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눈을 생각하면, 항상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상이 있다. 눈덮인 어느 숲속 오두막에서 도구를 만드는 영상이다. 하나하나 이전에는 본 적 없었던 나이프를 만들어가는 과정들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어느덧 마음이 차분해지고, 주위가 고요해지는 걸 느낀다. 만들어진 칼날을 눈에 씻어내는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감동적이다.
현대적인 기계들도 등장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수작업의 부분들이 유난히 마음에 든다. 날카로운 나이프와 그 칼집을 만드는 데 연필이 쓰인다는 게 묘하게 느껴진다. 연필이 이런 순간 등장한다는 게, 다소 엉뚱하게 다가온다. 결국 완성된 칼과 칼집은 그냥 진열되어 있을 때보다 몇십배는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다. 무엇이든 과정을 알아간다는 것이 그렇다.
요리를 직접 해보기 전에는 국 속에 둥둥 떠있는 미역이나 양파가 왠지 별로 가치없게 느껴진다. 계란찜 사이에 박혀 있는 명란이나 파도 그렇다. 짜장면이나 카레 속에 들어있는 당근이나 감자도 그렇다. 그런데 그 모든 걸 하나하나 사서 고르고, 씻고, 썰고, 넣고, 요리하다보면, 그렇게 들어간 야채들 하나하나의 가치를 알아버리게 되고, 그것들을 비로소 맛있게 집어먹게 된다. 무엇이든, 그 과정을 알면 그것의 가치가 달라진다. 아름다움도, 맛도, 감동도 말이다.
얼마 전, 아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눈의 결정은 다르다고 말했다. 그 뒤로 내리는 눈을 보면 조금 더 감동적인 데가 있다. 내가 맞고 있는 이 눈송이 하나하나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말이다. 앎은 삶을 더 깊이, 더 많이 살게 한다. 더 많은 것들에 감격할 수 있게 하고, 멈추어설 수 있게 하고,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또 나는 이 영상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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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콩
ㅎㅎ 따뜻한 글과 영상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서재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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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queen
작가님의 글을 읽는 순간, 일상의 작은 힐링, 그리고 생각을 좀 더 깊이 할 수 있게 됩니다. 가볍고도 무겁게. 그간 전작들을 모두 읽어왔던 나름의 '독자팬' 이었던 터라, 눈에 대한 글은 '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의 에세이 단 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기도 했고요.
세상의 모든 서재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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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
작가님의 글들은 제 마음에 항상 새로운 영감이 자아내도록 해요! 그래서인지, 작가님의 책과 뉴스레터를 계속 찾게 되네요 :) 늘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서재
작은 실마리라도 전해드린다니 다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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