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곳저곳 O리단길, 어디서 온 이름일까?

오늘 지명수배에서는 두 곳+@의 지명을 다룹니다.

1️⃣ 경리단길
2️⃣ O리단길 시리즈

구독자 님은 '경리단길'이 어딘지 아시나요?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이태원역 인근의 작은 거리인데요. 경리단길이 뜨기 시작한 건 2013~2014년 정도부터였다고 해요. 이에 그치지 않고 2010년대 후반 부터 여기저기 'O리단길'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흑석동의 '흑리단길'을 발견했는데, 솔직히 생전 처음 듣는 그 길을 지나면서는 '이름만 붙이면 끝인가, 이게 대체 뭐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살펴보다가, 지명수배 주인장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어 가져와 봤어요. 오늘은 'O리단길 흥망의 역사'를 들려드릴게요.

1️⃣ 경리단길: '국군경리단'이 있는 길

O리단길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경리단길'이라는 이름의 유래부터 알아봐야겠죠. 경리단길의 '경리단'은 경리단길 초입에 있는 '국군재정관리단'의 옛 이름인 '국군경리단'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길 초입에 있는 군부대이다보니 자연스레 그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인데요. 이게 끝인데… 유래는 쬐금 시시하지요?

2️⃣ O리단길: 경리단길처럼 힙해지고 싶은 길(?)

경리단길이 빵하고 뜨자 곳곳에서 상권명을 비스무리하게 짓기 시작했습니다. 특색 있는 작은 가게들이 들어선 좁은 골목이면 너나할 것 없이 O리단길이 되곤 했죠. 본질적으로 접근해보자면 이 '경리단길'이라는 용어에는 별다른 장소성이나 상징성이 없는데요. 경리단길이라는 이름에서 한 글자라도 따서 붙여보면 우리도 성공할 수 있겠지라는 욕망의 투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까요? 

대표적인 곳으로는 마포구 망원동의 '망리단길', 석촌호수 인근의 송리단길(송파+리단길), 경주 황남동의 황리단길, 전주 객사 인근의 객리단길, 부산 해운대의 해리단길, 고양시 밤가시마을의 밤리단길, 대전 봉명동의 봉리단길 등이 있습니다. 한국관광공사의 지역관광역량 심층 진단 및 분석 보고서(2021)에 따르면, 전국에 O리단길이라는 지명을 가진 곳은 총 33곳이라고 합니다. 구독자님 사는 곳 주변에도 리단길 시리즈가 있을지 궁금하네요. 이 정도면 한국인들의 끔찍한 리단길 사랑이라고 불러도 되려나요…? 

사실 경리단길 이야기를 하자면 슬픈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요. 가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옛날 번화가처럼 넓고 큰 광장이 있거나 차가 쌩쌩 다니는 넓은 거리는 아닙니다. 골목에 가깝고, 오밀조밀 낮은 건물에 들어선 특색 있는 상가들이 경리단길을 비롯한 리단길 시리즈의 특징이었죠. 그런데 최근에 경리단길 간다는 사람 본 적 있으세요? 한창 핫할 때는 빈 상가가 없을 정도였는데, 요새는 두세 건물에 하나 정도는 '임대'가 붙은 상가를 쉽게 볼 수 있대요. 당연히 유동인구도 많이 줄었고요.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었지만, 더 크게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때문에 생긴 문제인데요.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했던 구도심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2015~2016년 사이 상권이 크게 활성화됐던 경리단길은 2~3년도 되지 않아 그저 그런 길 중 하나가 됐습니다. 임대료가 크게 올랐거든요.

경리단길만의 개성을 강화해주던 작은 식당, 카페, 소품샵들은 갑자기 오른 임대료에 못 이겨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고요. 그곳에는 임대료를 부담할 수 있을 만한 대형 프랜차이즈들이나  들어서곤 했어요. 특색이 사라질 수밖에 없어진 겁니다.

비단 경리단길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고양의 밤리단길도, 경주의 황리단길도 이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천편일률적 거리가 되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 지 오래예요. 지자체와 원주민의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고 하네요.

사실 경리단길은 지난 10.29 참사가 일어난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도 하죠. 안 그래도 어려웠던 상권이 더 회복 불능으로 빠져든 게 안타깝기도 합니다. 'O리단길' 자체가 불명예스러운 이름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야기가 조금 우울해졌나요? 처음에는 너나할 것 없이 붙이는 이름에 왜들 저러나 싶었는데, 이제는 이렇게라도 살아남아 보자는 몸부림인 것 같아 괜시리 응원을 건네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니겠어요? 🧐

🛤 오늘의 지명 복습 

경리단길: 골목 초입에 있던 '국군중앙경리단(현 재정관리단)'에서 유래된 이름.
O리단길: '이 길도 경리단길처럼 유명해지고 싶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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