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삼형제, 별이와 달이 그리고 벅이 이야기
1
햇살이 늘 따뜻하게 비추는 작은 섬에 거북이 삼형제가 살고 있었어요. 삼형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태어났죠. 눈을 떴을 때는 서로 뿐이었고, 그래서 이름도 서로에게 지어주었어요. 별을 좋아하는 별이, 달을 좋아하는 달이, 그리고 자신이 거북이로 태어난 것을 좋아하는 벅이가 세 형제의 이름이었죠.
밤은 별이의 시간이었어요. 별이는 늘 새로운 별을 찾는 걸 좋아했죠. 밤이 되면, 잠도 잊고 밤하늘의 별들을 찾느라 새벽까지 눈을 뜨고 있었어요.
"저기 좀 봐! 또 새로운 별이야!"
별이가 그렇게 소리칠 때는 늦은 새벽이었기 때문에, 달이와 벅이는 주로 잠을 자고 있었어요. 그래서 별이에게 어서 잠이나 자라고 타박하기 일쑤였죠.
그러나 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밤 별을 찾았어요. 계절마다 바뀌는 별자리를 보며, 언젠가 새로운 별을 찾아, 별들이 사는 세상으로 떠날 거라고 생각했죠.
낮은 달이의 시간이었어요. 달이는 해가 높이 떠오르면, 비로소 몸을 일으키며 열심히 주변 바다를 탐험했죠. 산호초 사이에서 조개를 찾아내고, 물고기들이 알을 낳는 곳을 발견했어요.
별이는 밤새 별을 찾느라 쿨쿨 자고, 벅이는 평화롭게 낮잠을 즐기는 시간이었죠. 그럴 때면, 달이는 주변을 부지런히 탐사하고 조개를 주워오거나 물고기를 잡아와 말렸어요.
"언제 먹이가 다 사라질지 몰라. 언제 배고플지도 모르지. 그러니 항상 열심히 먹을 것을 모으고, 새로운 사냥터를 찾아두어야 해."
달이가 그렇게 말할 때면 별이는 하품을 하며 대답했어요.
"주변에서 먹을 게 없어지면 떠나면 되잖아. 새로운 섬에서는 새로운 별이 보일지도 모르고 말이야. 상상만 해도 너무 설레는걸."
그럴 때면, 벅이도 졸린 눈으로 말했죠.
"달아, 너는 너무 걱정이 많아. 설마 정말 굶어 죽기야 하겠어? 그보다 이 따뜻한 햇살을 좀 더 느껴보렴. 따끈따끈한 행복이 온 몸에 가득 차올라."
달이는 그런 별이와 벅이가 못마땅했지만, 자신이라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루를 마감할 때 만나는 달님은 언제나 달이에게 큰 위안이 되었죠.
항상 일정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다시 동그랗게 가득 찬 상태로 돌아오는 달님을 따라, 달이도 매일 성실하게 일하는 걸 좋아했어요.
아침은 벅이의 시간이었어요. 벅이는 해가 뜨는 걸 바라보며 햇빛을 받는 걸 좋아했죠. 햇살이 점점 따뜻하게 몸을 데워갈 때면, 세상에서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거라 느꼈어요.
아침에 실컷 햇살을 쬐며 바다를 헤엄치고 나면, 나른한 오후가 찾아왔죠. 낮이면 벅이는 늘 낮잠을 즐겼어요. 따뜻한 햇살 아래의 낮잠만큼 행복한 게 없었죠. 밤새 별을 찾느라 쿨쿨 자고 있는 별이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도 자장가처럼 들렸죠.
"나는 지금이 제일 행복해. 이 행복을 즐기는 게 가장 중요한 거야. 고생해서 별은 찾아서 뭐해? 미래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날지 모르는데 물고기는 왜 그렇게 열심히 모아두는 거야? 너희도 나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
벅이는 늘 반쯤 졸면서 그런 말을 하곤 했어요. 별와 달이는 그런 벅이를 귀여워해주었지만, 조금 한심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가끔은 너무 행복해 보이는 벅이가 부럽기도 했지만 말이에요.
