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열다섯 번째 한 권, 소개 편지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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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번째로 고른 책은,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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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을 하면, 먼저 헤르만 헤세를 떠올립니다.
그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는데, 제가 스물한살 가을 무렵에 처음으로 헤르만 헤세에 빠져들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학교의 과제며 시험이며 하는 것에 시달리며 마음 편히 책 한권 읽기조차 쉽지 않다고 느낄 무렵, 저는 처음 휴학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어찌되었든, 한번 실컷 읽고 써보자 생각했던 것이죠. 당시 '작가'라는 꿈을 이루고 싶던 열혈 청년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휴학을 하고, 과외를 하면서 생활비 정도를 벌던 일을 제외하면, 거의 읽고 쓰는 일만을 했습니다. 특히, 고전문학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을 때였는데, 헤르만 헤세에 그야말로 푹 빠져버렸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마 저는 제 자신이 헤세의 분신이거나, 헤세가 저의 전생쯤이었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헤세의 표현 하나하나에 몰두하여 공감했고, 헤세의 감수성에 푹 젖어버렸던 시절이었죠.
지금에서 돌이켜 보면, 그렇게 어떤 꿈과 욕망을 위해 학교를 잠시 쉬면서 한 시절이라도 '올인'할 수 있었던 그 마음이 그립기도 하네요.
어쩌면 책임질 것이 적었던 시절의 특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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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소설은 어딘지 가을과 어울리는 데가 있습니다.
헤세가 삶을 관조하는 태도, 늘 여정을 떠나는 주인공들, 하루의 끝에서 석양을 맞이하듯 삶의 황혼기를 다루는 점 같은 걸 생각해보면, 한 해의 황혼기라 할 수 있는 가을의 정서가 헤세의 소설 곳곳에 묻어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헤세의 소설 대부분을 무척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유독 좋아했습니다.
무엇보다 <데미안>같은 소설에 비해, 스토리텔링과 인물 중심이라는 점도 컸던 것 같습니다. <데미안>이 꽤나 관념적인 이야기들을 장황하게 늘어놓곤 하는 것에 비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그야말로 재밌는 이야기에 더 집중한 느낌에 가깝죠.
헤세는 소설로 철학을 한다고 할 정도로,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비교적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헤세의 소설을 추천할 때도, 다소 두껍지만 재밌게 넘어가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많이 추천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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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흔히 <지와 사랑>으로도 널리 번역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제목이 좋지 않나 싶습니다.
그 이유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 담긴 뜻을 각각 '지성'과 '사랑'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작중 두 주인공의 이름 자체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이기 때문입니다.
헤세의 이 소설이 철학적인 사상도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 두 인물의 어린 시절부터의 우정과 사랑을 담은 기나긴 여정이 핵심이라는 걸 생각해볼 때, 역시 이 두 주인공이 제목으로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
깊어가는 가을, 소설 한 권을 읽기에 좋은 나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가을만 되면, 꼭 소설 한 권 정도는 읽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라는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빠져들고 있습니다.
구독자님께서도, 소설 한 권 읽어내고 올해를 끝마쳐보면 '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럼, 책과 함께하는 가을 되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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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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