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한 권, 세번째 편지, 한 권 답장.

2022.08.29 | 조회 1.36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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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서재

정지우 작가가 매달 '한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구독자님,

첫번째 한 권, 세번째 편지를 전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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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지로 '첫번째 한 권' 이야기는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께 좋은 독서 경험이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책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취향이 천차만별이기도 하지만, 시절마다 다르게 다가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책은, 스무 살에 만났더라면 틀림없이 먼지만 쌓인 채 책장 한 구석에 방치되었을지 모르지만, 서른 살에 만난다면 인생의 책이 되기도 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비일비재하겠죠.

그래서 저는 책을 조금 급하게 읽으려고 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아직 나의 욕망이나 염원이 남아 있을 때, 아직 '이 시절의 나'일 때, 이 시절 읽고 싶은 책을 읽지 않으면 영영 읽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소개해드리는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는 책일 수 있어도, 아마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이 시절'에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는 책일 겁니다. 인생에 절대적인 건 별로 없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이 시절 저의 마음과 다른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한 번 정도는 만난 모양이라, 답장이랄 것을 받게 되었습니다. 

보내주신 리뷰를 아래와 같이 동봉합니다. 

 

*

《전념》, 나와 세상을 바꾸는 힘에 관하여

 

이 시대는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찾고 추구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핸드폰만 열면 흥미를 끌 만한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고 재미를 자극하는 영상으로 가득하다. 볼거리가 넘쳐나 많은 사람이 진득하게 무엇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클릭만 하다가 시간을 보낸다.

이것은 우리의 집중력을 저해한다. 점점 짧아지는 유튜브 영상 길이만 보아도, 사람들이 10분 이상을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시청자가 영상 초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중간에 영상을 멈추지 않도록, 작업해야 한다고 유튜버들이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걸 이 책의 저자는 ‘여러 선택지를 열어두는 것, 이것을 지금 세대를 정의하는 특징’이라고 말한다. 폴란드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러한 특징을 두고 ‘액체 근대’라고 표현했다. 액체 근대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끊임없이 탐색만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끊임없이 탐색만 하는‘무한 탐색 모드’에서는 ‘전념하지 않는 문화’와 ‘전념하기’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며, 무한 탐색 모드의 장. 단점을 알려준다. 전념하지 않는 문화에서 얻을 수 있는 해방과 전념하기에서 얻을 수 있는 헌신에 관해서도 설명한다.

여러 선택지를 열어두는 것. 그러니까 전념하지 않는 문화가 도움이 되는 연령대는 많은 경험이 필요한 20대 전. 후를 말한다. 그 이후의 전념하지 않는 문화로 인해 얻지 못하는 것을 <제2장> ‘전념하기 반문화’에서 전념하기 영웅들의 예로 보여준다. 전념하기 반문화란, 말 그대로 전념하지 못하는 문화이다.

여기서 ‘전념’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전념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쓰다.’이고 유의어는 매달리다, 몰두하다, 열중하다, 등이 있다. 이것은 어떠한 일에 깊이 파고들거나 빠지는 몰입상태와 비슷한 결을 갖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념하기는 몰입상태 그 너머에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일을 깊이 파고들다 그러지 못하게 되면 몰입상태를 벗어나지만, 전념하기는 하기 싫은 순간에도 그 일을 해내며, 장인정신으로 긴 시간 같은 일을 지속해야 하기에 그러하다.

이때 요구되는 필수요소는 ‘목적의식’이다. <제2장>에서는 목적의식을 갖고 한 가지 일에(관계에) 전념했을 때 후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 유대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오랜 관계가 주는 편안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더불어 전념하면 할수록 깊이를 알 수 있고, 그 깊이감이 주는 기쁨은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들지 않게 한다는 걸 알려준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이 원하는 건 돈과 시간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그러나 현실은 대부분 시간의 노예로 살며 돈을 좇는 대에 머물러 있다. 그러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실패를 경험하고 한계에 다다라, 어차피 열심히 살고 노력해도 안 될 거라는 비관을 만나게 되면 좌절하게 된다. 이것은 자기 비하를 만들고 심해지면 사회와 타인을 향해 혐오와 증오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어떠한 것을 해야 하는지, <제3장> ‘액체 세계 속 고체 인간’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액체 사회에서 고체 인간이 되어 전념하는 것이다. 여기서 고체 인간이란, 전념하는 사람을 뜻한다.