2
어느 밤, 별을 찾던 별이는 하늘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잘 보이던 별들이 보이지 않았죠. 하늘의 절반 정도는 어두컴컴한 어둠에 가렸죠.
"얘들아, 일어나봐. 하늘이 이상해. 하늘이 부서진 것 같아. 별들이 사라졌어."
별이가 하도 깨우는 바람에 달이가 일어났어요.
"뭐가 이상하다는 거니? 달님이 저렇게 그대로 있는데 말이야."
달이는 다시 잠에 들었어요. 벅이는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나는 자는 게 제일 좋아"라며 중얼거릴 뿐이었죠.
별이는 별들이 절반이나 보이지 않아 무척 초조하고 불안했지만, 내일은 잘 보일 거라 생각하며 잠에 들었어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난 벅이는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오늘은 해님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죠.
"얘들아, 큰일이야. 오늘은 해님이 떠오르지 않아. 이런 날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야!"
별이는 밤새 별을 찾느라 못 일어났지만, 달이가 일어났죠.
"정말이네, 이런 날은 없었는데 이상하구나. 내가 찾은 사냥터에 가봐야겠어."
달이가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산호와 해저동굴 사이를 찾아다녔어요. 다행히 남아 있는 물고기들이 있었지만, 많은 물고기들이 어디론가 재빠르게 헤엄쳐 떠나가는 중이었죠.
"정말 큰일이야. 물고기들이 도망가고, 조개들이 숨고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하늘은 온통 모래 같은 회색빛으로 뒤덮여 있었어요. 그제야 별이도 깨어났죠.
"이것 봐, 하늘이 이상해졌잖아. 하늘이 부서진 게 틀림없어."
별이와 달이, 벅이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어요. 점점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죠. 아직 밤이 될 시간도 아닌데 점점 어두워졌어요. 먹구름이 몰려왔죠.
"저기를 봐, 바다 위에 물이 떨어지고 있어! 고래가 하늘을 거꾸로 날고 있는 걸까?"
별이의 말에, 달이와 벅이가 모두 놀랐어요. 정말 하늘에서 물줄기가 엄청나게 떨어지고 있었죠.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거북이 형제들은 비가 내리는 걸 처음 봤던 거죠.
"다들 껍질 속에 숨어!"
달이가 말했어요. 거북이 형제들은 모두 섬 중앙으로 모여 각자의 등껍질 속에 숨었죠. 곧 껍질을 두드리는 엄청난 빗소리가 들렸어요. 세찬 바람소리도 들렸죠. 거북이 형제들은 무척 무서웠지만, 폭풍우가 지나갈 때까지 그렇게 버텨냈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비가 그치자 벅이가 먼저 나와 세상을 둘러보았어요. 붉은 하늘이 조금 보였죠.
"해님이 돌아왔어!"
바다에는 눈부신 노을이 지기 시작했어요. 벅이는 그 풍경에 넋을 잃고 수평선만 바라보았어요.
"내가 모아둔 물고기들이 모두 사라졌어. 이제 어떡하면 좋아? 바다 속 물고기들도 모두 도망갔으면 어떡하지? 우린 굶어 죽을 거야!"
달이가 자리에서 울기 시작했죠.
"괜찮을 거야. 같이 찾아보자. 내가 먼저 바다 속을 살펴볼게."
별이가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어요. 물속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산호들은 그대로 있었고, 물고기들도 숨어 있는 게 보였어요. 별이가 몇 마리를 잡아서 올라왔죠.
"물고기들은 아직 남아 있어.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달아. 내일 다시 생각해보자."
거북이 형제들은 같이 물고기를 나눠 먹었고, 곧 밤이 왔죠. 별이는 홀로 깨어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봤어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별들은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어요. 별이가 밤하늘을 보며 말했죠.
"별들아, 너희들을 보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아 안심이 되는구나."
3
다음 날, 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벅이는 아무 걱정 없이 다시 행복해졌어요. 자신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감싸는 햇살이 예전처럼 좋았어요.
