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여행하는 작은 눈덩이, 누눈
1
세계를 여행하는 눈덩이가 있었어요. 눈덩이는 아주 작고 귀여워서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어요. 세계의 아이들은 눈덩이가 자기 손에 쏙 들어온다고 참 좋아했죠. 어른들도 작은 눈덩이만큼이나 작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즐거워했답니다. 눈덩이의 이름은 누가 봐도 귀여운 눈이라는 뜻의 '누눈'이었어요.
'나는 왜 항상 작고 귀엽기만 할까?'
하지만 누눈에게는 고민이 있었어요. 다른 눈덩이들은 세계를 굴러다니면 굴러다닐수록 점점 더 커지는데, 누눈은 그렇지 않았죠. 그래서 누눈은 세상에서 가장 큰 존재들을 찾아다니며, 커지는 방법에 대해 물어보려고 마음먹었죠.
2
누눈은 먼저 바다로 갔어요. 세상에서 가장 큰 게가 살고 있다고 알려진 바다였죠. 누눈은 세상에서 가장 큰 게를 찾기 위해 모래사장을 열심히 굴러다녔지만, 작은 게들만 만났을 뿐, 큰 게를 만날 수는 없었죠.
"너희 혹시 세상에서 가장 큰 게를 못 봤니?"
누눈이 작은 게들에게 물었어요. 작은 게들은 친절하게 대답해주었죠.
"세상에서 가장 큰 게는 항상 이 해변에 있단다. 하지만 크다고 해서 다 잘 보이는 건 아니야."
"아니야, 무엇이든 큰 게 가장 잘 보여. 나는 작기 때문에 다른 눈덩이들에 비해 잘 보이지 않았어. 항상 큰 눈덩이들이 주목받았지."
누눈이 작은 게들의 말에 반대했어요. 작은 게들은 함께 소리 높여 말했죠.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중요한 것만을 봐. 우리에게 소중한 것만을 보지. 크다고 잘 보이는 게 아니야."
눈덩이는 작은 게들의 말을 믿지 않고 더 열심히 모래사장 위를 굴러다녔어요. 하지만 해가 지고 깜깜해질 때까지도 세상에서 가장 큰 게는 보이지 않았죠. 누눈은 실망한 채로 너무 지쳐서 모래사장의 한 구석에 가만히 쉬고 있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큰 게는 여기 없었던 거야. 누군가 나에게 거짓말을 한 거야. 내일은 다른 해변으로 가봐야겠어.'
그때였어요. 갑자기 지진이 난 것처럼 누눈이 있던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누눈은 이제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서 땅 밑으로 떨어질 거라 생각했죠. 결국 자신은 커지지도 못한 채 영원히 땅 밑에 갇힐 거라 생각하니, 두려움이 몰려왔어요.
누눈은 땅이 솟아오르는 걸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어요. 몸이 땅과 함께 높이 떠올랐죠.
"이제야 세상이 조금 시원해졌군."
엄청나게 큰 목소리였어요. 누눈은 태어나서 그렇게 큰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죠. 눈을 뜨니 모래사장이 한참 아래 있는 게 보였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누가 내 등 위에 있나보군. 누구지? 작은 게들인가?"
알고 보니 누눈은 세상에서 가장 큰 게의 등 위에 있었어요. 해가 지자, 모래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세상에서 가장 큰 게가 드디어 일어난 것이었죠.
"저는 작은 눈덩이 누눈이에요. 세상에서 제일 큰 게님이시죠? 저도 세상에서 제일 큰 눈덩이가 되고 싶어요. 저는 아무리 굴러다녀도 커지지 않아요."
세상에서 가장 큰 게의 눈이 기다랗게 솟아 나와서 자신의 등에 있는 누눈을 바라보았어요.
"정말 작은 눈덩이구나, 누눈."
"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작을 거예요."
"커지고 싶은 이유가 뭐니?"
"다른 눈덩이들은 모두 점점 커지는데, 저만 작으니까요. 저는 다른 눈덩이들 사이에서 잘 보이지도 않거든요. 저도 다른 눈덩이들처럼 큰 몸을 자랑하고 싶어요."
