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주간, 첫번째 편지, 에세이.

2021.03.03 | 조회 1.15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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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서재

정지우 작가가 매달 '한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바다에 관해서는 너무 많은 글을 썼다. 서울에 처음 살기 시작한 스무살 때부터, 나는 바다를 그리워했다. 사실, 십대에만 하더라도 바다가 있는 도시에 살았는데, 내가 바다를 그리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스무살이 되고, 홀로 단칸방에 앉아 창밖을 바라볼 때면, 거의 언제나 바다가 생각나곤 했다. 특히, 나는 먼 도로에서 들려오는 자동차들이 뒤섞여 내는 부연 소음을 좋아했는데, 그 소리가 마치 바닷가의 먼 파도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홀로 방에 있을 때면, 내 방이 마치 바다로 둘러싸인 섬과 같다고 상상하곤 했다. 볕 좋은 어느 해안가의 민박집을 하나 빌려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정말로 그렇게 느껴져서, 그 시절을 생각하면, 어느 후미진 골목의 단층짜리 작은 방이 아니라, 고요한 바닷가의 작은 집에서 살았던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처음에는 바다가 너무 그리워, 한달에 한번씩은 부리나케 고향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어머니는 그만 좀 오면 안되겠냐며 장난스럽게 말하곤 했다. 고향에만 가면,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바다로 드라이브를 가자고 조르곤 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렇게 바다와 멀어진 곳에서, 바다를 그리워 하며 살던 일도 어언 십여년이 지나고, 나는 다시 고향 바다로 돌아갔다. 다만, 그때는 혼자가 아니었다. 막 신혼을 시작한 상태였고, 머지않아 아이도 태어났다. 그렇게 나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바다 곁에서 혼자가 아닌 셋의 삶을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우리를 마술처럼 치유해주던 순간들이 있었다. 사소한 일로 다투고, 감정이 틀어지고, 입을 앙다문채 서로를 노려보기만 하다가도, 우리는 집앞으로 나서 걸으면 모든 게 괜찮아지곤 했다. 같이 걸으면서, 같은 바람을 숨쉬고, 같은 하늘을 좋아하고, 같은 햇빛에 따뜻한 예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으면, 그 순간이 충만하게 느꼈다. 더불어 우리 삶을 늘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어주었던 건 주말이면 떠나곤 했던 바다였던 듯하다. 이삼년간 그곳에 살면서 바다를 수십번은 찾아갔다.

우리의 상황에 대한 불안, 일주일간 쌓여가곤 하는 답답함, 함께하는 생활에서 피어오르곤 하는 어떤 누적되는 불만들은 바다를 한번 다녀오면 대개 눈녹듯 사라졌다. 그래, 우리는 바다 곁에 살면서, 이렇게 좋은 바다를 어느 때나 만날 수 있으니, 우리 삶을 괜찮아,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도 그래도 우리 삶은 좋은 삶인가봐, 하고 느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사실 인생의 많은 문제는 '기분' 문제였다. 우리 삶이 잘못된 것이라 느껴지면 힘들었고, 우리 삶이 좋은 것이라 느껴지면 살만했다. 그런데 바다를 찾아가서 커피 한잔 마시고, 소시지와 빵을 썰어먹고, 아이와 모래사장에서 게를 잡고, 아이를 재우며 해안가를 걸으면, 우리 삶이 좋은 것이라 느껴졌다. 그렇게 바다로부터 충만을 얻었다.

다시 그 시절도 지나고,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나는 가끔 이 도시가 빽빽한 건물들과 자동차들로 사방으로 곽 막혀, 그 갑갑함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는 기분이 휩싸이곤 한다. 이런저런 공원도 다녀보고, 한강에도 나서보고, 비싼 돈을 들여 높은 곳의 전망도 찾아보지만, 마음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아 괴로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제 정말 바다를 봐야할 때가 왔구나, 생각하게 된다. 나를 옥죄고 있는 도시의 삶이 내 삶을 나쁜 것이라 느끼게 만드니, 바다를 봐야겠구나, 생각한다. 그러면 당장 내일이라도, 아이를 뒷좌석에 태우고 바다로 달려가야지, 아내랑 이번 주말은 바다에 가자고 이야기해야지, 생각한다. 그렇게 바다를 보고 오면, 정말 삶이 괜찮아진다. 내 삶이 좋은 것이라 느껴진다.

어쩌면 삶에는, 그렇게 내 삶이 좋아지는, 바다 같은 무언가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삶에는 바다같은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바다같은 무언가가 있어야만, 삶을 좋은 것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꽤나 근래에야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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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주간을 시작합니다. 사실, 바다에 대해서는 썼던 글도, 쓰고 싶은 글도 너무 많아서 언제 끝날지 잘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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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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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정

    0
    about 3 years 전

    작가님의 그 바다 같은 무언가,, 오늘의 저에겐 그 무언가가 바로 가족인 거 같아요. 결혼을 준비하며 설레는 마음과 동시에 드는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 그런 바다같은 가족을 오늘도 더욱 사랑해야겠네요 :) 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합니다 작가님!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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