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재팬인사이트> 구독자 여러분, 처음 인사드라겠습니다. 오늘부터 새로운 필진으로 참여하게 된 미국계 B2B SaaS전문 사모펀드에서 아시아시장을 총괄하고 있는 임상욱이라고 합니다. 필명으로는 다른 분들처럼 이니셜 SW로 하겠습니다. 저에 대한 소개는 간단히 아래 글로 갈음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엔터프라이즈 세일즈의 극의(極意)”입니다. 극의(極意;ごくい)라는 표현이 생소하실텐데, 일본에서의 비즈니스의 극의(ビジネスの極意)라 하여, “성공을 위한 보편적인 원칙이나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전략, 스킬”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최근 일본진출을 꽤하는 B2B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을 공략하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쉽게 포기하게 되는 상황들을 지켜보다보니 한번쯤 정리해 봄직한 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Disclaimer를 두자면, 엔터프라이즈 세일즈는 스타트업들에게는 넘사벽 같은 느낌이지만, 이미 수많은 기업들이 엔터프라이즈 세일즈를 통해 성장해 왔고, 그런 곳에서 영업을 하시는 베테랑 분들이 보시기에는 아래 내용은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또 다른 Disclaimer로서는, 세상 어느 곳이던 엔터프라이즈 세일즈 방식에는 큰 맥락의 차이는 없습니다. 제 경험으로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한국의 대기업 딜을 클로징하는 절차나 방법론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래 내용들은 큰 맥락은 같으면서도, 일본 특유의 기업문화적 차이를 사례 중심으로 조금 가미한 TMI한 설명일 수 있습니다. 아니 이런거까지 설명해?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이것조차도 몰라서 해메는 스타트업들도 너무 많이 보았기에 초보적인 부분까지 담아보았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기술 SaaS스타트업의 세일즈 모델중 리드(상담안건)이 발생했을 때부터를 바탕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 이유는 SaaS의 판매방식은 기존의 IT제품과는 조금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기업들도 이제는 SaaS제품을 도입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이에 대해 학습하고 적응해가며 도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상담을 만들기까지는 영업이라기 보다는 마케팅의 영역이고, 제품자체의 경쟁력과도 결부되는 문제이니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내용이 길어 총 3편으로 나누어 정리했고, 오늘은 그 첫 편입니다.
자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제가 생각하는 영업활동의 절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일반적인 상담플로우를 나타내는 내용과는 사뭇 다르다고 느껴지실 수도 있지만, 제가 엔터프라이즈 세일즈를 해보면서 의외로 걸림돌이 나타나는 상황을 중심으로 나열한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순서가 뒤바뀌는 경우도 있고, 동시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 아니면 건너뛰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매하는 제품이 비싸고, 고객내부에 영향도가 클수록 모든 사항을 꼼꼼히 집고 넘어가는게 엔터프라이즈 세일즈의 기본입니다.
많은 분들이 일본의 엔터프라이즈 딜의 리드타임이 길다는 것을 지적하십니다. 틀리기도 하고, 맞기도 합니다. 실제 미국이던 한국이던 엔터프라이즈 딜의 경우 리드타임이 반년 이상 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일본기업들이 좀더 신중하고 꼼꼼함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편으로, 굉장히 니즈가 명확하고, 대기업 특유의 절차를 잘 이해하고 대응하면, 일본에서도 꽤 큰 규모의 딜을 한달 안에 클로징하는 경험도 하실 수 있습니다. 저도 일본 최대 자동차제조사와 첫 미팅에서 계약완료까지 딱 1달이 걸린 적이 있습니다. 그 한 달이라는 시간 사이에 위에 언급한 모든 절차를 진행하고 마무리지었습니다.
리드인
축하드립니다. 실제 리드(Lead; 우리말로는 상담이라고 하는데 제가 편한 용어를 쓰다보니 다양한 외래어를 혼용하여도 양해 바랍니다)가 들어왔다는 것은 이미 시장에서 인지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의 제품의 마케팅채널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따라 리드는 문의폼일 수도 있고, 트라이얼 등록, 이메일 문의, 챗 문의 등등 다양할 것입니다.