세상에서 가장 큰 게의 눈이 다시 내려갔어요. 세상에서 가장 큰 게는 해가 진 먼 바다를 바라보았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몸을 가졌지만, 매일 모래 속에서 숨어 지낸단다. 이렇게 해가 질 때나 나와서 모래사장 위를 걸어 다니지."
"어째서요? 모두가 멋지게 생각할 텐데요?"
"물론, 세상에는 나를 멋지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 하지만 나를 잡아먹고 싶어 하는 새들도 있단다. 나를 질투하는 게들도 있고, 내 집게발을 훔쳐가고 싶어 하는 게들도 있지. 그래서 나는 늘 숨어있는 거란다."
작은 눈덩이 누눈은 갑자기 고민에 빠졌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작기만 한 것도 답답해요. 저도 조금이라도 더 커지고 싶어요. 커지는 방법이 없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큰 게의 눈이 다시 솟아나와 누눈을 바라보았어요.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아주 컸단다. 다른 게들보다 훨씬 컸지. 그러니까 나는 커지는 방법은 모른단다. 아마 너와 함께 태어난 다른 눈덩이들에게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원래 너처럼 작은 눈덩이로 태어났지만 나중에 크게 된 눈덩이들이 그 방법을 알고 있겠지."
누눈은 아주 실망했어요. 세상에서 가장 큰 게는 커지는 방법을 분명히 알고 있을 거라고 믿었거든요.
"그렇지만 저처럼 작았던 다른 눈덩이들은 모두 커진걸요. 그저 굴러다니기만 했는데 말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큰 게는 잠시 고민했어요. 그러다 이제 어두워진 하늘을 보며 말했어요.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를 찾아가보렴. 그는 원래 작은 나무였지만 아주 커졌단다. 황야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거야. 누구나 쉽게 그를 알아볼 수 있지."
"고마워요, 세상에서 가장 큰 게님. 언젠가 아주 커져서 돌아올게요."
"그러거라, 그때도 지금처럼 나를 찾아낼 수 있길 바라고 있을 테니. 그러면 나도 너를 알아볼 수 있겠지."
세상에서 가장 큰 게는 다시 모래 속으로 돌아갔어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래사장 위는 원래 그대로 돌아왔죠. 누눈은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해변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다시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를 찾아 굴러가기 시작했어요.
3
황야로 들어서자 누눈은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어요. 어디에서도 보일 만큼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황야의 중앙에 우뚝 솟아 있었죠. 엄청나게 많은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이 거대한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었죠. 누눈이 얼마 굴러가지도 않았는데, 금방 어두컴컴한 그늘에 들어설 정도였어요.
"낙엽들아 내가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에게까지 굴러가려면 얼마나 걸릴까?"
누눈은 땅에 가득 쌓인 낙엽들에게 물었어요.
"작은 눈덩이야, 너는 이미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에게 굴러왔단다. 네 위에 있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모두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의 일부이니까 말이야."
누눈은 위를 올려다봤어요.
"그렇지만,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은 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아. 내가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와 이야기하려면, 중심에 있는 나무기둥까지 가야하지 않을까?"
"그렇겠지. 사실, 우리도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단다. 그는 너무 멀리 있어서, 거기까지 갈 수 없었거든. 바람을 타고 거기까지 가더라도, 우리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그에게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단다."
"고마워, 낙엽들아."
누눈은 하루 종일 나무기둥이 있는 나무의 중심까지 굴러갔지만, 닿을 수 없었어요. 결국 다음 날, 또 다음 날이 되어서야 겨우 나무기둥까지 다다를 수 있었죠.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님. 저는 작은 눈덩이 누눈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님을 만나고 싶어서 이곳까지 왔어요."
누눈이 목청껏 외쳤지만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그저 혼잣말을 계속하고 있었죠.
"...그래, 맞아. 예전에 참 멋진 자작나무가 있었지. 그는 온 몸이 하얗게 빛나서 볼 때마다 눈이 부셨지. 기억 나, 그가 얼마나 아름다웠고, 내가 그를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말이야..."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누눈을 무시한 채 계속 혼자서 말하고 있었어요. 누눈은 화가 났어요.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님, 제가 안 보이시나요? 저에게 말할 수 없나요?"
누눈이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말하자, 그제야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는 누눈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 같았어요.
"무슨 소리지? 거기 누가 있나?"