달이는 더 부지런하게 주변을 탐색하고, 조개와 게, 물고기들을 모아 왔어요. 만약 또다시 그런 폭풍우가 들이닥칠 때를 대비해서 먹이들을 숨길 구멍도 열심히 파기 시작했죠. 땅 속 깊이 먹이들을 숨겨두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별이는 그날 이후로 어딘지 조금 멍해졌어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별들은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것인지가 무엇보다 궁금했죠. 아마 밤하늘에는 폭풍우가 치지 않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신도 그런 밤하늘에 갈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죠.
거북이 형제들은 때로는 같이 놀기도 하고, 같이 먹기도 했지만, 조금씩 각자 따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벅이는 더 혼자만의 행복에 빠져 들어갔고, 달이는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을 만큼 열심히 물고기를 잡아 저장하기 시작했고, 별이는 계속 밤하늘로 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죠.
그러던 어느 날, 다시 폭풍우가 몰려왔어요. 거북이 형제들은 서로 모여 껍질에 숨은 채로 폭풍우를 버텨냈죠.
이번에도 폭풍우가 지나갔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는데, 섬에 있던 나무가 부러진 게 보였어요. 벅이가 해먹을 걸어놓고 늘 누워있던 나무였죠. 벅이는 엉엉 울다가, 해먹을 주워들었어요.
"엉엉, 내 나무가 부러졌어. 그래도 다행히 해먹은 무사하구나. 다른 나무에 해먹을 설치하면 되겠어."
달이가 땅을 파서 모아둔 먹을거리들은 잘 지켜졌어요. 달이는 확신했죠. 앞으로 계속해서 더 많은 구덩이를 만들어서 더 많은 식량을 저장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또 부러진 나무를 보면서 생각했어요.
"저 부러진 나무로 집을 만들어야겠어. 다시 폭풍우가 찾아오면 숨을 수 있도록 말이야."
별이는 이번에도 변함없는 별들을 보며 더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특히, 유난히 밝은 별을 넋 놓고 바라보곤 했죠. 저 별은 어찌 같은 자리에서 항상 변함없이 저토록 밝을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나는 별들을 향해 떠나야겠어. 별들이 있는 곳에는 이런 폭풍우가 없는 게 분명해. 내가 별들이 있는 곳을 찾으면, 너희들을 데리러 올게."
별이가 떠난다는 말에 벅이는 목 놓아 울었어요. 달이는 절대 하늘에 갈 수 없다면서, 별이를 만류하려고 했죠.
"나는 반드시 별들이 있는 곳에 가겠어. 가장 밝은 별을 따라가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어. 반드시 돌아올게, 얘들아."
별이는 달이와 벅이를 꼭 안아주고, 둘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어요. 이윽고 가장 밝은 별이 하늘에 뜨자, 천천히 바다로 나섰어요.
4
거북이 형제들은 원래 수심이 낮은 산호초 지대에 살고 있었어요. 별이는 멀리 떠날수록, 점점 수심이 깊어지는 걸 보면서 두려움을 느꼈죠. 바다 아래는 갈수록 깜깜해져서 그 깊이를 알 수 없었어요.
별이가 가장 놀란 때는 고래를 직접 봤을 때였죠. 고래를 본 건 멀리서 물을 뿜어대는 것 밖에 없었는데, 직접 보니 상상도 하지 못했을 만큼 거대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별이는 고래의 눈동자 크기밖에 되지 않았죠.
"안녕, 처음 보는 거북이구나. 어디로 가니?"
"저는 별빛을 따라가고 있어요. 별들이 사는 곳에 가려고요."
고래는 껄껄 웃었어요.
"너 같은 거북이는 처음 보는구나. 새우를 나누어줄테니 배고플 때 먹으렴."
고래는 별이에게 새우를 나누어 주었어요. 별이는 참 착한 고래라고 생각했죠.
별이가 가장 무서웠을 때는 상어 떼를 만났을 때였죠. 상어 다섯 마리가 별이 쪽으로 냉큼 달려왔어요. 믿을 수도 없을 만큼 빠른 속도였죠. 날카로운 이빨이 눈앞에 다가오자 별이는 깜짝 놀랐어요.
"이런, 거북이로군. 나는 또 개복치인 줄 알았지 뭐야. 거북이는 맛이 없는데."
"사, 상어님. 살려주세요. 저는 별들이 사는 곳에 가는 길이에요. 도착하면, 상어님께도 별들이 사는 곳을 알려드릴게요."
