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한 권, 두 번째 편지, 리뷰와 답장.

2023.01.30 | 조회 1.1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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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서재

정지우 작가가 매달 '한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구독자님,

여섯 번째 한 권, 두 번째 편지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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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지에는 리뷰와 답장을 함께 담았습니다. 

제가 쓴 간단한 리뷰와, 구독자님이 보내주신 리뷰를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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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중요한 깨달음 중 하나는 꿈꾼 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 <가벼운 나날> 중에서

<가벼운 나날>은 소설을 읽으면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많은 밑줄을 남기는 책입니다. 그만큼 작가가 소설 속으로 직접 들어와서 인생의 잠언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습니다.

사실, 현대소설로 오면 올수록 이처럼 작가가 소설 속에 뛰어들어 잠언 혹은 교훈 같은 것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물어졌습니다. 대체로 톨스토이나 괴테 같은 고전 문학가들이 주로 쓰던 방식이었죠.

그러나 제임스 설터는 세련된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이렇듯 작가가 '직접' 메시지를 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대목들이 읽는 사람의 성찰과 여운을 더 깊어지게 합니다.

제가 인용한 이 구절은, 어쩌면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그런 한 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꿈꾼 대로 살 수 없다는 것, 말이지요.

아무리 예쁜 가정을 꿈꾸고 결혼하더라도, 실상은 '꿈'과 온전히 같을 수는 없습니다. 상대에게도 내가 모르는 측면이 많다는 걸 알게 되고, 갑자기 부모님이나 자식이 병환을 앓을 수도 있죠.

내가 원하던 대학에 가거나, 여행지로 떠나거나, 직업을 얻더라도 꿈꾸던 그대로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꿈을 너무 고집하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죠.

<가벼운 나날>에서도 비리는 자신의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그 아름다운 환상을 이어간다고 믿지만, 사실 사랑은 이미 끝나서 부부는 각자 불륜을 하고 있죠. 꿈과 현실이 치명적으로 불치하는 것이죠.

자유라는 꿈을 찾아 유럽으로 떠난 그의 아내 네드라 또한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납니다. 병과 가난 같은 것이죠. 꿈은 항상 꿈꾼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삶이 늘 하나의 꿈이기도 합니다. 지나고 나면, 그 모든 아름다웠던 날들이 있었다는 게 신기할 때가 있죠. 그 날들은 이제 내 머릿속, 뇌의 한 구석에 있는 세포에만 남아 있습니다. 날들은 그렇게 꿈처럼 사라집니다.

꿈을 꾸지만 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삶, 그리고 꿈 자체 같기도 한 삶, 그런 모호하면서도 어딘지 아쉽고도 아름다운 꿈 같은 이야기가 이 소설에 펼쳐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나고 나니, 이 소설 속의 세계 또한 하나의 꿈과 다름 없었던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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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리뷰와 함께 답장도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오랜만에 받은 답장이네요. 구독자 오순님이 보내주신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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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주 긴 문장의 시를 읽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설터의 문장을 읽어나가는 동안 내내 책 제목이 왜 <가벼운 나날>인지 알 것 같았다. 원문 제목은 <Light years> 라는데, 가벼운 나날이란 제목이 맘에 더 닿았다.

책을 덮고 나자 엔트로피, 라는 용어가 떠올랐다. 우주의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엔트로피를 달리 표현하자면 무질서도란다. 우주의 무질서도가 끊임없이 증가한다는 이론이 이 소설을 읽고 난 뒤 우리 삶과 닮았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엔트로피를 좀 더 풀어보자면 자연현상이나 물질의 변화는 다시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따듯한 물과 찬 물이 섞일 때 미지근한 물이 된다. 그러나 그 반대의 현상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벼운 나날은 결혼을 중심에 놓고 이어진다. 결혼 이후 사람들은 큰 변화를 맞이하고 결코 결혼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설터는 이 소설의 주인공 부부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미지근한 물이 결코 원래 온도의 따듯한 물과 찬 물로 돌아갈 수 없듯이 결혼을 통과한 인물들은 결혼 전의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삶이 엔트로피를 닮았다면 그의 문장은 시를 닮았다. 달콤한 것을 씹다 한 순간 입안의 부드러운 살을 깨무는 순간처럼 아린 맛을 남긴다.

“이가 닿으면 사과는 몸을 터뜨렸고, 언쟁 같은 흰 조각들이 이에 남았다.”