"여기에요, 여기. 작은 눈덩이 누눈이에요.“
누눈은 몸을 굴려 나무에 기대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는 ”아이, 차가워!“ 하면서 깜짝 놀랐죠.
"아주 작은 눈덩이로군. 늙으니 눈이 침침해서 잘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아. 이런 작은 눈덩이가 여기에는 무슨 일이지?"
"저는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님처럼 커지고 싶어서 여기를 찾아왔어요. 저에게 크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나무기둥에서 기다란 나뭇가지 하나가 뻗어왔어요. 누눈은 조금 무서웠지만 가만히 기다렸죠. 그랬더니 나뭇가지가 누눈을 태워 높이 들어 올린 다음,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의 눈앞까지 데려갔어요.
"이제야 좀 잘 보이는구나. 나는 내 친구 눈누와 이야기하고 있었단다."
"눈누라고요? 저랑 이름이 너무 비슷해요."
"그래, 눈누는 내가 붙여준 이름이지. 정오를 뜻하는 noon에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 내 곁에 있는 친구라 그렇게 이름 붙여주었지."
"정오에 가장 가까이 있다고요?"
"보거라. 이제 곧 정오구나."
해가 하늘의 정가운데로 올라오자, 세상에서 제일 큰 나무의 그림자가 세상에서 제일 큰 나무와 찰싹 달라붙었어요. 누구보다 둘은 가까이 있게 되었죠. 정오인 noon에 말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님의 친구가 그림자였어요?"
"그렇단다. 나의 유일한 친구지. 해가 지면 떠나가고, 해가 뜨면 서서히 다가와서, 정오에는 나랑 아주 가까이 붙어 있다가, 서서히 멀어지고 길어지는 친구지. 해 뜰 무렵이나 해질 무렵에는 나보다도 커져서 질투도 나지."
"다른 친구들은 없나요?"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는 천천히, 슬프게 눈을 깜빡였어요.
"어릴 때는 많았지. 하지만 모두 세상을 떠났어. 내가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가 되니, 다른 나무들의 햇빛을 모두 가려버렸거든. 그래서 친구들은 더 이상 햇빛을 받을 수 없었지. 그리고 내 몸이 커지면서 뿌리도 굵어지니 온 땅의 물을 내가 빨아들이게 되었지. 그래서 이 주변은 모두 황야가 되었고, 나에게는 친구가 아무도 남지 않았단다."
누눈은 너무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눈물이 났어요.
"너무 외로웠겠어요. 저는 친구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도 없거든요."
"괜찮단다. 나에게는 눈누가 있으니 말이야. 눈누가 매일 찾아와 말벗이 되어주지. 눈누가 떠난 밤은 외롭고 쓸쓸하지만 말이야."
눈누는 슬펐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물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님, 저는 아주 큰 눈덩이가 되고 싶어요. 혹시 그 방법을 알고 계시나요?"
"아주 잘 알고 있지."
"그 방법을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는 조금 기뻐보였어요.
"아주 크고 싶다면, 아주 큰 친구들을 부러워하면 된단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존재를 닮게 되지. 그러다보면, 열심히 뿌리를 뻗으려고 애쓰게 되고, 더 멀리 나뭇가지를 뻗고, 더 많은 나뭇잎을 만들려고 노력하게 된단다. 그러면 더 많은 양분을 얻고, 더 크게 될 수 있지."
"하지만 저는 점점 커지는 친구들이 늘 부러운걸요. 그런데도 저는 커지지 않았어요."
누눈은 울상이 되었어요.
"부러워만 해서는 안 돼. 그 친구를 닮으려고 노력해야지. 그 친구들이 하는 걸 그대로 따라해 보려고 했니?"
누눈은 한참 고민했어요.
"잘 모르겠어요. 친구들은 늘 구르면 커졌고, 저도 같이 굴렀어요. 하지만 친구들만 점점 커졌고, 저는 커지지 않았어요."
"네가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친구들만큼이나 열심히 굴렀는데도 커지지 않았다면, 나도 그 이유는 모르겠구나."
그러더니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는 다시 혼자서 말하기 시작했어요. 정오가 지나자, 그림자 눈누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고, 그러자 더 열심히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림자 눈누와 찰싹 붙어 있을 때는 외롭지 않았지만, 눈누가 조금씩 멀어지자 아쉬운 마음에 계속 눈누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보였죠.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님, 저는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요?"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계속 혼잣말을 이어갈 뿐이었죠.
