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설계도 4
트루먼 쇼: 무대 위의 나, 감시의 나
당신이 나가고자 하는 세상이, 사실은 들여다보는 눈 속에 갇혀 있다면?
《트루먼 쇼》는 한 남자의 일상 전체가 사실은 거대한 쇼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스크린 속의 비극이라 말하기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장면들이 너무 비슷합니다.
누구나 ‘보여지는 나’를 의식하고, 누군가는 ‘관찰하는 나’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경계는 점점 더 흐려집니다. 감시와 표현, 자유와 설계, 무대와 나.
우리는 그 모든 사이를 오가며, 서서히 진짜 나를 잃어가고 있을지도요.
우리는 트루먼보다 더 자발적으로 연기한다
트루먼은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 감시받는 구조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받는 구조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SNS 피드, 좋아요, 공유, 알림, 프로필 사진. 이 모든 것들은 “나”를 보여주기 위한 창이자, 동시에 “보여지는 나”를 연출하는 무대입니다.
- “이 장면은 올려도 괜찮을까?”
- “이 말투가 지금 피드 분위기에 어울릴까?”
- “사람들이 좋아할까? 너무 진심 같지는 않을까?”
우리는 질문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 속에서, ‘말하고 싶은 나’보다 ‘보여야 할 나’를 고릅니다.
이건 표현이 아닙니다.
이건 구성된 감정의 배치입니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나를 연출하고 있고, 동시에 누군가의 감정 설계 속에서도 소비되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이 만든 자유, 진짜일까?
《트루먼 쇼》의 감독 크리스토프는 말합니다.
“트루먼은 떠날 수 있었지만, 떠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 말은 두려울 만큼 지금과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조차 리트윗 가능한 말, 좋아요를 부를 콘텐츠, 이모지 반응이 빠른 감정 구조 안에서 선택되고 있진 않을까요?
- 우리는 진짜 내 취향을 말하고 있는 걸까요?
- 아니면 알고리즘이 보장하는 ‘반응’을 선택하고 있는 걸까요?
플랫폼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고, 나는 내 감정을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표현하도록 길들여졌는지도 모릅니다.
🎨 아트웍 1
〈열쇠구멍 앞에 선 남자〉
그림 속 남자는 돌아서 있었습니다. 그가 마주한 건 열쇠구멍인지, 문인지, 혹은 누군가의 눈동자인지 모릅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우리를 향해 등을 돌린 채 서 있습니다.
누군가는 말하겠죠. 그는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서 있는 거라고.
하지만 저는 다르게 보았습니다.
그는 들어가야 할 감정 앞에서 서 있는 사람입니다.
구성된 감정, 예측된 반응, 준비된 진심. 그것들을 꺼내기 직전에 머뭇거리는 사람.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정말 나의 것일까?’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아직 그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을 통과해버리겠죠.
나를 구성한 건 누구였을까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내 생각, 내 취향, 내 하루, 내 감정까지도요.
하지만 진짜 나를 보여준 적은 있었을까요?
내가 좋아한 말, 눌렀던 이모지, 지나간 콘텐츠 속에 반응했던 감정들은 정말 ‘내 안에서 생긴 감정’이었을까요? 아니면 ‘보여진 감정 구조’에 자동 반응한 결과였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트루먼은 우리입니다.
그리고 관객 역시 우리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관찰하고, 스스로에게 연기하고, 그 연기를 믿고 살아가는지 몰라요.
☑ 감정과 무대 체크리스트
- 나는 ‘표현’보다 ‘반응’을 먼저 떠올리는가?
- 나의 말투, 선택, 감정은 누군가를 위한 연출이었는가?
- 진짜 나를 보여줄 때보다, 보여주는 나에 안도한 적은 없는가?
-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고 느낄 때, 나는 더 ‘정돈된 사람’이 되는가?
- 최근에 한 선택은, 내 감정에서 비롯된 것인가, 플랫폼의 반응을 의식한 것인가?
🎠 특별섹션 - 닫힌 문의 미학
감정은 열쇠를 가지지 않는다
그림을 오래 바라보다가, 이 제목을 떠올렸습니다.
《감정은 열쇠를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짜 감정은 어떤 방도 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건 들어가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저 그 앞에서 조용히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을 꺼내기 위해 언제나 뭔가를 준비합니다.
적절한 타이밍, 적절한 말투, 좋은 조명 아래 놓인, 흠 없는 감정.
하지만 감정은 그런 구조를 가지지 않습니다.
가장 솔직한 감정은 계획이 없고, 설명되지 않으며, 반응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건 그저 있는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 마무리하며
《트루먼 쇼》는 쇼가 끝나고도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쇼의 구조 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감정이 설계되고, 무대가 설정되며, 삶이 공유되고, 진심이 연출될 때, 우리는 거기서 나를 믿을 수 있는 힘을 잃어갑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정말 나의 것일까? 아니면 반응하기 위해 만들어낸 연기였을까?
그 질문이야말로 이 쇼에서 나갈 수 있는 단 하나의 문일지도 모릅니다.
나에게 묻는 연습
모든 것이 분석 가능한 시대
인공지능은 내가 어떤 감정에 오래 머무는지, 어떤 강도의 자극에 더 반응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 강한 자극으로 나를 유도할 준비가 되어 있죠.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된 콘텐츠, 빠져든 이야기, 반복해서 보고 있는 감정선이 정말 내 취향에서 출발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알고리즘이 설계한 감정 흐름에 편안히 순응한 결과였는지, 이제는 구별이 모호해집니다.
내가 판단하고 있다고 믿는 그 감정의 기원조차 어쩌면 외부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 대한 정보가 온라인 어딘가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은 더 큰 불안감을 남깁니다.
내가 어떤 감정을 자주 느끼는지, 어떤 이야기 구조에 쉽게 몰입하는지, 어떤 말투에 감정이 흔들리는지 와 같은 모든 정서는 내가 인식하지 못한 채 드러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알고리즘은 그 흔적을 추적하고, 정교하게 나를 구성합니다.
추천이 아니라, 감정 설계의 외주화에 가깝습니다.
이제는 감정을 느끼는 것에만 집중하기보다
감정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까지,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요?
《악마의 설계도》는 감정이 조용히 설계되는 시대 안에서, 나의 감각을 회복하기 위한 작은 멈춤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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