 언니가 어린이집은 내가 아무리 잘 해도 선생들이 속 썩이면 힘들어라면서 반대하더라고요. 자격증만 있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 관리 등 신경 써야 할 것들 많다고.

 

그다음으로는 사회 복지사 자격증을 땄어요. 공직에 있다 보니 나중에 사회 복지 기관으로 가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지. 그래서 사이버 대학교 복지 행정학과에 들어가서 엄청 빡세게 공부를 했어요. 날 위해서 뭘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우선 공부하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건데 사회 복지사 2급을 땄지. 요양원을 차리는 게 전망이 좋다고 해서 진짜 요양원 해 볼까도 생각했어. 그때 우후죽순 요양원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거의 무이자로 대출도 많이 해 줬었는데 내가 자격증 따고 난 뒤는 그것도 포화 상태가 되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생각보다 돈도 많이 들고 제약이 생기니까 이것도 내 일이 아니구나생각하면서 접었어요.

 

더 옛날 20꽃에 미쳐서 꽃꽂이 2급 사범증까지 딴 적도 있고, 30대에는 심리 치료도 배우고. 이것저것 배운 건 많아. 그러다 50대가 넘어서니 노후에 뭘 하겠다는 생각 다 포기하고 연금 하나만 바라보고 끝까지 버틴 거에요. 그렇게 퇴직하고 나니 하나도 남는 게 없다는 생각에 어찌나 허탈하던지.

 

- 엄청나게 열심히 사셨는데 남는 게 왜 없다고 생각하세요?

그때 취득한 자격증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퇴직하고 보육 교사 자격증으로 파트타임 해보려고 했더니 나이 든 나 같은 사람은 안 쓴다는 거에요. 대부분 보조할 강사 찾는데, 새파랗게 어린애들 사이에서 나처럼 나이 60대인 초짜를 누가 쓰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그것도 안 된 거고.

 

- 다시 시니어 모델 얘기로 돌아와서, 모델 학원에서의 수업 내용이 궁금해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초급, 중급, 전문반 수료까지 거의 1년 과정이에요. 워킹, 자세, 표정 등을 배우는데 맨 처음에는 체조를 해요. 기본적인 체조 및 스트레칭하고. 벽에 기대어서 일직선으로 자세 교정하는 거죠. 발목, 발꿈치, 허벅지, 엉덩이 등을 벽에 붙이고 자세 바르게 해요. 턱은 정면으로 향하고, 셋째 손가락이 바지 선에 닿도록. 기본 워킹을 30~40분 하며 몸풀기 하고 그 다음 다양한 포즈를 연습해요.

 

나중에는 9cm~11cm 힐을 신고 워킹을 하는 거죠. 최소한 주 26개월 이상은 배우고, 1년은 해야 몸에 익히게 돼요. 1년은 해야 감이 온달까. 어떤 사람 포즈가 괜찮은지 눈에 보이기도 하고. 집에서도 매일 연습해요. 한복 입고 한복 포즈를 익히고, 주얼리 포즈도 있고, 핸드백 포즈, 스포츠 패션 포즈 모두 달라요. 드레스, 구두, 액세서리, 모자, 스카프 등 연출하는 소품이나 의상에 따라 다양한 포즈가 있어요.

 

시니어 모델 하면서 연기나 영상 쪽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영화나 연극 등 으로 출연하기도 해요. 강사 과정도 있고. 대회 나가서 상 받으면 협찬이나 광고가 붙기도 하고. 아직은 그 단계는 아니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은 워킹이고,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의상들이 좋아요. 정장이나 세미 정장 등. 사람들은 한복이 잘 어울린다고 말하고. 행사나 쇼에 나가는 건 경쟁도 치열하지만, 돈이 많이 들긴 해요. 취미 생활이라 생각하면서 꾸준히 해 보려고요. 세상을 넓게 보는 관점은 생겨요. 굳었던 몸이나 생각 등이 유연해지고. 처음에는 봉사 및 재능 기부로 계속해 나가는 거죠.

 

- 혹시 무대에 섰을 때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한복 쇼에 나가봤는데, 독거노인 돕기 자선 바자회 패션쇼였거든요, 결혼식 이후 풀 메이크업으로 밖에 나가본 적 없었는데, 무대에 선 내 모습이 정말 멋있었어. 여자로 태어나서 그렇게 크고 화려한 무대에 서 본다는 행복감. 한 발 한 발 걸어가면 어떤 지점에 닿게 되겠지요. 60이 되어서야 그걸 얻게 된 것 같아요. 5년 후 해외 무대에 서는 꿈이 생겼어요. 그렇기 위해서는 건강관리 잘 하고, 먹고 마시는 것 등 꾸준히 자기 관리 하면서 운동도 많이 해야 돼요. 요가, 필라테스, 개인 PT 받으면서 몸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저녁 식사 조절하고, 운동하고, 사이즈 관리를 하는 거죠. 60대는 온전히 나의 만족, 나의 행복만 위해서 살면 되니까 더 좋은 것 같.

