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조각을 줍는 남자
그는 퇴근길마다 하늘의 조각을 모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집으로 가는 길이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조각들을 볼 수 있었다. 조각들은 때로 그의 손 위에 곧바로 떨어졌다. 때로는 바닥에 널부러져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있기도 했다. 어느 날은 담벼락 위에, 벤치 위에, 화단의 해바라기 위에 하늘의 조각이 내려앉아 있기도 했다. 그러면 그는 그 조각들을 주워 자신의 작은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 나면, 어쩐지 오늘의 수확을 거둔 것처럼 만족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집으로 들고 온 하늘의 조각은 매번 욕조에 차곡차곡 쌓았다. 하늘의 조각을 처음 주워 들고온 뒤로, 그는 욕조에 몸을 담근 적이 없었다. 대신 욕조 바깥에 쭈그리고 앉아서 샤워를 했다. 굳이 하늘의 조각을 욕조에 보관한 이유는 그것이 지닌 강렬한 냄새 때문이었다. 하늘의 조각들은 각기 다른 향을 내뿜었다. 어떤 조각에서는 비의 냄새가 났다. 또 다른 조각에서는 바다의 냄새가 났다. 어느 조각에서는 솜사탕의 냄새가, 어느 조각에서는 하수구의 냄새가 났다. 그 모든 냄새 때문에라도, 늘 환풍기를 틀어두고 화장실에 보관하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그런 조각들을 모아서 무얼 할지는 스스로도 잘 알지 못했다. 그저 그에게는 그것 만한 위안이 없었을 뿐이었다. 직장에 나서면,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온갖 문서와 씨름하기 바빴다. 상사는 끊임없이 일을 가져왔고, 그에게는 항상 할 수 있는 일 이상의 일이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다른 직장동료들로부터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기도 했다. 그래도 함께 일하며, 함께 고민하고, 함께 욕하고, 함께 웃는 동료들이 있어 그나마 직장도 다닐 만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일에 파묻히고, 집에 돌아갈 적이면, 녹초가 되어 다른 무엇을 할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하늘의 조각들이었다.
하늘의 조각을 하나 주우면, 이상하게 매일의 저녁이, 휴식이 아쉽지 않았다. 녹초가 되어 누워서 TV나 보다 지나가는 저녁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그 저녁은 또 다른 하늘의 조각을 주운 저녁이기도 했다. 그러면 어째서인지 정신없이 보낸 하루도, 일에 휩쓸려 사라지는 것만 같은 날들도 괜찮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의 욕조에는 점점 더 하늘의 조각들이 쌓여갔다. 일년쯤 지났을 때는, 더 이상 욕조에 자리가 없을 만큼 하늘의 조각이 가득 메워졌다.
원래 그는 곧잘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기도 했지만, 하늘의 조각이 많아지면서는 더 이상 누구도 집에 초대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그가 조금 이상해졌다고, 집에 애인이라도 숨겨둔 것이냐고 묻곤 했다. “아니, 요즘 워낙 집 정리를 못해서... 개판이야.” 하고 둘러대곤 했다. 직장동료들과 저녁에 술을 마시는 일도 줄어들었다. 묘하게도 하늘의 조각은 그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에만 발견되곤 했기 때문이었다. 하늘의 조각을 다른 곳에서는 채집할 수 없었다. 마치 야밤에 갯벌에 가야만 낙지를 잡을 수 있는 것처럼, 그가 사는 동네의 퇴근길에서만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서둘러 오늘은 어떤 하늘의 조각을 발견할 수 있을지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곤 했던 것이다.
하늘의 조각은 그에게 일종의 비밀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얘기해보기도 했지만, 누구도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하늘의 조각이라니? 김대리, 감수성이 풍부하네.” “바다의 냄새가 난다고? 비린내라는 뜻이야? 하늘에서 물고기라도 떨어진다는 거니?”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안돼. 무언가를 주워서 모으고 있다는 거지? 이를테면, 부서진 보도블럭 같은 걸 말이야?” 그런 반응을 몇 번 접한 뒤로, 그는 하늘의 조각을 모으는 일을 그저 자기 안에 묻어두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남들과 공유할 수 없는 비밀이 점점 더 커지게 되자, 그는 타인과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에게 하루의 가장 큰 위안이자 기쁨이 되는 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보니, 일반적인 생활이라는 게 어딘지 가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직장동료들과 밥을 먹으면서도, 중요한 이야기는 빼놓고 쓸 데 없는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았다. 친구들은 아예 만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보다 그는 하늘의 조각에 대한 이야기들을 찾는 데 골몰했다. 도서관에 가기 시작했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뒤지고, 그래도 별다른 성과가 없을 때는 아무 온라인 익명 게시판에 들어가서 하늘의 조각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면 종종 ‘신기하네.’ ‘뭐지? 이야기 좀 더 해봐.’ 같은 댓글이 달리곤 했다.