상어들은 별이를 놀리며 비웃었어요.
"제정신이 아닌 거북이로군! 이런 거북이를 먹었다가는, 우리도 정신이 이상해질지 몰라. 참치나 잡아먹자."
다행히 상어들은 별이를 지나쳐 갔어요. 별이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한숨을 푹 쉬었죠.
별이는 밤이면 수면 위로 올라가, 자신이 똑바로 향해 가는지 늘 확인했어요.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늘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죠. 별이는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헤엄쳐 갔어요.
한편, 달이는 쓰러진 나무로 집을 지었어요. 언젠가 별이가 돌아올 것을 생각해서, 세 거북이 들어가기 딱 좋은 크기로 만들었죠.
또한 조개, 게, 물고기를 잡아서 말린 다음 여러 구덩이에 나누어 보관했어요. 커다란 조개껍데기를 주워와 구덩이의 뚜껑도 만들었죠.
먹이가 많이 묻혀 있다는 걸 알자, 갈매기들이 섬에 찾아오기도 했어요. 구덩이를 뒤져 먹이를 빼앗아가기도 했죠. 그래서 달이는 나무를 깎아 날카로운 무기를 만들기도 했어요. 돌멩이를 모아서 언제든 던질 수 있도록 준비하기도 했죠.
벅이는 예전처럼 햇살을 너무도 사랑했지만, 종종 별이가 보고픈 마음을 참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울며 잠드는 날들이 많았죠. 때로는 별이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했어요. 그러면 곁에 있던 달이도 함께 눈물을 흘리곤 했죠.
벅이가 구슬피 부르는 노래를 듣고 주변의 생물들이 찾아오기도 했어요. 벅이가 울며 노래할 때면, 섬 주변에 문어와 가오리와 불가사리가 몰려와서 벅이의 노래를 듣곤 했죠.
벅이는 비록 슬프긴 했지만, 주위 친구들이 점점 많아지자 기분이 좋기도 했어요. 슬펐지만 기쁘기도 한 이상한 기분이었죠.
그렇게 별이가 떠난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어요.
5
어느 날, 거북이 삼형제가 살던 섬에 다시 폭풍우가 몰려왔어요. 달이는 잽싸게 자신이 만든 집안에 들어갔죠. 비도 맞지 않았고, 등껍질을 두드리는 빗소리도 없었어요. 아주 안전하고 좋은 집이었죠.
‘그런데 벅이가 어디 갔지?’
달이는 벅이가 집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 고개를 내밀었어요. 하지만 집밖에는 너무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쳐서 차마 더 찾아볼 수 없었죠.
‘아마, 껍질에 잘 숨어있겠지? 지금까지도 그랬으니 말이야. 다음에는 꼭 집으로 데려와야겠어.’
폭풍우가 지나고 달이는 집밖으로 나와 섬을 둘러보았어요. 하지만 벅이는 찾을 수 없었죠. 벅이의 해먹만이 찢어진 채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어요.
‘벅이가 떠내려갔구나! 어떡하면 좋아!’
달이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울었어요. 벅이를 지키지 못한 게 자기 잘못인 것만 같았죠. 별이도 그렇게 보내면 안됐다며 스스로를 탓했어요. 하지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곧 울음을 참고 물고기를 잡으러 나섰죠.
벅이는 폭풍우가 몰려올 때 바다에 둥둥 떠서 낮잠을 자고 있었어요. 햇살이 좋아 잠깐 잠든 사이였는데, 어느덧 비가 내리고 있었던 거죠. 벅이는 어쩌지 못한 채 껍질에 꼭 숨어서 떠내려갔어요. 아주 멀리까지 파도에 휩쓸려갔죠.
폭풍우가 지나가고 나자, 벅이는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었어요. 햇살이 좋았지만, 달이와 별이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죠. 벅이는 그 마음을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노래를 불렀어요. 사랑하는 달이와 별이에 대한 노래였죠.
“별을 사랑하던 별이야, 너는 별처럼 아름다웠지, 항상 우리를 걱정하던 달이야, 너는 달처럼 든든했지, 햇살을 사랑하던 나는 너희가 그립구나.”
