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주간, 열네번째 편지, 나눔글2.

2021.04.16 | 조회 7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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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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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바다 너머_헤븐

"감정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오만과 편견> 중)

아랫입술을 깨문다는 건 일종의 위험 신호다.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며 스스로에게 보내는 일종의 예고와 같다. 쌍둥이를 기르며 예전엔 없던 습관들이 많이 생겼는데 그 중엔 부끄럽지만 자신을 해치고 마는 가학적인 패턴을 보이는 습관이 다수 생겨버렸다. 가령 하나가 아랫입술을 꽉 깨문다든가, 눈물이 나오려 할 때는 오른쪽 검지 손톱과 엄지 손톱을 맞대어 손가락 부분의 피부 겉면을 사정 없이 꾹꾹 누른다든가. 튀어 나온 쇠골뼈를 중심으로 움푹 패어진 살을 잡아 뜯는 시늉을 한다든지. 그야말로 악취미가 따로 없지만. 살다 보니 어느새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살다 보니. 살아 내다 보니 만들어진 삶의 상처 같은 습관들이다. 

5년전 4월은 지독한 봄이었다. 아마 그 때부터 였을지 모른다. 솟구치는 감정들을 참으며 살다 보니 몸에 귀여운 흠집(?) 을 은밀하게 내고 마는 습관 이라든가, 그러고 나서는 꼭 바다 사진을 쳐다보곤 했었다. 내내 멍청이처럼 보일지라도. 아이가 없던 시절엔 그렇게 바다에 집착 하듯 사진을 모으지 않았었는데.  왜 하필 바다 였을까. 잘은 모르겠다만 아마도 그 물결 속에 빠져버리고 싶었겠거나, 혹은 밑에서는 소용돌이치는 파도를 감춘 채로 그럼에도 수면 위로는 잔잔히 흐르는 그 물결들이 꼭 분투하는 모습이 흡사 인간의 생을 닮은 것도 같아서. 아니면 바다라는 존재 그 자체가 너무나도 자유롭게 느껴져서. 나로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손에 잡히지 않는 자유 여서. 

바다의 자유로운 흐름이 좋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 마치 그 손에 잡히지 않는 자유를 내내 아련히 갈망하듯이. 아이들을 길러내며 묘하게 나는 이렇게 살다가 단명 해도 아쉬울 게 크게 없는 인간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오래 살고 싶은 마음도 진작에 사라진 인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최후의 꿈은 읽고 쓰다가 자연사하면서 호상으로 마무리하는 생을 꿈꾸지만, 가끔은 명예롭지 않은 죽음을 종종 생각하며 사는 어리석은 인간으로도 산다. 

초산의 쌍둥이와 동시 다발적으로 터지는 일상의 지독함은 반대로 나를 파괴하기 일쑤였다. 입술을 꽉 깨문 채 일기를 쓰는 시간이 유일한 산소 호흡기였다. 그 때도 일기를 다 쓰고 난 이후 바다 사진을 내내 쳐다봤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별반 달라진 건 크게 없지만. 아이들 탓을 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튼 출산 전 후의 시간은 그야말로 살아오던 세계가 통째로 뒤집어진, 지구에서 다른 행성으로 건너가 사는 것 같은 지경의 변화였다.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절대 상상하지 못하는, 상상 그 이상의 그런 삶이다. 


어제부터 먹은 모든 것들을 토해내기 시작한 아이 곁에서 내내 그들을 살피며 지냈다. 아이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쓸고 닦고 이불 빨래를 연이어 했다. 섬유유연제를 넣는 동안 잠시 바라본 창문 너머로 봄이 보였다. 햇살은 맑고 밝고 너무나도 한적한 평일 한낮의 오후. 하늘과 바람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기뻐야 하는데 그런 봄엔 언제나 눈물이 먼저 난다.  5년전에는 지독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열어지지만 그 감정이 완전히 소멸 되진 않은 듯싶다. 이렇듯 아이와 집이라는 섬에 갇혀있다는 사실은 결국 무언의 결핍과 고립을 동반하고 마니. 

1분 형인 첫째 아이의 상태는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제법 죽도 넘기고 토하는 횟수도 줄어들다 이젠 둘째의 장난을 받아주면서 다시 생기를 찾는 그를 바라본다. 물론 며칠 후 둘째도 고스란히 장염에 걸렸다. 쌍둥이는 이렇듯 아프면 함께 아프다. 쉬이 나아지는 법은 없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니 천만 다행이지 싶지만 그런 반복되는 시간을 겪어낼 수록 뭐랄까. ‘나’ 라는 개인적으로는 지니고 있었던 과거의 어떤 명랑함 이라든지 생기발랄함, 쾌활함 이라든지 어떤 유머러스함과 같은 긍정적이고 화사하고 진취적인 요소들은 점점 증발되어가는 걸 느낀다. 누군가는 금방 큰다고, 그 시절이 그리울 거라고, 그러니 즐기라고 하지만, 그들을 살피는 장본인인 나로서는 여전히 믿기지는 않는다. 남이 가 봤을 뿐, 내가 가본 적은 없는 길이니까. 살아봐야 그제서야 아는 길일 테니까. 

오늘도 아이들의 안위를 살피며 그의 세계에 나의 세계를 맞춘 채 우리의 하루는 흐른다. 그리고 그 하루의 끝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주는 무언의 선물은 두 가지다.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바다 사진을 쳐다 보는 것. 흰 여백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문서 저장하기를 누르고 열린 브라우저와 창들을 모두 닫는다. 그리고 노트북의 배경 화면을 그리곤 물끄러미 쳐다본다. 두 손으로 턱을 받친 채로. 두 눈엔 바다가 펼쳐져 있다. 결핍은 바다 너머로 던져 버리려는 듯 작정을 한 듯이. 

바다 사진을 보며 생각한다. 아니 믿는다는 말이 정확할지 모른다. 분명 나아지고 있다고. 내 삶은 느리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여전히 마음 한 켠으로는 거센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며, 잦은 삶의 파도에 순하지 못하고 마는 감정을 붙든 채로. 멈춤 없이 유유히 흐르는 바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게 흐르겠다고 작정한 인간의 저녁은 이렇듯 '오늘도 무사히' 라는 모토와 함께 큰 욕심 없이 흐르는 중이다. 

너만 아프지 않는다면, 너만 무사 하다면, 너만 잘 살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아무래도 좋다는… 나는 어떻게 흐르든 괜찮다는 마음마저도 생겨버리고 만 지금의 이 모습이 여전히 서글프고 낯설기도 하지만, 한편 받아들인다. 여전히 견디기 힘든 일상의 면면들과 마주하면 입술을 깨물고 눈물은 메마르지 못하고 말지만. 

일상의 안녕에 감사하고 작은 감동을 찾으려 애쓰면 그만이다. 
바다가 물결과 파도를 받아들이고 흐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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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소개 - 헤븐

오랜 시간 일을 하다 현재는 읽고 쓰며 아이들을 돌보는 일상의 모든 단면을 기록하며 삽니다. 여전한 작가지망생이자 책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 웃음보다 눈물이 더 많은 사람. 사랑하며 살려는 사람. 죽어가는 것들을 더 사랑하고 싶은 사람. 
브런치 - https://brunch.co.kr/@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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