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일본, 누가 지갑을 열고 있을까? (전반부)

인구 분포의 변화가 만들어 낸 새로운 소비 생태계

2025.07.14 | 조회 2.05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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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타트업 시장의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보내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재팬인사이트>의 YJ입니다.

최근 한국의 많은 기업, 투자자분들과 만나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장이 정체된 것 같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입니다. 저는 그럴 때 현재의 일본 시장을 한 번 더 깊이 들여다보시라고 권합니다. 단순히 가깝고 규모가 큰 시장이라서가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인구 구조의 격변’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맞이한 일본의 현재 모습 속에서, 우리가 마주할 미래의 기회와 위기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및 다음 뉴스레터에서는 ‘고령화’, ‘1인 가구’, ‘지방 소멸’이라는 거대한 세 개의 물결이 어떻게 일본 소비 시장을 바꾸고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리세일’, ‘구독’, ‘지역 밀착형 소비’라는 3개의 키워드를 실제 사례와 함께 파고들어 보고자 합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현재 일본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인 '2025년 문제'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는 1947~1949년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단카이 세대)가 전원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층으로 진입하면서 발생하는 사회보험 부담 증가 및 경제를 지탱할 노동력 부족 문제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사진 한 장으로 이해할 수 있는 2025년 문제. 출처: 일본재단
사진 한 장으로 이해할 수 있는 2025년 문제. 출처: 일본재단

20년 전인 2005년 즈음과 비교해도 일본의 노인 인구는 1천만 명 이상, 치매 인구는 2배 이상 늘었습니다. 그야말로 팩트 폭격이지요. 일본은 명확하고도 그 어떤 국가보다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2050년이 되면 '일본인다운 일본인'이 과연 얼마나 남을까?"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대기업 오픈 이노베이션팀, 스타트업, 학계를 가리지 않고 들려올 정도입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몇 년 앞선 미래다." 식상할 수 있는 이 말이 적어도 인구 구조 변화와 그에 따른 소비 시장의 지각 변동에 있어서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출생 인구 감소와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 속도(중위 연령 일본 49.8세/한국 45.6세)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나라이기에, 현재 일본의 소비 생태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곧 한국의 가까운 미래 비즈니스를 그려보는 중요한 단서가 될 거라 봅니다.

 

그럼, 첫 번째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1. 새로운 주류: ‘액티브 시니어’와 ‘1인 가구’

일본의 소비 트렌드를 이야기할 때, 아직도 시부야의 반짝이는 MZ세대만 떠올리신다면 곤란합니다. 지금 일본 시장의 판을 움직이는 진짜 ‘큰손’은 따로 있으니까요. 바로 ‘액티브 시니어’와 ‘1인 가구’, 이 두 거대한 축입니다. 

건강하기만 하다면, 뭐든 할 수 있는 '액티브 시니어'. 저 카메라가 몇 천만원짜리일 수 있다는..출처: gettyimages
건강하기만 하다면, 뭐든 할 수 있는 '액티브 시니어'. 저 카메라가 몇 천만원짜리일 수 있다는..출처: gettyimages

2025년 현재, 일본은 국민 3명 중 1명(약 29%)이 65세 이상, 5명 중 1명은 75세 이상이 되어버린 그야말로 ‘어른들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나이가 많거나 혼자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두둑한 지갑과 깐깐한 취향, 그리고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로 무장한, 시장의 새로운 ‘주인공’들입니다. 

  • 압도적인 자산: 일본 개인의 금융자산은 약 2,100조엔으로 추산됩니다. 그중 60% 이상의 실탄을 바로 이 60대 이상 가구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옛날 60대를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100세 시대에 6070은 '청장년'으로 불려도 어색하지 않죠. 시대의 흐름에 걸맞게 '젊고' 건강하고 돈이 많은 이들의 목표는 그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어제보다 활기차게 오래 사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무릎 관절에 좋다는 기능성 식품은 기본, 지인들과 땀 흘리는 피트니스 클럽을 다니며 최첨단 예방 의료 서비스를 통한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 이제는 나를 위한 플렉스 (경험/학습):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킨 지금, 드디어 제2의 청춘을 맞이했습니다. 벼르던 해외여행을 떠나고, 손주에게 자랑할 악기를 배우며, 평생 가꿔온 정원에 희귀한 품종을 들입니다. 이들의 소비는 ‘과시’가 아닌 ‘만족’을 향합니다.
  • 거실 소파에서 즐기는 온라인 쇼핑의 편리함: 놀랍게도 이들의 장바구니는 오프라인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모두에게 재택을 강요했지만, 집안에 갇힌 이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클릭 한 번으로 세계와 연결되는 디지털 경험자로 레벨업했습니다. 칸타 월드패널에 따르면 액티브 시니어 가구의 온라인 식품 구매액은 다른 가구 대비 13%나 높습니다.