벅이는 한참을 노래부르며 떠내려갔어요. 그런데 벅이의 노랫소리를 들은 생물들이 서서히 그 주위로 모여들었죠. 어느덧 벅이의 주변에는 돌고래들과 오징어들과 해파리들이 가득 모여 있었어요.
“거북이야, 너의 노래는 참 아름답구나. 너는 어디로 가고 있니?”
벅이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돌고래가 말을 걸고 있었죠.
“나는 어디에도 가고 있지 않단다. 폭풍우에 휩쓸려 여기까지 떠내려와버렸지 뭐야. 그런데 너는 참 멋지게 생겼구나.”
“호호, 고마워. 바다는 우리 모두의 집이지. 주변에 네가 좋아할 만한 섬이 있는데, 데려다줄까?”
“그곳에는 나무와 해먹이 있니?”
“나무는 있지. 해먹은 잘 모르겠지만 미역으로 만들면 될 거야. 그 섬에는 미역이 많거든.”
“그러면 정말 좋은 곳이겠구나. 고마워, 나를 그곳에 데려가주렴.”
돌고래들은 벅이를 태우고 주변의 섬에 데려다 주었어요. 작지만 아름다운 섬이었죠. 돌고래의 말대로 미역들이 해변에 가득 밀려와 있었어요. 벅이는 미역으로 해먹을 만들어 나무에 걸었죠.
벅이는 따뜻한 햇살에 행복했지만, 혼자 있어서 쓸쓸하기도 했어요. 어쩌면 이 슬픔은 영원히 떨쳐낼 수 없겠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행복한 노래와 슬픈 노래를 번갈아 불렀어요. 그러면 늘 노래를 좋아하는 생물들이 몰려와 벅이의 친구가 되어주었죠.
한편, 별이도 폭풍우를 만났어요. 별이는 폭풍우를 피해 아주 바다 깊은 곳까지 내려갔죠. 그러면서 폭풍우가 쳐도 바다 깊은 곳은 안전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별이는 캄캄한 바다 속 깊이 내려가면서, 마치 밤하늘 같다고 생각했죠. 가끔 다양하게 빛나는 해파리들이나 물고기들이 지나다녔어요.
‘꼭 별들 같구나. 바다 깊은 곳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어.’
처음에는 캄캄한 바다 속이 무서웠지만, 점점 별이는 이보다 아름다운 광경은 본 적이 없다고 느꼈죠. 어쩌면 지금까지 자신이 밤하늘인 줄 알았던 것은 바다 깊은 곳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밤하늘을 올려다본 게 아니라, 내려다본 것이었는지도 몰랐죠.
별이는 해저동굴에 사는 다른 거북이들도 만났어요. 그들은 별이를 반갑게 맞아주었죠.
“새로운 거북이가 찾아온 건 정말 오랜만이군. 이곳은 참 어둡고 고요하단다. 가끔 고래들의 노래 소리만 들리지. 우리는 그 노래 소리를 정말 좋아해.”
마침 멀리서 고래들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어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신비한 울음소리였죠. 별이는 세상의 그 어떤 소리도 이보다 아름다울 수 없다고 느꼈어요.
6
거북이 삼형제가 헤어진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어요. 그 동안 폭풍우는 수십 번도 더 찾아왔죠. 해님과 달님도 수백 번은 더 떠올랐다 떠나갔어요.
그 동안 달이는 열심히 먹이를 모았어요. 집도 더 튼튼하게 만들었죠. 나무와 바위를 이용해서 방파제도 쌓아 올렸어요. 이제 거센 파도가 쳐도 섬은 안전했죠.
어느 날, 달이는 섬 주변에서 새로운 거북이를 만났어요. 처음에는 먹이를 빼앗으러 온 것이라 생각해서 경계했지만,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웠어요. 새로운 거북이는 자신의 이름을 두두라고 소개했죠. 달이는 두두를 집으로 초대했어요. 서로 사랑하게 된 둘은 아이도 갖게 되었죠. 두두가 띵똥, 하고 찾아왔다고 해서 아이 이름은 띵똥이라 지었어요.