더 이상 하늘의 조각을 욕조에 담을 수 없게 되자, 그는 자기가 사는 건물의 옥상 구석의 드럼통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이상 하늘의 조각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만둘 수 없었다. 어느덧 하늘의 조각을 줍는 것은 너무나도 절대적인 일상이 되어버려서, 하루 세끼를 먹듯이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는 점점 그 일에 의존하고 있었다. 남들과의 거리감도 커졌고, 중독되듯이 하늘의 조각을 줍는 일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느 주말,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밖으로 나서니 건물 관리인이 서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그가 묻자, 관리인이 대답했다. “옥상에 쓰레기를 버린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CCTV도 확인했습니다. 치워주세요.” 관리인은 그렇게 말하고 그의 어깨 너머로 방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악취가 난다는 듯 코에 손을 갖다 댔다. “요즘 화장실 환풍구를 켜면 악취가 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혹시 화장실을 볼 수 있을까요?” 그는 방으로 들어서려는 관리인을 몸으로 가로막았다. “제 화장실은 관여하지 마시죠.” 관리인은 그를 흘겨보았지만,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떠나며 말했다. “옥상 쓰레기 좀 빨리 치워주세요.”
그는 곧바로 옥상으로 올라갔다. 금방 온 몸이 뜨거워지는 햇볕이었다. 그는 하늘의 조각들이 가득한 드럼통 앞에서 가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여기저기 난 구멍들이 보였다. 하늘의 조각들이 떨어진 자리였다. 세상의 모든 하늘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의 하늘은 매일 조각나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어쩌면 그들의 하늘이 아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떨어지고 있는 건 오직 퇴근길의, 그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하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이 어떠하든, 그런 하늘을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됐다.
그는 더 이상 하늘의 조각을 보관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방안에 있는 조각들도 모두 갖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지금까지 하늘의 조각을 모으기만 했다면, 이제는 조각을 되돌려줄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눈부신 하늘에 난 구멍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조각 하나를 집어 들어 하늘을 향해 던졌다. 조각은 부메랑처럼 하늘을 향해 날아가더니, 이윽고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고, 곧이어 하늘의 거대한 구멍 하나가 메워졌다. 그의 손 안에 있을 때는 고작 손바닥만한 작은 조각이었지만, 하늘에 닿으니 지상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자리가 된 것이다.
그는 주말 내내 그렇게 조각들을 던졌다. 새벽부터 새벽까지, 이틀 내내 조각들을 하늘로 던져 올렸다. 그렇게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 아침이 밝았을 때, 그는 비로소 하늘이 가득 채워진 것을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늘을 채운 사람이 되었다. 무너져가는 하늘을 다시 회복시킨 존재가 된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졸린 줄도 모르고, 어느 때보다도 상쾌한 기분으로 직장에 나섰다.
그는 어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직장 동료들에게는 더 이상 비밀이랄 게 없었다.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했다. 자신이 유리처럼 투명한 인간이라고 느껴졌다. 그날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불러 저녁에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친구들에게는 자신이 하늘의 조각을 모두 하늘에 갖다 붙였다고 술에 취해 떠들기도 했다. 친구들은 무슨 소리냐며 웃고 넘겼지만, 그는 그저 기분이 좋았다. 이제, 모든 게 사라졌다. 그는 다시 가벼운 삶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고, 비슷한 날들이 이어지며 한 주가 지나고, 서서히 무미건조해지는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그는 어느 날 문득 길에서 멈춰섰다. 갑자기 그가 하늘의 조각을 주웠던 모든 장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벤치와 담벼락, 편의점 앞 웜홀 위, 자신의 손바닥과 나뭇가지 사이, 한 달째 그대로 주차되어 있는 어느 트럭과 자전거, 아스팔트 바닥과 흙바닥, 공원의 연못과 아이들이 노는 미끄럼틀, 그 모든 것들이 그에게 쏟아졌다. 그 하나하나의 사물들에 주의를 기울였던 마음, 조심스럽게 또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갔던 순간들, 조각을 주머니에 챙겨 넣을 때마다 느꼈던 포만감,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지만, 그에게는 가장 중요했던 그 시간들이 갑자기 되살아났다. 그러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바닥에 주저 앉아 중얼거렸다. “하늘을 다시 완성시키는 게 아니었어.” 그는 눈물 맺힌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닿을 수 없이, 결코 무너질 수 없이, 너무나 완벽하게 완성된, 너무도 멀리 있는 하늘 앞에, 헤아릴 길 없는 절망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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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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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콩
이번 소설도 너무 좋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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