② ‘나 혼자 산다’ - SOLO Economy

액티브 시니어라는 거대한 흐름에, 또 하나의 강력한 축이 교차하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냅니다. 바로 나 혼자 사는 사람들입니다. 일본 국립 사회 보장/인구 문제 연구소에 따르면 2025년 일본의 1인 가구 비율은 전체의 36.9%에 달하며, 2040년에는 거의 40%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옆집도, 앞집도, 친구도 나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일본에서 가장 ‘보통의 가구’ 형태가 된 것이죠.

여기서 파생되는 비즈니스 기회 중 흥미로운 것은 ‘느슨한 연결’입니다. 1인 가구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고립’이라는 그림자를 동반합니다. 혼자가 편하지만 완전한 고립은 외로운 이 미묘한 심리를 파고드는 비즈니스가 각광받고 있는 것입니다. 퇴근 후 혼자 들러도 어색하지 않은 바(Bar), 같은 취향의 사람들끼리만 모여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취미 공유 플랫폼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건 저의 개인적인 체감입니다만, 일본은 이 ‘느슨한 연결’이 정말 잘 작동하는 사회입니다. 모든 것을 공유하고 끊임없이 서로의 일상을 ‘동기화’해야만 관계가 유지된다고 느끼는 경향과는 사뭇 다르죠. 일본에서는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필요할 때 기댈 수 있는,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관계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핵심입니다. 한국식의 ‘끈끈한 정’을 앞세운 커뮤니티보다는,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고, 강요하지 않는’ 어찌보면 세련된 연결고리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일본의 1인 가구, 즉 ‘솔로 이코노미’의 지갑을 열게 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들은 소속보다는 경험을 원하고, 의무보다는 선택을 중시하니까요.

마스터, 늘 마시던 걸로. 위스키에 재즈 한 스푼 얹어서.🎷
마스터, 늘 마시던 걸로. 위스키에 재즈 한 스푼 얹어서.🎷

2. ‘지방 소멸’과 ‘지역 밀착형 소비’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는 화려합니다.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모든 인프라가 탄탄하게 도시 중심부를 기점으로 갖추어져 있지요. 하지만 이러한 화려함의 이면에는 일본이 직면한 또 다른 현실, ‘지방 소멸’이 있습니다. 젊은 인구는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떠나고, 사람이 줄어든 지역의 상점가는 문을 닫고, 남겨진 주민들은 점점 더 고립되는 악순환. 이는 일본 정부와 기업 모두에게 거대한 도전 과제이지만, 거기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부와 기업 모두에게 거대한 도전 과제이지만, 거기에서 새로운 과제를 찾아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① ‘장보기 난민’을 구하라, 지역 밀착형 비즈니스의 부상

‘장보기 난민(買い物難民)’이란 집 근처에 신선식품을 파는 가게가 없어 일상적인 쇼핑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뜻하는 말로, 일본 전역에 약 800만 명 이상이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들을 위한 비즈니스는 단순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쇼핑 난민의 문제: 집 근처에 있던 슈퍼가 문을 닫았다. 먼 쇼핑몰까지 사러 가려니 차가 없다.🥲
쇼핑 난민의 문제: 집 근처에 있던 슈퍼가 문을 닫았다. 먼 쇼핑몰까지 사러 가려니 차가 없다.🥲

찾아가는 편리함: 대형 마트까지 갈 수 없는 고령층을 위해, 집 앞까지 신선식품과 생필품을 싣고 찾아오는 ‘이동 슈퍼마켓’이 대표적입니다. 단순히 물건만 파는 것이 아닙니다. 매주 정해진 시간에 방문해 안부를 묻고, 말벗이 되어주는 등 판매자와 소비자 간의 깊은 신뢰 관계가 핵심 경쟁력입니다.

지역의 사랑방 역할: 쇠퇴한 상점가의 빈 점포를 활용해 카페, 공유 오피스, 주민 쉼터 등을 결합한 ‘커뮤니티 허브’가 새로운 활력소 역할을 합니다. 물건을 파는 공간을 넘어, 사람이 모이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② 연 매출 400억원을 버는 움직이는 슈퍼마켓, ‘토쿠시마루(とくし丸)’

움직이는 '이동 슈퍼' - 토쿠시마루!
움직이는 '이동 슈퍼' - 토쿠시마루!