세 형제와 함께 살려고 지었던 집은 새로운 가족 셋이 차지하게 되었죠. 달이는 셋이 들어갈 수 있도록 넉넉하게 집을 짓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종종 벅이와 별이를 생각하기도 했죠. 그래서 언젠가 그들이 찾아오면 머물 수 있는 집을 하나 더 만들어 두었어요. 띵똥이에게는 벅이와 별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죠.
“예전에 아빠랑 같이 살았던 형제들이 있었단다. 누구보다 삶을 사랑하는 벅이와 누구보다 별을 동경하는 별이였지. 나는 내 형제들을 정말 사랑했단다.”
새로운 섬에 살게 된 벅이에게는 늘 많이 친구들이 찾아왔어요. 벅이가 그리운 마음을 노래하면, 문어들이 눈물을 흘렸죠. 벅이가 기쁨을 노래하면, 돌고래들이 춤을 췄어요. 벅이가 쓸쓸한 마음을 노래하면, 해파리들이 고요히 빠져들었죠.
벅이는 예전에는 노래 부르는 것이 이토록 행복한 일인지 몰랐어요. 노래를 부르고 나면, 마음이 아주 가득 차는 것처럼 느껴졌죠. 친구들은 아주 멀리에서도 찾아왔어요. 한 번은 흰수염고래들이 찾아왔는데, 벅이는 흰수염고래의 눈동자 크기 만큼밖에 되지 않았죠.
“네 노래를 듣고 싶어서 우리는 아주 추운 곳에서 왔단다. 오랫동안 헤엄쳐왔지. 역시 너는 너무도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구나. 내가 예전에 봤던 거북이가 생각나네. 그 거북이는 눈이 참 아름다웠지. 그 눈처럼 아름다운 별을 찾아 떠난다고 했었어.”
“별을 찾아 떠난다고요? 별이가 틀림없어요! 별이는 제 형제에요.”
“그랬구나. 나는 별이가 분명 별들이 사는 곳을 찾았을 거라 믿는단다. 그런 눈빛을 가진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 꼭 도착하거든. 껄껄껄.”
벅이는 별이를 생각하며 노래를 불렀어요. 별들이 사는 곳에 도착해서, 별들과 친구가 되어,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별들의 세상에서 헤엄치는 별이를 상상했죠. 그렇게 생각하면, 무척 행복한 기분이 들었어요. 별이라면, 틀림없이 그렇게 살 거라고 믿었죠.
별이는 바다 깊은 곳의 삶에 적응해갔어요. 점점 어둠 속에서도 잘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어갔죠. 바다 깊은 곳은 또 다른 우주였어요. 어떤 곳에서는 뜨거운 공기방울이 보글보글 피어올랐죠. 빛나는 물고기들과 해파리들은 언제 봐도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별이는 무엇보다 폭풍우 없이 고요한 그곳의 삶이 참 좋았죠.
가끔은 숨을 쉬기 위해 수면까지 올라왔어요. 항상 고요한 밤에만 올라왔죠. 밤하늘은 예전처럼 아름다웠어요. 벅이는 그럴 때면, 바다 위에 드러누워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곤 했죠. 그러다가 고개를 돌려보면, 바다 위에 비친 무수한 별들을 볼 수 있었어요. 그랬어요, 바로 별이가 있는 이곳이 별들이 사는 곳이었죠. 밤하늘과 바다 위와 바다 아래까지 모두 검게 물들어, 별들이 가득한 그런 세상이었어요.
별이는 해가 밝아올 때쯤 되면 잽싸게 바다 깊은 곳으로 돌아갔죠. 아주 안전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깊은 바다 속 동굴로 들어갔죠. 그렇게 꿈 속 세계로 들어갈 때면, 달이와 벅이를 만났죠. 꿈 속에서 달이는 오래 전 함께 살던 섬에서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어요. 벅이는 처음 보는 섬에서 햇살을 받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죠.
‘다행이야, 모두들 행복해 보여서.’
거북이 삼형제는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아갔답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서로를 잊지 않았죠. 달이는 항상 아이에게 별이와 벅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벅이는 항상 달이와 별이를 노래했고, 별이는 항상 별이와 벅이의 꿈을 꾸었죠. 언젠가 서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갔어요. 각자의 삶을 너무도 사랑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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