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번째 한 권, 소개 편지

2024.09.27 | 조회 1.62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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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서재

정지우 작가가 매달 '한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구독자님,

스물세 번째 한 권, 소개 편지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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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번째로 고른 책은,

한스 게오로크 묄러와 폴 J. 담브로시오의 <프로필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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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왔네요.

여름이 언제 가나 싶었는데, 폭염도 점점 기세가 꺽이는 것 같습니다.

흔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사실 독서하기엔 약간 아까운 계절이기도 합니다.

여름이나 겨울이 워낙 길다 보니, 밖에 나서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날들이 참 적어졌죠.

저는 이런 날이면, 날들이 너무 아까워서 아이랑 늦게까지 뛰어놀려고 합니다.

사실, 날씨가 아깝다라는 생각은 꽤 예전부터 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생 때도 혼자 자취방에서 날씨 좋은 봄날이나 가을날의 바깥을 바라볼 때면, 어쩐지 방 안에 혼자 앉아 책을 읽는 게 죄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나들이를 나가야 되는 건 아닌가, 이런 날씨에 그냥 집에 있는 건 너무 외로운 일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이 했던 게 날씨 좋은 날 교정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캠퍼스에는 제가 비밀장소처럼 좋아하던 벤치들이 몇 개 있었는데, 가끔 몰래 데이트하려고 온 커플들을 마주치기도 했죠.

아무튼, 그렇게 좋은 가을 날이 왔고, 추천하고 싶은 책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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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주 본격적인 철학책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지난 번에도 존 그레이의 철학책을 추천했는데, 오늘은 그보다 더 '본격' 철학책입니다.

개인적으로 요즘에 이런 사회학, 철학 분야의 책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로스쿨에 다니고 직장 다니는 동안은 어째서인지 손에 잡지 못하던 분야였는데,

이제서야 마치 '원래 나'를 되찾은 듯 20대에 좋아하던 그런 인문학 책들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이번 책도 제게 상당히 신선한 통찰을 줬던 책입니다.

이런 통찰을 만날 때면, 인생이 즐거워집니다.

한 번 간단히 소개를 해보겠습니다.

이 책은 큰 틀에서 인간이 역사적으로 '성실성', '진정성', '프로필성'이라는 세 단계의 정체성 혹은 자아의 속성을 밟아왔다고 말합니다.

성실성이란, 집단 내에서 역할에 대한 성실함을 의미합니다. 가령, 과거 왕이면 왕, 귀족이면 귀족, 평민이면 평민이라는 각자의 역할 안에서 살아가던 때의 특성인 것이죠.

사람은 자식일 때는 자식, 아버지가 되면 아버지, 아내가 되면 아내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딱히 그 '바깥'에 자기가 있다고 믿지 못한 것이죠. 집단에서의 자기 역할이 곧 '나'이던 시대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던 시대는 근대가 오면서 점점 저물고 사람들은 '진정성'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내 역할'이 아니다. 내 안에는 더 진정한 내면의 자아가 있다. 소명이든, 꿈이든, 기질이든 자기만의 무언가가 있다고 믿고 찾기 시작한 것이죠.

'진짜 나' 찾기의 시대가 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사람들은 성실성도 아닌 진정성도 아닌 '프로필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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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은 남들이 정해진 집단 내 역할도 아니고, 내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내면의 진짜 영혼 같은 것도 아닙니다.

대신 자기가 이 세상이라는 무대 안에서 만들어나가는 어떤 정체성 표지판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각 시대마다 학자가 한 명 있다고 해봅시다.

학자가 궁중에 소속되어 나라를 위해 역사를 탐구하면 그 역할에 충실하는 성실성의 존재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학자가 어딘가에 소속되기 보다는, 자기 안의 진정성을 추구하면서 재야에서 진실만을 탐구한다면 진정성의 존재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자가 나름대로 진실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의 경력을 관리하면서, 자기 논문이 어떠한 학회지에 실리는지, 또 자신이 어떤 프로필을 만들어가는지, 대중에게는 어떤 식으로 소통하는지 신경쓰며 자신의 프로필 목록을 관리한다면 그는 프로필성의 존재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는 이처럼 모두가 자기의 '프로필'이라는 추가적인 정체성을 관리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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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프로필' 관리를 일종의 속물성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오히려 '정체성 하나 추가'에 가깝다는 것이죠.

자기 업계에서의 커리어 관리든, SNS를 통한 인지도와 프로필 관리든, 우리는 집단 내 역할도 자기 내면의 진정성도 아닌 중요하게 관리하는 정체성이 하나 추가되었다는 것이죠.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책 속에서는 삶의 기술까지 참으로 흥미로운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이렇게 뉴스레터에 책 추천을 하는 것도 프로필 관리일지 모르겠네요.

내가 좋아하는 책들로 목록을 만들어서 나의 프로필을 형성하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좋은 책의 장점은 우리 삶을 다양한 관점에서 보게 해준다는 점이겠죠.

이번 가을 첫 책으로 삶에 새로운 관점을 더해주는 <프로필 사회>를 권해드립니다.

 

<프로필 사회> 정보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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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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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선약수

    0
    about 2 months 전

    좋은 책 소개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 막 주문했네요. 작가님의 글은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줍니다. ^^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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