이런 구절을 만날 때가 그렇다. “치즈 껍질이 빵처럼 굳어 있었다. 다 마신 와인 잔에서 시큼한 향이 났다. 아무도 없는 식당에는 에덴동산의 추방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세잔의 그림이 떠오른다. 모두가 떠난 식당의 식탁, 다시점으로 그려진 사물들은 어쩐지 불안하고 불편하다. 그 식탁 위에는 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돈다.

“붕괴는 시작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국면에 이르러야만 벽에 균열이 보이고 기둥이 쓰러지고 건물의 앞면이 내려앉는다.” 결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주에 영원한 것은 없다.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

“그들의 삶은 미스터리였다. 숲과 비슷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덩어리로 이해되고 묘사될 수 있지만, 가까이 갈수록 흩어져 빛과 그림자로 조각났고, 그 빽빽함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는 형태가 없었고, 경이로울 정도의 디테일만이 어디나 가득했다.” 덩어리는 흩어져 형태를 잃어버린다. 형태를 잃어버린다고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테지만 뭔가 힘을 잃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의 정신은 살아있긴 했지만, 힘이 없었다. 마치 껍데기에서 떼어낸 굴 같았다.” 알맹이라고 규정했던 것이 없어져버리면 텅 비었다고 느낀다. “시계는 망가졌다. 추락한 비행기의 기기처럼, 사고가 일어난 바로 그 순간을 기록한 채.” 시계는 정확한 시간을 읽어줄지 모르지만 그 시간의 의미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시간은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나무에 새겨진 나이테처럼 삶은 흉터로 나뉜다. 여름은 지나갔다. 모든 건 지나갔고 끝이 났다. 그의 삶은 이미 몸을 빠져나가 다른 형태로, 건물과 성당과 전설로 변형되어 있었다.” 의미를 찾아 헤맨 인생은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부서진 잔해만을 남긴다. 이에 낀 사과의 하얀 몸 조각처럼.

“천문학자는 밤을 접을 것이다.” 별도 죽고 천문학자도 죽는다. 죽음은 언제나 예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했는가? 라는 질문이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가벼웠다 말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사실 너무 진지해서 가볍게 살 수 없는지도 모른다. 삶의 의미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까? 허무주의는 아니다. “모든 것이 걸려있는 단 하나의 관계, 그건 아주 위험한 거야.” 결혼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마치 타투 같아. 어느 순간 너무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피부에 새겨져 있으니 없앨 수도 없고 심지어 했는지조차 몰라.” 피부에 상처를 내고 피부의 진피에 잉크를 넣어 세긴 이미지는 피부를 도려내지 않는 이상 말끔하게 지울 수 없다. 결혼과 타투와 엔트로피는 닮았다. 비가역적이다. 되돌릴 수 없다.

이 소설을 잃는 동안 묘한 기분을 느꼈다. 작가가 구상한 결혼 이야기처럼 나는 초반에 아주 급히 이 이야기에 몰입했다. 그러나 중반을 지나면서 속도가 느려지고 권태로움을 느끼는 결혼 생활처럼 나른한 독서를 경험했다. 책을 덮을 즈음에는 졸음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아름답고 신비한 설터의 문장에 홀려 뭔가 흐름을 놓치고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끝으로 갈수록 자꾸 자꾸 책에서 눈을 떼게 되고 흐릿한 정신 상태가 되었다. 지루함마저 느꼈다. 힘이 잃게 하는 지난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어느 영화에서 아들이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행복해?” 엄마는 머뭇거리다 말한다. “그런 질문은 하는 게 아니야.” 내 아들이 내게 이 같은 진지한 질문을 해 온다면 나는 오래도록 머뭇거릴 것이다. 그 질문에는 이미 부정적인 답을 내포하고 있는 것만 같다.

가벼운 나날을 살고 싶다. 이 말의 의미는 세잔의 사과가 있는 정물처럼 입체적이다. 단면적이지 않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으로 오늘을 살아갈지 모르지만 시간을 거스르고 싶지도 않고 시간을 건너뛰고 싶지도 않다. 지금 당도한 시간을 그저 가볍게 살고 싶을 뿐이다. 가볍다, 라는 의미도 각자가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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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 보낸 이 - 오순

문학콘텐츠플랫폼 봄놀다(bomnolda.com)의 필진.

마흔 넘어 내가 그린 선인장과 초승달을 손목에 새겼다.

몸이 원하는대로 살고 싶지만 고요히 읽고 쓰는 일상을 더 원한다.

이야기를 쓰고 싶어 나의 사물이 없는 카페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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