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주간, 다섯번째 편지, 영상.

2021.03.13 | 조회 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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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인이 바닷가를 걷고 있다. 그에게는 삶이 그리 많이 남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쩐지 그의 주변에는 그의 사람이라고 할 법한 이들도 거의 남아있지 않을 것 같다. 아마 그는 혼자 남았고, 삶의 끝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바닷가를 걸으면서, 아주 오래 전 사랑했던 어느 여자를 떠올린다.

Lucy Rose의 <Shiver>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 영상에 담긴 내용은 이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이 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눈길을 돌려버리곤 한다. 신나게 웃으며 거닐고 있는 어느 젊은 나날이라는 것을 필연적으로 잃어버려야만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느껴져서, 가끔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어떻게 보면, 꽤나 클리셰적이고 단순한 영상이지만, 내 마음 깊이 적중하는 노래가 그 위에 깔리니,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진실을 강제로,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느낌이 든다.

한 때 이 노래를, 특히 이 노래 속에 담긴 가사를 너무 좋아했다. 국내에 번역된 가사들을 찾아보았지만,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 마음에 맞게 번역을 해보기도 했다.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네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을 사랑했어I loved the way you looked at me"와 "너를 통해 느끼던 그 세계가 그리워I miss the way you made me feel"라는 부분이었다. 그래, 사람은 사랑을 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방식에 구속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세계를 느끼는 방식을 사랑하게 된다.

이별이 슬픈 것은 나를 바라봐주던 시선의 상실 때문이다. 아무도 나를 온전히 바라봐준다고 느끼지 못할 때, 사랑하는 사람 만큼은 그래도 나의 진심을 알고, 나의 좋은 점을 알고,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 믿어주며 나를 바라본다. 이별은 그렇게 나를 바라봐주던 시선을 통째로 앗아간다. 그 자리에 남은 건, 더 이상 볼품 없는 나, 누구에게도 그와 같이 보여질 수 없는 나이다. 나는 나를 더 좋은 방식으로 바라봐줄 누군가를 찾아 나서야 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또한 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노래, 그가 좋아하는 풍경,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나도 알아간다. 그가 가치있는 삶이라 믿는 것, 그가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 그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에 나 또한 감화된다. 그를 잃고 나면, 내게는 그의 취향들이 남는다. 그의 세계에 대한 취향이 남고, 그 취향 때문에 그를 그리워한다.

노인은 삶이 저물어갈 무렵, 오래 전의 바닷가를 찾았다. 그곳에는 그를 바라보던 한 여자가 있었고, 그는 그가 느끼던 세계를 사랑했다. 어쩌면 그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 그 자신이 그리 매력적인 사람이라든지 좋은 사람이라고는 믿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 여자와 함께가 아니었다면, 이런 외진 바닷가 같은 건 좋아한다고조차 느끼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는 삶의 마지막에, 그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과, 그녀가 사랑하던 그 바다를 한번쯤 다시 되찾고 싶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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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료를 보내주신 분들께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하면 좋을지 계속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3월 말이나 4월초쯤에 ZOOM으로 '독서모임 번개' 또는 '작가와의 만남 번개'를 열어서 초대해드리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독서모임을 연다면 바다와 관련있는 장 그르니에의 <섬>을 함께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작가와의 만남을 연다면 글쓰기나 인생살이 같은 이야기를 소소하게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되겠네요. 제 메일이나 댓글로 의견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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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직접 번역한 것이라 다소 의역이 섞여 있거나 어색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Lucy Rose - Shiver

We broke everything that was right

우리는 좋았던 모든 것들을 산산조각 냈어

We both enjoyed a good fight and we solved

우리 둘은 각자 승리를 자축했고 타결했지

All the holes we had to breathe to make the other one leave

우리가 서로를 떠나보내기 위해 만들어 두었던 무수한 숨구멍들

And I loved the way you looked at me

네가 나를 바라보는 그 방식을 사랑했어

And I miss the way you made me feel

너를 통해 느끼던 그 세계가 그리워

When we were alone

오직 우리밖에 없었을 때

When we were alone

오직 우리 뿐이었을 때

So I'll shiver like I used to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떨고 있을 거야

And I'll leave him just for you

그리고 너를 위해 그를 떠날거야

And I'll shiver like I used to

그리고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떨고 있겠지

Just for you

오직 너를 위해

And we stole every moment we had to make the other one feel bad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주었던 모든 순간들을 슬며시 지나가려고 했어

And we hoped that we could be what we knew

그리고 우리가 알던대로 될 수 있을 거라고 희망했지

We'd never turn out to be real

그러나 그 희망은 결코 현실이 되지 않았어

And I loved the way you looked at me

네가 나를 바라보는 그 방식을 사랑했어

And I miss the way you made me feel

너를 통해 느끼던 그 세계가 그리워

When we were alone

오직 우리밖에 없었을 때

When we were alone

오직 우리 뿐이었을 때

So I'll shiver like I used to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떨고 있을 거야

And I'll leave him just for you

그리고 너를 위해 그를 떠날거야

And I'll shiver like I used to

그리고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떨고 있겠지

Just for you

오직 너를 위해

And if we turn back time

만약 우리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Could we learn to live life

우리는 제대로 살아내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And if we turn back time

만약 우리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Could we learn to live life

우리는 제대로 살아내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So I'll shiver like I used to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떨고 있을 거야

And I'll leave him just for you

그리고 너를 위해 그를 떠날거야

And I'll shiver like I used to

그리고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떨고 있겠지

Just for you

오직 너를 위해

Like I used to

늘 그래왔던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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