"...소나무는 참으로 상냥했지. 그래, 나도 잘 기억하고 있어. 그 친구처럼 나도 곧고 높게 자라고 싶었지. 소나무와 키가 같아졌을 때가 생각나네. 그는 진심으로 기뻐해주었지..."
"안녕히 계세요,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님."
누눈은 이미 누눈을 잊어버린,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에게 인사하고 다시 굴러 떠났어요. 그러면서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나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4
누눈은 다시 몇날며칠을 열심히 굴러 황야를 벗어났죠. 그러자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이 나타났어요. 누눈은 드디어 세계를 한 바퀴 돌고 자신이 처음 태어난 곳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세계를 여행했지만 결국 커지는 방법을 알지 못했어.'
누눈은 그 사이 자신보다 몇 배는 더 커졌을 다른 친구들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슬펐어요. 자신만 작은 채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눈물이 뚝뚝 흘렀죠.
그때였어요. 누눈 앞에 있던 커다란 봉우리 중 하나가 움직였어요. 누눈은 눈물 때문에 잘못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봉우리는 어느덧 사라져 있었어요. 그리고 이쪽으로 굴러오는 거대한 눈덩이가 보였죠. 알고 보니 봉우리들 중 하나인 줄로 알았던 것이 눈덩이였던 거예요.
"여기 작은 눈덩이 누눈이 있어요, 커다란 눈덩이님 멈춰주세요."
누눈은 거대한 눈덩이가 자신을 덮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필사적으로 소리쳤어요. 거대한 그림자가 누눈의 머리 위로 드리웠고, 누눈은 눈을 질끈 감았어요. 거대한 눈덩이는 누눈의 바로 앞에서 멈춰 섰죠.
"아주 작은 눈덩이가 있었구나. 하마터면 못보고 지나칠 뻔 했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꼬마야, 옆으로 비켜 서거라."
거대한 눈덩이가 말했어요. 온 산이 울리는 것 같았죠.
"저는 꼬마가 아니에요! 온 세계를 굴러서 여행하고 왔다고요! 세상에서 가장 큰 게님과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님도 만났고요."
"뭐라고? 너 같은 꼬마가? 정말이니?"
거대한 눈덩이는 유심히 누눈을 들여다봤어요.
"그럼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큰 눈덩이님인가요?"
"아마 그렇겠지. 이 산에서 나보다 큰 눈덩이는 본 적 없으니까 말이야."
"그럼 세상에서는요?"
거대한 눈덩이는 조금 당황한 눈치였어요.
"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이 산에만 있었으니 말이야. 다른 곳을 여행하기에 나는 너무 크거든."
"몸이 크더라도 여행할 수 있지 않나요?"
"하려면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도 모르게 너처럼 작은 존재들을 깔아 뭉개버릴 수도 있고, 작은 동물의 집을 부숴버릴 수도 있지.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을 다니면 내 몸집이 줄어들까봐 무섭거든."
누눈이 깜짝 놀라 물었어요.
"여행을 하면 몸집이 줄어드나요?"
"이 산을 벗어나면 그렇지. 눈이 없는 곳은 아무리 굴러다녀도 몸집이 커지지 않아. 너도 세계를 여행하는 바람에 더 작아진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누눈은 드디어 몸집이 커지는 방법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눈 위를 굴러다니면 몸집이 커지나요?"
"당연하지. 너는 눈덩이잖니. 나도 눈덩이고 말이야. 우리는 눈 위를 열심히 굴러다니면 눈이 몸에 달라붙어 커진단다."
누눈은 잠시 고민에 빠졌어요.
"하지만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 늘 굴러다녔지만 커지지 않았어요. 제 친구들은 다 커지는데 말이에요."
"그것 참 이상한 일이구나. 모든 눈덩이는 눈 위를 굴러다니면 커지는데 말이야."
"저는 어떡하면 좋을까요? 저는 작아서 너무 속상해요."
"너 같은 눈덩이는 나도 처음 봐서 잘 모르겠다. 너를 처음 만든 아이를 찾아가보는 게 어떠니?"
누눈은 갑자기 번개를 맞듯이 기억을 떠올렸어요. 자신을 처음 만들어준 아이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죠.