‘토쿠시마루’는 이 흐름을 성공적으로 비즈니스화한 사례입니다. 지역 슈퍼마켓과 파트너십을 맺고, 개인 사업자인 ‘판매 파트너’가 작은 트럭에 약 400개의 품목 / 1,200개의 상품을 싣고 고객의 집 앞까지 찾아갑니다. 비즈니스의 핵심은 ‘+10엔’의 마법입니다. 각 상품 가격에 딱 10엔씩만을 더 붙여 판매하고, 이 수익을 지역 슈퍼, 판매 파트너, 토쿠시마루 본사가 나누어 갖는 ‘3자 상생’ 모델을 구축했습니다.

게다가, 판매 파트너는 단순한 배달 기사가 아닙니다. “할머니, 지난번에 사신 두부는 입에 맞으셨어요?”, “다음 주에는 달콤한 복숭아가 들어올 거예요”라며 고객과 소통하고, 때로는 퓨즈가 나간 전구를 갈아주는 등 지역 커뮤니티의 ‘컨시어지’ 역할도 수행합니다. 이처럼 정확한 니즈 파악과 지속가능한 모델에 M&A를 통한 자금 수혈(2016년 유통기업 오이식스가 인수)까지 더해져, 2024년 기준 전국에서 1,100대 이상의 트럭이 운행 중이며 약 17만 명의 고정 고객을 확보했습니다.

③ 버려지는 것에 가치를, ‘주식회사 히토비토(陽と人)’

후쿠시마현의 작은 마을 쿠니미(国見)에서 시작한 ‘히토비토(陽と人)’는 지방 소멸의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한 사례입니다. 

히토비토의 홈페이지. 왼쪽의 파란 구가 후쿠시마현이고, 오른쪽의 노란 구가 도쿄입니다. 도쿄에서는 제공할 수 없을 가치가 무엇인지를 찾아내어 그 가치를 도쿄에서 열일하는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하여 수익화를 만들어낸 구조.
히토비토의 홈페이지. 왼쪽의 파란 구가 후쿠시마현이고, 오른쪽의 노란 구가 도쿄입니다. 도쿄에서는 제공할 수 없을 가치가 무엇인지를 찾아내어 그 가치를 도쿄에서 열일하는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하여 수익화를 만들어낸 구조.

이들은 지역 특산물인 ‘안포가키(あんぽ柿, 반건시)’를 만들고 대량으로 버리는 ‘감 껍질’에 주목했습니다.

한국의 반건시는 청도가 유명한 듯합니다(반건시로 검색하니 바로 나옴)🤤
한국의 반건시는 청도가 유명한 듯합니다(반건시로 검색하니 바로 나옴)🤤

도쿄와 후쿠시마를 오가는 3년간의 연구 끝에, 매년 버려지던 감 껍질에서 유효 성분을 추출하는 데 성공한 이들은, 여성의 건강에 초점을 맞춘 코스메틱 브랜드 ‘내일, 나는 감나무에 오를 거야(明日 わたしは柿の木にのぼる)’를 론칭했습니다. 버려지던 농업 폐기물을 지역의 새로운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탈바꿈시킨, 그야말로 스마트한 역발상입니다.

내일, 나는 감나무에 오를 거야🍊
내일, 나는 감나무에 오를 거야🍊
감성적인 브랜딩과 마케팅으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감성적인 브랜딩과 마케팅으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맺음말

이러한 사례들은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지방 소멸의 위기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비즈니스는 ‘규모의 경제’가 아닌 ‘관계의 경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토쿠시마루처럼 지역 사회의 인프라 공백을 메우는 물류/유통 솔루션, 히토비토처럼 지역의 잠재력을 발굴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로컬 브랜딩’ 스타트업의 행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기에 한국이 강점을 지닌 IT 기술과 디지털 운영 역량이 접목된다면, 더욱 강력한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겠지요.

다음 뉴스레터에서는 이번 이야기의 후반부로서, 새로운 소비자들이 ‘어떻게(How)’ 소비하고 있는지, 즉 ‘소유’의 개념 변화를 이끄는 리세일과 구독 경제 트렌드를 흥미로운 사례들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무더위에 건강 유의하시고, 다음 호에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도쿄에서, YJ 드림.

 

재팬 인사이트 뉴스레터에서는 일본 스타트업 시장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관점의 이야기, 현지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일본 스타트업 시장에서 10년 이상의 경험을 가진 5명이 각자의 관심분야를 공유드리려고 하며, 저희도 더욱 공부하고 성장하기 위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일본 스타트업 시장에 관심있으신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KH: 일본 VC 관점에서의 스타트업 시장, 투자, IPO 시장에 대해
  • KU: 일본 스타트업 업계 뉴스의 소개와 배경소개, 일본 스타트업 시장의 내부 이야기
  • YJ: 일본시장의 이해, 해외법인 매니지먼트, 브랜딩, 비즈니스 프로세스
  • SW: 일본을 중심으로 한 엔터프라이즈 세일즈, 글로벌SaaS에 대해
  • SA: 일본 채용, 일본 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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