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딱 일인분의 다정만 주세요

제주 혼여행객이 가장 서러운 순간

2022.02.04 | 조회 5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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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분 갈치조림에 깃든 의미

제주에서 먹어보아야 하는 음식이라 하면 단연 갈치가 떠오른다. 갈치조림과 갈치구이, 하지만 이것들은 혼자 여행 온 사람에겐 사치다. 대다수의 음식점이 2인분 이상일 때만 팔기 때문이다. 가격도 비싸고, 이인분을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고. 제주까지 왔는데 이인분 이상 시켜야 하는 순간이 가장 서럽지 않을까.

영롱한 일인분 갈치조림
영롱한 일인분 갈치조림

갈치조림 일인분을 검색하니 나온 '부촌식당'. 마침 성산에 위치해있어 버스로 삼십 분이면 금방 간다. 혼여행족을 위한 일인석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다. 도민 맛집인지 양복을 입은 사람들끼리 점심을 먹고 있었다. 회사 일을 하던 사람들이 중간에 점심을 먹으러 나온 것 같았다. 제주 사투리를 쓰는 가족들도 보였다. 그들을 지나쳐 벽면에 위치한 일인석 테이블에 앉아 갈치조림을 준비했다. 정갈한 반찬과 뚝배기에 따뜻하게 끓여 나온 갈치조림을 먹었다.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로 가시를 발라 먹었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딱 그만큼의 다정함이 혼여행을 할 때 가장 소중하다.

 

혼자 여행 왔어도 감성 카페는 가고 싶어

혼자 여행을 하더라도 감성 카페, 맛집을 전전하고 싶다. 맛집은 밥만 뚝딱 먹으면 되지만 카페는 그렇지 않다. 음료를 다 비운 이후에도 자리에 머물러 노트를 끄적이기도 하고, 노트북을 만지기도 하고, 혹은 책을 읽기도 하는 곳이 카페니까. 하지만 사람이 많아 보이는 카페, 그것도 좌석도 적은 인기 많은 감성 카페에서는 괜시레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음료에는 자리세도 포함이라던데, 일인분의 자리세로는 부족할까 싶어 일부러 디저트도 같이 시킨다. 최대한 아메리카노를 천천히 마신다. 아직 다 마시지 않았다는 핑계라도 있어야 계속 눌러 앉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이 아니니 일인석 좌석이 얼마나 매출에 영향을 주는지를 모른다. 매출을 중요시 하는 사람이라면 혼자보다는 아무래도 다인이 더 좋을 거라 추측만 할 뿐이다. 일전에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한창 손님이 몰릴 타임에 이인 손님이 오면 매니저가 자리 없다며 돌려보낸 적이 있었다. ('락휴'처럼 노래방이 포함된 술집이라 가능했다.) 두 명은 돈이 안 된다는 그의 말에 손님에도 급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왕이면 많이, 안주도 많이, 술을 더 많이 마시면 좋고. 그렇다면 혼자 온 손님은 얼마나 각박한 대우를 받게 될지.

자연스럽게 인기가 많은 카페보다는 한적한 카페를 찾게 된다. 노트북을 하기에 좋다면 금상천화다. 감성보다 중요한 건 한적함이다. 카페 사장님께는 죄송한 말이겠지만 손님이 없을 수록 좋다. 테이블 회전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사람이 많은 곳에 가거나 좌석이 적은 곳에 가면, 사장님이나 알바생이 뭐라 말하지 않았는데도 나 혼자 눈치보게 된다. 그래도 4인석은 이왕이면 차지 하지 않는다. 소파 자리도 나의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구석에 있는 2인석, 콘센트와 가까운 좌석을 찾아 마치 이 카페의 일부분인마냥 동기화를 시작한다. 

오늘 들른 곳들은 모두 일인분의 다정함을 주었다. 혼밥을 할 수 있는 테이블이 있던 <북촌식당>, 혼여행족이 많이 찾는 '플레이스 캠프' 안에 있는 카페, <도렐>. 그리고 독립서점 '책방무사' 옆에 있는 카페인, <공드리>.

카페 도렐의 이 힙한 분위기라니... 영감이 솟는다!
카페 도렐의 이 힙한 분위기라니... 영감이 솟는다!

<도렐>은 안에 들어가자마자 노트북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편안함을 느꼈다. 숙소인 '플레이스 캠프' 자체가 혼자 여행 온 손님들이 많다보니 그런 거 같다. 옆자리에서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도 이 작업자들 사이에 낑겨 오랜만에 예술가적 면모를 보여볼까 했는데, 그만 노트북 충전기를 놓고 오고 말았다. 노트에 끼적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조용히 작업하기 좋은 카페라 다음에 또 들르지 않을까 싶다. 도렐을 만약 가게 된다면 옆 건물 소품샵 '페이보릿'도 함께 추천한다. 제주와 홍대가 섞인 듯한 미묘한 힙함이 마음에 든다.

이 커피는 구독자 '마들렌'님께서 주신 커피입니다! 감사해요!
이 커피는 구독자 '마들렌'님께서 주신 커피입니다! 감사해요!

<공드리>는 '책방무사' 옆에 있는 카페이다. 독립서점 투어를 하는 중이라 들른 곳인데, 마침 조용한 카페라길래 들렸다. 들어가니 귀여운 강아지가 사람을 맞이해주고 있었다. 강아지들은 유독 무릎이 드러난 나의 찢청(찢어진 청바지)를 좋아한다. 드러난 무릎을 강아지들이 핥을 땐 조금 곤혹스럽다. 나도 모르게 무릎에 꿀이라도 발라져있었나. 4인석 테이블에 남자 둘이서 책을 읽고 있는 걸 보고서 "여기구나!"하는 감탄을 속으로 했다. 대화하는 것조차 조심히 해야 할 거 같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나도 가져온 책을 읽었다. 책방무사에서 책을 사고, 그 옆 카페에서 읽으면 딱일 거 같았다. 아이스아메리카노와 당근케이크 세트가 8천원이다. 이정도면 적당한 자리값이 아닌가 싶다.

성산읍의 광치기해변
성산읍의 광치기해변

너무 과한 다정일 필요는 없다. 내가 잠깐 머무르는 한 두 시간 동안만, 편안하게 있을 수 있을 정도의 일인분의 다정함. 딱 그정도가 제주에 원하는 전부이다. 갈치조림을 먹고 싶은데 이인분 이상이라 서럽지 않도록 일인분을 마련해주신 사장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 감사는 음식값 계산과 지인 추천으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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