액체 사회에서 고체 인간이 되기란 그리 녹록지 않다. 선택지 열어두기 문화는 경제, 도덕, 교육 등 다양한 생활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p.233)

그럼에도 저자는 한 가지 일에 전념하려면 분명한 목적의식뿐 아니라 헌신해야 함을 강조한다. 우리도 약간의 노력을 꾸준히 유지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전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선택지 열어두기 문화에 있는 경제, 도덕, 교육이 우리에게 미치는 좋은 영향과 그렇지 않은 영향에 대해 말하고 액체 사회에서 어떻게 고체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알려준다.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현재에서 나아가고 싶다면, 어떠한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싶다면, 스스로 바뀌길 바란다면,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세상이 만들어낸 홍수에 휩쓸려 가지 않도록 무한탐색 모드를 멈추어야 한다. 한 가지 일에 목적의식을 갖고 헌신하는 것으로 전념해야 한다.

책에서 말하는 전념하기의 영웅들이라고 하면 무언가 거창하고 대단해 보이지만,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40년이 넘도록 한 자리에서 한가지 업종에 몰두하는 부모님, 20년간 혹은 그 이상의 세월을 견디며 글을 쓰는 여러 작가님은, 내 곁에 있는 전념하기의 영웅들이다. 언젠가 들었던 촛불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 처음 들었던 촛불과 함께 자리한 모든 사람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마음이 되어 전념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이 사회는 다양한 일을 잘해 낼 수 있는 ‘멀티 인간’, ‘만능주의’를 추구했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여러 가지 일을 해내려면 전념하기를 통한 깊이감보다는 폭넓은 지식과 경험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전념하기의 영웅들은 과거에도 사회가 추구하는 인간상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존재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한 가지 일에 전념할 때 ‘불안’과 ‘두려움’이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멀티 인간,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원하는 일에 ‘전념’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로 판도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부모님께서 한 가지 일에 40년이라는 세월을 들여 전념하며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비단 목적의식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부모님을 통해 배운 것은 그 일을 사랑하고, 그 일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그 사랑이 빚어낸 건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놓는 ‘헌신’이었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적당한 거리를 두는 ‘느슨한 연대’와 자기 앞가림만 잘하면 된다는 ‘개인 주의성’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잃는 것 또한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유튜브에서 강조하는 것은 독서이다. 그러나 아무리 책을 읽어도, 아무리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을 보아도, 책에서 얻은 무언가를, 영상에서 본 무언가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지 못한다면 변화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저마다 얻고자 하는 게 다르겠지만, 내가 얻은 것과 실천하려는 것을 말해 보고자 한다. 지난 3년간 취미라고 말하며 이어온 독서와 글쓰기였다. 이제는 취미라는 말 자리에 뚜렷한 목적의식을 세우고 오랜 기간 헌신하는 것, 독서와 글쓰기를 함께 하는 사람들과 느슨한 연대를 멈추고 촘촘한 유대를 쌓는 것이다. 돈보다는 특정성을, 무관심보다는 명예로움을, 발전보다는 애착을 갖고자 한다. 그렇게 나의 일과 연결된 사람을 사랑하고 나의 세계로 초대하는 것이다.

한때는 자기계발서만 주구장창 읽었던 시기가 있었다. 이 책과 비슷한 결을 가진 잘 알려진 책이 있다. 이것은 책을 여러 권 읽을 필요가 없다는 말과도 같다. 한 권을 제대로 읽고, 온전히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무언갈 발견하고, 삶에 적용하고자 노력하고, 실천한 걸 유지하려는 안간힘만이, 스스로 변화의 길로 안내할 것이다. 변화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려 한다면, 지름길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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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을 보내주신 분 - 이수아

두 아이가 아가 티를 벗고 어린이가 되어가던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내 이름이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래 나를 잊고 살았다는 걸 알았다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아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외로움을 마주하는 자세, 공저 오직 한 사람, 나의 너에게  7권이 있다.

인스타 : @blackswan1747

페이스북 : facebook.com/writeris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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