'내가 왜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을까?'
누눈은 너무 놀라 잠시 멍하니 그 아이를 떠올렸어요. 아주 웃음이 예쁜 소년이 이곳에서 자신을 처음 만들어 주었죠.
"저는 그 사실을 까먹고 있었어요. 저를 만들어준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요. 찾아가봐야겠어요. 고마워요, 거대한 눈덩이님."
"그래, 다음에 내가 세상에서 가장 큰 눈덩이인지 알려주렴."
"네, 세계를 더 여행하면 알려드릴게요."
누눈은 열심히 굴러서 자신을 만든 아이를 찾으러 떠났어요. 거대한 눈덩이는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눈덩이가 되겠어!"라고 외치는 거대한 눈덩이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누눈은 거대한 눈덩이가 평생 이곳에서만 살고 바깥세상을 여행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죠. 평생 똑같은 풍경만 보고 살 거라는 사실을 말이죠.
5
누눈은 자신이 태어난 장소로 향했어요. 아주 작은 봉우리 아래의 아주 작은 마을이었죠. 멀리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이자, 누눈은 반가워 소리쳤어요.
"여러분, 작은 눈덩이 누눈이 돌아왔어요!"
아이들 중 유난히 작은 체구의 아이 하나가 누눈에게 달려왔어요. 누눈을 만들어준 아이였죠.
"너는 내가 만들었던 눈덩이구나. 네가 떠나버려서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
"작은 아이님, 저는 큰 눈이 되고 싶어서 세계를 여행하고 왔어요. 하지만 결국 커지는 방법은 알지 못했어요."
아이는 깜짝 놀라며 두 손에 누눈을 들어 올렸어요.
"왜 커지려고 하는 거니, 누눈아?"
"다른 친구들은 모두 커지는데, 저만 작은 채로 남아있는 게 속상했어요."
"많이 속상했니?"
"네, 매일같이 울었죠. 왜 나만 이렇게 작은 걸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요.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게님과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님, 또 거대한 눈덩이님을 만나 물어봤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어요."
아이는 누눈을 품에 꼭 안았어요. 누눈은 참 따뜻한 품이라고 생각했어요.
"누눈아, 미안해. 네가 그렇게 속상한 줄 몰랐어. 네가 작은 이유는 나 때문이야."
"네? 어째서죠?"
아이의 눈물이 누눈의 머리 위로 뚝 떨어졌어요.
"내가 너를 만들 때 나의 작은 눈덩이는 나처럼 작은 나의 친구로 남아있게 해달라고 빌었거든. 제발 크지 않게 해달라고 말이야. 나는 작고 귀여운 네가 너무 좋았어. 다른 친구들이 모두 클 때도, 내 곁에 남아 작게 있어주길 바랐지. 그래서 너는 크지 못한 거야."
누눈은 드디어 자신이 태어나던 날을 떠올릴 수 있었어요. 아주 작고 부드러운 손이 눈가루들을 모아 자신을 동그랗게 만들어주었죠. 그때 그 아이가 하던 말도 기억났어요. "너는 꼭 내 곁의 작은 친구로 남아줘"라고 하는 말이요. 누눈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작은 눈을 뜨면서 다짐했죠. '나는 절대로 크지 않을 거야.'라고요.
"기억났어요. 작은 아이님의 목소리가 생각이 났어요. 그 목소리를 듣고, 저는 다짐했었어요. 절대 커지지 않고 작은 아이님 곁에 있을 거라고 말이에요."
"그래, 그래서 너는 크지 못했던 거야. 나처럼 작은 존재로 남아 있게 된 거야."
누눈은 갑자기 작은 아이의 손에서 뛰어내렸어요. 그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작은 아이를 올려다보았죠.
"네, 맞아요. 하지만 작은 아이님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건 제가 원했던 일이니까요! 단지 저도 까먹고 있었을 뿐이에요. 제가 크지 않았던 건, 제가 진심으로 크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었던 거예요."
작은 아이는 무릎을 꿇고 누눈 앞에서 두 손을 모았어요.
"고마워, 작은 눈덩이 누눈아. 너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눈덩이였구나. 지금까지 나를 위해 작게 남아 있어주어서 너무 고마웠어. 나는 이제 네가 커지길 바랄게. 너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크고, 멋진 눈덩이가 될 거야."