 

한복 패션쇼에 나가신 조병희 모델 
한복 패션쇼에 나가신 조병희 모델 

 

- 혹시 시니어 모델 중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리송 모델이요. 70대에 저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는 생각. 건강 관리 잘 하면 끝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포기만 안 하면 끝까지 가는 거지. 리송 모델도 가정주부로 있다가 늦게 시작했는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나서는 빠른 시간에 성장했더라고요. 이제는 무르익어서 전체적인 것들을 아우르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 시니어 모델 하면서 본인이 달라진 점 혹은 새롭게 발견한 모습은?

 

치렁치렁한 액세서리를 처음으로 시도해 본다던가 안 입던 옷 스타일을 도전하는 등 과감해졌죠. 예전에는 어색해서 못 하던 것들을 하니까. 그렇다고 무조건 명품이 아니라 나의 스타일을 찾아 나가는 것, 패션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가 돼요.

 

동대문 시장 가면 물건도 싸고 진짜 좋은 게 많아요. 나 스스로 변화가 되는 것도 즐겁고! 외모뿐 아니라 나를 더 깊이 알고 이해되는 것 같아요. 노후는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살아야 돼요. 그리고 자식에게 기대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돈 많이 벌어서 성공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을 놓지 말아야 돼요.

 

공직에 있을 때는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나를 찾는 행복감 같은 것. 공무원들은 퇴직할 무렵 퇴직 교육받는데, 그때에도 잘 몰랐어요. 딱 그만두고 난 후 그제야 나를 보게 된 거지. 나도 내가 잘 살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요. 지금부터라도 잘 살고 싶고,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사람들과 네트워크도 만들고. 꾸준히 하면서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게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겠죠. 지금은 겨우 나 자신이 만족하고, 자녀들이나 남편이 응원하고 지지하고 좋아하는 거죠. 얼마나 가족들이 자랑하고 다니는지, 내가 예뻐지고 당당해지니 남편 프로필 사진을 제 사진으로 바꾸더라고요.

 

- 모델 한다고 외모를 지나치게 꾸미거나 옷을 사는 데 소비하는 것은 아닌가요?

 

전에는 옷을 산다고 하면 차라리 먹을 거나 사 먹지아니면 동남아 여행을 가지이랬는데, 이제는 1년에 1~2벌 디자이너 옷 사고, 그걸로 대회 나가는 게 좋아요. 내가 옷 입으면서 행복해지면 아깝지 않아요. 이런 멋진 옷 입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멋지게 보이는 게 행복해요. 남들이 상상 못 하는 일이잖아요.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도 있고. 늙어도 나 자신을 가꾸고 꾸미면 자신감이 높아져요. 자신을 꾸미는 것은 사치가 아니에요.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이 사치이고, 남에게 보여 주고 과시하기 위한 게 사치에요. 요즘 패션쇼는 자연스러운 게 트렌드에요. 무조건 키 크고 늘씬하다고 멋진 모델이 아니라 자세가 좋고, 뚱뚱해도 키 작아도 할 수 있는 게 모델이에요. 키 크고, 포스가 있고, 자세가 좋고, 늘씬하고, 멋있고 예쁘면 보통 모델감이라 생각하지만 시니어 모델은 좀 달라요. 의욕과 열정 등 마인드만 충분히 있으면 할 수 있는 일. 모델을 하면 자기 관리가 자동적으로 되더라고요. 건강해지고. 40~50대부터 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꼭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155cm 작은 키도 할 수 있고.

 

- 시니어 모델 전망이 어떨까요?

앞으로 노령화가 되면서 시니어가 없는 분야가 없죠. 인기가 많아질 거예요. 고령화 되면서 더 많질 것 같아요.

 

- 시니어 모델을 한다니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요?

 

처음에는 비밀스럽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람들이 전화가 빗발치고 난리가 났죠.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면서 멋지다고 하고. 황당해 하는 사람들도 있고. 매일 스트레칭하고, 워킹 및 표정 연습하면서 내 안에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게 돼요. 자세도 좋아지고, 허리 아픈 것도 싹 사라지고. 건강해진 것만으로도 큰 보람이에요. 나 자신을 가꾸는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거죠. 집에서 퍼져 있는 게 아니라.

 

물론 시니어 모델 중에 더 늘씬하고 키 큰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것에 주눅 들면 안 되겠더라고. 슬럼프도 잠시 왔었는데 이제는 내가 하는 일 선택하길 잘 했다고 느껴요. 내가 좋아하는 일 이제야 찾았는데, 10년만 더 일찍 찾았더라면 어땠을까 약간 후회하는 마음도 들고. 그래도 앞으로 내가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싶어요. 돈 때문에 안 된다, 조건이 안 된다 그런 생각으로 자신을 한계 짓지 말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행복하고 싶어요. 너무 높은 이상이나 남들의 기준으로 최고의 수준을 향해 가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 한 가지 하면서 스스로 약속한 것은 꼭 지키면서 사는 거지.