리드가 들어왔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팔로우업을 하느냐입니다. 저희 펀드에서는 리드인부터 첫 컨택까지 5분 룰이 있습니다. 5분 룰을 못지키더라도 가능하면 당일 내에 연락을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연락의 최종목표는 최대한 빨리 데모미팅을 잡는 것입니다. 혹 SaaS공부를 열심히 하신 창업자분들 중 Discovery call이라는 것을 중시하는 분들이 계입니다. 소위 고객이나 deal qualification을 한다는 것인데, 기술적인 제품일수록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기술지식이 낮은 담당자가 가이드라인에 따라 통화로 몇가지 질문해 보고, ‘이 고객은 우리 제품이 맞지 않아요’라고 결론 내리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의외로 데모 미팅을 통해 고객의 과제를 듣는 과정에서 다른 곳에 문제의 원인이 있거나 의외의 간단한 workaround를 알아 챌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발이라는 커스텀 대응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SaaS에서 커스텀은 터부시되지만, 제품을 크게 건드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커스텀 지원은 계약금액을 끌어올리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데모
데모를 통해 확인해야 하는 내용은 잘 아시겠지만 BANT (Budget, Authority, Need, Timing; 예산, 결정권자, 해결과제, 도입시기)입니다. 다만, 고객들이 명확하게 답을 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번이 아닌 여러번의 미팅을 통해 그 과정중에 하나하나의 도출해 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Budget (예산)
SaaS제품의 경우는 가격이 공개되어 있는 경우도 많아 고객이 어느정도 예산일 지를 미리 예측하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제품에 따라서 유저과금이나 종량과금의 경우 실제 유저나 월간 평균 이용량이 어느정도 되는지 알아야하겠죠. 어느나라 대기업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대기업일수록 연초에 수립한 비용예산에 기반하여 구매를 합니다. 그러기에 이용하고자 하는 서비스가 예산 안에서 움직이는지 예산 밖에서 움직이는지를 알아채는 것도 중요한 협상재료가 됩니다. 예산 안에서 구매하는 것이라면 조금 빨리 딜을 클로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예산 밖이라면 정말 필요하기에 찾아온 것이라는 징후로 볼 수도 있습니다.
Authority (결정권자)
다른 나라에 비해 일본이 유독 복잡한 부분입니다. 한국과 많은 서구권 국가들이 톱다운 의사결정(Top-down deciding)을 하지만, 일본은 전세계에서 가장 합의적 의사결정(Consensual decidng)을 하는 국가입니다. 이 의미의 차이를 잘 이해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쉽게 풀이하자면, 미국기업이라면 부문에서 자기 예산 내에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부문장 내지는 팀장의 권한 내에서 의사결정을 빠르게 진행합니다. 물론 권한범위(Delgation of Authority)도 나름 명확히 정의되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무언가 하나 진행하기 위해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거의 모든 부서의 승인을 다시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한국 대기업에서도 품의제도라는 것이 있지만, 일본기업에서의 품의는 거의 모든 부서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즉 결정권자가 복수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들이 고객데모를 진행하실 때는 이용하는 미팅당사자의 buy-in만이 아닌, 미팅당사자가 내부의 모든 Stakeholder들을 설득하는 여정을 돕는다고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래 이미지에 의사결정에 대해 한국과 일본은 극명하게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저는 MBA를 다닐 때 이런 일본의 의사결정 구조와 품의절차에 대한 토론 중 이런 문화를 Risk (or responsibility) hedging system이라고 놀리기로 했습니다. 실제 미국의 톱다운 의사결정에서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결정권자가 책임을 지지만, 일본은 모두가 합의한 내용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당황스러운 상황도 생기거든요. 그래서 리스크 또는 책임 회피 제도라고 비아냥 거린 것입니다. 다만, 강점으로서는 많은 사람들이 신중하게 결정하는 만큼 리스크가 적고, 한번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는 번복이 없고, 뒤로 돌아보지 않고 일사천리로 진행한다는 강점도 있습니다.
Need (해결과제)
이 부분에서도 많은 한국SaaS 영업분들은 회사에서 주는 Playbook대로 회사 소개 및 제품 이용법 설명에 집중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봅니다. 어느 고객이나 어떠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제품을 찾고 있습니다. 그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계속 질문하세요. Keenan의 Gap Selling이라는 책에서는 고객에게 계속적인 질문을 함으로서 고객 스스로가 이 제품을 써야하는 당위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경험하게 만듭니다. 실제 고객과의 미팅시의 대화비율은 고객 60%가까이 되는 것이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Timing (도입시기)
회계년도에 대해 위에 언급하였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긴급성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에 클로징한 딜 중에서는 다른 제품을 도입검토하다가 보안요건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대체제품을 급박하게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단, 일본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서두르지 않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기가 7월 한 여름인데, 지금 고객과 대화를 하고 있으면서도, 실제 도입시기를 물어보면, 이듬해 1월이나 회계년도가 시작하는 이듬해 4월을 언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기운이 쫙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실제 정식 가동이고, 약간의 예산이 있다면 유상트라이얼이나 유상PoC를 제안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라고 하더라도, 뒤에서 설명한 법무팀과 재무회계팀이라는 산을 넘는데 몇 달 걸려 오히려 촉박하게 움직여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오늘 내용은 여기까지 입니다. 첫 뉴스레터이기에 짧게 데모까지의 내용만 담았습니다. 다음 뉴스레터에서는 NDA와 트라이얼/PoC, 그리고 제안에서 참고할 만한 내용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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