"괜찮아요! 저는 이제 크지 않아도 돼요! 작은 아이님 곁에 있을게요!"
누눈은 눈물을 흘렸어요. 이제는 더 이상 크고 싶지 않았죠. 작은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 같아 더 슬펐어요.
"그렇지 않아, 누눈아. 누구도 영원히 작을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돼. 나를 보렴. 네가 못 보던 사이에 나도 조금 컸단다. 앞으로 더욱 클 것이고 말이야. 그래도 다른 친구들보다 작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매일 조금은 더 크고 멋진 사람이 될 거야. 너도 그래야 해, 세계를 여행한 작은 눈덩이, 누눈아."
"정말 그래야 할까요?"
누눈은 이제 커져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어요. 작은 아이와 작은 눈덩이로 살던 시절이 끝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럼, 너는 벌써 세계를 여행했잖니. 어느 눈덩이도 하지 못한 일이야. 세상에서 가장 큰 눈덩이도 무서워서 세상을 여행하지 않아. 조금씩 커지는 데 만족하는 눈덩이들도 세상을 궁금해 하지 않지. 하지만 너만큼은 세상을 여행하고, 누구도 만나지 못한 멋진 게와 나무를 만났잖니. 너는 이제 가장 용감하고, 다정하고, 멋진 눈덩이가 될 거야."
작은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을로 달려갔어요. 누눈은 이상하게 아쉬워서 열심히 아이를 따라 굴러갔죠. 그런데 굴러가면 갈수록 몸이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어요. 주변에 있던 눈가루들이 달라붙어 점점 몸집이 커지는 것이었죠!
누눈은 마을 입구까지 갔다가, 아이가 집안에 들어가는 걸 보았어요. 아이가 처음 자신을 만들 때, 아이의 키는 집의 창문보다 낮았죠. 하지만 이제는 창문으로 집안을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자라 있었어요. 작은 아이도 조금씩 크고 있었던 것이죠.
누눈은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돌아 나와 열심히 구르기 시작했어요. 어서 친구들에게 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세계를 여행하면서 본, 세상에서 가장 큰 게와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신이 났죠. 하지만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큰 눈덩이는 되지 않을 거라고 말할 생각이었어요. 왜냐하면 누눈은 아직 더 멋지고 넓은 세계를 여행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
나의 작은 눈누에게.
아이를 위해 처음 쓴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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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haso
아름다워요. 아이 뿐이 아닌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도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저 이 글 읽고 눈물났어요. 작은 눈덩이인 제가 위로 받은 동화입니다.
세상의 모든 서재
고맙습니다. 위로 받으셨다니 무척 기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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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지
누눈. 넘 귀여운 이름이에요~ 참 다정한 동화^^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서재
감사합니다 ㅎㅎ 제 아이가 스스로 지은 자기 별명인 '눈누'를 반대로 써서 만들어본 이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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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희
ㅎㅎ 우리아이는 벌써 열살인데, 평균보다 작아요. 그런데 저는 아이가 커가는게 아쉬워서 "아직도 이렇게 작다니! 오오(다행이다) 사랑해~" 하고 안아주거든요. 그랬더니 이제 스스로 클 노력을 안해요ㅜㅜ 자기가 커야할 필요성도 모르는것 같아요ㅎㅎ 읽다보니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의 모든 서재
자기 자신인 채로, 그대로인 채로 긍정받는 경험은 정말 소중한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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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전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나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친절한 문장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아이들은 은근히 다 캐치하지 못해서, 중간중간 이런 친절함이 필요한거 같더라고요.. 애들한테 읽어주고 그림 그려보라고 하고 싶네요❤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예요.. 아빠가 들려주는 이런 이야기 듣는 아이는 참 복되네요^^!
세상의 모든 서재
그렇게 말씀해주시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ㅎㅎ 동화는 처음 써보는지라, 감을 잡기가 쉽지 않은데 더더 친절해야겠따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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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o
며칠전 눈이 와서 더 실감나게 눈누와 누눈의 모습을 상상한 거 같아요 .이거 그림책으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내내 들었어요. 아이를 위해 작아져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 누눈의 모습에 눈물이 찔끔ㅜㅜ
세상의 모든 서재
저도 그림책으로 만들고 싶어요 ㅎㅎ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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