 

- 혹시 시니어 모델일 말고 다른 것도 하는 분야가 있으신지.

경기도 생활 기술 학교 치매 예방 지도자 양성 과정 심화과정을 배웠어요. 어르신들을 위한 치매 미술수업. 이것 역시 봉사하면서 계속해 나갈 일이라 생각해요. 지금 경기대에서 배우고 있는데 봉사로 이어 나가려고요.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면 강사가 될 수도 있고. 시니어 모델과 치매 미술 두 가지를 다 이어 나갈 계획이에요.

 

- 본인의 삶을 되돌아볼 때 여성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이나 팁이 있다면?

 

적어도 40대부터는 자기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것 같아. 돈 안 들이면서 할 수 있는 것 찾아보면 돼요. 여러 기관에서 좋은 과정들 많으니까 들어 보고. 계속 배우면서 내 것으로 받아들이다 보면 60대 되어서는 돈벌이랑 연결될 수 있어요. 돈벌이가 안 되더라도 외롭지 않고 행복해지는 거지. 10년 정도 준비한다고 생각하고 시작하면 돼요. 돈이 적게 들면서 나중에 돈 많이 안 써도 되는 일을 찾아보세요.

 

- 끊임없이 공부를 계속하거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온 건가요?

나를 위한 삶을 살겠다는 생각을 하면 돼요. 누구의 인생도 아닌 나의 인생이니까.

 

- 지금까지 살아온 본인의 삶을 컬러로 표현한다면?

20대는 노랑이나 핑크, 30~40대는 짙은 초록, 50대는 보라색, 지금은 주황색, 감색 같아요. 태양 같은 색깔, 노을_, 주황_색 같은 것. 20대 초반에는 다이애나 비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50대에는 탤런트 박정수 닮았다는 소리도 듣고. 하지만 저는 외향적이고 털털한 스타일이에요!

 

- 스스로 자신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말 잘 선택하면서 살아온 인생이구나! 힘들어도 잘 살았다.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아직도 캐내지 못한 내 안의 보석을 빛나게 가꾸면서 살자.

모든 일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지금, 함께 일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 모든 때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일임을 기억하자!

 

 


 

[인터뷰 후기]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1929년에 출간된 자기만의 방에서 가부장제의 불평등함을 낱낱이 고발했다. 이 책에서 여성이 자유의 문을 열 수 있는 두 가지 열쇠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다. 바로 고정적인 소득과 자기만의 방이다. 조병희 님은 일하는 여성으로 평생 살아오면서 자기만의 방(직장)과 고정 소득(월급)을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삶이 아니었다. 여성이 돈을 벌 수 있음에도 자유로운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육십이 넘어서 자신을 위해 큰 투자를 하고 모델 학원을 하니 등록한 다음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아직은 성공이라 말하기 어려운 단계이다. 아니, 성공을 위해서가 아닌 오롯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가치 있는 투자를 한 것이다.

열심히 살아온 당신 떠나라라는 카피 문구가 한때 유행이었다. 꼭 떠난다는 것이 여행을 가라는 뜻은 아닐 듯하다. ‘떠남은 기존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롭게 자신을 리셋 하는 시간이 아닐까. 은퇴는 피할 수 없지만 은퇴가 인생의 끝은 아니다. 평균 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요즘 시니어의 새로운 도전은 허황된 꿈이 아니다. 고령 인구(65세 이상)20%를 넘으면 초고령 사회로 명명하는데, 대한민국은 이미 초고령 사회를 넘어섰다. 우리 사회는 최근 은퇴 이후 능동적으로 자신의 일을 찾아 도전하는 시니어들이 늘어났다. 외모와 건강 관리에도 관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에도 참여한다. 의미 있는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한다.

조병희 님은 시니어 모델을 나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도전한 일이라고 말한다. 30년 넘게 틀에 박힌 공직 생활을 했던 사람의 일반적인 선택은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뿐인 소중한 인생,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60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여성의 가사 노동이 줄었다고 해서, 교육이 증대되고, 출산과 육아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고 해서 개개인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욕망과 개인의 자아실현 사이에서 여전히 갈등할 수밖에 없다.

어느 누구도 만큼 나 자신의 편은 없다. 타인의 평가와 기준보다 스스로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 용기 있는 삶이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출간기념회에서 만난 '조병희 님' 
<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출간기념회에서 만난 '조병희 님' 

 


인터뷰어 김소라 

 

책방 랄랄라하우스 대표. 2011년부터 e수원뉴스 시민기자로 활동중

<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공저) <타로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바람의 끝에서 마주보다> <사이판한달살기><도란도란 토론레시피> <비주얼씽킹스토리로말하라> 등 13권의 책을 집필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묻고, 기록하고, 글로 담고 책으로 엮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요즘 나에게 에너지 주는 일은, 타로카드 상담 그리고 싱잉볼명상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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